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꽃도 웃는 시절

박장대소하던 얼굴에 꽃이 피었다. 유에민쥔 작가는 신작을 포함한 대규모 개인전 <유에민쥔(岳敏君) 한 시대를 웃다>로 국내 관객을 찾는다.

2020.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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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biscus’,Oil on Canvas, 150×120cm, 2020.

 

 

‘Memory-2’, Oil on Canvas, 140×108cm, 2000.

 

작업실에서 촬영한 유에민쥔 작가.

 

 

 

 

 

사람들은 힘든 순간에도 웃으라고 말한다. 계속 울 수도 없는 상황에서 가까스로 지은 웃음은 어느 순간 스스로를 치유한다. 힘든 현실의 돌파구다. 철학자 니체는 “인간만이 너무 깊은 고통을 겪어서 웃음을 만들어내야만 했다”고도 했다. 재미있고 기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의 본래 의미 이상을 아우른다. 절망과 고통, 당혹감, 무기력한 순간을 모면하거나, 아이러니를 함축하고 조롱의 메시지를 보내는 데도 웃음은 강력한 무기가 된다. 미술 작가 유에민쥔(岳敏君)을 세계적인 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한 것도 바로 웃음이다.

 

중국 북동부에 위치한 헤이룽장성에서 1962년에 태어난 유에민쥔 작가는 급변하는 중국을 오롯이 통과했다. 1960년대 중반부터 1976년 마오쩌둥이 타계할 때까지 10여 년간 이어진 중국 문화대혁명, 즉 신념과 원칙을 내세운 억압과 공포의 시대, 마오의 죽음 이후에 찾아온 개혁 개방, 그리고 1989년 천안문 광장의 유혈 사태 등이 대표적이다. 거대한 사회의 급작스러운 변화는 한때 공업에 몸담기도 하고, 허베이 사범대학 회학과 졸업 후 미술 교사로 일한 그를 작가의 길로 이끈다. 천안문 사태에 혐오감을 느껴 1990년 베이징으로 터전을 옮겨 본격적으로 화가의 생활을 시작했던 것. 처음에 그는 웃고 있는 주변 친구들을 그리다가 차츰 웃음의 본질에 다가서며 자화상에 이른다. 캔버스에서 얼굴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입을 크게 벌리고 박장대소하는 자화상들. 상황에 따라 감상자에 따라, 그의 웃음은 여러 의미로 해석되며 대중의 공감을 얻었고, 1995년 작 ‘처형(The Excution)’이 2007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590만 달러에 낙찰되며 웃음의 인기는 정점에 이른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갈망하는 ‘자유’를 향한 내면의 갈증, 이를 억압하는 외부의 변화에 맞선 그의 저항은 웃음에 긴 역사를 쓰고 있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웃고 있는 자화상은 계속되었고,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인물화는물론 풍경화 등을 발표하기도 했다. 세계가 코로나19로 힘들었던 2020년 끝자락에 서울에서 대규모 전시를 여는 유에민쥔. 작가로 사는 긴 세월 동안 세상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고 전하며 웃음 뒤 긴 여운을 남겼다.

 

 

 

 

 

 

1 ‘It Exists from the Birth’, Oil on Canvas, 250×200cm, 2016.  2 ‘A great laugh, A glorious death’, Oil on Canvas, 240×200cm, 2012. 3 ‘Gaze’, Oil on Canvas, 200×240cm, 2012.

 

‘Rolling on the grass’ , Oil on Canvas, 280×400cm, 2009.

 

 

 

 

 

20년 전 깡마르고 젊었던 당신의 인물 사진을 보니 시간이 빠르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젊은 유에민쥔과 지금의 유에민쥔은 어떻게 다른가요? 물론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겁니다. 제 성격이 더 강해졌고, 제멋대로이고,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됐죠. 그리고 창작할 때는 도전하고 모험하려는 마음이 더 강해졌습니다.


팬데믹 시기였던 2020년 한 해를 어떻게 보냈나요? 올 1년간 새로운 시리즈인 <만발>에 착수했습니다. 꽃을 주제로 한 작품입니다.


새롭게 발표한 작품에서는 백합과 나리꽃 등이 등장합니다. 꽃을 어떤 의미 요소로 삼았나요? <만발>에 등장하는 꽃은 사실 꽃의 성격을 인물의 성격과 결합해서 만들어진 것이에요. 꽃은 아름다움의 상징입니다. 사람들은 꽃으로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을 가립니다. 꽃 뒤에는 가려진 진실이 있어요. 우리는 우리가 만든 가상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인간은 이미 자신이 만들어놓은 아름다운 삶에 속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꽃이 작품에 등장한 적은 있지만, 얼굴 안으로 들어온 것은 최근입니다. 꽃들이 얼굴 전체를 덮어, 이제는 감은 눈조차 볼 수 없죠. 이런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나요? 꽃이 만발하는 것은 식물이 웃는 것입니다. 사람이 웃는 것처럼 식물의 웃음입니다. 웃는 꽃들이 사람과 마찬가지로 세상을 비웃습니다.


언론을 통해 웃음의 의미에 관하여 자주 이야기했습니다. 과거의 자화상과 현재 꽃으로 뒤덮은 ‘만발’ 시리즈 사이에서 웃음의 의미에 변화가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최근 작품은 과거 작품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내 작품에서 웃음은 사회가 우리에게 부과한 것들과 인간의 권리 사이에서 느끼는 무력감, 힘과 참여의 부족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인생입니다. 자신이 무용하다고 느껴지는 경우, 때때로 인간의 무관심에 저항하기 위한 무기로서 웃음을 선택하곤 하니까요.


작품에서 웃는 얼굴은 대부분 눈을 감고 있어요. 눈동자를 그리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눈을 감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서예요. 마치 불교와 도교에서 눈을 감고 좌선할 때처럼, 세상을 보지 않고 자신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죠.


창작에 있어 ‘웃음’이 불편한 적은 없나요? 너무 유명해진 그 웃음을 항상 그려야 하니까요. 확실히 저 스스로 제한을 가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대로 무력하게 순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모순적이고 충돌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해왔습니다.


평면 밖으로 튀어나온 조소 작품은 최근 들어 근육이 굉장히 과장되어 있습니다. 역동적인 힘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평면보다 몸을 부각시킨 이유는 무엇인가요? 웃음에 더 큰 힘을 주고 싶어서 그런 식으로 근육을 부각시켰습니다.


서구 세계의 명화에서 영향을 받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처럼 고상한 색을 사용하지 않죠. 과감하고 대비되는 색상 조합 또한 문화대혁명 시대 선전물의 영향일까요? 색채의 경우, 저의 본능에 따른 선택이 더 많습니다. 강렬하고 선명한 색채를 써야 온몸이 후련해짐을 느끼니까요.

 

 

 

 

 

 

‘Lily’, Oil on Canvas, 120×100cm, 2020.

 

 

 

‘Overlapping Series 07’. Oil on canvas, 60×80cm 2012.

‘Isolated Island’, Oil on Canvas, 300×300cm, 2016.

‘A-Maze-Ing Laughter of Our Times’, Stainless Steel Sculpture, 7.8×4.5×4.3m, 2010.

 

 

 

당신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정치적, 사회적인 영향을 받았고, 그 계기로 화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로부터 30~40년이 지났어요. 여전히 사회는 창작의 원동력인가요? 사회는 당신이 처음 그림 작업을 시작하며 꿈꾼 모습에 얼마나 가까워져 있나요? 창작은 제가 사회를 관찰하는 것에서 비롯했습니다. 이것이 창작의 이유입니다. 작품은 반드시 사회를 반영하고 사회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관찰한 오늘의 사회는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천안문 사태 때 많은 사람이 죽었고 시대가 바뀌었어요. 현재는 바이러스로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예술가인 당신에게 코로나19는 어떤 의미로 다가가나요?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죠. 코로나19는 사회에 대한 인류의 인식과 생각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최근 인스타그램에 오래 전에 그린 인물 없는 명화 <Landscapes with no one> 시리즈를 업로드했어요. 지금의 현실을 비춰볼 수 있었죠. 그 그림을 복기한 이유가 있나요? 최근 미국과 스페인 작가들은 제가 1996년에 시작한 <사람이 없는 풍경>을 차용하거나 또 다른 형태로 다양한 작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의 원래 제목이 ‘시나리오 시리즈’였습니다. 원래 제목이 좀 더 포스트모던의 의미와 역사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시리즈 작품을 통해 외국 작가와 대화를 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전 세계 유수의 옥션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바 있고, 2016년에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습니다. 유럽 미술 시장의 도도한 장벽을 넘었는데요. 이러한 유명세는 당신 작품에 어떤 변화를 주었나요? 영향이라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좀 모순된 표현입니다. 변화는 늘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 변화가 어떠한 요인으로 야기되었는지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당신이 작가가 된 것은 운명인가요? 저는 운명이 작가의 존재를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관심을 둔 사상가나 문인, 예술가가 있습니까? 미셸 푸코와 자크 데리다입니다. 저는 그들의 파괴적이고 회의적인 태도를 좋아합니다.


이번에 서울에서 열리는 개인전에서 한국 관객과 소통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까요? 작품에서 제가 생각하고 표현하고자 한 몸부림과 야망이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항상 웃으면서 이 세상을 마주하시기 바랍니다.

 

CREDIT

EDITOR : 한지희PHOTO : 엑스씨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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