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사물의 표면 너머

사소한 사물을 갤러리 안으로 끌어들이는 조혜진 작가. 그녀의 사물에 대한 관심은 사실 그 너머의 사물을 만드는 사람들에게서 비롯된다.

2020.03.09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

<우산으로 열대식물을 만드는 간단한 방법>(파라솔, 지관, 파라솔 받침대, 2015, 사진: 김혜원, 작가 제공)<페트병 야자나무 줄기>(맥주 페트병, 철제 프레임, 2015, 사진: 김혜원, 작가 제공)

 

조혜진 작가의 개인전 <한시적 열대 (케이크갤러리, 서울, 2015)>에서 본래의 쓰임을 다한 플라스틱 페트병과 우산살로 만든 야자나무를 처음 만났다. <우산으로 열대식물을 만드는 간단한 방법>이라고 작품 제목이 붙어 있는데 그 만듦새는 한땀 한땀 너무 꼼꼼하고 정성스러웠다. 야자수는 ‘평화로운 남국에서의 달콤한 휴식’이라는 이미지가 바로 소환되는 열대 휴양지의 대표적 풍경이다. 그렇다고 작가가 그 클리셰를 동어반복처럼 재현한 것은 아니고, 갤러리 공간에 ‘조각’으로 놓인 열대풍 오브제와 열대식물에 관한 흥미진진한 리서치를 함께 보여준다. 열대식물에서 기인한 것들이 작가의 눈에 어떻게 들어오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삶 안에서 시공간을 넘어 어떤 궤적으로 존재해왔는지를 추적한 자료였다.

 

 

<이용 가능한 나무> (수집한 열대식물을 각목으로 조각, 2015, 사진: 김혜원, 작가 제공)

 

외래 어딘가에서 들어온 사물, 형식, 언어 등이 일상에 등장하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일이다. 가까이는 신축 아파트 인테리어에서부터 결혼식장, 호텔, 놀이공원까지 많은 곳에 근원이 어디인지 불분명한 외래종 아이템이 배치되는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니까. 그것들은 우스꽝스럽게 장식 역할을 하기도 하고 유행이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끌다가 수명을 다해 촌스럽고 조악한 것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이런 비균질한 혼종 문화는 세상을 바라보는 현대 미술가들의 다소 냉소적인 시선에 포착되어 작품 소재가 되기 일쑤다. 하지만 조혜진은 우리 주변에 함께해온 열대식물과 그것을 소비해온 우리, 그리고 그 문화의 축적을 표피만 보지 않는다. 하나의 사물에서 시작된 관심, 나아가 그것을 둘러싼 사회 정치적 사건과 중층적 일상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 태도는 생활 문화사를 다시 읽고 작가의 시선에서 재구축하는 겸손한 기록자로서의 미덕을 보여준다. 그리고 진지하다가도 귀엽고 또 촘촘한 기록은 현대미술의 문법이 낯선 이들에게 작가의 고민과 연구 과정을 보여주는 친절한 안내서기도 했다.

 

이 야자수 제작법은 사람들이 SNS 등에 공유한 만드는 과정과 정보를 기반으로 했는데,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도 ‘실용신안’이라는 것이 중요한 근간이 된다. 실용신안은 ‘발명’처럼 고도의 기술까지는 아니고 어떤 물품에 대한 아이디어 ‘고안’ 문서로 그 느슨함만큼이나 특허보다 수명도 짧고 훨씬 단순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특징은 고귀해 보이는 예술 작품과 가장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작품보다 훨씬 일상에 밀착되어 있고 삶의 실질적 양식에 의해 요구된 경우가 대부분이라 시대의 생활상을 진하게 담아낸다. 예술 작품의 숙명은 전시장 안에서 반짝 빛나고 전시 기간이 끝난 후 다른 선택과 호명이 있기 전까지는 쓸모를 발휘하지 못하는 시간을 감내하는 존재다. 그래서 작가들은 종종 무력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하지만 조혜진은 작가의 현재를 자조하기보단 동적으로 살아 있는 상품의 문서를 참조하여 작품을 만들고 조각가로서의 역할 수행에 최선을 다한다. 특히 명을 다한 열대식물을 수집해 만든 <이용 가능한 나무>는 작품이 되어 사물로서 마지막 기능을 연장하고, 고안되었지만 사회적 쓸모와 경제적 논리의 기준에서 탈락한 실패 문서를 작가는 아주 ‘조각적’ 시각으로 읽고 생명을 부여한다.  최근에 열린 <옆에서 본 모양 : 참조의 기술 (d/p, 서울, 2019)> 개인전에서 선보인 작품은 큰 덩어리와 재료, 질감을 고민하면서 조각가로서의 우직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옆에서 본다는 건 사물의 결과물인 평평한 전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제작 과정을 파악하고 제작자의 고민이 담긴 측면, 그 지층을 보는 행위다. 조혜진의 작품은 사물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그 사물보다 사물을 만드는 사람들, 작가와 다르지만, 또 다르지 않은 오늘도 무언가를 골똘히 만드는 자들에 대한 애정에서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공간, 그 장소 : 헤테로토피아
서울의 독립 및 대안 예술 공간의 복합적인 역사와 헤테로토피아에 대한 구찌의 고찰에서 영감을 받아 서로에 대한 이해가 실현되는 ‘다른 공간’을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비전과 세계적인 큐레이터 미리안 
벤 살라의 안목을 엿볼 수 있다. 
일시 3월 12일~6월 15일 
장소 대림미술관
문의 02-720-0667

 

SOUNDMUSEUM: 너의 감정과 기억
디뮤지엄이 2020년 첫 전시를 선보인다. 시각과 청각을 결합해 공감각적 경험을 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전시다. 세계적인 작가 10팀이 사운드 아트와 비주얼 아트를 결합한 사운드 인스톨레이션, 관객 주도형 퍼포먼스, 비주얼 뮤직 등을 선보인다. 
일시 3월 25일부터
장소 디뮤지엄 
문의 070-5097-0020

※ 이 글을 쓴 김화용은 미술작가 겸 문화기획자이다

 

 

 

더네이버, 전시, 조혜진 작가 개인전

CREDIT

EDITOR : <더네이버>편집부PHOTO : 조혜진

아이매거진코리아닷컴, 더네이버, 동방유행
©imagazinekorea.com,
©theneighbor.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