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감각의 방

다가가기 어렵게 느껴지는 현대미술 작품들 사이에서 직관적인 이미지를 선보이는 우한나 작가. 그의 작품은 삶의 이치와 창작의 근본을 사유하도록 이끈다.

2020.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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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plex’, 내부시점, 혼합재료, 2019, 사진 이의록

 

우한나 작가는 드레스나 장식에 쓰일 법한 패브릭이나 리본 등으로 입체적인 조각을 주로 만든다. 작가의 오브제는 그저 독립된 작품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사를 품은 캐릭터로 만들어지곤 하는데, 작가의 전시에서 이 캐릭터를 중심으로 펼쳐진 드로잉, 회화, 영상 등은 서사의 장치가 되고, 전체는 신화의 주인공이나 사건의 목격자가 등장하는 연극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우한나 작가의 개인전 <물라쥬 멜랑콜리크(Moulage Mélancolique)>(2019.10.16.~11.15, PROJECT SPACE 사루비아다방)에 들어서자마자 빗소리가 들리고 우울한 어느 날이 연상되는 방이 나왔다. 방의 벽 너머에서 진득한 물감이 새어 나오고 있다. 옆방은 그림을 그리는 이의 작업실일까. 그곳으로 가려면 벽을 따라 좁은 복도를 지나야 한다. 복도 한쪽 벽엔 큰 그림이 있다. 건조를 위해 복도에 잠깐 내놓은 작품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작업에 사용한 듯한 페인트통 위에 올려져 있다. 좁은 복도라 그림 전체를 보기는 어렵지만 평소 ‘관람자 시점’에서는 자세히 보이지 않던 덧칠한 물감의 두께, 스프레이의 망점 그리고 캔버스 위에 달린 리본 매듭이 좀 더 세밀하게 보인다. 머뭇거리는 묘사나 주저 없는 자유로운 붓 터치가 자세히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보통 작품을 제작할 때 작가가 서 있었을 거리기도 하다(‘지휘자 시점, 2019’). 옆방 입구에 이르는 벽은 영화 세트처럼 낮게 잘려 있어 이미 슬쩍 안이 보인다. 리드미컬하게 잘린 벽 사이로 다른 세계가 겹쳐진다. 코너를 돌면 펼쳐지는 본격적인 세계에는 작가의 아름다운 취향이 가득 차 있다. 

 

‘지휘자시점’, 캔버스에 페인트, 아크릴, 리본, 2019, 사진 이의록

 

작가는 이 재현을 그저 자신의 욕망이라 표현했지만, 오트 쿠튀르에서 받은 예술적 영감부터 작가의 마음을 끄는 소재의 촉감, 그리고 어떤 질료와 색감으로 표현하고 싶은지, 또 그 창작의 마음이 어떤 일렁임으로 존재하는지까지 작가의 지향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매혹적인 방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실재적이고 현실적인 방에서 코너를 돌아 즐거운 상상의 방으로 진입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방에 있는 드레스를 비롯한 아름다운 작품은 어린 시절부터 작가가 직관적으로 좋다고 느낀 것들, 그리고 무엇이든 그리거나 만들고 싶던 창작 열정이 시작된 순간에 대한 솔직한 고백 같다. 공간을 나누고 있는 벽이자 작품인 ‘듀플렉스(duplex)’는 물리적으로 공간을 분리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분리의 벽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이 둘을 완전히 흑백으로 나누지 않는다. 벽은 상황을 연극적으로 만들지만, 그 이면을 무대 밖으로만 만들지 않고 오히려 입체적으로 연결하는 매개체가 된다. 낮은 벽에 그려진 몽글몽글한 감정들 너머로 저쪽의 뜨거운 욕망이 겹쳐 보이는 섬세한 배치는 이미지가 파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지탱한다는 사실을 확인시킨다. 입장 순간부터 오감을 동원해 장소를 감각하게 만든 이 공간 전체가 전시가 끝나면 사라질 아쉬운 하나의 작품이다. 감상의 동선도 작가의 방 구석구석을 보는 것에 가깝다. 


우한나 작가의 작품에서 재현된 세계나 캐릭터는 다분히 판타지적이지만 현실에서 용도를 다한 물건이 작업의 소재로 사용되며 쓱 들어오기도 한다. 욕망과 상상을 긍정하지만, 그 욕망이 어디에 기인하고 있는지 돌아보며 현실에서 발을 떼지 않는다. 매듭을 짓거나 어딘가에 묶이지 않으면 기능과 미를 실현할 수 없는 것들(리본, 넥타이)과 혼자서는 오롯이 서 있을 수 없는 것들로 작품이 만들어진다(하늘거리는 패브릭, 얇고 긴 막대기). 이들은 무언가에 기대고 서로를 도와야 진짜 가치를 제대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삶의 이치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작가는 무겁게 느껴지는 현대미술 작품들 사이에서 그저 직관적으로 작품을 감상하고자 하는 관객이나 아이들의 호기심도 자극할 수 있는 미감을 구현하며 인간이 예술-창작이라는 것을 왜 하기 시작했는지 생각하게 해준다.

※ 이 글을 쓴 김화용은 미술 작가 겸 문화 기획자이다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展
퍼핏 애니메이션의 거장 퀘이 형제의 초대전. 뉴욕 MoMA와 일본 현대미술관에 이어 서울을 찾은 이번 전시는 ‘도미토리움’이라고 불리는 디오라마 박스 안에서 펼쳐지는 퀘이 형제의 그로테스크하고 몽환적인 작품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일시 6월 27일~10월 4일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
문의 02-6925-2303
 

이교준: 분할分割
미니멀한 기하추상회화를 선보이는 이교준 작가의 개인전. 이번 전시에서는 '평면'과 '분할'이란 화두에 집중해 작가가 1990년대 후반부터 제작한 납, 알루미늄 작업을 비롯해 2000년대 초반 공간 분할을 바탕으로 한 기하학적 평면 회화 작품을 
모아 소개한다.
일시 7월 18일까지
장소 피비갤러리
문의 02-6263-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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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더네이버>편집부PHOTO : 우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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