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아트 작품 속 겨울 풍경

춥고, 어둡고, 긴, 겨울이 다가온다. 하지만 이들의 화폭 속 겨울은 그저 겨울이 아니다. 하얀 마법과 함께 소란도 잠시 쉬어 가는 곳, 그곳에서 다시 피어날 내일이 읽힌다.

2022.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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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학, ‘Untitled’, Oil on Canvas, 181.8×290.9cm, 2015, 이미지 제공 조현화랑

 

이토록 고혹적인 절기

김종학 

설악산에 둥지를 틀고 가장 ‘소질 있는’ 그림을 그려온 노 화백의 화폭에 스민 겨울. “겨울의 내리는 눈은 정말 아름다웠고 눈 내린 풍경은 고요하고 적막했다. 그렇게 겨울이 나에게 다가왔고 겨울이 오면 겨울을 그리고 있다.” 누군가에겐 깊고 조용한 안식의 시간이며, 누군가에겐 극복의 대상이자 꽃봉오리를 피우게 하는 자양분이었을 겨울.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은 춥고 어둡고 길다. 이런 겨울을 두고 김종학은 가장 아름다운 절기라 칭했다. 화장하지 않은 민낯이며 숭고한 자연의 골격이라고. 본질을 담아내고자 수없이 번민한 지난 시절. 설악의 하얀 눈은 요동치는 내면을 뒤덮는다. 뜨겁던 시절을 지나 고독한 시간 앞에 선 노 화백의 선은 인생을 닮은 듯 고혹적이고 엄숙하다. 깊은 고요가 뒤따른다. 

 

 

 

(위) 윤병운, ‘Picture Thief’, 97×162cm(100M), Oil on Canvas, 2022 (아래) 윤병운, ‘Silence’, 130×162cm(100F), Oil on Canvas, 2021 

 

눈 덮인 망각의 숲 

윤병운

“평소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던 공기가 겨울이 오면 차가운 상태로 피부에 닿는다. 우리를 둘러싼 투명한 대기는 눈이 내릴 때 비로소 눈앞에 나타난다. 세상의 모든 사연은 눈이 오는 순간 잠시 사라진다. 소리마저 흡수하는 백색으로서의 전환을 숨죽여 바라보게 된다.” 집과 나무,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것을 뒤덮은 눈. 이 세상의 모든 소음을 삼킨 듯, 뿌연 눈발 사이로 정적이 흐른다. 하지만 윤병운, 그의 풍경은 자연 풍경이 아니다. 윤병운은 눈 오는 풍경을 통해 자연물과 인공물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을 주목한다. 경계가 사라진 모호한 풍경. 그 속에는 수많은 기억과 흔적이 부유한다. 기억의 흔적을 덮은 설경의 저편, 윤병운은 그 망각의 숲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친밀함과 낯섦, 꿈과 현실, 의식과 무의식이 공존하는 그곳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박진아, ‘공원의 새밤 10’, Oil on Linen, 130×205cm, 2021,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Happy New Night

박진아

겨울밤이 내려앉은 어떤 곳, 거대한 달과 검은 그림자의 사람들과 나무, 그리고 선명한 플래시. 박진아의 ‘공원의 새밤’ 연작으로 영문 제목은 ‘Happy New Night’이다. 새해를 앞두고, 독일 뉘른베르크의 한 공원에서 사람들이 한밤중에 삼삼오오 모여 폭죽을 터뜨리는 등 그들만의 작은 파티를 벌이는 광경을 스냅 사진으로 포착한 후 이를 재구성해 캔버스로 옮긴 작업이다. 이때 박진아는 명민한 장치 하나를 끌어들인다. 인공의 카메라 플래시다. 자연의 달빛보다 더 도드라지는 인공의 플래시 덕에 인물은 실제보다 평면적이고 선명하다. 마치 컴컴한 연극 무대 위의 배우처럼 드라마틱하기까지 하다. 이렇듯 박진아는 카메라 효과와 인공조명을 통해 실제의 재현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회화적 표현의 방향을 모색한다. 캔버스 위에 축적된 시간성과 어디인지 모를 장소에 대한 불확실성이 더해지면서 더욱 낯설고 몽환적인 풍경을 만든다. 박진아의 새로운 세계, ‘Happy New Night’이다. 

 

 

 

Pentti Sammallahti, ‘Animal Farm’, Solovki, White Sea, Russia 1992 © Pentti Sammallahti,  이미지 제공 공근혜갤러리

 

혹독함과 아름다움 사이

펜티 사말라티 

북극, 고요, 추위를 좋아하는 방랑가, 펜티 사말라티. 고향인 스칸디나비아부터 시베리아, 러시아, 남아프리카 등 카메라를 들고 전 세계 곳곳을 여행한 70대 노장의 지난 행적과 아직도 본인의 암실에서 직접 인화하는 집념의 장인정신은 경이로움에 가깝다. 그의 사진 속 주인공은 사람이 아닌 동물. 대표작 ‘러시안 웨이(The Russian Way)’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물질적 욕망보다는 자연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는 사말라티. ‘러시안 웨이’ 역시 러시아 북서쪽 백해(白海) 지역의 솔로브키에서 촬영한 작품이다. “겨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날씨가 나쁠수록 사진 촬영하기에는 가장 좋다. 나는 하루 중 해 질 녘을 제일 좋아하는데,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표현하는 그 시간이다.” 세상의 가장 연약한 아름다움이 공격당하는 그 시간, 사말라티는 영하 20℃의 혹독함 속에서 그 찰나를 기다린다. 사냥을 앞둔 포인터 개처럼. 분명, 혹독함과 아름다움은 한 뿌리였을 것이다. 

 

 

 

이수동, ‘초대’, 40.9×53.0cm, 2021 

 

봄에게로 보낸 초대장 

이수동 

아직도 회자되는 드라마 <가을동화> 속 주인공이 그린 그림으로 등장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끈 작가. 자작나무, 달, 연인 등 평범한 소재를 통해 친근하고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이수동 앞에는 여전히 ‘완판 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의 작품은 모두가 해피엔딩인 아름다운 동화처럼 미소가 스르르 번진다. 그의 자작나무숲에 찾아든 겨울 풍경도 그러하다. ‘초대’라는 이름의 이 작품 앞에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그녀를 초대했다. 손편지를 진핑크색 봉투에 잘 넣어서 부쳤다. 온다는 며칠 전부터 눈꽃도 피우고, 꽃 달도 띄워놓고, 당연히 집집마다 불을 다 밝혀놨지. 그녀가 온다는데…. 봄이 온다는데 말이다.’ 마침내 오고야 말 봄을 위한 초대 편지를 띄우고 꽃 달 아래 봄을 기다리는 풍경. 겨울 자작나무숲엔 포근한 희망의 바람이 분다. 봄(희망)은 머지않았다. 

 

 

 

김덕기, ‘가족 - 함께하는 시간 Family - Time Spent Together’, Acrylic on Canvas, 193.9×259cm, 2014 

 

겨울을 녹이는 행복의 온도

김덕기 

‘행복’, ‘따뜻함’, ‘가족애’라는 단어는 교과서 어느 한구석에 박제된 추억의 단어처럼 느껴진다. 어느 순간 일상에서 요원해져버린 그것들을 김덕기는 기꺼이 우리 곁으로 소환한다. 펑펑 눈 내리는 날 가족과 함께 눈사람을 만드는 이 평범하고도 따뜻한 풍경. 촘촘하게 중첩된 색점은 어느 누군가의 추억과 이야기처럼 눈 내리듯 소복하게 쌓여간다. 김덕기의 ‘가족 - 함께하는 시간’은 겨울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어떤 풍경보다 따뜻하게 다가온다. 덧붙여 그는 하루하루 치열하게 달려온 우리에게 삶의 방향, 삶의 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권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겨울이라면 더욱 말이다. 김덕기는 연말과 새해를 잇는 전시로 우리에게 또 다른 행복을 건넨다. 돛단배를 소재로 한 전시 <Memories of the wind: 바람의 기억>이 2023년 1월 26일까지 소울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다.

 

 

 

강강훈, ‘Cotton’, Oil on Canvas, 194.0×130.3cm, 2021, 이미지 제공 조현화랑 

 

목화, 피고 지다 

강강훈 

얼굴의 미세한 솜털과 땀구멍까지 묘사한 극사실적인 인물화 연작을 통해 대중적 입지를 굳힌 강강훈. 한겨울에 핀 하얀 꽃송이 같은 ‘목화’가 다시 한번 시선을 사로잡는다. 만약 겨울을 대변할 겨울꽃이 있다면 아마 목화가 아닐까 싶을 만큼, 눈꽃 같은 목화다. ‘목화’는 어느 날 갑자기 그의 마음속에 들어온 소재다. “지난 몇 해 동안 부모님을 연이어 떠나보냈다. 어머니의 앙상한 몸과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은 목화의 마른 가지, 솜과 그렇게 비슷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바라본 목화는 어머니 그 자체였다.” 목화의 마른 가지는 부모를, 온전히 보전된 솜은 자식을 떠올리게 했다. 앙상한 가지와 비정형의 폭신한 솜은 피고 지는 인생처럼 더없이 처연하다. 강강훈의 목화는 모든 계절과 무수한 사연을 먹고 만개한 것처럼 꼿꼿하고 의연하게 피어 있다. 강조하지만, 이것은 목화가 아니다. 

 

 

 

강요배, ‘눈 속에서’, Acrylic on Canvas, 91×72.7cm, 2022, 사진 양동규, 이미지 제공 학고재 

 

제주의 눈 속에서 

강요배

한국 민중미술 1세대 작가라는 타이틀에 익숙한 이라면 그의 풍경화는 조금은 낯설게 다가올 것이다. 1992년 고향인 제주로 내려가 그곳의 자연을 담은 풍경화를 그리고 있는 강요배. 눈 내린 제주의 풍경을 그린 ‘눈 속에서’는 제주도를 상징하는 동백꽃이 눈 내린 풍경 속에 살포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 하지만 나무도, 눈도, 꽃도, 그 형태는 구체적이지 않다. 일흔의 강요배는 핵심만 드러내는 추상 화면에 가 닿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에게 풍경을 그리는 일은 ‘바람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집과 작업실을 오가며 매일 목격하는 제주의 풍경은 그날의 정서와 날씨에 의해 매번 새롭게 경험된다. 어쩌면 그에게 그림은 함께 호흡하는 삶의 역사가 아니었을까. 오늘도 강요배는 제주의 바람 속으로, 역사 속으로 온전히 들어가는 중이다. 문득 그의 작품에서 바람의 소리가 들린다.

 

 

 

문성식, ‘겨울나무’, 캔버스에 유화, 연필, 27.4×19.2cm, 2021,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그저 삶, 그리고 겨울나무

문성식

왜 그의 작품은 내놓기가 무섭게 완판 행렬인가. 문성식, 그에게는 기묘한 특기가 있다. 꽃, 나무 등 ‘별 볼 일 없는’ 평범한 일상의 소재에서 처연하고도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해내는 그만의 시선. 뒤이어 그는 조용히 다독인다. 꽃이 피고 지고, 계절이 바뀌고, 필연적으로 생명이 순환하는, 삶이라는 거대서사 속에서 그것이 ‘그저 삶’이라고. ‘겨울나무’ 또한 그러하다. 어디에서나, 누구라도 볼 법한 나무 한 그루. 더욱이 나뭇잎 하나 없는 앙상한 겨울나무다. 한데, 오히려 강한 힘이 느껴진다. 그것을 그린 소재가 소소하고 연약한 연필이라는 사실은 더욱 놀랍다. 두껍게 바른 유화 위에 연필로 그 바닥을 긁어내는 ‘유화 드로잉’ 기법으로, 힘주어 긁어내려는 반복된 수련의 행위 속에 ‘그리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읽힌다. 그의 ‘겨울나무’에도 다시 피어날 내일의 굳건한 의지가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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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설미현PHO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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