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그의 표정

박찬욱의 사진 개인전 <너의 표정(Your Faces)>은 사물과 풍경이 그에게 말을 걸어온 순간의 기록이다. 무생물의 대상에게서 감정이 느껴지는 찰나를 포착한 것은 박찬욱이지만, 피사체의 표정을 해석하는 건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2021.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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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Face 16’, 2013, Backlit film, LED Lightbox, 110×75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박찬욱, ‘Washington, D.C.’ 2013, Archival pigment print, 111×111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가끔 사물, 풍경 등 무생물에게서 감정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교감의 순간이죠. 전시명을 ‘너의 표정’으로 지은 이유는 그런 교류의 순간을 강조하기 위해서예요.

 

 

박찬욱을 마주했다. 영화제나 시사회장이 아닌 갤러리에서. 국제갤러리의 윤혜정 디렉터의 전시 소개말이 이어지는 동안 옆에 서 있던 박찬욱은 잠시 머리를 젖혀 천장을 바라보았다. ‘어떤 상념에 잠겼나?’ 그러더니 이내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고개를 조심스레 숙였다. 마치 기도라도 하듯. ‘긴장한 걸까?’ 그의 감정이 궁금했다. 그러나 절반 이상이 마스크에 가려진 얼굴에서는 어떠한 표정도 읽히지 않았다. 


10월 1일부터 12월 19일까지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박찬욱의 사진 개인전 <너의 표정(Your Faces)>이 열린다. 박찬욱이란 이름 앞에 영화감독이란 호칭을 붙이지 않은 건 ‘전시를 준비하며 가명을 쓸까’도 잠깐 고민했다던 그의 말이 떠올라서다. 그러나 구태여 사진작가라고 보태지 않은 건, 그의 사진이 영화감독 박찬욱의 시선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 공개된 30여 점의 대부분은 2013년부터 2017년 사이에 찍은 것들이다. 영화 <스토커>의 후반 작업을 위해 LA에 머물던 당시 묵은 호텔의 소파부터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발견한 접힌 파라솔의 군집, 파주 길가에서 우연히 만난 고양이, 그리고 외조모의 묘까지, 그의 지극히 사적인 시선의 궤적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이 많은 작품 속에 인물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 대부분이 사물 혹은 풍경이다.  

 

 

박찬욱, ‘Face 107’, 2013, Digital C-print, 80×8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전부터 부지런히 셔터를 눌러온 박찬욱에게 사진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자 해방구다. 여행을 즐기지 않는 그는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타지로 떠날 때, 어떻게든 즐기기 위해 사진을 더 열심히 찍는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사진가로서 박찬욱의 작업 스타일은 영화를 찍을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카메라를 메고 음악을 들으며 길을 걷다 보면 피사체를 만나게 되는 찰나의 순간이 와요. 그럼 아무 생각 없이 일단 찍어요.” 정교하고 치밀한 계산 아래 연출한 장면을 화면에 담는 그의 영화와 달리 사진은 우연에 기댄다. 물론 보다 흥미로운 앵글을 찾아 여러 각도에서 찍어보거나, 컬러 버전과 흑백 버전을 모두 촬영하거나, 좋은 빛을 위해 잠시 기다렸다 프레임에 담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시작은 익숙한 대상이 문득 낯설게 보이는, 피사체가 그에게 말을 건네는 순간이다. “표정은 보통 감정이 있는 생물에게서 발견하잖아요. 그런데 가끔 사물, 풍경 등 무생물에게서 감정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교감의 순간이죠. 대상과 나만 존재해 1:1로 대화를 나누는 느낌. 전시명을 ‘너의 표정’으로 지은 이유는 그런 교류의 순간을 강조하기 위해서예요.” 물론 피사체마다 화법은 다르다. 형태로 말을 건네기도 하고 색감으로 대화를 시작할 때도 있다. 때론 질감이 화두가 되기도 한다. 형태가 됐건, 색감이나 질감이 됐건 박찬욱은 자신을 매료시킨 요소는 프레임에 온전히 살려 담지만 그 이상의 의도는 배제한다. 관람객과 피사체 간에 교감의 여지를 남겨놓기 위함일 터이다. 관람자가 대상과 교류하며 느끼는 감정은 자신과 피사체 사이의 것과는 분명 다를 테니. 

 

 

박찬욱, ‘Face 45’, 2015, Archival pigment print, 111×111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기자간담회 말미, 박찬욱은 포토타임을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었다. 드디어 그의 온전한 얼굴을 보았다. 엷은 미소를 띤 듯 아닌 듯한 표정에는 여전히 분명한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지점에서 그렇게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딘지 홀가분하고 편안해 보였다. 같은 자리에 있던 다른 이들은 의견이 조금 다를 수도 있겠다. 그의 작품 속 피사체의 표정을 읽는 법과 느끼는 바가 모두 다르듯이. 그러나 내게 말을 걸어온 그의 표정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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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안주영(인물 사진),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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