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퇴사해도 될까요?

각기 다른 상황과 이유로 회사를 떠난, 혹은 떠났다 돌아온 사람들을 만났다.

201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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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너로 입은 검정 블라우스는 COS. 벨트로 포인트를 준 회색 재킷과 스커트는 STUDIO TOMBOY.

 

 

밑거름이 되는 경험
원부연, 음주문화공간 기획자 

‘좋아하는 것’보다는 ‘잘해야 하는 것’이 우선시되고, 어떤 ‘직업’을 선택하느냐보다는 어느 ‘직장’에 선택을 받는지가 중요한 시대다. 학창 시절 내내 적성 찾기를 강요받고 매해 장래 희망을 써서 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회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꿈과 취향을 거세한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진로 탐색의 끝은 취업인 줄 알았건만, 직장인 대부분은 매일 아침 출근하며 가슴 한편에 묻어둔 사표를 쓸어 만져본다. 우리가 학창 시절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일로서의 자아실현’은 정녕 신기루에 불과한 걸까.  


“회사 다니던 시절부터 내 공간을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어요. 실제 조사도 하고 공간도 알아보러 다녔죠. 그래도 막상 시작하려니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그렇게 희망 사항으로만 남겨뒀는데 대학교 시절 자주 가던 술집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어느 날 들었어요.” 원부술집을 비롯해 모어댄위스키, 하루키술집, 신촌살롱 등을 운영하고, 3곳의 팝업 술집을 진행한 원부연 대표가 2014년을 회상하며 이야기했다. 당시 광고 회사에 다니던 그녀는 친한 선후배와 힘을 합쳐 폐업을 목전에 둔 단골 술집을 인수하고 회사 출근과 술집 운영을 병행해보기로 결심했다. 3개월이 흐른 뒤 원부연 대표에게 주어진 두 가지 선택지 중 그녀가 고른 것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렇게 회사에 사직서를 던지고 9년간 몸담아온 광고업계를 떠났다. 인수한 단골 술집은 원부술집이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그렇다고 일시적인 성취감에 도취해 충동적으로 회사를 그만둔 것은 아니다. 시작부터 원부연 대표에게는 정확한 기획안이 있었다. 그리고 3개월가량의 테스트 기간 동안 매출을 모두 기록해 면밀하게 분석하고 파악했다. 그녀의 퇴사와 새로운 도전은 놀라우리만치 이성적인 결정이었다. 


하지만 원래 현상 유지보다 변화가 힘든 법이다. 특히 대기업 입사가 취준생의 꿈이 되어버린 이 시대에,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직장은 포기하기 힘든 꽤 매혹적인 족쇄 아닌가. 아깝지는 않았냐는 질문에 그녀의 대답은 차분하고 덤덤했다.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사라진 지는 오래잖아요. 특히 요즘 같은 100세 시대엔 많은 이들이 40~50대 무렵 제2의 인생과 직업을 고민하죠. 저는 그 고민을 조금 빨리 한 거고요.” 덧붙여 그녀는 요즘 시대에는 사람들이 직업의 개념과 직장의 개념을 혼재해 사용하는 경우가 꽤 많다고 했다. 어느 회사를 다니는지가 그 사람의 직업을 대변하진 않는다는 말이다. 그녀 역시 원부술집이라는 직장이 있고 대표라는 직함이 있었지만 그것을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3년의 고민 끝에 그녀는 자신의 직업을 음주문화공간 기획자라 명명했다. 


누군가는 정확한 목표를 세우고 막힘없이 달려온 그녀의 행보에 어깃장을 놓을 수도 있겠다. 제2의 인생과 직업은 누구나 하는 고민이라고. 다만 개인의 취향이 억압되는 분위기 속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냐며.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운이 좋다고 말이다. “주변에 저처럼 새로운 길을 찾아 창업한 분들과 종종 만나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어요. 고민만 하기보다는 일단 실행에 옮겨보는 스타일인 거죠. 일단 부딪쳐봐야 내가 좋아하는지 아닌지, 맞는지 아닌지 알 수 있죠. 나랑 맞는다면 앞으로 그 일을 더 발전시키는 방법을 찾는 거고 아니면 좋은 경험을 해봤다고 생각하고 툭툭 털고 일어나면 돼요.”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잘하는지 모르는 이들 역시 다양한 것을 경험하며 찾아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가령 요즘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취향 기반의 모임 플랫폼 등을 통해서 말이다. 


“다만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때 무작정 회사를 그만두고 시작하기보다는 충분한 테스트 과정을 거쳐보셨음 좋겠어요.” 안정적인 월급이 나오는 회사는 개인을 사회로부터 보호해주는 완충재 역할을 한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가지가 꺾이지 않게 해줄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줄 수도 있다. 혹자는 지금도 부단히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서고 누군가는 5년 전 그녀처럼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을 수도 있다. 혹은 생계수단으로서의 직업에 만족할 수도 있다. 원부연 대표는 어떠한 길도 본인이 만족한다면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말한다. 다만 스스로를 틀 안에 가두지 말고 마음이 동하는 일이 있다면 일단 시도해보라고 말한다. 그 경험은 성공하든 실패하든 값진 거름이 되어 돌아올 터이니. 

 

 

 

나답게 일하는 법
손성곤, 직장생활연구소 소장

“아, 모르셨을 수 있는데 저는 지금도 직장을 다녀요.” 직장생활연구소의 손성곤 소장은 국내 1호 퇴사 컨설턴트인 동시에 평범한 직장인이다. 지금은 일과 미래를 두고 고민하는 이들을 상담해주고 강연하는 입장이지만 그에게도 회사가 견딜 수 없이 힘들어서 퇴사를 선택한 때가 있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대기업의 상징과도 같은 회사에서 첫 회사 생활을 시작한 손성곤 소장. 3년간 버티며 다녀봤지만 결국 인생에 있어 첫 퇴사, 그리고 이직을 감행한다. 그러나 새로운 회사에 간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았다. 이직 후 외상증후군에 시달리며 급격한 체중 감소와 불면증에 시달렸다. 친구는 우스갯소리로 전생 체험을 해보라고 했다. 그렇게 힘든 걸 보니 필시 전생에 어마무시한 죄를 저질렀을 거라며. 그러나 그가 찾은 돌파구는 ‘직장생활연구소’를 만드는 것이었다. 


직장생활연구소는 퇴사와 직장, 그리고 일과 삶에 대한 생각을 칼럼으로 공유하고 손성곤 소장이 진행한 직장인 상담 이야기와 강연이 올라오는 일종의 직장생활 연구 포털 사이트다. 2010년에 개설됐다. “친구들에게 하소연하고 술 마시면서 푸는 거로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소모적이기도 하고. 생산적인 방법으로 그 상황을 돌파하고 싶었어요.” 손성곤 소장은 직장생활에서 오는 괴로움을 직접 쓴 칼럼을 사이트에 올리면서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직장생활연구소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며 직장생활로 인한 고충으로 상담을 원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해주는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일과 삶에 대해 상담해주기 위해 만난 이만 벌써 300~400명에 이른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퇴사 컨설턴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상담자들은 직장생활에서 각기 다른 고민을 품고 있는데 그 고민들 사이의 교집합에 ‘퇴사’가 있기 때문이다. 


손성곤 소장은 직장에 다니면서 직장생활연구소의 방대한 칼럼을 모두 직접 쓰고, 강연을 나가고, 개인 컨설팅까지 한다. 단 한 달도 직장생활과 병행할 수 없을 만큼 벅찬 스케줄로 보여 고개를 갸우뚱거리니 그의 대답이 돌아온다. “만약 제가 회사를 그만두고 이것에만 올인했다면 지속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계속 회사에 다니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얻는 경험이 밑거름이 돼주거든요.” 근 10년간 직장생활연구소를 운영해온 그는 직접 회사에서 부딪치며 얻은 깨달음, 그리고 상담과 레퍼런스를 통해 얻은 간접 경험으로 일과 퇴사, 그리고 개인, 회사, 사회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는 일을 꾸준히 해왔다. 관련하여 낸 책도 벌써 2권이다. 그러다 보니 퇴사도 시대에 따라, 나이대에 따라 다르다는 게 보인다. “보통 퇴사 욕구는 3년 차 전후에 많이 찾아와요.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 사이죠. 근데 재미있는 게 예전에는 이 나이대 회사원들의 퇴사 사유가 ‘회사가 너무 힘들어요’, ‘회사 사람과 너무 맞지 않아요’ 등 외부적인 요인이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내가 원하는 일이 맞을까요’와 같은, 내 안에서 시작된 고민이 많아요.” 손성곤 소장의 말에 따르면 30대 중반부터 후반까지는 생각보다 퇴사를 원하는 이들의 수가 줄어든다고. 어느샌가 회사에 익숙해져 매몰됐거나 혹은 불만이 있더라도 이젠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40대 중반 쯤 퇴사 고민에 다시 시달리게 된다. 사회 초년생과는 다른 이유다. 회사생활의 끝이 보이기 때문이다. 명예퇴직을 걱정하는 시기이고 그다음 직업과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때다. 


“저는 40대 초반 17년 차 직장인이에요. 그런데 저보다 더 나이가 많고 오래 회사를 다닌 분이 명예퇴직을 앞두고 상담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사실 제가 직접 경험해보지 못하고 책이나 연구 사례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한 일이라 제 의견을 말씀드리는 게 굉장히 조심스러워요.” 사회 초년생에게 퇴사는 직장생활이라는 계속되는 여정을 위한 환승역이었다면 이들에게는 종착역 혹은 완전히 새로운 여정을 위해 또 다른 루트를 찾아 계획부터 세워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불안함의 차이도 크다. 그런 까닭에 상담의 형식이나 내용, 솔루션도 완전히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있다면 일하는 동안엔 ‘나답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누가 시키니까, 혹은 항상 해왔고 해야 하니까 하는 일이 아닌, 나의 가치 판단에 의해 이 일을 해야 할 명분에 대해 스스로 알고 주체적으로 일하는 것, 그것이 나답게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일 속에 매몰되지 않고 주체성을 갖는 것. 그가 생각하는 일과 삶에서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하는 키워드고 솔루션이다.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네이비 블루 재킷은 STUDIO TOMBOY 

 

 

입사와 퇴사라는 뫼비우스의 띠 
원지수, <왜 힘들지? 취직했는데> 저자 

시작과 끝은 하나라는 말이 있다. 에세이 <왜 힘들지? 취직했는데>는 ‘그래서, 직장인이 되었다’라는 챕터로 시작해 ‘다시, ‘퇴사하겠습니다’’라는 챕터로 끝난다. 아이러니한 두 챕터의 대응은 사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져 있다. 입사는 직장생활의 시작인 동시에 이 직장생활에 끝이 있다는 이야기고, 퇴사 역시 직장생활의 끝인 동시에 또 다른 직장생활 혹은 일의 시작이 기다릴 것이라는 암시니까. 책의 저자 원지수 작가는 두 번의 퇴사를 경험하고 현재 세 번째 직장에 다니고 있다. 소비재 영업사원으로 시작한 첫 직장생활은 3년 후 끝났고, 카피라이터로서 다시 시작된 그녀의 직장생활 2막은 7년 후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 그녀의 직장생활 제3막은 이제 막 크랭크인한 참이다. 이 책은 그녀의 전체 직장생활 7년 차, 두 번째 직장 4년 차부터 카카오 브런치에 쓰기 시작해 3년간 연재한 ‘두 번째 초년생’이라는 그녀의 에세이를 엮은 책이다.


“두 번의 퇴사 이유는 각각 조금씩 달라요. 첫 번째는 내가 이 회사에서 계속 직장생활을 하다가는 없어져버릴 것만 같아 퇴사했어요. 그러나 두 번째 회사에서 퇴사를 결심한 순간은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혀서 내가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거 같은 느낌이 들었을 때였어요.” 퇴사와 이직이 그리 큰일이 아닐 만큼 빈번한 시대다. 그럼에도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에는 마치 ‘내가 썼나?’ 싶을 정도로 공감을 자아내는 직장생활에 대한 성찰과 마음에 쏙 박히는 탁월한 비유와 표현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선 건 ‘영업사원이 어떤 이유로 어느 날 갑자기 카피라이터가 된 걸까?’라는 호기심이었다. 그녀가 말한 ‘없어져버릴 것 같은’ 느낌은 대체 무엇이었길래 그녀를 완전히 새로운 길로 이끌었을까. “첫 번째 직장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이 일이 나와는 맞지 않는다는 게 느껴졌어요. 물론 자신과 꼭 맞는 일을 하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어요. 그런데 저는 정말 죽을 만큼 힘들었어요. 1년 차에는 아직 회사에 적응하는 단계니까 힘들겠거니 했어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은 그녀의 고통을 해소해주지 못했다. 주변을 둘러봐도 자기만큼 힘들어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 일을 잘해낼 자신도 없었다. 2년 차가 되던 해 문득 이런 생각이 밀려왔다. ‘아, 내가 이 일을 계속하면 서른 살까지밖에 못하겠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이 창창한데 서른 살까지만 일하고 쉴 수는 없는 일. 그때부터 그녀는 ‘내가 좀 더 오래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이 뭘까?’라는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카피라이터로 두 번째 직장생활을 하기까지 약 1년이 걸렸다. 


“새로운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부터 카피라이터가 되기까지 1년이 걸렸다고 말씀드리면 대부분 새로운 직업을 준비하는 기간이 그만큼 걸렸다고 생각하시더라고요. 그러나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데에 그 시간의 대부분을 쏟았어요.” 지속 가능한 일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했지만 무엇에 흥미가 있는지, 무엇을 잘할 수 있을지, 모든 것이 미지수였다. 무작정 대학교의 취업설명회를 듣는 것부터 시작했다. 여러 곳에서 설명회를 듣다 보니 어느새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조금씩 범위가 좁혀졌다. 어떤 날에는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가 구직 사이트만 한두 시간씩 들여다보기도 했다. 세상에 어떤 직업이 있는지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관심이 가는 직업이 있다면 관련 아카데미, 세미나, 강연 등을 닥치는 대로 찾아 들었다. 이 모든 것을 회사를 다니며 시간을 쪼개 병행했다. 회사 다니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그토록 열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절박함’이었다. 다른 업계에서는 경력 없는 중고 신입사원이기에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만 있다면 무급 인턴이라도 좋을  만큼 절박했다. 


마침내 원지수 작가는 새로운 길을 찾았고, 그 길에서 7년의 직장생활을 지속했다. 원하던 회사였음에도 그 나름의 고통은 또한 존재했다. 돌파구로 휴직 후 유학을 떠나기도 했지만 당시 느낀 ‘업무적인 부분에 있어 더는 앞으로 나아갈 길이 안 보인다’는 문제에 대해 회사 내부에서 해결할 수 있는 답은 찾지 못했다. 그녀는 현재 기존의 일에서 좀 더 확장된 직무로 새로운 회사에서 세 번째 초년생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동안 퇴사와 중고 초년생을 반복하며 깨달은 것은 퇴사는 끝인 동시에 시작이라는 것. 입사 역시 시작인 동시에 언젠가 퇴사라는 끝이 기다리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다만 변치 않는 것은 반복되는 시작과 끝의 굴레 안에서 나의 고민과 선택을 존중하고 언제까지고 스스로를 응원해줘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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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양혜연PHOTO : 임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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