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TV 채널이 3개뿐이던 시절이 있었다. 오직 3개의 창을 통해서 뉴스를 보고 드라마를 보던 시절, 미디어가 정해놓은 스타는 우리 모두의 스타였고, 방송사가 정한 순위가 곧 대중의 순위였다. 미디어가 정해놓은 기준과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세상에 알려질 기회조차 없었다. 그 시절, 텔레비전에 나온다는 것은 개인의 성공 그 자체였을 뿐 아니라 온 집안의 경사로 여겨질 만한 ‘큰일’이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같은 소망은 어린아이들의 입을 통해 불려질 만큼 많은 이의 꿈이었다.

그런 텔레비전의 위상이 본격적으로 바뀐 건 바로 지난해. MBC에서 방영하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인해 인터넷 방송 고유의 방식이던 ‘일인칭 시점’의 방송을 지상파에 들여오기 시작하면서부터다.

TV 방송을 ‘탔으면’ 최소한의 인기와 시청률은 보장되던 때와 달리, 재미가 없으면 즉시 도태되고 선택받지 못한다. 더 이상 미디어의 제왕이 텔레비전이 아니라는 사실은 정설이 되었다. 그런 까닭에 인기 있는 연예인들도 인터넷 방송에 얼굴을 드러내기를 꺼리지 않는다. 이제 개인 방송을 선보이는 1인 콘텐츠 제작자들이 텔레비전 출연 없이도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끄는 것은 흔한 풍경이 되었다.

나 역시 본방을 사수하는 프로그램은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가 거의 유일할 정도로 텔레비전 앞에 앉는 일이 거의 없다. 대신 내 시선은 주로 스마트폰 스크린에 꽂혀 있다. 직업의 특성상 재미 위주의 콘텐츠보다는 정보 위주의 콘텐츠를 주로 찾게 되는데, 즐겨 찾는 유튜브 채널과 팟캐스터 방송,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 90%가 일반인이다. 그렇다고 결코 퀄리티가 떨어지는 것은 않는다. 간혹 뷰티 콘텐츠 같은 특정 방송군은 TV 방송보다 인터넷 방송을 더 신뢰하는 경우도 많다. 아마도 TV 방송이 ‘방송용 화면 구성’과 ‘그럴싸한 방송감이 되는 아이템’ 을 고민해야 하는 데 비해, 1인 미디어는 좀 더 솔직하면서도 실험적인 모험을 통해 실생활에 유용한 생활 밀착형 내용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소개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같은 변화에 가장 들썩이는 건 다름 아닌 대중이다. 1990년대 전국 곳곳에 노래방이 생겨나기 시작했을 때의 분위기가 꼭 지금과 같지 않았을까? 마이크를 들고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건 프로 가수들의 특권인 줄로만 알았는데, 내게도 많은 사람 앞에서 한 곡조 뽑아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나만의 십팔번을 정하고 밤새 목이 쉬도록 연습을 하던 때처럼, 이제는 유튜브, 블로그, 팟캐스트, SNS 등의 플랫폼을 통해 드러낼 나만의 십팔번을 갈고닦는 일에 몰두하는 이가 많아졌다. 1인 미디어 열풍과 함께 날아든 ‘나도 유명인이 될 수 있다’는 유혹은 퍽 달콤한 듯 보인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노래방 문화’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늘 대한민국 놀이 문화의 중심에 놓여 있었지만, 노래방을 싫어하는 사람도 늘 있었다는 점이다. 온 국민이 노래방 문화를 사랑하는 듯 보였지만, 생각해보면 “2차 노래방!”을 외치는 건 늘 흥이 많거나 노래에 자신 있는 ‘일부’ 사람들이었다. 흥을 깨는 사람, 재미없는 사람 혹은 비주류로 분류되는 것이 두려워 “나는 노래방이 싫다”고 당당히 말하지 못했을 뿐, 우리 주변에는 1차, 2차 뒤로 이어지는 노래방행이 괴로운 사람들이 언제나 있었다는 거다.

누구나 자신만의 콘텐츠를 생산해 세상에 내보일 수 있다는 건 참 흥미롭고 멋진 일이다. 그런데 최근 분위기를 바라보고 있으면 새로운 문화의 급격한 팽창 속에 질식하는 개인이 많아지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2차 노래방!”의 피해자는 더 이상 없어야 하지 않을까? 1인 미디어 시장의 확장을 불러온 건 ‘다양성’에 대한 추구였다. 고작 3개에 불과하던 채널은 물론이거니와 수백 개에 이르는 케이블 채널도 다 채워주지 못하는 갈증이 지금의 판도를 만든 것이다. 그러니 어떤 새 시대의 열풍이 불어오더라도,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에 우리 모두 똑같은 크기의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듯한 분위기는 경계했으면 좋겠다. 직접 개인 방송의 제작자가 되는 데는 조금의 관심도 없을뿐더러 그 흔한 SNS 계정 하나 없는 사람일지라도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 아닌 그저 자신의 가치관대로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 존중받을 수 있을 때,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허물어진 이 멋진 신세계는 비로소 반짝반짝 빛날 수 있지 않을까?

about 정소담은 프리랜스 아나운서이자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칼럼니스트다. 최근 한 매체에 기고한 ‘여성주의를 주의하라’라는 주제의 칼럼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새롭게 접근해 화제가 됐다.

<미디어 씹어먹기>
by 브룩 글래드스톤, 조시 뉴펠드 그림, 권혁 역
<미디어 씹어먹기>는 만화로 보는 미디어 비평서다. 카이사르 시대에 처음 등장한 신문부터 대량 판매를 위해 새롭게 내세웠던 ‘객관성’ 그리고 현대 미디어의 다양한 조작 행태에 이르기까지, 미디어 변천사를 통해 각 시기별로 미디어가 내세운 가치관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유머러스한 상상력을 덧붙여 만화로 재미있게 표현했다. 다양한 미디어 환경에 노출된 독자들이 앞으로 미디어를 어떻게 소비하면 좋을지 한 번쯤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다. 돋을새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