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만혁, 가족 이야기19-1, 한지에 목탄 채색, 174×66cm, 2019, 이미지 제공 청화랑

임만혁, 가족 이야기19-2, 한지에 목탄 채색, 66×87cm, 2019, 이미지 제공 청화랑

가족이란 이름의 나_____임만혁
“가족은 우리에게 남은 몇 안 되는 은신처이며 그리운 곳, 기댈 곳, 정서적 풍요를 가꾸는 훈련장으로서 그 가치는 그 어느 것도 대신할 수 없다.” 여느 캔버스 대신 한지 위에, 붓 대신 목탄으로, 오랫동안 가족의 이야기를 화폭에 담아온 임만혁. 과장된 커다란 눈과 귀, 알 수 없는 표정의 얼굴, 가느다란 팔과 다리…. 그의 인물들은 정겨움과 낯섦의 묘한 경계 위에 서 있다. 잔디밭에서 놀고 있는 아빠와 아이, 동물과 함께한 가족, 하늘을 나는 가족 등 평범한 가족의 모습이지만 결코 따뜻하지만은 않다. 불안과 낯섦 또한 발견된다. 날카로움과 불안의 혼재 속에서 발견되는 따뜻함과 은밀한 유머가 깃든 성장 일기. 임만혁의 ‘가족 이야기’ 속에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내가, 당신이, 우리가 있다.

장욱진, 가족도(A Family Portrait), 캔버스에 유채, 7.5×14.8cm, 1972,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소장

장욱진, 가족(A Family), 캔버스에 유채, 19.3×22.7cm, 1975, 개인 소장

그 집에 사는 아이_____장욱진
장욱진의 예술 세계에서 가족은 매우 중요한 소재다. 가족을 깊이 사랑했던 그는 특히 아이들을 각별히 아꼈다. 가족의 중심이자 미래인 아이들.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그림을 그린 장욱진의 화폭은 그 연장선에 있을 것이다. 최소한의 형태와 색으로 지은, 소박한 그의 집 속에는 사랑스러운 가족이 있다. 그가 남긴 많은 가족 시리즈 중 ‘가족도(1972)’는 대표작으로 꼽힌다. 1964년 개인전 당시 이 작품과 유사한 ‘가족도’를 출품했다. 장욱진은 이 작품을 무척 아꼈는데 한 일본인이 며칠을 두고 간청하는 바람에 마지못해 팔았고, 이를 아쉬워한 그는 1972년 똑같은 구성의 ‘가족도’를 다시 그렸다. 축약되고 정제된 장욱진의 화폭에는 꿈꾸듯 맑은 아이가 산다.

정연두, 상록타워, C-print, 32개의 가족사진, Each print 55×80cm, 2001, Courtesy of the Artist,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아파트 안의 가족들_____정연두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32가구의 가족사진. 작품 제목이기도 한 ‘상록타워’는 광장동에 위치한 아파트의 이름이다. 우리는 나와 똑같은 구조 속에 살아가는 이웃을 잘 알지 못한다. 정연두는 이 이야기의 단서를 잡기 위해 ‘예술가가 무료로 가족사진을 찍어드립니다’라는 전단지를 들고 이웃을 찾아갔다. ‘상록타워’ 속 가족사진은 같은 아파트라 구조는 비슷하지만 각자의 취향에 따라 분위기는 천차만별이다. 천장 위 똑같은 조명만이 같은 아파트라는 단서를 제공할 뿐. 문을 열고 들여다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가족의 사연들. 그의 가족사진은 삶과 시대의 또 다른 족적이다.

김경민, 집으로II(Go Home), Acrylic on Bronze, 75×25×57cm, 2015, Courtesy of the Artist, 이미지 제공 갤러리 로얄

가장 친근하고 유쾌한_____김경민
“나에게 가족이란 제일 친하고 편한 친구 같은 존재…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는 가식 없는 친구… 때로는 너무 편해서 소중함을 잊고 지내는 사이.” 전시장보다는 빌딩 앞 혹은 거리 한복판에서 친근하게 말 거는 작품. 여러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일상 속 관객과 만나는 조각가 김경민의 작품 속엔 가족이 늘 함께한다. 휴일 오후 가족과 함께 자전거를 타거나, 해변으로, 공원으로 피크닉을 떠나는 가족 등 작가 자신과 가족은 춤추듯 이곳저곳을 누빈다.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미소와 유쾌한 몸놀림을 하고서. 퇴색하고 잊혀진 가족의 의미. 유쾌함으로 무장한 그의 작업은 가장 산뜻한 위로와 공감을 건넨다.

문성식, 만남, 캔버스에 젯소, 구아슈, 18×25.8cm, 2018,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 권오열,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그리움과 연약함 사이_____문성식
어릴 적 기억, 가족, 동네 사람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삶을 관찰하고 그만의 풍경을 만들어내는 문성식. 한데, 그의 풍경에는 가슴을 요동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할머니의 장례식 풍경에서도, 할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찍는 가족의 모습에서도, 주름 깊게 팬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얼굴을 맞댄 채 눈물을 흘리는 ‘만남’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산가족 같기도 하고, 죽음을 앞둔 노부부인지도 모를,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만남’. 그들의 ‘만남’에서는 한 세월을 살아낸 고단하고 나약한 인간의 삶이 읽힌다. 특유의 스크래치 기법은 그 고단함을 배가한다. 따뜻하고, 귀찮고, 그립고, 지긋지긋한 가족. 문성식은 결코 세련될 수 없는 가족(인간)의 서사를 그만의 감성으로 버무려낸다. 그의 회화에는 섬세한 관찰과 연약한 존재에 대한 연민이 빚어낸 묵직한 ‘진심’이 담겨 있다.

서기환, 사람풍경-Spring Day, 비단에 채색, 81.5×117cm, 2019, 이미지 제공 갤러리써포먼트

서기환, 사람풍경-A Midnight Date, 비단에 채색, 81.5×117cm, 2019, 이미지 제공 갤러리써포먼트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_____서기환
“나는 그림을 통해 ‘가족은 바로 나이며, 행복이다’라는 사실을 보여주려 한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이미 누군가의 가족이다. 가족을 떠난 개인의 탄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나란 존재는 그 가족 안에서 만들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가족은 ‘삶의 근원적인 구조’라고 말할 수 있다.” ‘가족’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통해 그 속에 담긴 희로애락을 담는 서기환. ‘사람풍경-花人’ 시리즈는 가족의 단란함 속에 느끼는 행복감과 유대감이 드러난다.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되는 김춘수 시인의 그것처럼 화폭 속 얼굴은 꽃으로 탈바꿈된 채다. 비단에 채색하는 동양화 기법과 친숙한 인물과 사물이 어우러진 또 다른 상상화. 꽃으로 명명된 그의 가족 풍경은 조용히 묻는다. 존재의 본질을.

김덕기, 생폴드방스-눈부신 햇살 아래서(Saint Paul de Vence - Under the dazzling sunlight), Acrylic on Canvas, 53×73cm, 2019, ⓒDukki Kim.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lery HYUNDAI

찬란한 풍경 속에 가족이 있다_____김덕기
“일상의 사람들은 여러 형태와 크기로 소재화되어 나의 그림에 등장한다. 특히 ‘가족’은 나의 정물화 속에는 의인화되어 들어가고, 풍경화 속엔 지나가는 사람 중의 일부로 등장한다. 화가인 내게 ‘가족’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보물 제1호 소재이다.” 이국적인 풍경이 화면을 압도하는 ‘생폴드방스-눈부신 햇살 아래서’에도 그의 가족이 등장한다(깨알처럼 작게). 그는 아들이 군대에 입대하기 전 남프랑스 여행을 함께했다. 생폴드방스는 샤갈이 97세 임종까지 20년간 머물면서 작품을 남긴 아름다운 마을이기도 하다. 이국적인 집과 오렌지나무 사이로, 아들아이가 무탈하게 군 생활을 마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도 담겼다. 스튜디오 앞 논밭 풍경을 담은 ‘여주-황금물결’에도 줄지어 걷는 가족이 포착된다. 화려한 그만의 색채 언어와 서정이 담긴 풍경. 그의 화폭이 그저 풍경으로만 머무르지 않는 까닭은 그 속에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눈부신 풍경의 완성은, 그 이름 찬란한 가족일지도.

황영성, 가족 이야기, 캔버스에 유채, 53×72.7cm, 2017, 이미지 제공 갤러리현대

우주 만물, 가족의 확장_____황영성
1970년대 회색이 주조를 이루는 ‘회색시대’를 시작으로 사각 형태로 분할된 반구상의 ‘가족 이야기’까지. 황영성은 그만의 가족 이야기를 긴 시간 써왔다. 특히 전쟁으로 가족을 잃어버린 작가에게 가족은 근원적인 그리움이었다. 하지만 그의 ‘가족 이야기’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가족의 모습은 등장하지 않는다. 분할된 사각 화면에는 인간의 얼굴, 새, 원숭이, 나무 등 동물과 식물, 주변의 모든 사물이 공존한다. 우주의 모든 것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상생으로서의 가족. 초가집과 그 주변을 그리며 가족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표현했던 초기작을 넘어 그의 가족 이야기는 우주 만물의 가족 서사로 확장된다. 시간과 공간, 전통과 현대, 기억과 현실이 망라된 황영성의 가족 이야기는 그 색채만큼 포용적이다.

한진, ㄱㅡㄷㅡㄹㅇㅢ 낮은 ㅅㅗㄹㅣㅇㅗㅏ 높은 ㅊㅣㅁㅁㅜㄱㅇㅣ, 종이에 연필, 29.7×21cm, 2008, Courtesy of the Artist

가늠할 수 없는 거리_____한진
“많은 단어와 문장들 속에서 쉽게 해석되지 않는 말이 ‘가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향해 유효한 말 ‘Be giving, forgiving and loving’.” 무성한 수풀, 나이프로 물감을 신경질적으로 긁어내는 표면 등 그만의 풍경 속에 현대인의 공포와 불안을 담아내는 한진. 어떤 소리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심상을 풍경으로 담아내는 그에게 가족은 어떤 모습일까.
‘ㄱㅡㄷㅡㄹㅇㅢ 낮은 ㅅㅗㄹㅣㅇㅗㅏ 높은 ㅊㅣㅁㅁㅜㄱㅇㅣ(그들의 낮은 소리와 높은 침묵이)’에는 모녀, 부자간의 모습이 담겨 있다. 높은 침묵의 시간만큼 모녀의 등 뒤로 소리 없는 공허가 읽힌다. 작가의 말마따나 함께 있어도 가늠하기 쉽지 않은 가족 간의 거리는 무심결에 찍은 사진과 누군가에 의해 찍힌 사진 속에서도 표현된다. 하나 가족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

윤석남, 어머니 III, 나무에 아크릴릭, 200×150×30cm, 1993(2018 재제작), 이미지 제공 학고재

가장 강인한 이름, 어머니_____윤석남
그의 관심은 오직 여성에 있었다.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로 불리며 지난 40여 년 동안 불평등한 여성의 삶에 애정 깊은 시선을 던진 윤석남. 그의 화력은 시작부터가 달랐다. 그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고, 불혹의 나이에 처음 붓을 들었다. 그의 붓이 머문 곳은 어머니였다. ‘어머니 III’는 작가의 어머니인 윤정숙 여사의 32세 당시 초상이다. 한복을 차려입은 여인은 단정한 매무새와 대조되는 강렬한 눈빛이 인상적이다. 남성 위주의 사회 속에서 고단한 삶을 살았으나, 수동적 대상이 아닌 능동적 주체가 되고자 한 여성의 힘을 표현하고자 했다. 시대를 넘어 ‘어머니’라는 단어 속에는 넘볼 수 없는 힘이 존재한다. 9월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릴 윤석남의 개인전에서 어머니, 여성 안에 담긴 강력한 서사를 만날 수 있다.

더네이버, 아트,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