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여름과 바다, 그리고 여행이 준 가르침

여름과 바다가 이끄는 삶을 선택한 사람들을 만났다. 이제, 그들의 계절이 시작된다.

2021.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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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바다, 그리고 여행이 준 가르침

DAZE DAYZ  유혜영 대표

사람에게는 누구나 고유의 분위기가 있다. 긴 문장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이가 있는가 하면 몇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명확한 사람도 있다. 스윔&리조트 웨어 브랜드 ‘데이즈데이즈(DAZE DAYZ)’의 유혜영 대표는 후자다. 여름과 바다, 그리고 여행. 이 세 단어가 그를 표현한다. 
“스무 살이 채 되기 전부터 언젠가 수영복 브랜드를 내고 싶다는 꿈이 있었어요. 다만 작은 브랜드를 운영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 돼 계속 미뤘죠. 그런데 돈을 좇아, 혹은 생활 패턴을 고려해 일을 선택하다 보니 열정이 금방 고갈되더라고요. 어느 날 ‘다 필요 없고 진짜 좋아하는 걸 하자, 지금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어요.” 대학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국내 브랜드에 취업해 여성복 디자이너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다 꽉 막힌 회사 생활에 답답함을 느껴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전향해 활약했다. 다른 패션 회사에 스카우트돼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간 적도 있다. 그 와중 호주와 중국에서 일할 기회가 생겨 두 나라에서 새로운 문화와 환경을 경험하며 경력을 쌓아갔다. 그리고 2014년 10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때임을 깨달았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어요. 여름이면 날마다 동네 냇가에서 수영하고 놀았죠. 커서도 수영장이나 바닷가로 여행을 떠나 물놀이를 즐겼어요. 자연스레 서핑 같은 물에서 하는 스포츠도 시작하게 됐죠.” 정말 원하는 일을 하겠다 마음먹었을 때 수영복을 떠올린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2015년, 오랫동안 사랑할 일을 업으로 삼기 위해 데이즈데이즈를 론칭했다. 즐거운 여행의 순간을 함께해줄 브랜드가 되는 것을 목표로. 당시 국내 수영복 시장은 디자인이나 사이즈에 있어 선택지가 적었다. 유혜영 대표는 이러한 틈새를 뚫고 들어가 화려한 컬러와 패턴을 사용한 레트로 무드의 디자인, 다양한 사이즈의 제품을 선보였다. 그리고 엉덩이가 깊게 파인 치키바텀(Cheeky Bottom)처럼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스타일까지 제시했다. 예쁘고 개성 있는 수영복을 입고 싶어 해외 구매 대행을 이용하던 사람들은 금세 데이즈데이즈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가내수공업 수준으로 작게 시작한 브랜드 규모는 점점 커져 2018년엔 리조트 라인을 론칭하고 2021년 현재는 데일리 웨어 아이템과 속옷, 라운지 웨어까지 선보인다.

 

1, 2 여태까지 진행해온 데이즈데이즈의 컬렉션 캠페인.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여름 분위기가 브랜드, 그리고 유혜영 대표와 닮았다.

 

 

데이즈데이즈는 7월 31일까지 더 현대 서울에서 2021 여름 컬렉션을 소개하는 팝업 스토어를 진행한다. 이번 컬렉션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수영복 라인의 소재. 버려진 투명 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친환경 폴리에스터 섬유 리젠(Regen)을 이용했다. 자연을 지키기 위한 데이즈데이즈의 실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부터 모든 포장재를 재활용 및 빠르게 생분해되는 소재로 변경하는 등 지속적으로 노력한다. “바다를 사랑하고 자연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만드는 쓰레기에 대한 죄책감이 있어요. 데이즈데이즈 역시 이런 부분에 책임감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시도 중이에요.” 

유혜영 대표를 만난 건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여름의 시작을 앞둔 6월의 초입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한동안 먼 여행이 불가능했을 터. 그래서 올여름은 더 특별할 것이다. 이번 여름을 어떻게 보낼 예정인지 물었다. 그의 밝은 미소처럼 반짝이는 답변이 돌아왔다. “늘 그래왔듯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 거예요!”

 

 

1 바다를 사랑하는 유혜영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중 하나는 서핑이다. 2 데이즈데이즈 팝업 스토어의 전경.

 

 

좋아서 하는 일, 누군가는 축복받았다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유혜영 대표도 오랜 꿈이었던 수영복 디자인은 물론 해외로 떠나 브랜드 캠페인 촬영을 진행하고 여유 시간엔 서핑을 즐기는, 업무과 유희의 경계가 불분명하게 혼재된 삶이 처음엔 퍽 좋았다. “시간이 지나며 욕심과 집착이 늘더라고요. 온전히 휴식을 취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서도 일 생각을 끊임없이 하는 거예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가 일에 완전히 잠식된 듯해 상실감을 느끼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젠 그 자체를 즐겨요.” 그는 오히려 요즘엔 여행을 떠나 일을 생각하지 않으면 허전하다고 덧붙였다. 다른 형태의 즐거움과 성취감을 누리는 법을 알게 된 셈이다.

유혜영 대표의 여름과 바다에 대한 애정은 일방적이지 않다. 여름과 바다는 그가 지칠 때면 에너지를 불어넣고 처음의 열정을 되새기게끔 하는 연료가 되어주며 상호작용한다. 지난 5월, 그는 잠시 시간을 내 제주로 여행을 떠났다. 여느 때처럼 서핑을 했는데, 다가올 파도를 기다리는 동안 손에 닿는 시원한 바닷물의 감촉에 울컥 눈물이 났다. 내가 이걸 이토록 좋아해서 데이즈데이즈를 이끌고 있구나 싶어서. 여행 또한 마찬가지다. “반복되는 일상이 이미 알고 있는 나 자신을 깊게 탐구하게 만든다면 여행은 몰랐던 나를 발견해가는 과정이라 생각해요. 새로운 장소, 만남, 음식, 향기 등 여행지에서 만난 수많은 변수는 ‘아, 내가 이런 면이 있구나, 내가 이런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구나’를 깨닫게 하죠. 그래서 저는 일상과 여행의 조화로운 균형을 추구해요.”

 

 

 

 

서핑으로 그리는 삶이란 예술

WSB FARM  한동훈 대표

서핑 미디어 플랫폼 ‘WSB FARM’의 한동훈 대표는 첫 서핑의 기억을 이렇게 회상한다. ‘어? 열 받는데?’ 10대에는 스케이트보드에 빠져 살았고 20대에는 스노보드 선수로 활약했다. 같은 ‘판때기 스포츠’인데, 파도도 당연히 잘 탈 거라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한번 제대로 해봐야겠다 싶어 발리에 눌러앉았다. 그때만 해도 몰랐다. 10여 년 후 서핑과 관련된 일로 먹고살 줄은. 

 

2016년과 2017년 출간된 <WSB FARM SURF MAGAZINE>. 1호와 2호가 발행됐다. 

 

 

서프보드에 몸을 좀 실어본 이들이라면 아마 WSB FARM이란 이름이 익숙할 거다. ‘내 손 안에 파도’를 슬로건으로 전용 애플리케이션과 웹사이트를 통해 서퍼가 안방에서도 파도를 확인할 수 있는 파도 웹캠 서비스를 선보인다. 더불어 서핑 레슨부터 뉴스, 예능 등을 아우르는 다채로운 서핑 영상 콘텐츠, 서퍼들을 위한 파도 예측 및 서술형 해양 기상정보, 전국 서핑 해변 정보 등도 제공한다. 한동훈 대표가 전개한 서핑 관련 활동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금은 실물로 발간되지는 않고 홈페이지로 소식을 전하는 서핑 매거진 <WSB FARM SURF MAGAZINE>을 발행했고, 작년엔 서퍼로 이루어진 (그리고 국내 최초 공중파 데뷔 날 은퇴한) 한동훈밴드의 프로듀서를 맡기도 했다. 온라인 서핑 셀렉트 숍 운영 및 플리마켓, 중고장터도 진행했다. 서핑과 관련된 새롭고 창조적인 온갖 일을 다 하는 셈이다. 그래도 그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성취를 꼽는다면 파도 웹캠 서비스다. 국내 최초이자 WSB FARM의 시작을 알린 서비스다. “7~8년 전 발리에서 서핑했을 때예요. 당시 주변에 있던 호주 출신 친구에게 서핑을 가자고 하니 컴퓨터로 뭘 보더라고요. 뭔가 했더니 파도 웹캠이었어요.” 한국에는 인터넷 100메가 시대가 열리던 시점이었고 발리는 인터넷 속도가 1~2Mbps에 불과했다. 우리나라라면 훨씬 높은 품질의 서비스 구현이 가능하겠다 싶었다. “처음엔 그냥 CCTV 같은 거 달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근데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카메라 설치뿐만 아니라 서버 인프라와 스트리밍 기술도 있어야 했어요. 분야별 관련 회사를 찾아가서 해달라고 막 졸랐어요.” 맨땅에 헤딩하며 일을 추진했고 우여곡절 끝에 4대의 카메라를 가지고 처음 서비스를 시작했다.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때도 비슷했다. 관련 회사를 찾아다니며 기술 투자를 요청했다. 당시 우리나라 서핑 인구는 턱없이 적을 때였고 모두가 승산이 없는 게임이라 했다. 실제 대한서핑협회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 서핑 인구는 40만 명에 육박하지만 파도 웹캠 서비스를 론칭한 2016년에는 1/4 수준인 10만 명 정도였다. 한동훈 대표는 석 달 안에 회원을 1만 명까지 유치하겠다고 장담하고 기술 투자를 받았다. 회원 1만 명이 되기까지는 단 한 달이 걸렸다. 그는 남들이 가지 않은 곳으로 직접 길을 만들어 갔다. 선두에 선 이에게는 시련도 많이 따라다니는 법. 수많은 시련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했다. “진심을 보여주면 통하더라고요. WSA FARM 운영 초창기, 회사를 발전시키려면 적어도 20~30년 이상 같은 분야를 이끈 선배들에게 조언을 얻어야 하는데 국내에는 전무하니까 난감했죠. 그래서 같은 분야의 일본 회사를 찾아갔어요. 거기 대표님이 60대였는데 자신의 젊은 시절이 생각난다며 우호적으로 대해주더라고요. 밥도 사주고 숙소도 잡아주고 조언도 많이 해줬어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얼마나 간절한지 확실히 보여주기 전, 부정적인 상황이 닥치면 상처를 받고 포기해요. 그걸 견디고 계속해서 진심을 보일 수 없다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게 나아요. 아, 물론 실패할 수도 있긴 해요(웃음).”

 

서핑을 즐기고 있는 한동훈 대표의 모습. 

 

 

그가 매 순간에 진심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진실되게 서핑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서핑의 매력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가 이토록 빠질 수 있는지 궁금했다. “서핑은 나를 드러내는 스포츠예요. 스노보드는 전용 의류를 입고 고글과 비니를 쓰고 장갑을 끼는 등 나를 꽁꽁 감추죠. 그러나 서핑은 벗고 하잖아요. 물에 젖으니 화장이나 스타일링도 별로 신경 쓰지 않죠. 나의 말간 얼굴을 만날 수 있는 스포츠인 거예요. 그래서 서핑을 하며 해방감을 많이 느꼈어요. 또 맨살에 물이 닿았을 때의 감촉이나 물속에 얼굴을 푹 담갔을 때 귓가에 울리는 소리, 이런 것들이 참 좋더라고요.” 그리고 서핑은 자신감을 넘어 자만심이 넘치던 20~30대의 자신을 겸허하게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8년 전 발리에서 제가 감당할 수 없는 크기와 질량의 커다란 파도를 처음 만났어요. 그런 파도는 뚫을 수도, 도망갈 수도 없죠. 해변으로 튕겨 나왔을 때의 자괴감은, 어휴(웃음). 한창 서핑에 자신감이 붙을 때였는데, 완전히 무너졌어요. 그런데 그날 이후로 아무것도 겁날 게 없더라고요. 우리가 일상 속에서 무서워하는 것들은 이런 파도 앞에서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싶어서. 요즘도 제가 감당할 수 없는 큰 파도에 일부러 뛰어들어요. 그리고 다시 겸허해지죠. 일종의 수양이에요(웃음).” 한동훈 대표는 자신의 인생에서 서핑을 만나기 전과 후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변했다고 말했다. 인생을 바라보는 기준점이 달라질 만큼. 예전에는 보통의 사람들이 그렇듯 남이 바라보는 시선으로 스스로를 바라봤다. 좋은 차를 타고, 고급 레스토랑에 가고, 비싼 옷을 입는것과 같이 타인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요소를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나의 위치에서 스스로를 바라본다. ‘내가 어느 순간에 오롯이 행복하지?’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WSB FARM의 사무실은 강원도 양양 인구해변 인근에 있다. 2 국내 최초 공중파 데뷔 날 은퇴한 한동훈밴드의 합주 모습. 

 


“저 내년 12월에 은퇴해요.” 한동훈 대표는 회사 설립부터 함께해온 동료에게 대표직을 넘기고 회사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갈 거라 말했다. 2022년 12월로 은퇴 시점을 설정한 데에 대단한 이유는 없다. 그냥 내년 12월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얼마나 버는가에 관계없이 저는 여태까지 원하는 걸 시도했고, 그에 대한 결과물을 만들어왔어요. 중간에 실패도 많았지만 전체를 봤을 땐 만족스러워요. 죽을 때까지 이런 만족스러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으면 이것 또한 일종의 예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붓과 물감 대신 사업이란 도구를 이용한 삶이란 예술.” 마지막 대답을 마치며 얼른 팥빙수를 먹으러 가자는 그의 얼굴에는 미련이나 아쉬움이 없었다. 

 

 

 

 

 

 

 

 

더네이버, 피플, 인터뷰

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박재영(인물, WSB FARM 매거진·사무실) 사진 제공 유혜영, 한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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