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TECAILLE 퓨어 로즈 워터 100ml 10만6000원.

실험의 대상
토너와 세럼, 그 위에 크림을 바르고, 메이크업 베이스부터 파운데이션까지 한 겹 한 겹 덧바른다. 그리고 눈가에는 아이섀도를, 입술에는 립스틱을 바르고 속눈썹에는 마스카라를 한 올 한 올 바른 다음, 두 뺨에 블러셔를 얹어 발그레한 생기를 더한다. 화장품이 겹겹이 쌓이고 나면 비로소 미소를 머금게 된다. 그동안 몰랐다. 그렇게 채웠던 자신감이 동물들의 고통 어린 울부짖음에서 비롯됐음을 말이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속눈썹을 기껏 0.2mm 치켜세워보겠다는 욕심에 얼마나 많은 토끼들이 죽어 나갔는지. 피부의 뾰루지를 잠재우고자 사용한 크림 한 통에 죄 없는 쥐들의 희생이 얼마나 많이 뒤따랐는지 이제는 알아야만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동물의 희생을 통해 우리가 사용하는 화장품이 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상자 안에 단단히 묶여 움직일 수 없는 토끼가 있다. 클립으로 눈꺼풀이 고정되어 깜빡일 수조차 없는 상태에서 눈에 끊임없이 화장품 성분 실험이 이어진다. 며칠 또는 몇 주에 걸쳐 실험을 거친 토끼는 고통을 이기지 못해 죽음에 이르거나, 안락사당해 운명을 달리한다. 이렇게 죽어가는 동물은 비단 토끼만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실험에 사용되는 동물은 쥐나 토끼, 햄스터와 같은 설치류가 80% 정도를 차지하지만, 개와 고양이같이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만 연간 400만 마리에 가까운 동물이 각종 실험으로 희생되고 있다. 인간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공공의 희생이라고 하기엔 절대 적은 숫자가 아니다. 수많은 동물을 희생해 만든 의약품이나 화장품이 인간에게 100% 안전하다는 보장도 없는데 말이다. 동물 실험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부작용 없는 약이라 입소문을 타고 전 세계적으로 붐을 일으켰던 진정제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 임신부의 입덧을 가라앉혀준다는 소식에 수많은 임신부가 이 약을 복용했고, 그 결과는 참혹했다. 무려 1만2000명의 아이들이 이 약으로 인해 기형아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동물의 권리 문제는 또 어떤가. 1957년 ‘라이카’라는 이름의 강아지는 인간 대신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향했으나 온도 조절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결국 생을 마감했다. 라이카는 아직도 우주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테다. 라이카가 우주선에 탑승한 것도, 그 안에서 눈을 감은 것도 모두 라이카의 선택이 아니었다. 도대체 우리 중 누가 라이카의 목숨을 좌우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스킨케어가 피부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지, 마스카라의 컬링 효과가 얼마나 뛰어난지 등 화장품 제조 과정에서 진행하는 실험에서 동물을 마치 도구처럼 쓰는 일은 아직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1 BURT’S BEE 레스-큐 오인트먼트 15g 1만3000원. 2, 3 CHANTECAILLE 립 시크 #패션 플라워, #허니 서클 각 2.5g 6만9000원.

국가의 선택
2013년, 유럽연합은 화장품 업계의 동물 실험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기로 했다. 완제품 단계의 동물 실험은 물론이고, 성분을 시험해보는 것 모두 유럽연합에서 불법이다. 그 외 크로아티아, 이스라엘, 그리고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동물 실험 반대 법안을 통과시켜 크루얼티 프리 존으로 거듭난 인도 등도 법적으로 화장품의 동물 실험을 금지한 상태다. 우리나라에서도 2017년 2월, 동물 실험을 거쳐 만든 화장품을 유통하거나 판매할 경우 1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개정안이 시행되었다. 완제품으로 동물 실험을 한 제품뿐만 아니라 동물 실험을 거친 원료를 사용해 제조, 수입한 화장품을 유통, 판매하다 적발되는 경우도 포함된다. 문제는 바로 중국이다. 2014년 중국은 자국 내에서 제조된 화장품에 한해 동물 실험 필수라는 법 조항을 폐지하고, 단계적으로 화장품 동물 실험 금지를 위한 절차를 밟아나가겠다고 밝혔지만, 현재 공식적 입장은 모호한 상태다. 여전히 타국의 뷰티 브랜드에게 동물 실험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동물 실험을 하지 않은 브랜드의 중국 내 진출을 금하고, 수입, 유통도 허용하지 않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화장품 수출국 1위는 다름 아닌 중국이다. 동물 실험을 의무화하고 있는 중국에 제품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국내 브랜드 역시 동물 실험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4 ABSOLUTION by LABLE C 르 네또양 퓨레떼 젤 클렌저 125ml 4만3000원. 5 BOONCO 밸런스 바디 로션 300ml 3만2000원.

크루얼티 프리 브랜드임을 증명하는 인증 마크는 토끼다. 하지만 토끼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은 아니다. 가장 일반적인 크루얼티 프리 인증은 ‘페타(PETA)’. 크루얼티 프리 인증을 자발적으로 획득하려고 시도하고, 제품과 성분 모두 동물 실험을 거치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증표다. 그다음 단계가 바로 뛰어오르는 토끼 형상을 한 ‘리핑 버니(Leaping Bunny)’다. 리핑 버니는 브랜드의 서면 계약만이 필요한 페타와 달리 공공기관이 수시로 감시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점에서 페타에 비해 보다 적극적인 단계의 크루얼티 프리 인증으로 볼 수 있다. 1996년 북미주를 대표하는 8개 동물보호단체가 연합해 만들었고, 지금은 화장품과 생활용품 분야에서 완제품뿐 아니라 생산 공정 전체에서 동물 실험을 하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국제 통용 마크로 사용되고 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큰 시장인 중국 진출을 포기하면서까지 페타, 리핑 버니 등의 크루얼티 프리 인증을 획득하며 동물 보호에 앞장서는 착한 브랜드가 점차 증가하며 중국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동물 실험이 반드시 필요하다면 중국에는 가지 않겠다는 선포로 그런 탓에 중국 관광객이 해외 여행을 갈 때마다 해당 브랜드의 제품을 사재기하는 현상이 목격되곤 한다.

1 LUSH 보디 솝 #올 더 와일드 띵스 1만1000원. 2 LUSH 터틀 젤리 밤 140g 1만9000원.

동물 대신 인간
동물 실험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요즘, 동물을 대신해 실험할 수 있는 대상에 대한 연구도 한창이다. 인공 피부, 장기 칩 등이 바로 그것. 실제로 국내 브랜드 테고사이언스에서는 인간의 피부 세포를 이용해 진피 및 표피를 재현한 실험용 피부, 네오덤을 선보이고 있다. 피부는 물론이고 각막, 구강 점막까지 재현이 가능하며 실제 사람이 제품을 사용했을 때의 변화를 연구하기에 충분한 상황이다. 바이오솔루션 역사 인간의 피부, 각막, 기관지 점막, 구강 점막 등의 세포를 채취해 구현한 3D 피부 모델, 케라스킨을 선보였다. 이러한 인공 피부뿐 아니라 이제는 아예 인간의 장기를 구성하는 세포를 3차원으로 배양한 후 전자회로가 형성된 미세 칩 위에 놓고 실제 인체와 유사한 생체 환경에서 약물에 대한 반응을 실험할 수 있는 장기 칩까지 생산될 예정이다. 현재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연간 수백억원의 예산을 들여 장기 칩 연구에 몰두한다고 하니 빠른 시일 안에 인간의 장기를 대신할 장기 칩을 만나볼 수 있을 듯하다. 이렇게 동물 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인공 조직을 다루는 산업은 2021년에 이르면 3000억원대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머지않은 미래에 동물 실험이 영구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3 TARTE by SEPHORA 쉐이프 테이프™ 글로우 원드 6ml 3만4000원. 4 TARTE by SEPHORA 레인포레스트 오브 더 씨 H2O 글로스 4ml 2만6000원. 5 TARTE by SEPHORA 타르티스트™ 퀵 드라이 매트 립 페인트 6ml 2만7000원. 6 TARTE by SEPHORA 바바수 파운실러™ 멀티태스킹 파운데이션 30ml 5만1000원.

동물 실험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커진 만큼, 동물성 성분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 동물의 피부와 뼈에서 추출한 콜라겐과 상어 간에서 추출한 스콸렌 성분은 피부에 탄력을 가져다주는 효과로 안티에이징 스킨케어에 빠지지 않고 함유되는 성분이다. 이러한 동물성 성분 대신에 아르간 오일이나 커피빈 오일 등 식물성 오일 성분을 더해 그 효과를 보강할 수 있으며, 콩 단백질에서 추출한 성분으로도 충분히 대체 가능하다. 스킨케어뿐 아니라 메이크업에서도 식물성 성분에 대한 요구가 크다. 중남미 사막의 선인장에 기생하는 암컷 연지벌레에서 추출한 성분인 카민은 빨간 색소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립스틱과 같은 색조 제품에 뺄 수 없는 핵심 성분인 셈인데, 최근에는 카민 성분을 대신해 꽃잎에서 색소를 추출해 사용하는 기술이 개발되어 더 이상 연지벌레의 무고한 희생에 기댈 필요가 없어졌다. 동물에게서 직접 추출하지는 않지만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동물의 삶을 망가뜨리는 성분에 대한 경각심도 커지는 추세다. 그중 하나가 바로 미세 플라스틱. 미세 플라스틱의 일종인 글리터 입자는 정수 처리 과정에서 걸러지지 않고 바다로 고스란히 흘러 들어가 해양 생태계를 교란하고 바닷속 동물의 목숨을 위협한다. 때문에 글리터의 반짝임은 유지하면서 생태계를 오염시키지 않도록 해초와 규산염을 사용해 만든 한천 성분으로 대체하는 뷰티브랜드가 늘고 있다.

1 LUSH 허벌리즘 250g 4만4000원. 2 LUSH 베가니스 250g 2만8000원. 3 LUSH 울트라플랜트 45g 3만3000원.

착한 소비
샹테카이는 크루얼티 프리에 대한 신념이 확고하다. 중국 본토에 진출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물론이고, 동물 유래 성분을 완전히 배제하고 오직 식물 성분만을 함유한 비건 라인을 방대하게 갖추고 있다. 샹테카이의 독보적인 뷰티 철학은 필란트로피 캠페인으로 구현된다. 지속 가능한 발전에 대한 비전을 브랜드 설립 당시부터 구축해놓은 샹테카이는 그 어떤 브랜드보다 미래 지향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자연에서 얻은 원료를 통해 발생한 수익을 자연으로 되돌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멸종 위기 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오랫동안 관철해오고 있는 필란트로피 캠페인만 봐도 그들의 철학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필란트로피 캠페인의 일환으로 출시한 립 크리스탈의 판매 수량과 동일한 그루의 나무를 케냐에 심는 프로젝트 ‘원 립스틱, 원 트리(1 lipstick, 1 tree)’를 통해 6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척박한 케냐 토양에 초록을 선물했다. 이들이 일군 나무는 수많은 동식물의 안식처가 되어줄 것이다. 이뿐 아니라 모나크 나비 기금을 통해 멕시코 내 20여 곳에 2만여 그루의 나무를 심었고, 코스타리카, 세이셸, 이탈리아 등지에 블루 파크를 6개 지정해 심해의 산호 생태계를 보호하는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이 외에도 바다거북, 꿀벌, 코끼리, 야생마, 기린, 치타 그리고 최근에는 벌새까지 다양한 동식물의 보존을 위해 힘쓰고 있다. 이러한 활동을 벌이는 브랜드가 샹테카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러쉬 역시 착한 브랜드 철학을 통해 오랜 시간 동물과 식물, 그리고 인간의 건강한 공생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오고 있다. 음식, 화장품, 바이오 연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는 팜 오일의 주요 생산국인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역의 열대우림은 무분별한 불법 벌목과 산불 등으로 훼손되어가고, 이로 인해 멸종 위기 야생 동물의 서식지 역시 줄어들고 있는 상황. 러쉬는 이곳의 열대우림 복원을 위해 ‘#SOS 수마트라’ 캠페인을 진행했다. 샴푸 바 SOS 수마트라를 선보이고 판매금 전액을 기금으로 사용해 약 15만 평의 팜 농장 부지를 매입 후 지속 가능한 열대우림으로 가꿔 생태계 복원을 돕는 데 힘쓰고 있다. 갈수록 늘어나는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해 바다거북은 멸종 위기에 처하고 해양 환경이 심각하게 오염된 사태를 알리고 해양 생태계 보존의 중요성을 전파하기 위해 세계 해양의 날에 터틀 젤리 밤을 선보인 바 있다. 이 입욕제는 바다거북이 삼킨 플라스틱 비닐을 흰색 한천 성분으로 형상화해 많은 이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최근에는 전 세계를 경악시킨 호주 산불 사태에 발벗고 나섰다. 불타버린 숲속에서 겨우 살아난 코알라와 캥거루 등의 야생 동물, 그리고 잿더미로 사라져버린 그들의 서식지를 복원하기 위해 코알라 모양 보디 솝을 출시한 것. 초록색 코알라 모양의 비누, 올 더 와일드 띵스의 판매 수익은 모두 호주의 동물구호단체에 기부했다. 5만 개 한정으로 선보인 해당 제품은 벌써 품절되어 구입할 수 없다. 러쉬가 특별한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동물 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 발전을 이끌어가는 동물 대체 시험 분야의 세계 최대 시상식인 ‘러쉬 프라이즈’를 직접 개최하고 있다. 러쉬가 비영리 단체인 윤리적 소비자 연구소(ECRA: Ethical Consumer Research Association ltd.)와 함께 주최하는 공신력 있는 시상식, ‘러쉬 프라이즈’는 2012년부터 현재까지 동물 실험 근절을 촉구하고 동물 대체 시험법 활성화에 공헌한 과학자와 단체에게 연구 지원금을 수여해 단순히 축하로만 끝나지 않고, 모두와 함께 새로운 정보와 신기술을 공유하고, 동물 실험을 없애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 더욱 의미가 깊다. 샹테카이와 러쉬처럼 적극적인 동물 실험 반대, 그리고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펼치는 브랜드는 생각보다 많다. 더 바디샵은 지구 곳곳의 황폐화된 지역을 푸르게 가꾸기 위한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고, 꼬달리는 연간 매출의 1%를 환경 단체에 기부해 세계 곳곳에 푸른 나무를 심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외에도 록시땅, 버츠비, 키엘, 비욘드 등의 브랜드들이 환경보호를 위한 활동과 동물 실험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동물 실험을 하지 않고, 동물성 성분의 사용을 자제하는 것, 그리고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과 평화롭고 건강한 공생을 꿈꾸는 것.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뷰티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지금처럼 작지만 꾸준히, 그리고 진심을 다해 행동하다 보면 어쩌면 생각보다 빨리 우리 모두가 염원하는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더네이버, 뷰티 이슈, 동물실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