LIFESTYLE 캐리비언 스타일의 정수

유럽의 수많은 상업 공간 인테리어 디자인을 히트시키며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데커레이터 페페 레알. 최근 그는 도미니카 공화국에 사는 지인의 아파트를 화려한 파티 하우스로 변신시켰다.

2021.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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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 입구를 통해 거실과 연결되는 다이닝룸. 황동 다리와 대리석 상판으로 구성된 묵직한 식탁이 중심을 잡고 있는 가운데 청화백자 화병과 푸른 카펫, 커튼, 에메랄드 컬러 의자를 매치해 청량감이 깃든 공간을 완성했다. 거실과 다이닝룸 사이 벽면은 모두 움직이는 가벽으로 구성해 공간 활용도를 높였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겸 데커레이터 페페 레알(Pepe Leal)은 현재 스페인뿐만 아니라 유럽 인테리어 디자인 분야에서 의심할 여지 없는 실력파 디자이너로 손꼽힌다. 런던에서 미술사 학위를 받고 고향인 스페인 마드리드로 돌아와 폴리테크니크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예술과 디자인 사이 존재하는 문맥을 읽고 이를 바탕으로 기존에 볼 수 없던 창의적인 스타일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페페 레알이 30여 년 동안 해 온 작업을 들여다보면 소위 시그너처 스타일로 용인될 만한 반복적인 디자인을 찾아보기 어렵다. 심지어 한 집에서도 방마다 확연히 다른 컬러와 스타일이 펼쳐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저는 매우 절충적이면서 다재다능한 디자인 언어를 구사하는 디자이너예요. 어떤 작업이든 고객의 취향과 니즈를 반영하는 걸 최우선으로 삼죠. 그래서인지 종종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이 같은 스타일, 컬러, 형태를 자가 복제하듯 반복하는 것을 보면 불편해요. 저는 고객의 의견을 공간에 반영할 때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풀어내는 걸 중시합니다.”

 

 

복도와 다이닝룸은 페페가 디자인한 컬러 유리 파티션으로 나뉘어 있다. 라인이 돋보이는 벽면, 그림, 파란 코모도 위의 기하학적인 조형 작품으로 현란한 느낌이 드는 복도는 주황색 벨벳 시트의 치펜데일 스타일 의자가 놓이면서 안정감이 감돈다. 

 

현지 수공예 장인의 손길로 완성한 갈대 벽면 장식이 돋보이는 거실 코너. 중국풍 서랍장과 오리엔탈 스타일의 세라믹 사자 한 쌍, 옻칠로 마감한 꽃 모양 프레임의 거울 조합은 이국적인 정취를 선사한다. 

 

골드 프레임의 아치 입구가 인상적인 메인 거실. 붉은 벨벳 소파와 창가에 놓인 아치 모티프의 핑크 벨벳 스크린이 럭셔리한 분위기를 주도하는 가운데 자개 샹들리에, 황동 야자수 조각상 그리고 현지에서 구한 수공예 테이블이 에스닉 무드를 더하며 극강의 화려함을 완성했다.     

 

 

그는 특히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 호텔과 레스토랑 등 상업 공간을 디자인할 때 기억에 남을 만한 참신하고 아름다운 비주얼을 선보이는 것은 기본, 궁극적으로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환경이란 어떤 것인지 경험하게 해주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공간의 물리적인 조건과 역사적 이해를 기반으로 미학적 감흥이 더해진 페페의 인테리어 디자인은 공감대가 넓기에 ‘성공적인 디자인’이라는 평가가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페페의 진가는 디자인 업계에 오래 종사한 사람들에겐 일종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폭제가 되곤 한다. 이미 굳은 자신의 스타일을 새롭게 전환해보고 싶거나, 지금까지 고수해온 디자인이 맞는 것인지 의심이 들 때면 페페가 구사하는 매직을 체험해보고 싶어지니 말이다. 실제 작년에 페페는 미지의 세계나 다름없는 도미니카 공화국에 사는 사업가로부터 인테리어 디자인 의뢰를 받았다. 지인에게 소개받은 카를로스 캄블로르(Carlos Camblor)와 안드레스 루고(Andres Lugo) 커플이 바로 그 주인공으로,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가장 큰 가구 숍을 운영한다. 그들은 마드리드에 놀러 왔다가 페페의 집에 저녁 초대를 받은 후 그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고. “물론 저도 그들이 취급하는 다양한 가구 디자인과 소품에 흥미를 느꼈지요. 서로의 관심사가 통했기에 4000마일이나 떨어진 곳이지만, 인테리어 디자인을 마다할 리 없었죠.” 카를로스와 안드레스의 집은 도미니카 공화국 수도인 산토도밍고(Santo Domingo) 도심에 자리한, 2000년대 초반에 지어진 11층 규모의 타워형 아파트로 아름다운 도시 전망과 수영장, 테니스 코트 그리고 파티를 열 수 있는 루프톱이 갖춰져 있었다. 하지만 카를로스와 안드레스가 사는 600㎡의 아파트 내부는 공간 활용도가 떨어지는 비효율적인 구조와 낡은 마감재 그리고 붉은 나무 패널로 뒤덮인 벽면 때문에 전체적으로 어둡고 촌스러운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카리브해 예술가들의 놀라운 그림 컬렉션이 걸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가치가 전혀 빛을 발하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작품의 존재감을 깎아먹는 벽면의 갈색 패널은 무조건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죠.” 페페는 집주인의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을 파악하기 위해 그들의 아트 컬렉션, 운영하는 가구 숍 그리고 자주 다니는 레스토랑과 상점에 이르기까지 현지에서 파악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꼼꼼히 조사하고, 개조 계획에 따른 주요 결정 사항을 신중히 논의해나갔다. 마드리드와 산토도밍고를 자주 오갈 수 없는 디자이너에게 변수나 예외가 발생한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었기 때문. 집주인들은 디자이너를 무한 신뢰하며 그의 의견을 전폭적으로 따랐다. “집주인이 내건 유일한 조건이라면, 가구와 소품은 그들이 운영하는 가구 숍에 있는 제품을 활용해달라는 것 정도였지요.” 디자이너는 집에서 파티를 자주 여는 카를로스와 안드레스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해 거실, 다이닝, 라운지 등 여러 사람이 모이고 앉을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을 마련했고, 세 곳은 접이식 벽면을 통해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분리 통합할 수 있게 디자인했다. “공간의 재분배는 이 집 개조에 가장 시급하고 효과적인 처방전이었죠. 집을 개조하기 전 주인들은 파티를 열지 않는 날엔 넓은 거실을 제외하고 침실과 주방만 오가며 생활했는데 지금은 짜임새 있게 구분된 공용 공간을 두루 사용하며 일상을 즐기고 있답니다.” 

 

 

야자수를 조각한 우드 패널로 마감한 벽 장식이 인상적인 라운지. 트로피컬 이미지를 베이지 톤과 골드 포인트로 우아하고 내추럴하게 풀어낸 라운지는 이 집에서 가장 고요한 공간이다.     

 

마스터 베드룸. 울 패브릭으로 마감한 침대 헤드보드는 서재와 침실을 구분하는 파티션 역할도 겸한다. 네이비 컬러 벽면에 걸린 유화는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화가 라몬 오비에도(Ramon Oviedo) 작품이다. 

 

 

페페의 공간 분배는 침실에서도 빛을 발했다. 잠을 자다가도 업무상 중국과 인도 등 시차가 있는 지역과 전화 통화나 이메일을 해야 하는 집주인은 예전에는 서재로 이동해야 하는 불편함을 겪었지만, 지금은 침실과 서재, 드레싱룸, 욕실이 자연스럽게 연결된 마스터 존 안에서 사생활을 편리하게 누리고 있다. 

 

 

가장자리를 황동으로 마감한 가벽을 이용해 침실 내 마련한 서재. 침실에서 바라본 서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옷장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페페가 만들었다. 

 


“저는 공간 구성에 있어서는 집주인의 의견과 생활 패턴을 절대적으로 반영하지만 데커레이션은 제 직감에 따라 과감한 일탈을 시도하는 경향이 있어요. 물론 뜬금없이 이뤄지진 않아요. 주변에서 수집한 어떤 모티프가 그 집에 유머 코드를 선사하거나 전통미를 부여하는 등 나름의 맥락을 유지하는 가운데 행하죠.” 

 

 

블랙 프레임이 돋보이는 캐노피 침대와 핑크 벽면의 세련된 조화미가 감도는 침실. 

 

 

페페는 산토도밍고라는 도시 그리고 집주인의 사업장과 생활 반경을 둘러보면서 뜻하지 않은 보물을 발견했다. 카리브해 전통 비치 하우스와 수공예품을 접하면서 1970년대 감성을 자극하는 라탄 공예의 매력을 알게 되었고, 집주인의 가구 숍에서 전통 월 데코 패널을 발견했으며 오래된 식료품점에 갔을 때 본 터키석 컬러 수납장에서 이 지역 고유의 정취를 느꼈다. 게다가 카를로스와 안드레스의 가구 숍에서 판매하는 중국 캐비닛과 청화백자 등 아시아 각국의 전통 소품과 가구는 페페에게 기존과는 확연히 다른 스타일을 구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안겨주었다. “이 중 가장 과감한 시도는 복도 한쪽 벽면을 라탄 공예로 마감하고 그 앞에 에머랄드 빛깔의 중국 캐비닛을 매치한 것입니다. 특히 라탄 벽면은 저뿐만 아니라 현지 공예가들도 처음 시도하는 작업이기에 의도한 대로 잘 설치될 수 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어요.” 다행히 벽면 마감은 완성도 높게 시공되었고 단순한 형태의 중국 캐비닛은 푸른 컬러 자체가 돋보이면서 복도에 밝고 활기찬 기운을 불어넣어주었다. 

 

 

욕실 옆에 자리한 드레싱룸. 옷장 도어 표면은 19세기 프랑스 화가 장 이폴리트 플랑드랭(Jean-Hippolyte Flandrin)의 대표작인 ‘바다 옆에 앉아 있는 젊은 남성’ 누드화로 장식하고 공간 가운데 놓인 벤치는 도미니카 공화국의 국기 색상을 모티프로 제작했다. 

 


낙관적인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정평이 나 있는 페페는 생생하고 화려한 컬러를 통해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걸 좋아하는데, 이때 영감의 원천이 되는 것은 예술 작품이다. “현대 미술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고 있어요. 그림 속에서 인상 깊게 본 색상을 응용하거나 심지어 붓 터치 등의 질감을 적용하기도 합니다.” 페페는 이 집의 각 공간마다 용도에 맞는 컬러를 설정해 꾸몄고, 이때 주요 모티프가 된 것은 집주인이 소장하고 있던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세계적인 화가 라몬 오비에도(Ramon Oviedo)의 화려한 회화 작품이었다. 그리고 이 작품을 관통하는 색상이 도미니카 공화국 국기와 유사하다는 것을 감지한 페페는 드레싱룸에 놓일 벨벳 벤치에 국기 색깔을 대입하는 기지를 발휘하며 이 집만의 독보적인 개성을 창조했다. 

 

 

주방 전체를 이국적인 화사함으로 물들인 수납장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페페가 지역 식료품점 캐비닛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했다.

 

 
구조 변경부터 소품 장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테리어 작업이 완성되기까지 5개월이 걸렸고, 그 과정은 걱정했던 것보다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저와 함께 손발을 맞춰온 스페인 시공팀 없이도 해외에서 인테리어 개조를 할 수 있겠다 생각한 것은 언어 때문이었어요. 이곳도 스페인어를 사용하니까 공통점이 많을 거라 예상했는데 막상 현지에 와보니 다른 언어라 해도 될 만큼 차이가 많이 났고, 문화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한 예로 시공팀 인력 대부분은 현장과 멀리 떨어진 교외에 살며 출퇴근을 했는데 어느 순간 집에 가지 않고 아예 공사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더군요. 그런데 이걸 보고 황당해했던 사람은 저 하나였습니다.” 

 

 

고향인 스페인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존경받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페페 레알. 독창적이면서도 시대를 초월하는 우아함이 깃든 스타일로 사랑받고 있다.  

 

 

클라이언트의 무조건적인 지지 덕분에 과감한 컬러 조합, 풍성한 장식 요소로 흥겨움이 넘쳐나는 집으로 변신한 산토도밍고 아파트는 오랜 경력을 지닌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아무런 편견 없이 눈과 마음을 열고 논리와 마법, 두 가지 디자인 언어를 균형 있게 구사한다면 어디서든 존재 이유가 분명한 공간을 완성할 수 있음을 이 집이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Interior Design PEPE LEAL(www. Pepere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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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이정민PHOTO : MANOLO YLLERA(Photofo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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