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USE + HOUSE

럭셔리 하우스의 협업 소식이 이제는 낯선 이슈가 아니다. 하지만 최근 럭셔리 하우스가 진행하는 새로운 컬래버레이션 경향은 그야말로 ‘사건’ 수준! 이전에는 빅 브랜드가 규모와 카테고리 면에서 확연히 차이를 보이는 소규모 브랜드의 손을 잡고 주도적으로 협업을 이끌어갔다면, 현재 가장 화제가 되는 만남은 거물급 패션 하우스 간의 협업이라 할 수 있다. 한 브랜드에 치우치는 것이 아닌 두 하우스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두 브랜드의 정체성이 화학적 결합을 이뤄 전례 없는 스케일의 컬렉션을 탄생시키는 것. 시작은 케어링 그룹 사단의 구찌와 발렌시아가였다.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구찌의 아리아 컬렉션이 공개되는 순간 패션 필드는 전율에 휩싸였다. 화려한 플래시 조명 아래 구찌 모델들이 발렌시아가의 로고와 실루엣이 그려진 피스들을 입고 등장한 것. 구찌의 상징적인 재키 백과 마몬트 백도 예외 없이 발렌시아가 로고로 가득 채워졌다. 반대로 발렌시아가는 도용과 위조의 개념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더 해커 프로젝트’를 통해 구찌의 코드에 완벽히 침투해 두 브랜드의 아카이브를 유쾌하게 풀어낸 컬렉션을 완성했다. 새로운 협업에 대한 놀라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 뒤를 이어 펜디와 베르사체 하우스가 컬래버레이션을 공표했다. 다른 그룹 소속인 두 브랜드의 조합은 전자의 만남 못지않게 강렬한 이슈였다. 펜디의 디렉터 킴 존스와 베르사체의 도나텔라 베르사체 두 베테랑 디자이너의 우정을 바탕으로 2022 S/S 여성과 남성 컬렉션을 함께 진행한 것이다. 일명 ‘펜다체(Fendace)’라는 이름의 이 컬렉션은 두 브랜드 네임을 결합했듯 베르사체의 관능적인 무드와 펜디의 우아함이 멋진 조화를 이뤘다. 이처럼 거대 하우스가 만나 완성하는 역사적인 컬렉션이 또 어떤 하우스를 통해 성사될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FASHION & CAR

패션과 자동차는 현대인의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산업이다. 때문에 두 분야의 만남이 활발해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 최근 확연히 젊어진 자동차 브랜드의 뜨거운 마케팅 경향을 살펴보더라도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동차 업계에 비해 압도적인 속도로 대중의 입맛을 선도하는 패션 브랜드와 손잡는 것만큼 손쉽게 ‘트렌디’한 이미지와 비주얼을 주입할 수 있는 마케팅 전략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메르세데스-벤츠는 기민하게 컬래버레이션 마케팅의 필요성을 간파하고 젊은 고객층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Z세대의 절대적 지지를 얻고 있는 버질 아블로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지난해 성공적인 첫 만남을 성사시킨 이 둘은 올해에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최상위 라인 마이바흐를 중심으로 새로운 협업을 예고하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처럼 패션 디자이너의 미적 감각을 자동차에 적용하는 협업이 있는 반면, 각 브랜드의 철학과 상징적인 요소를 녹여낸 패션 아이템을 출시하는 브랜드도 있다. 바로 볼보와 필립 림, 그리고 메르세데스-벤츠와 프로엔자 스쿨러가 그 예. 필립 림은 볼보의 친환경적인 인테리어 소재를 활용한 위크엔드 백을 디자인해 지속가능성에 대한 두 브랜드의 철학을 감도 있게 풀어냈고, 프로엔자 스쿨러는 각 브랜드의 로고를 새긴 의류와 액세서리로 구성된 캡슐 컬렉션으로 두 브랜드의 견고한 장인 정신과 현대적인 감성을 전한다.

ISSUE MAKERS

협업의 성공 여부는 뭐니 해도 두 브랜드의 궁합이라 할 수 있겠다. 브랜드의 인지도가 가장 높을 때, 혹은 두 브랜드의 조합이 현 트렌드의 흐름과 잘 맞아떨어질 때 비로소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으니 말이다. 이처럼 시의적절한 만남으로 폭발적인 시너지를 이끌어낸 경우를 최근에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지난해부터 예고된 질 샌더와 아크테릭스, 그리고 루머만 무성했던 티파니와 슈프림의 컬래버레이션이 베일을 벗고 기대 이상의 완벽한 호흡으로 감도 높은 협업 제품을 쏟아냈다. 질 샌더의 미니멀한 디자인과 아크테릭스의 기술력을 면밀하게 결합한 질 샌더 플러스 라인의 캡슐 컬렉션은 감도와 실용성을 모두 만족시키는 새로운 차원의 아웃도어 웨어를 탄생시켰다. 또한 컬래버레이션계의 ‘미다스 손’으로 통하는 슈프림은 티파니의 주얼리에 존재만으로도 ‘쿨’한 슈프림 로고를 나란히 새겨 넣은 주얼리와 티파니 블루 로고 티셔츠를 제작했으며, 거의 모든 제품군이 출시와 동시에 ‘완판’됐다. 반면 펜디는 세계적인 인지도를 자랑하는 킴 카다시안의 브랜드 스킴스와 손잡고 트렌드에 가장 민감한 Z세대의 취향을 겨냥한 컬래버레이션 컬렉션을 성공적으로 론칭했다. 이처럼 각기 다른 결을 띠는 브랜드의 의외의 조합은 각자 새로운 고객층을 유입하는 계기가 되는 시너지를 발휘하기도 한다.  

MASTER OF COLLABORATION

디자이너 자체로 흥행이 보증되는 컬래버레이션도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업데이트되는 컬래버레이션 뉴스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후지와라 히로시가 그중 한 명이다. 일본에는 유독 고객 충성도가 높은 스트리트 브랜드가 많은데, 후지와라 히로시가 전개하는 프라그먼트 디자인 역시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을 넘어 스트리트 신의 대부로 세계적인 입지를 굳히고 있는 그는 오랜 시간 슬럼프 없이 다양한 브랜드의 협업 파트너로 활약하고 있다. 그의 대표적 단골 파트너로는 나이키와 몽클레르를 꼽을 수 있다. 나이키와는 분기별로 꾸준히 한정판 스니커즈를 출시하고, 몽클레르와는 다채로운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이뤄진 몽클레르 지니어스 컬렉션을 통해 매 시즌 새로운 캡슐 컬렉션을 발표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불가리와 로로 피아나 같은 럭셔리 하우스를 협업 커리어에 추가하기도 했다. 그의 활약은 패션 필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얀마 홀딩스와 제작한 요트부터 마세라티의 슈퍼카 마세라티 기블리 오페라네라, 그리고 소박하게는 스타벅스의 텀블러까지. 어떤 종목의 아이템이건 프라그먼트 디자인의 번개 시그너처가 내리꽂히면 이슈가 된다. 후배 디자이너들의 요란한 활약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후지와라 히로시. 곧 60을 바라보는 그지만 ‘노장’이라고 부르기엔 여전히 뜨겁고 쿨하다.      

더네이버, 패션, 컬래버레이션 트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