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사랑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우리가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경험하는 수많은 감정 중 가장 강렬한 것은 사랑이 아닐까. 어떠한 판단 체계로도 선명하게 규정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보고, 해석하고, 표현하는 이들을 만났다. 풋풋한 사랑의 시작부터 농밀한 사랑의 지속까지, 사랑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

2020.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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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시작되는 지점에 대하여
한지인 PD작년

이맘때쯤 하루에 한 번 이상 어디선가 들려오던 장범준의 ‘노래방에서’의 가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사랑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연구했지.’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던 두 사람이 마침내 서로를 마주 보게 되는 지점, 그리고 그곳에 도달할 방법을 연구한 것이 비단 장범준뿐일까. 20대 초반, 영어 학원에서 만난 그에게 숙제를 핑계로 메시지를 보내고 답장으로 마음을 추측하던 과거의 내가 그랬고, 상대방의 미세한 표정 변화에도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떠올리며 밤잠 설치는 지금의 누군가가 그럴 것이다. ‘노래방에서’가 전국을 강타하기 두 해 전, 모두가 궁금해하는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던져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하트시그널>이 처음 방영됐다. 사랑이 시작되는 과정을 전지적 시점으로 바라보고 패널들이 나름대로 분석을 펼치던 이 프로그램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지금은 시즌 3 방영을 목전에 두고 있다. 사랑을 시작하기 좋은 3월 초입의 어느 날, <하트시그널> 시즌 3의 막바지 편집에 한창이던 한지인 PD를 만났다. 


“<하트시그널> 시리즈를 처음 기획한 이진민, 박경식 선배님과 이런 대화를 나눈 적 있어요. 웹툰 <좋아하면 울리는>처럼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알아챌 수 있는 예능을 만들면 재밌겠다고. 그게 <하트시그널> 시리즈의 시작이었어요.” 시리즈의 기획부터 참여해 시즌 1, 2의 조연출을 거쳐 시즌 3의 연출로 자리매김한 한지인 PD. 그녀가 타자의 사랑이 이뤄지는 과정을 지켜본 지 벌써 4년째다. 그 누구도 명쾌하게 답할 수 없는 사랑이 시작되는 지점, 그녀는 어디라고 생각할지 궁금해졌다. “<하트시그널>을 촬영하고 편집하며, 그리고 출연자를 인터뷰하며 느낀 건 사랑이 탄생하는 지점은 명확하지 않고 아주 미묘하다는 것이었어요. 예를 들면 밥을 먹을 때 나에게 무언가를 더 챙겨준다거나 방에서 나오며 나를 보고 웃었다거나, 이런 사소한 것들이 쌓이며 출연자들의 감정이 커지더라고요.”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그녀가 출연자들을 지켜보며 깨달은 건 사랑의 탄생은 빅뱅과 같은 폭발보다는 축적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사랑이 시작되는 과정을 전지적 시점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프로그램 <하트시그널>. 시즌 3 방영을 앞두고 있다.  


물론 한지인 PD가 그동안 지켜본 것은 사랑의 성공만이 아니다. 제한된 공간에서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실패한 사랑도 있었다. “시즌 1 초반부터 견고한 러브 라인을 형성했지만 끝내 이뤄지지 못한 한 커플의 엇갈렸던 식사 자리가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간의 오해와 자존심,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속내가 얽혀 결국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고 끝나버렸죠. 누구 한 명이 딱 한 번만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했으면 되는 일인데. 안타까웠어요.” 시즌 2에서도 모두가 커플이 될 것이라 예측했지만 어긋나버린 경우도 있었다.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나와 잘 맞겠구나 싶은 사람이 있지만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마음이 이끄는 선택을 할 때가 있잖아요. 시즌 2에서 한 출연자의 선택이 대표적인 경우가 아닐까 생각해요.” 모두가 시즌 2의 마지막 회를 보고 개연성 없는 선택이라 말했지만, 과연 사랑에 있어서 개연성은 애초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을 나는 신형철 평론가의 저서 <정확한 사랑의 실험>의 문장들로 대신하고 싶다. ‘사랑은 매번 개별적인 사례로 존재한다. 그래서 ‘사랑은 무엇이다’라고 말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며 다만 ‘무엇도 사랑이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랑은 유일하기에 일반화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이 이뤄지는 지점을 매번 예측해보지만 때론 성공하고, 때론 실패한다. 처음 마주한 낯선 길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지인 PD는 자신 앞에 놓인 미지의 길을 걸어볼 것을 권한다. “‘모든 존재는 관계의 산물이다’라는 말을 좋아해요. 그리고 사랑은 관계의 정점이죠. 누군가에게 쏟아부은 감정, 넘칠 정도로 받은 애정, 순간의 쾌감과 상처 모두 ‘나’라는 사람을 이루는 요소가 된다고 생각해요. 서로가 서로에게 온전히 빠져든 그때,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각 객체는 더욱 풍성해지고 성숙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아름다워지죠. 문학이든 음악이든 드라마든 많은 매체에서 사랑을 소재로 삼는 건 누군가가 가장 빛나는 순간은 사랑하는 순간이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농밀한 사랑의 교류에 대하여
김민조 작가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우리는 사랑일까>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누구와 사귈 때, 사람만 달랑 올 수가 없다. – 어린 시절부터 축적된 문화가 따라오고, 관계를 맺은 사람들과 관습이 따라온다.’ 나와 다른 타인을 사랑한다는 건 한 사람의 전 생애를 떠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완결되지 않고 가변적이다. 매 순간 얼굴을 달리하는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서로의 생애를 다양한 형태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전하고 받아들인다. 가벼운 대화를 하거나, 함께 밥을 먹거나, 취미를 공유하는 등의 방식으로. 그중 섹스는 가장 은밀하고 농밀한 사랑의 교류 형식일 것이다.


민조킹이라는 작가명으로 알려진 김민조 작가는 연인 간의 은밀하고 농밀한 교류의 순간을 일러스트로 기록한다. 시작은 회사를 다니며 틈틈이 그린 일러스트를 SNS에 업로드하는 것이었지만 금세 많은 팬들을 끌어모았고, 지금은 전업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한다. 본격적으로 일러스트를 그리며 살아온 몇 년 동안 그녀는 두어 권의 책을 내고 웹툰을 연재하고 개인전도 열었다. 성인용품 브랜드 텐가, 패션 브랜드 로우클래식과 컬래버레이션도 진행했다. 성(性)적 코드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건 보수적인 국내에서는 모험에 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세상의 눈치에 기죽기보단 계속해서 작업 안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담아낸다. 


“최근 몇 년간 작업을 통해 지속적으로 제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욕망을 해소하기 위한 성관계가 아닌 사랑을 기반으로 하는 관계의 모습이에요. 첫 개인전 <The Moments We Loved(둘만의 방)> 때 말하고 싶었던 것도, 웹툰 <쉘 위 카마수트라>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것도 섹스는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함께 즐기는 은밀한 순간이라는 점이었어요.” 김민조 작가는 성과 관련해서 늘 수동적인 존재로 그려졌던 여성들을 대변해 여성도 섹스를 좋아할 수 있고, 즐길 권리가 있다고 외친다. 섹스란 어느 한쪽의 욕망을 채우는 일방적인 행위가 아닌 두 사람의 마음이 오고 가는 상호작용이기에. 


수많은 사랑의 교류 방식 중 육체적 교류, 특히 섹스는 대개 마지막 단계에 놓인다. 그리고 그 행위의 유무는 관계의 깊이를 짐작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기도 한다. 이는 섹스란 단어조차 입 밖으로 쉽게 꺼내지 못하지만, 이 행위에는 다른 사랑의 교류법과 구분되는 특별한 지점이 있다는 사실에 모두 암묵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에 대해 김민조 작가는 말했다. “섹스는 사회적 지위나 잣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상태에서 좀 더 원초적이고 본능적으로 상대방에게 집중할 수 있는 사랑의 교류 방식이라 생각해요. 꾸밈없는 모습으로 상대방과 마주하고, 살을 맞댄 채 체온과 타액을 나누는 과정에서 두 사람만의 작은 세계가 만들어져요. 그리고 그 안에서 은밀한 비밀을 공유하게 되죠. 이 과정은 연인 간에 깊은 유대감과 끈끈한 결속력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섹스가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에 있어서 모든 걸 해결해주는 만병통치약이라 말하는 건 아니다. 그녀는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노력이 수반되며 성적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라 첨언했다. 

김민조 작가는 사랑을 기반으로 하는 남녀간 육체적 관계의 모습을 작품에 담아낸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김민조 작가는 10년 넘게 한 사람의 생애를 힘껏 끌어안고 있다. 그녀 역시 여느 오래된 연인처럼 위기와 극복, 그리고 더욱 돈독해지는 과정을 무수히 반복했고, 앞으로도 반복할 것이다. 그래도 김민조 작가는 사랑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고 말한다. “사랑은 누군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기도 하죠. 긍정적인 변화일 수도, 부정적인 변화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저는 사랑을 하며 제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할 정도로 충만한 삶을 살고 있어요. 물론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어떤 모습인지 모르기 때문에 두렵기도 해요. 하지만 무엇이든 함께 나눌 누군가가 내 옆에 있다는 사실 덕분에 혼자일 때 느낀 불안감을 더는 갖지 않아요. 그리고 사랑에 실패하더라도 분명히 얻는 것이 있어요. 사랑은 좋은 거예요” 이제 막 시작하는 연인에게도, 오래된 연인에게도 사랑은 미지의 세계고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을 해야 할 이유는 이 세상에 차고 넘친다. 그녀의 말처럼 일단 사랑은 좋은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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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양헤연PHOTO : 임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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