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LG아트센터 초연 사진 by 우종덕 JDWoo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 왕>은 늙은 왕 리어가 은퇴를 앞두고 세 딸에게 영토를 분할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효심의 크기만큼 땅을 나눠주겠다는 리어의 말에, 큰딸과 둘째 딸은 감언이설로 각자의 몫을 챙긴다. 하지만 막내 코델리아는 이를 거부하다 리어의 노여움을 사 지참금 한 푼 없이 이웃 프랑스 왕에게 시집가게 된다. 한편 권좌에서 물러나 편안한 여생을 보내려 했던 리어의 노후 계획은, 그러나 믿었던 두 딸에 의해 무너진다. 계획과 함께 심신도 무너진 리어는 분별력을 잃는다. 아니, 비로소 분별력을 되찾는다. 

“눈이 없더라도 이 세상 돌아가는 것쯤을 볼 수 있다. 귀로 보는 거다. 저기 재판장이 좀도둑에게 불호령하는 꼴을 봐라. 귀로 들어봐라. 두 사람의 자리를 바꾸면, 누가 재판관이고 누가 좀도둑인지 가려낼 수 있겠느냐? 농부의 개가 거지를 보고 짖는 걸 본 일이 있지? 그 인간은 개를 보고 달아나고. 그게 권력의 실상이다. 지체 높은 집의 개한테는 인간도 복종한다.”

그는 권력의 속성을 각성하고, 지난날의 오만을 반성한다. 그러나 깨달음은 언제나 늦는 법. 광야에 버려진 리어를 구하려 코델리아는 언니들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직접 전쟁에 나선다. 그런데 여기서 셰익스피어는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린다. 정의의 승리와 원상회복을 바라는 독자들의 바람과 달리, 셰익스피어는 코델리아와 리어의 죽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셰익스피어가 원작을 내놓은 지 75년이 지난 1681년, 영국의 시인 네이엄 테이트는 <리어 왕>을 고쳐 썼다. 때는 왕정 복고기였다. 테이트는 원작의 결론인 왕가의 몰락이 탐탁지 않았던지, 작품을 대대적으로 개작했다. 테이트는 리어와 코델리아가 왕권을 되찾는 권선징악의 동화 같은 이야기로 결말을 바꿨다. 이러한 결말은 당시의 관객, 특히 왕가의 사랑을 받으며 이후 150년 동안 공연되었다. 

이번에 공연되는 <리어외전>은 21세기 한국판이다. 각색과 연출을 맡은 고선웅은 이 작품에 ‘무장르 오락비극’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말 그대로 여러 장르가 혼종된, 희극과 비극을 오가는 작품이다. 실제로 <리어외전>의 인물들에게서 왕가의 권위나 위엄은 찾아보기 어렵다. 나중에 모든 것을 잃게 된 리어는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데, 어쩌면 리어카가 이 작품의 시작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리어카를 끌던 리어는 유기노인수용소에 수용되고, 코델리아가 시집가지 못한 채 삯바느질로 연명하는 등, 고선웅은 주인공들에게 셰익스피어보다 훨씬 가혹한 시련을 준다. 그러나 결말을 놓고 보면, <리어외전>은 셰익스피어와 테이트 둘 중 테이트의 결말을 따른다. <리어외전>에서는 각성한 리어가 왕권을 되찾아 코델리아에게 물려준다. 

무엇보다 이 공연의 특징은 원작의 엄숙한 색채를 지우고, 이를 재기발랄하게 채색한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작품은 이것이 연극(허구)이고, 배우들은 자신들이 연기한다는 사실을 시종일관 각인시킨다. 제작비 때문인지, 코러스장은 능청스레 “배우 수를 줄였다”라고 말하고, 배역이 없는 코러스들은 호시탐탐 배역을 노린다. 그동안의 <리어 왕> 공연 중 가장 유쾌한 작품을 꼽으라면 <리어외전>을 제일 앞자리에 놓아야 할 것이다. 
※ 이 글을 쓴 김일송은 공연 칼럼니스트이다.
Cooperation 극공작소 마방진 

오프닝
국립현대무용단의 2020년 첫 공연. 인간과 기술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신창호 안무가의 신작 ‘비욘드 블랙’과 국립현대무용단의 대표 레퍼토리 안성수 안무가의 ‘봄의 제전’이 동시에 진행되는 더블빌 형식으로 구성된다. 원시의 제전부터 인공지능에 대한 질문에 이르기까지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그릴 예정이다. 
일시 4월 17일~19일
장소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문의 02-3472-1420

사운드 오브 뮤직
오랜 시간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아온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이 다시 무대에 오른다. ‘에델바이스’를 비롯해 ‘도레미송’, ‘내가 좋아하는 것들’ 등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사운드 오브 뮤직>의 넘버를 생생하게 감상할 기회다. 이번 공연의 제작은 서울시뮤지컬단이 맡았다.
일시 4월 28일~5월 17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문의 02-399-1772~4 

더네이버, 공연, 리어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