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자주 드나들기 시작했던 무렵, 미술관과 공동묘지의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점에 깜짝 놀랐습니다. 무서운 느낌이 아니라, 두 장소 모두 고요하고, 자기 성찰적이면서도, 짜릿한 기운을 지닌 장소라는 점이 닮아 있었죠. 미술관은 흥분과 미스터리, 새로운 발견, 삶과 죽음이 모두 함께 존재하는 공간입니다.” 팀 버튼 요즘 미술관의 경계는 점점 허물어져가고 있는 듯하다. 화가와 조각가 등 순수 미술을 하는 예술가들의 전유물이던 과거와는 달리 의류 디자이너, 쥬얼리 브랜드, 가구 디자이너 등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모든 이들이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만남의 장소가 되어주니 말이다. 오히려 순수 예술가들에 비해 대중들과 친숙한 유명인들의 전시는 미술 전시보다 더 큰 인기를 끌기도 한다.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되고 있는 현대 카드의 컬처프로젝트인 ‘팀 버튼’전이 그 예시가 되어줄 것이다. 지금 시립미술관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관람객들이 몰려들어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 감독의 작품들을 바라보고 있다.
1. 이번 전시회의 마스코트가 되어주는 Spiral 계단 2. 팀 버튼 전의 출입구. 출입구조차 팀 버튼의 작품처럼 기괴하지만 유쾌한 모습을 하고 있다. 3. 기자회견 장에서의 팀 버튼 4. 전시장 외부 벽면에는 팀 버튼의 일러스트 작품들이 수놓아져 관람객들의 포토월이 되어주고 있다.
전시가 열리는 서울시립미술관의 전체적인 모습은 평상시의 점잖고 예술적인 모습과는 달리 팀 버튼의 영화 속 세계와도 같이 완벽하게 변신해 있다. 1층 로비를 가득 채운 거대한 ‘벌룬 보이’는 들어오는 관람객들의 이목을 집중시켜주며 전시에 대한 거대한 기대감을 품게 만든다. 벌룬 보이를 감상하고 나면 팀 버튼의 심볼인 소용돌이 문양의 Spiral계단을 지나 ‘몬스터 마우스’의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가며 본격적인 전시를 감상하게 된다. 사실 팀 버튼의 영화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그가 영화 한 편을 통해서 보여주는 판타지 월드가 얼마나 크리에이티브하고 비현실적인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비틀주스>, <가위손>, <배트맨>, <크리스마스의 악몽>, <유령 신부>, <찰리와 초콜릿 공장> 등 그가 감독한 영화의 아름답고도 기괴한 세계에 빠져들어 팀 버튼이라는 감독의 역량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이 영화들을 통해 이미 수많은 팬층을 거느리고 있는 팀 버튼의 이번 전시는 2009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시작되어 멜버른과 토론토, LA와 파리를 거쳐 서울에까지 도착하게 되었다. 미술관을 가본 적이 없었다는 그의 어린 시절에 그린 습작부터 회화, 데생, 사진, 영화제작을 위해 만든 캐릭터 모형 및 일반 대중에게 공개할 계획이 없었던 개인적인 작품들까지 총 860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그 중 최신작 ‘프랑켄위니’ 섹션은 서울 전시에서만 특별히 만나볼 수 있는 작품들이라서 더욱 의미 있다.
1. 배트맨 마스크(1989) 라텍스 고무 2. 생명체 가족(2009) 쇠, 삼베, 에폭시, 폴리에스테르 수지 등 3. 움파룸파 (빨간색) (찰리와 초콜릿 공장) 팀 버튼 프로덕션 소장 4. 슬리피 할로우 허수아비(1999) 혼합매체
이번 전시회는 팀 버튼의 작품 세계를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상상력을 마음껏 스케치하던 성장기와 창의의 세계로 한걸음 내딛게 된 성숙기, 그리고 꿈을 완성해나가고 있는 전성기이다. 무한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영화 감독 팀 버튼이 자신의 상상력을 작품을 통해 어떻게 발전시키고 진화했는지를 자연스럽게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이다. 1958년 미국 캘리포니아 버뱅크에서 태어난 팀 버튼은 어린 시절 가봤던 놀이동산이나 동네 축제에서 주로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리며 상상력을 스케치하곤 했다. 팀 버튼은 버뱅크에서의 시절을 ‘외롭고 지겨웠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그의 유별난 상상력을 끊임없이 그림으로 표현하며 지루함 속에서도 명랑하고 활기찬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그가 고등학교 재학 중에 만든 아마추어 영상 필름을 비롯하여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던 어린 시절의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다. 팀 버튼이 성숙기로 진입하게 되었던 계기는 월트 디즈니가 설립한 캘리포니아 예술학교(칼 아츠)에 입학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어린 아이 같은 감성을 바탕으로 기괴하고 유머러스한 팀 버튼만의 작품 세계가 이 시기에 탄생하게 된다. 이후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일하게 되며 영화 감독이 되기 위한 초석을 다지게 된다. 칼 아츠의 독특한 분위기는 그에게 예술적 탐험과 자기 발견의 방대한 기회를 선사했고, 어린 시절의 우울했던 분위기에 대항하듯 그는 이 시기에 왕성한 창작력을 보여준다. “제가 자란 캘리포니아의 버뱅크에는 미술관이 많지 않았습니다. 십대 이전에는 단 한번도 미술관에 가 본 적이 없을 정도였죠. 대신, 주로 괴물영화와 텔레비전을 보고, 그림을 그리거나 동네 공동묘지에 가서 놀며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팀 버튼
1. 와인과 푸른소녀(1997) 캔버스에 유채, 71.1 x 55.9 cm 2. 무제 (로미오와 줄리엣) Untitled (Romeo and Juliet) (1981–1984), 종이에 펜, 잉크, 마커와 색연필, 30.5 x 40.6 cm 3. 무제 (생명체 시리즈) Untitled (Creature Series), (1992), 캔버스에 아크릴, 17.8 x 12.7 cm 4. 무제 (숫자 6) Untitled (#6), (1982). 종이에 펜, 잉크, 마커와 수채, 27.9 x 38.1 cm
팀 버튼은 자신의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며 위대한 예술가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만들어낸 작품들은 <가위손>, <배트맨>, <크리스마스의 악몽>,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만들어내는데 기초가 되어주었고 스케치와 캐릭터 모형들, 실제 영화 속에 등장한 소품 등 흥미로운 작품들이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는 무섭고 괴기스럽기도 한 영화 속 캐릭터를 중심으로 사회를 비판하기도 하고 풍부한 상상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팀 버튼은 신문과 잡지 만화, 애니메이션, 동화, 장난감, 일본의 괴물 영화들, 설치 예술과 SF영화들에서 영감을 받는다고 하는데, 지난 25년간 출시된 14편의 영화들은 너무나도 독특해서 ‘버튼 양식’이라고 일컬어질 정도이다. 다리를 여러 개 가진 영웅이나 모든 일을 해치우는 괴물, 나무 및 얼음을 조각하던 이상한 형상의 인간,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 이상한 나라에서 살아 남는 방식 등 독특한 인물들 또한 팀 버튼만의 독특한 시각적 연출과 특정한 주제를 보여주는데 기여했으며 이러한 독창적인 캐릭터들은 전 세계의 사랑을 받고 있다. 팀 버튼은 “아티스트는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그들만의 창의성을 발현시키는 특별한 감정들을 깨워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영화에서뿐만이 아니라 이번 전시를 통해서도 우리가 잊고 있던 특별한 감정과 창의력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도와주며 우리가 잊고 있던 꿈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촉매제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의 정중한 초청에 반응한 수많은 관람객들이 시립미술관을 찾아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전시명 : 현대카드 철처프로젝트 09 <팀 버튼 전> 전시기간 : 2013년 4월 14일 일요일까지 (매주 월요일 휴관) 전시장소 :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2,3층 관람시간 : 화-금 오전 10시-오후 8시, 주말 오전 10시-오후 7시 입장료 : 일반 12,000원 청소년 10,000원 어린이 8,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