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그 시절 그 오빠들

우리에게는 컬렉션만큼이나 피날레를 기다리게 만든 오빠들이 있었다.

2020.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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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형적인 ‘라떼는 말이야’ 형식의 기사가 될지도 모르겠다. 과거 패션 신의 황금기를 이끌던 주역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하기 때문이다. 에디터의 기억 속 2000년대는 지금보다는 좀 더 향기로운 시절이었다. 

 

 

지금은 몇몇 하우스를 통해 간신히 명맥을 이어가는 오트 쿠튀르가 당시에는 가장 호화로운 이벤트였고, 디자이너들은 소비자의 입맛을 좇기보다 최전선에서 트렌드를 이끄는 선구자를 자임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선구자들 속에 우리의 팬심을 자극하는 ‘오빠'들이 있었다.

 

 

 

런웨이 위의 악동, 알렉산더 매퀸
알렉산더 매퀸은 ‘천재 디자이너’라는 수식어가 모자랄 정도로 독보적인 크리에이터였다. 어린 시절부터 신동으로서 두각을 나타냈으나 그는 맘껏 재능을 키우기 힘든 환경에서 성장했다. 하지만 타고난 재능과 탄탄한 기본기를 겸비한 그가 패션계의 총아로 등극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7세의 어린 나이에 지방시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꿰찬 것이다. 지방시에서의 큰 활약은 없었으나, 이후 리카르도 티시로부터 현재의 클레어 웨이트 켈러로 이어지고 있는 하우스의 정체성를 구축하는데 중요한 밑거름을 쌓았다. 지방시와 결별한 후 매퀸은 커리어의 정점을 찍는 컬렉션들을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한다. 영국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추’의 미학을 선보인 2001년 쇼부터 유연한 드레스를 입은 케이트 모스를 홀로그램으로 투영한 2006 F/W 컬렉션까지, 그의 패션쇼는 단순한 런웨이 이상의 위대한 ‘쇼’였다. 매퀸은 쇼가 끝날 때쯤이면 항상 헐렁한 데님 팬츠에 셔츠를 걸친 순박한 차림으로 런웨이에 등장했는데, 천진한 모습과 달리 독창적인 무대는 관객의 혼을 쏙 뺄 정도로 경탄을 자아냈다. 2009년 S/S 쇼에서는 토끼 탈을 쓰고 깜짝 등장해 관객을 웃음짓게 했던 유쾌한 그였지만 2010년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으며, 이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로만 우리 곁에 남아 있다.

 

 

관능의 미학을 팔다, 톰 포드
탁월한 비즈니스 감각, 매력적인 외모, 그리고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만능적인 면모까지. 톰 포드는 전능해 보였다. 하지만 그 화려함 뒤에는 완벽주의적인 기질과 수많은 노력이 숨어 있었다. 지독할 정도로 완벽을 추구하는 그는 헤어스타일부터 수염의 농도, 심지어 슈트 재킷의 소맷단과 셔츠 커프의 폭까지 신경 써서 모델보다 더 견고한 자태로 피날레를 장식하곤 했다. 이러한 성향은 커리어 영역에서도 예외가 없다. 브랜드의 립스틱 케이스 하나까지 그의 손을 거친 것은 그가 구축한 톰 포드 왕국의 이미지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법이 없다. 그의 커리어에 대해 논할 때 구찌 시절을 절대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1990년 말, 경영난을 겪던 구찌의 여성 컬렉션 디렉터 자리를 맡은 톰 포드는 다소 보수적인 하우스와는 반대로 젊고 도발적인 이미지를 구축해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이후 하우스의 신뢰를 얻은 그는 남성 컬렉션까지 도맡으며 전성기를 구가한다. 그 후 이브 생 로랑의 디렉터를 거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레이블을 세상에 내놓으며 시작된 제2의 전성기를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 외설과 우아함 사이를 능란하게 오가며 언제나 파격적인 비주얼로 대중을 자극하는 톰 포드. 그가 구찌를 떠난지 벌써  20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섹시하고 완벽한 모습으로 본인 컬렉션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그는 여전히 한창이다. 

 

 

세계를 정복한 파워 숄더, 크리스토프 드카르냉
발맹이 국내에서 꽤 친숙한 브랜드로 자리 잡는 데 크리스토프 드카르냉이 최고의 공신이라는 의견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피에르 발맹 사망 이후 계속 하락세를 그리던 하우스에 2005년 합류한 그는 오트 쿠튀르의 전성기를 이끌어온 발맹의 유산과 동시대적 문화를 결합해 신선한 레디투웨어 컬렉션을 선보인다. 본격적인 활약은 파워 숄더 실루엣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시작된다. 넓고 높게 솟은 어깨 실루엣의 일명 ‘파워 숄더’는 순식간에 전 세계를 사로잡는다. 물론 그전에도 파워 숄더의 흔적은 존재했다. 하지만 크리스토프가 그린 파워 숄더는 그만의 정교한 ‘록 시크’ 무드와 맞물리면서 폭발적인 시너지를 이끌어냈다. 메가트렌드의 부재로 밋밋한 시즌이 이어지던 당시, 바이크 재킷, 파워 숄더 재킷 등 그가 내놓은 아이템마다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면서 발맹의 새로운 부흥기를 견인했다. 그 역시 록 시크 무드가 충만한 디스트로이드 진과 바이커 재킷을 즐겨 입곤 했는데, 모델 못지않은 프로포션으로 마치 발맹 쇼의 피날레 모델처럼 보였다. 건강상 이유로 갑작스레 패션계를 떠났지만 아직도 많은 팬들은 그의 컴백을 염원하고 있다.

 

 

세상에서 옷을 가장 잘입는 남자, 스테파노 필라티
밀레니얼 세대와 달리 기성세대에게 ‘생로랑’은 여전히 낯설다. 과거 스테파노 필라티가 그려온 이브 생 로랑은 지금의 생로랑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에디 슬리먼의 컬렉션을 시작으로 생로랑은 옷에 몸을 맞춰야 하는 가혹한 실루엣과 젊은 세대의 입맛에 맞춘 요란한 무드로 기존 고객을 낙담에 빠지게 했다. 물론 두 번의 디렉터 교체를 통해 현재 생로랑은 새로운 고객층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가끔 스테파노 필라티의 우아한 드레스가 그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선임 톰 포드와 함께 시작된 이브 생 로랑에서 그의 경력은 처음부터 순조로웠다. 기존 하우스의 유산을 바탕으로 관능적인 무드와 우아함의 적정선을 정확하게 짚어낸 그의 컬렉션은 언제나 충성 고객을 흡족하게 했다. 또한 그는 ‘세상에서 옷을 가장 잘 입는 남자’라고 불릴 정도로 패셔니스타적인 면모로 유명했다. 슈트에 뉴발란스 스니커즈를 매치하거나, 네이비 재킷에 카키 치노 팬츠를 더하는 등 피날레에 등장하는 그의 센스 넘치는 스타일은 본 쇼만큼이나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한동안 두문불출하던 그는 최근 랜덤 아이덴티티 컬렉션을 선보이며 새로운 전성기의 막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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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김재경PHOTO : 윤한제(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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