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Y 아름답게 나이 든다는 것

뷰티를 말함에 있어 빠지지 않는 주제지만 누구도 완벽한 해답을 주지 않은 질문, 아름답게 나이 드는 법에 대하여.

201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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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오랜만에 동창들을 만났다. 30대 중반을 훌쩍 넘은 친구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얼굴에 손을 본 흔적이 있었다. 필자는 트렌디한 최신 미용 시술을 가장 먼저 접하는 직업에 종사하다 보니 타인의 시술에 상당히 열린 시각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그럼에도 내 얼굴에는 어떤 시술도 용납하지 않는 고지식한 면모를 유지했다. 넘치는 시술의 유혹 속에서도 필러 체험 기사만큼은 의도적으로 피했을 정도다. 이런 에디터도 몸무게와 호르몬 변화가 큰 두 번의 출산을 겪고 30대 중반을 넘기니 확고한 기준이 조금씩 흔들리는 걸 느낀다. 민낯이 두려워진 지는 이미 오래며, 하나둘 늘어가는 눈가 잔주름과 탄력을 잃어 달라진 턱 선, 그리고 젖살이 빠지면서 도드라지기 시작한 광대뼈까지, 시술을 고려하게 하는 요소들이 한 움큼씩 늘고 있다. 

 

과연 몇 살부터 시술을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혹은 언제부터 시작해야 자연스럽고, 얼마만큼 해야 티 안 나고 어려 보일까? 물론 이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요즘은 과거와 달리 노화를 개선하기 위해 시술하는 것이 아니라 미용을 위해 시술하는 시대니까. 젊음, 그 절대적 우위의 연령대에 있는 대학생들조차 코를 높이거나 턱을 갸름하게 하기 위해 보톡스와 필러를 유행에 따라 위치를 바꿔가며 주입할 정도다. 분명 포토샵의 보정 효과처럼 약간의 시술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한층 배가하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합성한 듯한 얼굴, 개성 없는 얼굴, 본인은 사라지고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얼굴 등 과격한 시술은 오히려 거부감을 가져온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기준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평소 미인을 인터뷰할 기회가 많은 에디터는 과도한 시술로 프로필 사진과 달리 대화 내내 웃는데도 표정이 일그러져 무섭게 느껴지는 인터뷰이를 만난 적이 많다. 속으로 ‘시술을 너무 많이 했군, 욕심이 과했구나’ 했지만, 막상 내가 노화 앞에 당당할 수 없는 나이가 되자 그들을 손가락질한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거울 속 나이 든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O tvN 예능 프로 <어쩌다 어른>에서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은 나이가 들면 친구들을 만나는 게 싫어지는데, 친구의 모습에서 자신의 나이를 가늠하게 되기 때문이라며, 누구든 자신이 나이 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중년을 떠올릴 때 생각하는 평균 나이를 물으면 대부분 자신보다 높은 연령대를 중년이라 대답한다. 심지어 환갑을 지난 어른들도 70대를 중년이라고 대답한다고. 이 또한 나이 든 자신을 받아들이기 힘든 심정에서 나온 답변이리라. 

 

아름답게 나이 듦이란 평생을 걸쳐 여자들이 생각하는 주제가 아닐까 싶다. 이는 이성적 기준과 감성적 기준 사이에서 필자를 늘 갈등하게 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아름답게 나이 듦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나조차 확고한 주관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 어떻게 글을 풀어갈지 고민이 많았다. 움베르토 에코의 저서 <미의 역사>를 통해 시대에 따라 변하는 미적 기준을 알아보기도 하고, 엘런 싱크먼의 저서 <미의 심리학>을 통해 자신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것으로 자아를 확인하려는 여성의 심리를 살펴보기도 했다. 책을 읽고 자료를 찾고 시술 관련 전문의의 조언도 들어봤지만 확실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70년대 개성파 여배우 문숙의 최근 사진을 접했다. 언뜻 봐도 또렷한 이목구비와 염색을 하지 않은 은회색 머리카락은 그동안 자라면서 봐온 프로컬리 펌의 한국 할머니 모습이 아니었다. 너무도 편안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흡사 오드리 헵번의 노년을 보는 듯했다.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에디터의 호감과 궁금증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녀를 인터뷰하기에 앞서 헤어와 메이크업, 의상으로 세련되게 포장할 준비를 했지만 그녀에게서 돌아오는 답변은 “그건 제 모습이 아니잖아요”였다. 영화 <뷰티 인사이드>에 출연하고 나서 잡지 촬영을 몇 번 한 적이 있는데, 그건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다고. 그녀다운 답변이었다. 인공적인 스튜디오는 불편하다며 공원이나 카페에서 편안하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인터뷰 현장에 나타난 문숙은 천연 소재의 편안한 옷차림에 정겨운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건강한 얼굴빛과 짙고 바른 눈썹, 온화한 미소는 굳이 별다른 치장이 없이도 세월이 가져다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나이 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그녀는 “사람들이 어려 보이는 것을 아름다운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어요. 나이가 들어서 아름답지 못한 게 아니라 자신만의 철학 없이 타인을 존중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꽉 막힌 사고가 얼굴에 드러나 아름답지 못한 거죠. 나이가 들수록 삶의 철학이 확고해지고 지혜가 쌓이고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우아함이 드러나는 것. 이것이 나이 든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이 아닐까 싶어요”라고 답했다. 또 다들 젊어 봤는데, 왜 다시 젊어지려는지 모르겠다며 사람들은 평생 안 죽고 평생 안 늙을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젊어지려고 애쓰는 것 같다고 전했다. 

 

프랑스 문필가 앙드레 모루아의 말처럼 나이를 먹는 기술은 뒤를 잇는 세대의 눈에 장애가 아니라 도움을 주는 존재로 비치게 하는 기술, 경쟁 상대가 아니라 상담 상대라고 생각하게 하는 기술이다. 그녀를 만나고 나니 앙드레 모루아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육아와 일 사이에서 남모를 죄책감을 가지고 있던 에디터는 카운슬러를 만난 듯 문숙과의 대화에서 마음속 응어리가 풀리고 바람 앞의 갈대처럼 흔들리는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게다가 헤어질 때 말없이 온몸으로 꼭 안아주던 그녀의 포옹은 이성의 그것과 달리 나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말처럼 들려 모든 일에 완벽을 기하려고 아등바등하는 에디터의 긴장감을 단숨에 녹여주었다. 

 

사회 현상이나 주변 환경에 휩쓸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젊은 것이 아름다운 것이고 아름답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위협 속에서 시술의 유혹에 휘둘리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 두 발로 설 수 있는지 등 자신의 철학이 확고해지면 사회 흐름과 상관없이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사회 현상, 생활 환경, 세월 등이 물처럼 흐르는데 그 물을 거슬러 오르기 때문에 힘든 거다. 수영을 하듯 물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진다. 자연스럽게 나이 들고 주어진 일을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열심히 하고 할 수 없는 것은 포기하는 것. 그것이 자연의 흐름이라고 문숙은 말한다. 능력과 상관없는 일을 쥐고 고민하고 해내려고 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고 그 일뿐 아니라 잘하는 일까지도 제대로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노화도 마찬가지다. 세월을 거스를 수 없는데, 현대 의학의 힘을 빌려 억지로 젊어지려니 탈이 나는 거라고. 

 

문숙의 외형적 모습은 객관적으로 나이 든 사람이 확실하다. 하지만 그녀가 가진 오라는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으며, 막연한 동경심마저 갖게 한다. 모든 일에 초연한 듯 편안하고 온화한 표정, 그리고 타인에 대한 선입견 없이 누구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너그러운 포용력, 확고한 삶의 철학. 아마도 이런 것들 때문에 그녀는 진정 아름답게 나이 든 여성의 롤모델이 된 것 아닐까. 문숙을 만나고 나니 아름답게 나이 드는 것은 단순히 외형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누구인지,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 자신과의 대화가 절실해졌다.

CREDIT

EDITOR : 장선경PHOTO : 전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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