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1970년대, 흑백 TV도 귀하던 시절에는 TV 콘텐츠가 요즘처럼 다양하지 않았다. 프로레슬러 김일이 압둘 자바, 안토니오 이노키 등 내로라하는 세계 거인들과 싸우다 결정적 순간에 박치기 한 방으로 때려눕혔던 프로레슬링 정도가 떠오른다. 드라마나 영화도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지만, 되돌아보면 생생함을 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던 시절이다.

그런 TV 콘텐츠 시장에 격변이 일어난 것은 컬러 TV가 보급된 1981년의 일이다. 컬러 TV 보급으로 KBS와 MBC 등 방송사들이 앞다투어 드라마를 포함한 모든 프로그램을 기존의 흑백에서 컬러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당시 문화적 충격은 여전히 선명하다. 이 과정에서 새롭게 제작된 TV 콘텐츠는 대중의 온갖 관심을 TV 브라운관 속으로 옮겨놓았다.

그리고 이제 TV 콘텐츠는 뉴스부터 드라마, 영화, 스포츠, 오락, 연예, 시사, 교양까지 다양한 장르를 쏟아내며 모든 문화 콘텐츠의 총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모든 시청각 콘텐츠의 중심에 놓이게 된 것이다. 특히 콘텐츠에 대한 수월한 접근성은 그 어떤 콘텐츠보다 TV를 우위에 둘 수밖에 없게 한다. 물론 콘텐츠가 TV에서 스마트폰으로 옮겨간 시대이긴 하나, 아직까지 각 가정의 안방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건 TV다.

TV 콘텐츠는 1981년 이후 고속 성장을 하면서 경제적 가치도 함께 커졌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자료에 의하면, 2014년 TV 방송 사업 매출은 14조7229억원으로 IPTV 사업의 매출 증가에 힘입어 전년 14조347억원 대비 4.9% 증가했다고 한다. 그중에서 IPTV 사업의 매출은 1조4만9984억원으로 전년 대비 33.2% 증가했다. 이처럼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달은 콘텐츠 플랫폼과 네트워크 확장을 가속화하고, TV와 인터넷이 경합하며 방송 산업뿐 아니라 IT 산업 전반에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이에 TV 시청자들은 일방적인 정보 수신자에서 정보를 재해석하고 새로운 정보를 부가해 송신하는, 하나의 ‘미디어’로 변모하고 있다.

기술이 아닌 콘텐츠가 TV 선택의 우선순위가 되어가는 시대다. 앞으로 TV는 기기와 콘텐츠를 아우르는 통합 서비스 플랫폼을 기반으로 SNS를 통한 추천과 공유로 콘텐츠가 소비되는 구조로 진화할 것이다. 따라서 ‘정작 볼 것이 없다’는 시청자의 푸념을 듣지 않으려면 양질의 콘텐츠 확보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러한 방송 콘텐츠 시장이 커진다는 것은 방송 관련 프리랜서나 외주 제작사, 매니지먼트사 입장에서는 수요가 많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TV 콘텐츠 제작과 구매 비용 측면에서는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2014년 국내 TV 콘텐츠 제작 비용은 총 2조5401억원으로 전년 2조5851억원 대비 1.7% 감소했다. 이는 지상파 방송과 방송 채널 사용 사업의 자체 제작비 감소에 기인한다. 이런 현실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전망이 어두운 것은 아니다. 출구는 분명 있다. 우리나라 TV 콘텐츠의 수출액이 늘고 있다는 점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국내 TV 콘텐츠 수출 총액은 3억1381만 달러로, 지상파 방송사의 중국 수출 호조에 힘입어 전년 2억8776만 달러 대비 9.1% 증가했다. 특히 MBC <무한도전>과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 시장을 매료시킨 이후 인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MBC <복면가왕>이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텔레비전 페스티벌’에 소개돼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KBS <힐러>, SBS <아빠를 부탁해>, CJ E&M <삼시세끼> 등도 큰 호응을 얻었다. 이 페스티벌에서 거둔 수출 총액은 1800만 달러 규모에 이른다.

여전히 우리에게 중국 시장은 매우 매력적이다. 그러나 중국 시장만 겨냥해서는 곤란하다. 앞으로 우리나라 TV 콘텐츠가 더욱 성장하기 위해서는 중국을 넘어 미국, 유럽 등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적극적인 수출’이 필요하다. 그동안 중국으로의 지상파 프로그램 수출 규모가 4321만 달러인 데 비해 미국은 547만 달러에 그쳤고, 유럽으로의 수출 규모는 미국보다 더 낮은 수준이다. 즉 아직 우리가 개척해야 할 시장이 많다는 것이다. 고품질 콘텐츠에 한국 문화를 담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보다 주력한다면 국내 TV 콘텐츠 시장은 더욱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선은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TV 콘텐츠 제작에 집중해야 할 때다.

about 박성필은 머니투데이 경제 주간지 <머니위크>의 증권팀장이다. 재테크는 물론 품위 있는 소비에 관심을 갖는 독자의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 새롭고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미디어 이론>
by 진중권
<미디어 이론>은 오늘날의 미디어가 어떻게 지금에 이르렀는지, 자연과 인간, 사회를 어떻게 지배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탐구한 책이다. 저자는 서구의 철학을 통해 17세기에는 인식론적 전회, 20세기는 언어학적 전회 그리고 21세기에는 미디어의 발달로 인한 미디어적 전회가 일어났다고 설명한다. 발터 베냐민, 해럴드 이니스, 귄터 안더스 등 매체 철학자들의 이론을 소개하고 있다. 열린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