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시간의 대비가 빛나는 집

건축과 디자인에 조예가 깊은 부부. 집을 직접 짓겠다는 꿈을 간직했던 그들이 알프스와 지중해 문화가 혼재된 이탈리아 북부 메라노에서 120년 된 고택을 만나 이상적인 보금자리를 완성했다.

2021.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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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건축물의 특징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현관 응접실. 가구와 소품을 모던 디자인으로 선택해 시간의 대비가 돋보이는 스타일을 연출했다. 대형 오벌 테이블은 에를라허(Erlacher) 컴퍼니 제작, 의자와 테이블 위에 놓인 화병은 레벤스라움 홈 인테리어, 거울은 밀라노에 있는 페넬로페 인테르니 제품.  

 

아치 천장과 아치와 아치가 교차하는 기둥 그리고 목조 계단은 19세기 말 이 집이 지어질 당시 구조 그대로 보존되었다. 계단 옆에 놓인 패브릭 오토만 ‘파나마 볼드(Panama Bold)’는 박스터 제품으로 파올라 나보네 디자인, 라운드 모티프 카펫은 씨씨타피스(CC-tapis) 제품.    

 

 

맑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돌로미티산맥이 펼쳐진 이탈리아 북부 소도시 메라노(Merano). 오스트리아 접경지대에 자리한 이곳은 알프스 절경을 품은 남부 티롤에 속하는 동시에 이탈리아 지중해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도시로 오랜 시간 세계인의 이상적인 휴양지로 사랑받는 명소 중 하나다. 깨끗한 공기와 맑은 물, 빙하에 의해 형성된 이탈리아 최대 규모의 가르다(Garda) 호수 풍경에 매혹되고 계절에 따라 등산과 스키를 즐기며 자연과 하나 되는 생활을 누릴 수 있는 메라노는 도시 자체가 힐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래서일까,  이곳에 머물러본 사람이라면 실제 그들이 느끼는 감동은 어느 정도일까 궁금해지곤 한다. 

 

 

하이엔드 주거 및 호텔 인테리어를 전문으로 오랜 경력을 쌓은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어머니 에디트 카페러(Edith Kapferer)와 딸 카롤리네 딜리츠(Karoline Dilitz)는 오래된 저택을 함께 개조했다. 

 

아치 창문의 형태에서 영감을 받아 여럿이 둘러앉을 수 있는 원형 소파를 배치해 라운지 스타일로 완성한 거실. CH 컬렉션 소파와 얍(JAB) 카펫, 아이히홀츠(Eichholtz) 샹들리에는 모두 모녀가 일하는 레벤스라움 홈 인테리어에서 소개하는 제품이다. 

 


“이곳에서 생활하다 보면 삶의 질이 높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매일 깨닫게 됩니다. 우리 가족이 여기서 살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해요.” 메라노 인근에서 아버지가 설립한 스파 호텔을 운영하는 카롤리네 딜리츠(Karoline Dilitz)는 직업적인 특성상 메라노를 떠날 수도 없었지만, 결혼 후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아름다운 환경에 둘러싸여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새삼 느끼며 산다고. 덕분에 이곳에서의 만족스러운 생활은 건축과 디자인에 조예가 깊은 남편 지몬 감퍼(Simon Gamper)가 집에 대한 꿈을 꾸는 계기도 되었다. “의사지만 건축과 디자인에 남다른 열정을 지닌 남편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반영해 직접 집을 짓겠다는 의지가 대단했어요.” 

 

 

전통과 현대의 대비가 확연하게 드러나도록 디자인한 주방. 집주인은 극강의 미니멀한 스타일에 실용성을 더한 주방 가구 브랜드 불탑(Bulthaup)의 ‘b2’ 시리즈 수납장과 조리대를 선택했다. 벽면에 설치한 조명은 옛 아이스크림 가게 간판을 재활용한 것.

 

오래된 저택의 운치를 느낄 수 있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는 주방 내 다이닝룸. 두 자녀의 공부방이 되기도 한다. 

 

창문을 비롯해 출입구 문과 문선 모두 옛 모습을 간직한 가운데 미니멀한 스테인리스 스틸 조리대가 놓인 주방. 정원으로 바로 드나들 수 있는 출입구가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지몬의 소망은 이제 굳이 이룰 필요 없는 꿈으로 남았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번도 이사를 계획한 적 없던 부부에게 어느 날 아파트를 빌려주겠다는 제안이 왔고, 호기심에 집을 구경하러 갔을 때 부부에게 뜻하지 않은 사건이 벌어졌다. “무려 5m 높이의 천장이 선사하는 웅장한 고전미에 우리 부부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시에 그 집과 사랑에 빠졌어요.” 카롤리네와 지몬이 한눈에 반한 아파트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치가이자 독일 의회 의원이었던 아르만트 프라이헤어 폰 둠라이허(Armand Freiherr von Dumreicher)가 1899년 자신의 아내를 위해 지은 건축물로 그 규모는 성에 비견할 만큼 거대하다. 각 공간마다 발코니가 있고 건물과 건물을 이어주는 타워가 있는 데다 너른 정원으로 둘러싸인 모습은 실제 고전 양식을 지닌 성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 현재 6가구로 구성된 대형 평형의 고급 아파트로 변신한 아파트에서 카롤리네 가족은 비교적 큰 면적에 속하는 600m² 복층 구조의 집을 소개받았다. 1층에는 다이닝룸을 겸할 수 있는 거대한 홀과 마스터 리빙룸을 비롯해 주방, 거실, 두 아들의 놀이방 그리고 게스트룸과 욕실이 자리하고,  2층에는 침실 3개와 욕실 2개가 있어 네 식구가 한 집에서 다채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데 한 치의 모자람도 없는 조건이었다. 다만 인테리어는 집이 완공된 100년 전의 양식을 간직하고 있었기에 현대에 맞게 개조해야 할 부분이 많았지만 카롤리네와 남편은 리노베이션에 대해서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특히 카롤리네는 오랜 시간 럭셔리 호텔과 레지던스 등에 특화된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자신의 어머니인 에디트 카페러(Edith Kapferer)의 영향을 받아 공간 개조하는 일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 또한 호텔 경영자로서 인테리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머릿속에 그린 그림을 현실로 옮기는 방법을 수차례 경험했기에 오히려 가족이 살 집을 직접 개조한다는 점이 그녀에겐 흥미진진한 이벤트였다. “어머니를 통해 인테리어를 알게 되었지만, 저희 모녀의 개인적인 취향은 서로 다릅니다. 하지만 공동으로 인테리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최적의 스타일을 도출하는 데 있어서는 환상의 콤비를 이루죠. 이 집도 어머니의 도움을 많이 받았답니다.” 카롤리네와 어머니 그리고 남편 지몬이 이 집을 보고 설정한 인테리어 스타일은 고전 건축미와 현대적인 가구의 대비였다. 19세기 말 건축 양식을 보존한 가운데 실용적인 모던 가구를 매치해 올드&뉴(Old&New)의 매력을 편리하고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 따라서 리노베이션은 최소한의 개조 및 개선을 하는 방향으로 이뤄졌고 이는 전문가의 손길을 통해 전통이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이뤄졌다. 

 

 

풍부한 채광과 정원 풍경을 즐길 수 있는 부부 침실은 20년 전 남편이 비엔나에 있을 때 구입한 침대와 사진 작품만 들여놓았다. 천장 조명 ‘피어스(Pirce)’는 아르테미데, 리넨 침구는 자비네 슈티글러(Sabine Stiegler) 컬렉션으로 레벤스라움 홈 인테리어를 통해 제작했다.

 


“제가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창문이에요. 주방과 다이닝룸은 형형색색의 부첸(Butzen) 유리창 덕분에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공간이지만, 채광 조건이 좋지 않아 어둡고 칙칙했기에 개선이 시급했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와 유사해 보이는 부첸 창문은 중세 시대부터 부르주아의 저택과 건물에 널리 사용되던 것으로, 유리 조각을 일일이 입으로 불어 만든 정교한 디자인이 백미. 카롤리네는 창문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호텔 작업을 하며 인연을 맺은 조명 디자이너 플로리안 라두르너(Florian Ladurner)를 섭외했고, 전문가의 손길을 통해 자연광과 인공 조명을 섬세하게 조합해 창문과 공간을 화려하게 부활시켰다. “전통을 살리는 정교한 작업은 전문가가 맡아줬고 저와 어머니는 벽면 색상 선택, 컨템퍼러리 디자인 가구와 소품을 물색하고 제작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공간 규모와 인테리어 결과를 보면 족히 일 년은 걸렸을 법한 작업.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완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2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평소 인테리어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던 카롤리네는 매년 파리에서 열리는 메종&오브제 같은 리빙, 아트페어를 꾸준히 방문하고 비엔나, 밀라노 등지에서 빈티지 가구와 소품, 아트워크를 수집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소회한다. “다만 예전에 사뒀던 가구나 소품을 다 기억하긴 어려웠던 터라 하나하나 천천히 꺼내면서 필요한 것을 추렸고, 그 와중에 잊고 있던 존재를 우연히 발견하면서 계획과 달리 새로운 스타일도 시도할 수 있었지요.” 

 

 

건축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남편이 좋아하는 취미 공간. 당구대는 실제 이 집 창고에 있던 것을 되살리고, 빈티지 조명과 소품 등을 매치해 클래식한 분위기가 돋보이게 꾸몄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어머니의 훈수는 이 집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결정적 요인이 되기도 했다. “거실의 경우 점찍어둔 오버사이즈 소파가 있었는데, 편안하지 않아 무척 망설였어요. 하지만 그 소파가 거실 공간과 딱 맞아떨어지는 광경을 본 순간 이전의 고민은 눈 녹듯 사라졌죠. 대신 가구와 소품이 들어오고도 높은 천장과 넓은 면적 때문에 허전한 공간은 어찌 메울 수 있을까 새로운 문제점이 나타났죠. 이때 엄마께서 대형 야자수를 제안했어요. 솔직히 야자수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엄마의 아이디어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 깨닫고 있습니다. 특히 창가에 자리한 야자수가 아예 없다고 가정한다면 마치 옷을 벗고 창문 앞에 선 느낌이랄까요?” 가족의 손길과 아이디어가 닿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진심을 다해 개조한 집이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 애정을 갖는 공간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카롤리네는 어머니와 함께 심혈을 기울여 찾은 주방 가구로 꾸민 부엌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주방은 우리 가족의 심장과 같은 곳이에요. 저는 요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사용하기도 편리하고 보기에도 멋진 불탑 주방 가구를 들여놓아 만족도가 큽니다. 친구들을 집에 초대했을 때, 웅장한 다이닝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주방에서 함께 무언가를 만들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게 되죠. 아이들 역시 놀이방이 있지만 주로 식탁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숙제를 하는 걸 좋아합니다.” 네 식구 중 남편 지몬만큼 자신의 공간을 충실히 사용하는 경우는 없다. 고택에 버려졌던 당구대를 비롯해 빈티지 가구와 오디오 세트를 들여놓아 마음껏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게 꾸민 ‘젠틀맨스 룸(Gentleman’s room)’은 밤마다 남편과 친구들의 아지트로 애용된다니, 이쯤 되면 남편의 꿈인 집 짓기는 이미 이룬 거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부부 침실 내에 있는 욕실. 세면대가 있는 파우더룸 벽면은 낡은 타일처럼 보이는 벽지로 마감해 오래된 집의 특징을 재치 있게 표현했다.   

 

 
“남편이 집 짓는 열정 이상으로 인테리어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어요. 입주 첫날 직접 그림을 걸겠다고 드릴로 벽에 못을 박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어처구니없게도 메인 전력선을 끊는 사고를 치고 말았죠. 덕분에 이 집에서 맞이한 첫날 저녁 식사는 어둠 속에서 촛불을 켜고 매우 고전적으로 즐겼답니다.” 어느덧 19세기 아파트에서 지낸 지 4년 차, 카롤리네와 지몬 부부의 위시 리스트에는 이사 혹은 건축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금기 사항에 가깝다. “우리 가족은 진심으로 이 집을 사랑해요. 제가 가꾸는 텃밭과 아이들이 즐겨 찾는 트리 하우스가 있는 정원을 포함해 가족의 애정 어린 살림과 취향이 반영된 인테리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성숙하고 완벽한 모습을 갖춰가고 있으니까요.”       

 

STYLLING & PRODUCTION FRANCESCA DAVO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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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이정민PHOTO : FABRIZIO CICCO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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