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조선 여인의 여행

여성의 활동이 제한되었던 조선 시대에도 자유를 꿈꾸는 여성들이 있었다. <여성, 오래전 여행을 꿈꾸다>는 조선 시대의 각기 다른 시기와 상황에서 자신만의 여행을 떠난 세 여성의 여행기를 모은 책이다.

202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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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원의 말투를 흉내 내볼까. 삼가 내 삶에 대해 생각해보니 금수로 태어나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다행이고, 오랑캐의 땅에서 태어나지 않고 동방의 문명한 나라에서 태어난 것이 다행이다. 조선 시대에 태어나지 않고, 후대에 태어나 젊을 적 비행기를 타고 돌아다니며 ‘여행작가’로 불릴 만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다. 그리고 옛 여성 여행가들의 글을 읽으며 그때를 떠올려볼 수 있는 것 또한 다행이다. 


이 책에는 네 사람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옛 여인 세 사람의 글을 모은 이는 이화여자대학교 김경미 교수다. 고전 소설을 여성의 시각으로 분석하고 조선 시대 여성의 삶에 관한 자료를 모아 소개하는 작업을 주로 해온 저자는 ‘여행’을 키워드로 여성의 글을 모았다. 여행 자체가 쉽지 않았던 시절, 여자들이 여행하는 것은 얼마나 드문 일이었을까. 조선 시대에는 ‘내외법’이나 부녀자들이 절에 가는 것을 막는 ‘부녀상사금지법’ 같은 법이 있어 여성의 외출과 여행을 제한했으니 더더욱 없을 터다. 그러나 저자는 생각보다 많은 기록이 여성의 여행을 주제로 삼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불려 나온 것이 의유당과 금원, 강릉 김씨다. 셋은 살아간 시대도 조금씩 다르고 신분도 다르다. 1727년에 태어난 의유당 의령 남씨는 신분이 높다. 함흥 판관을 지낸 신대손의 부인이자 정조 비 효의왕후의 이모다. 의유당의 시누이는 혜경궁 홍씨의 숙부인 홍인한의 부인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그의 여행은 화려하다. 군복 입은 기생들을 거느리기도 하고, 악공과 기생들에게 춤추고 노래하라고 시키기도 한다. 


그 때문일까. 그의 여행기는 거침없고 쾌활하다. “좌우의 불빛과 군악이 내 호기를 돕는 듯, 몸이 여섯 마리 말이 끄는 수레에 앉아 대로를 달리는 듯, 뛸 듯이 즐거운 마음으로 오다가 관문에 이르렀다. 내아의 마루 아래서 가마를 내리니 화려한 초롱이 뭇별이 햇빛을 받아 떨어지듯 사라졌다. 심신이 아찔하여 몸이 저절로 대청에 올라 머리를 만져보니 구름머리 꿴 것이 고아 있고 허리를 만지니 치마가 둘러 있었다. 이 몸이 여자임을 분명히 깨닫고 방 안에 들어오니 바느질하고 옷감 짜던 것이 좌우에 놓여 있어 손뼉을 치며 웃었다.” 여자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을 정도로 화려하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놀다 들어와 문득 자신이 여성임을 깨달았을 때도 의유당은 손뼉을 치며 웃는다. 이러한 호쾌함이 <의유당관북유람일기>를 읽는 내내 넘실댄다. 


의유당보다 90년 뒤에 태어난 금원은 가난한 집안의 딸이다. 관기로 생활할 때, ‘시를 잘 쓰는 기녀’로 소문나 의주 부윤을 지낸 김덕희의 소실이 된 뒤에도 여성들의 시 모임인 삼호정시사를 주도하며 꾸준히 글을 썼다. 그는 열네 살 때 남장을 하고 제천, 금강산, 설악산 등을 여행한다. ‘새장에 갇혀 있던 매가 새장을 나와 푸른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것 같고, 천리마가 재갈을 벗어던지고 천리를 내닫는 것’ 같은 해방감이 글에 묻어난다. 특히, 곳곳에 덧붙인 시가 감흥을 더한다. 아쉬운 것은 <호동서락기>가 여행을 다녀온 지 20년이 지나 쓴 글이라 세세한 묘사가 부족하다는 것. 그러나 여행에서 받은 강렬한 느낌은 바래지 않았다. 


강릉 김씨는 금원보다 45년 뒤에 태어났다. 조선 말기에 태어나 해방 이전까지 살았으니 세상이 급변하는 과정을 몸으로 겪었을 터다. 그는 쉰두 살 나이에 남편, 막내딸과 함께 서울 구경에 나선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강릉에서 대관령을 넘어 열흘 가까이 걸어서 서울에 도착한다. 서울 구경을 한 달 조금 못 미치는 기간에 마치고 다시 걸어서 돌아오는 여정이다. 꼼꼼한 그의 시선으로 들여다본 1913년의 서울 풍경은 색다르고 활기차다. 그는 이 여행을 통해 ‘여자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우리나라 2천만 동포의 1천만은 여자인데 여자계가 어두우면 나라 앞길 어이할까. 나도 이 구경 아니하였더라면 세계가 무엇인지 여자계가 무엇인지 동포가 무엇인지 몰랐을 터인데 구경한 효험으로 이것저것 아는 것 어찌 별수 없다 하리요.” 여행이 시야를 트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특히 자신의 세계를 넓히고 싶다는 열망으로 떨쳐 나서는 이들은 원하던 것을 모두 얻었다. 
※ 이 글을 쓴 박사는 북 칼럼니스트이다.  

 

 

화가의 출세작 
거장으로 추앙받는 화가 18명의 운명을 바꾼 작품들을 소개한 책이다. 밀레, 뭉크, 쇠라 등 이제는 누구나 알지만 당시에는 이름 없는 화가였던 이들에게 눈부신 명성과 화려한 성공을 안겨준 결정적 작품이 탄생한 순간을 한 권의 책에 담아냈다. 펴낸 이 이유리 펴낸 곳 서해문집

 

세계의 끝 바다의 맛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메종 드 히미코> 등을 만든 영화감독 이누도 잇신의 첫 소설. 주인공인 카몬의 시선을 따라 하나의 연극이 무대에 오르까지 긴 여정을 보여주며 각자의 인생에서 열연하는 이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펴낸 이 이누도 잇신 펴낸 곳 달의시간

 

 

 

 

더네이버, 북, 여성, 오래전 여행을 꿈꾸다

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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