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공예라는 이름 아래

공예를 추앙할 생각은 없다. 이것은 그저 우리 젊은 공예 작가들에 대한 작은 기록이다. 국내외를 무대로 활동 중인 6인의 젊은 공예 작가. ‘주목해야 할’이라는 수식어는 붙이지 않을 참이다.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그들의 작품이 굳건한 보증서가 될 테니.

2018.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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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은주, 골목, 2018, 정은, 110×135×22mm

 

골목에 숨은 이야기 노은주 
이게 대체 뭐지? 그의 작품 앞에 서면 누구라도 품을 의문이다. 한데, 이것의 정체가 브로치라는 사실을 안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다. 나뭇가지가 여러 갈래로 뻗은 형태 같기도 하고, 얼핏 지붕의 모습도 보인다. “주택가의 골목길을 하늘 위에서 내려다본 형태인데, 그 구조 자체만으로 제 눈에는 너무 예쁜 거예요.” 서른 전까지는 아파트에 살아본 적이 없다는 작가 노은주에게 골목길은 또 다른 추억이자 기억이었을 터. 골목마다 켜켜이 쌓였을 숱한 이야기를 품은 집. 하늘에서 내려다본 그것은 마치 하나의 디자인 구조처럼 보인다. 건축 모형이 떠오르기도 한다. 추억 속 집의 모형이자, 꿈꾸는 미래의 건축 모형 말이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는 은. “금속은 제게 익숙한 소재예요. 금속을 만들고 깎고 붙이고 형태를 만드는 ‘구조적인’ 것에 관심이 많아요.” 그는 자신의 작업을 이야기하며 ‘구조적’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썼다. “위에서 보는 것과 옆에서 보는 것, 다 다른 모습이죠.” 시선에 따라 달라지는 형태와 그것이 건네는 심상. 구조 자체에 집중한 초창기 작업이 다소 차갑게 느껴졌다면, 지금의 작업은 형태적으로는 차갑지만 이야깃거리가 더 많아진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골목골목에 숨어든 삶의 이야기를 품은 그의 ‘루프’ 작업은 작은 브로치지만 강한 조각의 여운으로 다가온다. 분명 골목의 구조를 담았지만 어느 순간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다본 지붕이 아니다. “어디든 달 수 있어야 장신구죠. 그런 점에서 착용자가 참여해야만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답니다.” 장신구에 관한 작가의 철학을 실천하듯, 이번 전시에 소개될 그의 브로치 작품은 직접 만져보고 착용도 가능하다. 그가 인도하는 골목골목을 걸으며 마음이 움직였다면, 부담 없이 구입도 가능하다. 

 

 

김용주, 초월의고비 시리즈_뉴기니아 앵무, 2018, 벨크로, 실, 정은, 11×11×6cm

 

‘찍찍이’의 예술 김용주 
값비싸고 화려한 것만 아름답다 여기는 현대인에게 보내는 반전의 일격 같달까? 김용주, 그의 작품은 소재부터 특별하다. “벨크로, 찍찍이라고도 하죠. 내가 작가로서 어떻게 생존할 것인지, 오래 고민했었고, 그때 발견한 게 벨크로였어요.”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이 소재를 작품으로 구현하는 데 시행착오도 많았다. 특히 소재 특성상 착용할 때 옷에 붙는 문제는 과제였다. 물론 지금은 해결책을 찾아냈지만, 비법은 당연히 비밀이다. 벨크로와 함께한 지 10년. “처음에는 회색, 검은색 위주로 했는데, 요즘에는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등으로 컬러를 확장했죠. 작업 방식요? 일일이 칼로 자른 다음에, 다시 붙이고 실로 이어주는 방식이에요.” 대표작 ‘초월의고비’ 시리즈는 강렬한 색상이 눈길을 끈다. 더 궁금한 건 형태다. 거침없이 몰아치는 물결 같기도, 훨훨 하늘을 나는 한 마리 새 같기도 하다. “새의 형태와 유사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지만, 사실 새를 의식하고 만든 작품은 아니에요.” 사람들이 새로 느낀다면 이참에 새를 본격적으로 관찰해볼까 싶었다. “마침 이번 전시의 주제가 ‘집’이잖아요. 이래저래 정원에 있는 새를 살펴보게 됐어요.” 처음으로 자세히 바라본 앵무새는 생각보다 많은 색을 품고 있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아 시도조차 꺼린 낯선 색의 배합. 그런데 그 조합이 뜻밖에 어울렸다. 상상 속의 새처럼 화려한 컬러를 입은 새, 그것은 브로치로, 목걸이로 주저 없이 날아다닌다. “장신구는 착용을 전제로 하는 오브제입니다. 걸어 다니는 조각품 같죠.” 유일무이한 벨크로 소재로 걸어 다니는 조각(장신구)을 만드는 김용주. “연말 모임에 다이아몬드를 차고 가면 빤하지만, 이 브로치를 하면 호기심을 유발할 거예요.” 물론 가슴을 쫙 펼 수 있는 당당함도 필수다.

 

 

오세린, 엄마에게, 가지고 있는 금이 좀 있냐고 물었다, 2018, 정은, 6.5×7.3×7cm 

 

가짜와 진짜 사이 오세린 
‘나는 엄마에게, 가지고 있는 금이 좀 있냐고 물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될 오세린 작가의 작품 제목만 봐도 호기심은 이미 차오른다. 하지만 잠시 멈춰 그의 지난 작업을 먼저 훑어보는 것이 순서겠다. 그는 길거리에서 저가 액세서리를 수집해 복제하고, 복제된 그것을 다시 하나의 덩어리로 만드는 작업을 해왔다. 카피를 모아 오리지널을 만들고, 그것을 다시 촬영해 기록한 것이다. “그런 와중에 문득 싸구려 액세서리를 만드는 사람을 찾아가보자 싶었어요. 중국에 ‘이우’라는 도시가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큰 액세서리 도매 시장이 있죠.” 그는 이곳에서 싸구려 액세서리를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이를 사진으로, 영상으로 남겼다. “재미있는 건 그들의 작업 방식과 우리의 작업 과정이 크게 다르지 않더라는 거죠. 방향과 가치관만 다를 뿐.” 그 과정에서 작가 역시 혼란에 빠졌다. ‘그들이 만든 게 가짜일까?’ “그곳에서 남사장이라는 분을 만났는데, 이런 말을 하더군요. ‘너희는 1%를 만족시키지만 나는 99%를 만족시킨다’라고요.” 그의 다음 행선지는 베트남이었다. 베트남에도 역시 가짜 액세서리를 만드는 중국보다 더 큰 공장이 있는데, 작가는 그들에게 자신의 반지를 카피하게 하고 그 결과물을 전시장에 설치하는 흥미로운 전시를 펼쳤다. “진짜 다이아몬드와 카피를 전시장에 함께 설치했는데 아무도 구분하지 못하더라고요. 심지어 더 반짝인 것은 가짜였죠.” 오만했던 자신을 반성하며, 진짜 예술가가 할 수 있는 게 뭘까를 고민하게 됐다.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주얼리. 그는 이번 전시에서도 장롱 깊숙이 보관해둔 돌반지(금반지)를 가지고 그만의 화두를 던진다. 롯데월드에서 보았던 신드바드의 동굴 속 금은보화, 그리고 장롱 속에 감춰진 금반지. 과연 어떤 게 더 가치 있을까. 아이러니한 것은 그에게는 신드바드 동굴의 보석이 더 빛나게 기억되고 있다는 것. 그렇다면 당신은?

 

 

한상덕, 정물 새, Still Bird, 2017, 오르골, 함석, 철, 황동, 구리, 은, 나무 

 

의자 위의 너와 나 한상덕  
한상덕 작가의 작업에는 늘 ‘의자’가 등장한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의자. 그런데 의자는 권력의 상징, 사회화의 상징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 “앉아 있다는 행위 자체도 합리적이고 지적이라는 이미지를 품고 있죠. 여기서 인지할 점은 우리는 초·중·고 그리고 사회에 이르기까지, 의자만 바뀌었을 뿐 모두 앉아 있다는 사실이에요.” 문득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작가 자신은 현재 어느 의자에 앉아 있을까. “지금은 제도권 안의 의자인 것 같아요. 막상 벗어나면 불안하죠.” 자유롭게 미지의 세계를 꿈꾸지만 벗어나면 불안한, 모순의 삶. “집이 제겐 커다란 의자 같았어요. 집을 매개로 관계망이 형성되고, 사회화되니까요.” 그의 눈에 비친 집은 ‘추억’ ‘사랑’과 같은 따뜻한 정서적 대상은 아니다. 집 역시 규모만 다를 뿐 권력이자 사회화의 장이자 관계를 형성하는 하나의 유용한 도구다. 하지만 그가 말하고픈 것은 현대 문명,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그저 이렇게 살아가고 있구나를 기록할 뿐이죠. 그 기록을 시각화하는 과정이 바로 제 작업이고요.” 그의 작업은 장신구는 아니다. 그렇다고 조소도 아니다. 조소의 크기에서 오는 숭고함과는 분명 다르다. 오히려 작고 귀엽다. “휴먼 스케일이라고 하죠. 사람이 다룰 수 있는 크기. 제 작품은 30~40cm 크기의 작고 정교한 세계입니다.” 거창한 주제보다는 자신 혹은 누구나의 이야기도 될 삶의 기록. 그것은 소소함보다는 친숙함에 가깝다. “굳이 금속을 고집하는 이유는 오리지널 재료의 물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어요. 공예적 기술을 바탕으로, 금속의 상징성을, 금속 본연의 관점을 풀어내는 게 재미있어요.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숭고하지도, 그렇다고 아무 의미도 없지 않은 조형물. 자신의 작업은 딱 거기에 서 있노라고 그는 말한다. ‘삶은 의자를 둘러싼 투쟁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의자 위에서, 집 위에서 분투하는 삶을 잠시 들여다볼 것을 권한다.

 

 

박주형, 순간, 기쁨 Ⅱ-9, 2015, 먹감나무, 옻칠, 오래된 커틀러리, 450×280×180mm

 

가장 아름다운 숟가락 박주형 
“영국에서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벼룩시장에서 숟가락을 사 모았어요.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숟가락. 하나에 1500원, 2000원 하는 쓸모없는 숟가락을 말이죠.” 박주형 작가의 숟가락 사랑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 영국, 이스탄불 등 여러 곳을 여행하며 모은 숟가락만 200여 개, 나이프와 포크를 포함하면 600~700여 개에 달할 정도다. 이제는 쓸모를 다한 낡은 숟가락. 그것은 박주형의 손을 거쳐 반지로, 브로치로,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던지는 오브제로 새롭게 탄생한다. 이번 전시에서도 마찬가지다. “호두나무로 만든 이 브로치는 원래 나무 무게만 500g인데 나무 속을 깎아내 70~80g 정도로 줄여 착용하기에도 부담이 없어요.” 한데 왜 숟가락이었을까. 그는 새것보다는 ‘사용한 흔적’이 있는 것을 좋아한다. “사용한 흔적. 그것이 나를 만들어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얼마 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하루 간격으로 돌아가셨는데, 유품을 정리하던 중 할머니가 저를 위해 남겨둔 은수저 세트를 발견했어요.” 숟가락으로 해괴망측한 것을 만든다고 손녀를 탓하던 할머니는 은수저 세트를 마치 유언처럼 고이 남겨두었다. 그는 언젠가 할머니가 남겨주신 은수저를 가지고 의미 있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이른 시간은 아닐 듯하다.  
“유학 갈 때도 엄마가 수저 한 벌을 챙겨주셨어요. 안 가져간다고 승강이를 벌이다가 못 이기는 척 가져갔는데, 그 수저 한 벌이 큰 위로가 됐어요.” 숟가락만 보면 생각나던 가족과 집이었다. 그뿐인가. 실용적인 것도 모자라 얼마나 선이 곱던가. 더는 쓸모를 다한, 사람들의 필요를 떠난 낡은 숟가락. 그는 이 그립고 애달픈 숟가락에 새 생명을 부여한다. 밥을 먹는 도구로서의 소명은 다했지만 장신구로, 예술 작품으로서 또 다른 삶을 시작한 숟가락에 대한 애도와 사랑. 이유진갤러리의 옛 식당 공간에서 박주형의 ‘숟가락’을 만날 수 있다.

 

 

권슬기, 기억, 2018, 실리콘, 안료, 실, 플라스틱, 깃털,  260×260×80mm

 

투명한 생명력 권슬기   
당연히 분명 유리일 것이다. 속이 비치듯 투명한 장신구니. 우리의 눈을 보기 좋게 속이며 등장한 권슬기. 유리처럼 보인 그것은 다름 아닌 실리콘. “원래 실리콘은 작품 만들 때 툴, 도구 정도로 쓰이는 재료인데, 어느 날 버려지는 이 실리콘이 너무 아까운 거예요.” 버려진, 주재료는 결코 될 수 없던 실리콘의 운명은 작가에 의해 전복된다. “가까이서 보고 만져보면 너무 얇아서 바들바들 흔들려요. 유리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반응이 재미있었어요.” 초기 전시 때만 해도 실리콘의 이 묘한 매력을 사람들이 직접 느낄 수 있도록 만져보게 했다. 무지막지하게 실리콘을 주무르는 사람들의 상식 밖 관람 태도로, 귀한 경험은 끝났지만 말이다. “처음에 생각한 건 세포 형태였어요. 여기에 색채를 더한 거죠.” 자연의 모든 생명체. 그것은 먼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예술 활동의 가장 고귀한 소재가 되어왔다. 그는 생명의 최소 단위인 세포, 그 안에 내재된 역동성과 생동감에 주목했다. 쓸모없는 실리콘은 어느 순간, 누군가의 손가락으로, 가슴으로 세포 분열하듯 퍼져 나간다. 그가 만든 것은 분명 장신구지만, 그것은 역동하듯 움직이는 생명체와 다름없는 것이었다.    
“낙산사 홍련암으로 향하는 길목에 쌓인 수많은 돌탑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작은 돌멩이 하나하나에 담긴 사연, 소원 하나를 얻기 위해 알맞은 돌을 찾아 헤맸을 누군가의 정성이 놓인 듯하여 조심스럽게 지날 수밖에 없었다고. “흔히 밥을 짓는다, 집을 짓는다, 약을 짓는다라고 말하죠. 한데 ‘짓는’ 행위는 대상을 알아야 할 수 있어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정성도 많이 필요하죠.”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밥을 짓듯, 누군가를 위해 약을 짓듯, 그는 깃털 하나하나에 색을 칠하고 그것을 엮어 목걸이를 만들었다. 매일매일 켜켜이 쌓여 하나로 완성되는 울타리처럼. 누군가를 위해 정성스레 기도하듯 마음을 지어도 좋을 12월이다.

 

섬세한 기술과 신선한 발상.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현대 공예 작가 20인이 ‘집’을 매개로 한 작품으로 뭉친다. 오래도록 집이었던 공간, 청담동 이유진갤러리가 그곳. 12월 13일부터 내년 1월 4일까지 열릴 <사가보월(思家步月)>. ‘집을 그리며 달빛 아래 거닐다.’ 두보의 시 ‘간운보월’ 중 한 구절을 발췌한 것으로, 작가들이 펼쳐놓은 집으로 걸어보시길. 지면 속 6인을 포함한 20인이 반지, 브로치 등 선물 같은 작품을 12월 당신에게 건넨다. 

Cooperation 이유진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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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설미현PHOTO : 박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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