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공간의 초상, 칸디다 회퍼

그는 공간을 찍는다. 미술관, 도서관, 공연장일 때가 많다. 한데 그곳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독일 현대 사진의 거장 칸디다 회퍼. 무엇이 그의 사진을 특별하게 하는가. 7년 만에 한국을 찾은 칸디다 회퍼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인터뷰 내내 그는 단 두 번 웃었다.

2018.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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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dida Höfer, <BNF Paris VI 1998>, C-print, 85×85 cm , Courtesy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트레이드마크인 단발과 성스러움마저 느껴지는 회색 원피스를 입은 칸디다 회퍼가 우리를 맞았다. 범접할 수 없는 묘한 오라가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붙었다. 칸디다 회퍼. 그는 누구인가. 토마스 슈트루트,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토마스 루프 등과 함께 베허학파 1세대를 이끌며 한 시대를 풍미하고 현대 사진의 지평을 연 세계적인 작가가 아닌가. 사실 언젠가 꼭 만나고 싶었던 작가이기도 했다. 칸디다 회퍼의 사진을 접한 것은 어림잡아 10여 년 전. 나는 한동안 그의 사진 앞에서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주체할 수 없는 감동 때문이었냐고? 그것이 순전히 감동에 기인한 것이었는지는 자신할 수 없다. 확실한 것은 그의 사진을 본 순간, 굳게 닫힌 수수께끼의 성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다. 칸디다 회퍼의 사진을 처음 접하는 이라면 역시나 같은 기분에 사로잡힐지 모른다. 
국제갤러리에서 8월 26일까지 진행될 칸디다 회퍼의 개인전 <Spaces of Enlightenment>. 이번 전시는 칸디다 회퍼를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그의 나이를 고려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누가 그를 44년생이라 믿을까. 전날 독일에서 날아와 작품을 설치하고 당일 오전부터 오프닝과 관객 프로그램, 인터뷰 등을 소화해야 하는 빠듯한 일정에도 그는 어떤 피로감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또렷했다. 
“이 사진은 남편이 오피스에서 찍어준 사진이다. 이건 멕시코 화가의 집을 촬영할 때 동료 사진가가 찍어준 것 같고, 이 흑백 사진은 어릴 적인데,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칸디다 회퍼가 서울에 당도하기 전, 그간 촬영된 포트레이트 사진이 있는지 문의해둔 터였다. 몇십 년을 카메라를 잡은, 사진 거장의 포트레이트는 어떤 모습일지 내심 기대가 컸다. 하나, 그가 보내온 사진은 단 4장. 그중 하나는 20~30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젊은 시절의 칸디다 회퍼였고, 또 다른 사진은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남편이 찍어준 소박한 사진이었다. 남편 역시 사진가인가? “아니다. 법대 교수로, 지금은 사이버상에서 법률적인 일을 한다. 가끔 예술에 관한 글을 쓰기도 한다.” 그 속에는 사진 비평도 포함되지만 비평가는 아니라 선을 긋는다. 사진을 찍지만 정작 자신의 인물 사진은 쇼윈도에 비친 모습을 촬영한 게 전부인 것 같다는 칸디다 회퍼. 이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칸디다 회퍼의 작품을 이해하는 작은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      

 

 

1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그저 젊은 시절로 기억되는 ‘맑은’ 칸디다 회퍼가 흑백사진 속에 있었다. 2 7년 만에 한국을 찾은 칸디다 회퍼. 그 강렬하고 빛나는 오라가 사진 밖까지 표출된다. 3 Candida Höfer, <Elbphilharmonie Hamburg Herzog & de Meuron Hamburg II 2016>, C-print, 180×170cm, Courtesy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공간’에 담긴 비밀    
이번 전시는 7년 만에 열리는 칸디다 회퍼의 네 번째 한국 개인전이다. <Spaces of Enlightenment>, 전시 제목을 보면 궁금증과 두려움이 앞선다. ‘깨달음의 공간’. 칸디다 회퍼가 포착한 사진 속 공간은 대체 무엇이기에! 화려한 중세의 공연장, 도서관, 그리고 미술관. 칸디다 회퍼의 사진은 얼핏 아름답고 웅장한 건축 사진처럼 보인다. 그런데 한걸음 더 들여다보면 평범한 공연장, 도서관이 아니다. 어딘가 낯설고 비현실적인 분위기마저 풍긴다. 분명 특정 건물의 내부를 촬영한 사진인데 말이다. 칸디다 회퍼, 그는 대체 사진 속에 무슨 일을 벌인 것일까.  
“이 장소들은 인간의 깨달음을 가능하게 하는 곳이다. 또한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닌, 경험의 공간이다. 인간의 의식을 변화시킨 대표적인 공간 말이다.” 그의 사진 속에는 공통적으로 도서관, 공연장, 미술관이 등장한다. 공통점이라면 인간의 깨달음을 가능하게 하는 장소라는 것. 여기서 잠시, 근대화 이전의 공연장 속으로 들어가보자. 근대화 이전에는 공연장, 도서관에서조차 계급 문화가 지배적이었다. 공연장의 박스석은 상류층, 교회 성직자에게 독점되었고, 프랑스의 공연장은 회원제로 운영되기도 했다. 이뿐인가. 사유지 안에 개인 극장을 두는 게 그리 놀랄 일이 아니었으니. 근대화 이후 이 개인 극장은 비로소 시민 계급에게 문을 열었다. 칸디다 회퍼는 이 지점에 주목한다. 서구의 중세 계급 사회에서 현대로 넘어오면서 공간의 계급적 분할이 사라졌고, 그 중요한 지점에 공연장, 미술관 등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다양한 건축 양식을 넘어, 시대적, 사회적 변화의 흐름이 켜켜이 축적되어 있다. 칸디다 회퍼는 그 역사의 시간 속으로 우리를 이끄는 것이다. 
“헤르초크 & 드 뫼롱 건축가의 함부크르 필하모닉 작업이 기억에 남는다. 이 작업은 건축 단계부터 기대를 모은 건물인데, 원래보다 완공이 지연됐다. 결국 이 작업은 계획이 나오고 10년이 걸렸다. 이제 완성된 지 1~2년이지만 이미 역사적인 건물이 된 거다. 역사에 편입된 거다.” 알지 못하는 건물을 찍는 것에 굉장히 흥미를 느낀다는 칸디다 회퍼. 특히 쾰른 오페라 하우스는 전후 지어진 역사적인 건물로 그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하다고.  “역사적인 것, 현대적인 것, 둘 다에 관심이 많다. 역사가 특정 시대를 반영하고, 그곳에 많은 것이 담겨 있다면, 현대적인 것은 비어 있다. 아직 역사가 형성되지 않은 채. 한데 그것도 매력 있다.” 역사와 현대가 공존하는 그곳, 칸디다 회퍼의 카메라는 50여 년째 그곳을 향해 있다.   

 

 

Candida Höfer, <Kunstakademie Düsseldorf III 2011>, C-Print, Courtesy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국제갤러리 전시장을 채운 칸디다 회퍼의 사진. 그의 사진이 화이트큐브에 낯선 고요를 드리운다. 

 

왜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가 
그의 작품 속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공통점은 인물, 즉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체 왜? “물론 70~80년대에 독일, 터키 이민자 시리즈를 촬영한 적도 있다. 그런데 사람을 분석하고 그들의 삶에 침투하는 게 내 성격상 힘들다. 사람을 찍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그의 초기작인 70년대의 터키 이민자 시리즈는 독일 쾰른에 살고 있는 터키 이민자 2~3세를 촬영한 것으로 칸디다 회퍼는 이민자들의 집을 방문해 그들이 사는 모습을 촬영했다. 어느 순간 그들의 공간 속에 침투해, 그들의 이미지를 이용하고 있다는 자책감이 밀려왔다. 자신의 성격은 샤이하다는 고백처럼, 그 이후 칸디다 회퍼의 작품에서 사람들은 사라졌다. 사람을 대면하고 분석하는 작업 대신, 거대한 역사와 그 안을 채웠을 사람들의 흔적과 자취가 담긴 ‘공간’으로 칸디다 회퍼의 작업이 옮겨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나는 인간과 공간에 관심이 많다. 인간이, 사람들이 어떻게 공간을 구성하는가. 인간이 공간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가 흥미로웠다. 단, 공간에서 인간은 배제된다. 사람이 없을 때 공간 자체를 더 풍부하게 자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롯이 공간 자체를 들여다보는 일. 칸디다 회퍼는 이를 위해 기꺼이 인간을 배제한다. 또한 그는 인공 조명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 때문일까. 그의 작업은 사진인데 무척 회화적이다. “사진 인화 기술 때문에 그런 듯하다. 나는 작품의 크기를 크게 인화하는데 이 때문에 회화적 효과가 나는 것 같다. 물론 회화적인 걸 의도한 건 아니다. 그림을 못 그리기 때문에.” 특유의 독일식 유머일까. 그는 처음으로 엷은 미소를 비쳤다. 물론 치아를 드러낸 건 아니었다.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는데, 컷을 많이 찍지는 않는다. 몇 컷을 촬영한 다음 작업실에서 인화를 거치는데, 만족할 만한 색감이 나올 때까지 수차례 테스트를 거친다. 그중 최종 한 컷이 인화되는데, 이때 트리밍 작업 역시 굉장히 중요하다.” 마음을 움직이는 단 한 컷. 이를 위해 그는 촬영할 때와 마찬가지로 긴 인내심을 발휘한다. 수십 년의 시간과 역사, 사회, 인간의 삶이 응축된 칸디다 회퍼의 공간. 그리하여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단순한 건축물의 내부가 아니라 오랜 역사와 시간 속에 담긴 ‘공간의 초상’이다. 그의 사진 속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오라와 비현실적인 힘의 근원은 어쩌면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파리, 모스크바를 찍은 적이 있는데, 그 작업을 다시 하고 있다. 좋은 사진? 글쎄 대답할 수 없다. 그건 관객, 비평가의 몫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성실한 사진가인가? 모든 질문 앞에 몇 초의 공백을 가진 것과 달리, 그는 이번엔 뜸들이지 않고 화답했다. “열심히, 그리고 부지런한 사진가인 것은 맞는 것 같다.” 칸디다 회퍼는 또 한 번 슬쩍 미소를 보였다. 마지막 악수를 건네기 전, 촬영된 인터뷰 사진이 어땠느냐고, 한국 사진가의 실력이 어떤 것 같느냐고 슬쩍 물었다. “사진을 보고 이렇게 늙었는지 처음 알았다. 쇼크 받았다. 적나라한 사진 말고 흑백 사진으로 써달라(웃음).” 칸디다 회퍼는 사진에 대한 평 대신 (어쩌면) 그가 던질 수 있는 최대한의 농으로 화답한 후, 10년 후에는 또 어떨지 모르겠다며 자리를 떴다. 그 어떤 사진 앞에서도 감히 평하거나, 자신을 뽐내지 않는 칸디다 회퍼를 떠나보낸 후 전시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마땅히 그래야 할 것 같았고, 그곳엔 고요하고 꼿꼿한 거장의 뚝심이, 깨달음이 묵직하게 흐르고 있었다. 

Cooperation 국제갤러리

 

 

 

더네이버, 인터뷰, 칸디다 회퍼

 

CREDIT

EDITOR : 설미현PHOTO : 박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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