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고민과 경험으로 뿌리를 내리다
디자이너는 단순히 육체노동으로 승부하는 직업이 아니다. 가구 디자이너는 특히 더 그렇다. 형태를 이해하고 가구 구조를 새롭게 변형하되 실용적으로 만들어내는 데에 열정을 쏟아야 한다. 밀로드의 유정민 대표가 만든 가구에는 이 같은 열정과 고민의 흔적이 보인다. 거기에 누구나 좋아할 법한 형태와 완성도를 지녔다.
대학생 시절, 산업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모형 만들기를 좋아했고, 막연히 가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목조형학과, 금속공예학과 수업을 그 시절 내내 들었다. “나무는 참 매력적인 소재예요. 돌이나 쇠처럼 정직하기만 하지 않고, 적당히 문지르면 나무 표면의 까칠한 것이 사라지기도 하고, 서로 맞물려놓으면 못을 박은 것보다 더 단단하기도 하고, 벨벳을 만지는 것처럼 무척 부드러울 때도 있고요.”

유정민 대표가 가구에 관심을 갖고 만들어내기 시작한 지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밀로드를 설립하기 전, 다른 가구 브랜드에서 3년 정도 일했다. 그 경험을 토대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고, 그는 차근차근 브랜드를 이끌어갔다. “처음에는 단순히 가구 만드는 것이 좋았고, 나무를 좋아했기 때문에 원목 가구를 만들기 시작했죠.” 순간 가장 좋아하는 일은 직업으로 삼지 말라는 이야기가 뇌리를 스쳤다. “그런데 막상 일로 삼고 나니 생계 문제나 미래와 결부되어 있는 탓에 장난이 아니구나 싶더군요. 허투루 만들었다가는 한순간에 무너질 것 같았죠. 목수처럼 나 스스로 나무를 이해하고 판단해 디자인하고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 단순히 어느 부분에 속해 기계처럼 툭툭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기본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최근 몇 년 사이 원목 가구를 만드는 젊은 작가들이 부쩍 많아졌다. 신진 작가들의 가구와 중견 디자이너들의 가구 사이에는 같은 디자인의 것이라도 눈으로 보이고, 손끝에서 느껴지는 차이가 분명 존재한다. 이는 경험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고민과 노력, 연구의 깊이가 가구에 고스란히 남았기 때문일 터. 하나 유정민은 조금 남달랐다. 밀로드를 론칭한 지 3년 만에 그 실력을 인정받아 유아트 갤러리에서 열린 <그림 하나 가구 하나 展>에 초대되어 한국 중견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가구를 전시하기도 했다. 이는 그의 절실함과 노력이 빚은 결과라 말할 수 있겠다. 어느 순간 생겼다가 사라져 버릴 가벼움은 그에게선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트렌드, 이슈에 민감하잖아요. 저는 그거를 외면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귀찮아서가 아니라 우직하게 나만의 것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휘둘리지 않고. 조금 답답한 생각일 수도 있어요. 하나 내가 밀로드를 운영하고, 가구를 만들면서 가장 큰 성취감을 얻을 때는 어떤 사람이 유정민한테 가구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것이거든요. 그동안 거기에만 몰입했어요. 눈요깃거리에 그치는 가구는 만들기 싫었죠. 사람이 사는 공간에서 가장 친근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가구라는 존재, 그 본질에 가까워지고 싶었어요. 그래야 내가 이 일을 가장 오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말이 너무 어려운가요?(웃음)” 가구 디자이너는 직업으로 삼고 생활 가구를 만드는 순간부터 작정하고 대중을 이해하고 삶의 방식을 치열하게 연구해야 한다. 이것이 좋은 가구가 탄생할 수 있는 토대다. 유정민 작가가 가구의 완성도와 디테일에 왜 그렇게 완벽을 기하려는지, 그의 절실함과 진정성을 전달받고 나니 이해가 되었다.

밀로드는 얼마 전, 쇼룸을 확장했다. 사람들에게 밀로드의 가구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던 것. 널찍한 공간에 여유롭게 놓인 그의 가구는 공간을 차분하고 따스하게 만든다.

나무처럼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
밀로드의 가구 대부분은 북미산 호두나무를 사용한다. 어두운 컬러와 블랙에 가까운 나뭇결이 만들어낸 분위기는 그 어떤 소재도 따라가지 못하는 특유의 우아함과 고급스러움이 있다. “하드우드에는 체리, 메이플, 물푸레나무, 호두나무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제가 만들고자 하는 가구의 특징을 가장 잘 살려주는 것은 호두나무라고 판단했어요. 디테일이라든지 메탈 소재와의 조화를 고려했을 때 어두운 컬러의 나무와 잘 어우러지더라고요. 호두나무 결이라든지 컬러의 고급스러움도 좋았고요.” 북미산 아메리칸 블랙 월넛은 국내로 수입되는 수종 중 보편성과 뛰어난 품질을 갖춘 수종으로 평가된다. 북미는 워낙 나무 수요가 많은 지역이라 건조 시설이 훌륭해 잘 건조된 1등급 원자재를 생산하기 때문. 밀로드에서는 좋은 품질이라 불리는 FAS(First And Second) 등급의 것을 쓰는데, 자연에서 나는 재료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도 미묘한 차이는 있다. 하나 우리나라는 원목 수요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좁은 것이 현실. 일반적으로 국내에 수입되는 원목 중에서 작가의 디자인 의도에 맞춰 크기, 굵기, 길이, 수종까지 선별해 사용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현실이 그러하니, 그것만 탓하고 있을 순 없죠.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어요. 정말 특별한 재료로 만든 가구는 누가 어떻게 만들든 특별한 것이 당연하죠. 그런데 흔하디흔한 소재를 가지고도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또는 다른 요소를 더하고 재미를 부여해 가치를 더한 가구. 그런 가구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요.” 그는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다. 대신, 앞만 보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피라미드를 만들어 더 단단하게 다부지게 완성하는 데 온 힘을 쏟는다. 이를 위해 유정민 대표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한다.
“작년인지 재작년인지 문득 악기 만드는 걸 배우고 싶어졌어요. 악기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악기는 소리를 잘 내야 하고 마감까지 부드럽게 해야 하는 정교한 작업이라 생각했거든요. 디테일의 응축 그 자체랄까. 그런 것을 배워서 내가 만드는 가구와 접목할 수 있지 않을까도 싶었고요.”

밀로드의 유정민 대표. 밀로드의 작업장은 향긋한 나무 향이 가득하다.

1 투박한 디자인이지만 편안함이 느껴지는 의자. 2 유정민 대표는 같은 수종을 사용하더라도 나무의 결과 컬러를 조합해 전체적인 색감과 형태를 지루하지 않게 디자인한다. 3 살짝 굴린 서랍의 모서리나 사용하기 편하도록 디자인한 손잡이가 돋보이는 수납장. 4 오일 마감은 몇 차례의 반복 작업을 거쳐야 한다. 일일이 손으로 바르고 말리고를 반복하기에 가구 하나를 만드는데도 며칠이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