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 세상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우주 전쟁>은 지구를 침공한 화성인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으면서 지구가 위기에서 벗어난다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지구상에 떠도는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갖추지 못한 화성인의 체내에 바이러스가 침투해 독감을 유발했다는 것. 극강의 첨단 기술을 갖춘 화성인들이 고작 바이러스 따위에 나가떨어지다니, 우스운 농담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작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등의 미생물이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엄청난 수의 닭과 돼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조류독감이나 구제역, 혹은 엄청난 인명 피해를 일으킨 사스, 메르스와 같은 전염병이 모두 바이러스의 한 종류임을 생각해보라. 미생물은 이처럼 수많은 생명을 앗아갈 수도, 혹은 반대로 끔찍한 병으로부터 인류를 구제할 수도 있는 강력한 존재다.

세균학자 시어도어 로즈베리(Theodore Rosebury)는 <인간 위의 삶(Life on Man)>이라는 책을 통해 미생물 세계를 다뤘다. 미생물은 흔히 세균이나 바이러스, 박테리아, 곰팡이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생물을 지칭하는 용어다. 인체의 몸속과 피부에는 적어도 200종의 미생물이 늘 존재한다. 특히 그들이 많이 분포하는 치아와 대장의 경우 1cm2당 100억 마리에 이르는 미생물 군집이 자리 잡고 있다. 피부 표면에 있는 미생물을 모두 모으면 완두콩만 한 크기를 이루고, 몸속의 것까지 모두 합치면 300ml 정도의 분량이 되는 것을 보면, 우리 몸에 얼마나 많은 미생물이 존재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우리 신체에서 더 나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량, 그중 3분의 2 정도를 미생물이 차지한다고 하니 가히 어마어마한 존재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우리 몸에 미생물이 존재하지 않는 부분은 없다. 입에서 항문까지 하나의 관으로 연결되어 미생물에게 아주 좋은 서식지를 내어주고 있는 체내 기관부터 피부, 머리카락, 손톱, 발톱까지 어느 곳 하나 미생물이 침투하지 않은 곳이 없는 것. 우리는 매 순간 숨 쉴 때마다 3700개의 미생물을 뱉어내고, 먹고, 만지며, 우리가 머무는 모든 공간에 미생물이 존재하고 그들이 어떤 것을 먹는지, 어떤 것을 뱉어내는지에 따라 우리 몸은 수시로 변화한다. 이처럼 미생물 속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미생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닌 우리는 미생물 인간이다.

DR.JART+ 프리 바이오틱스의 강력한 보습 효과를 갖춘 바이탈 하이드라 솔루션 바이옴 워터 크림 50ml 3만8000원.

미생물 연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는 세계 유일의 미생물 박물관, 마이크로피아가 있다. 이곳에는 미생물에 대한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도록 다양한 체험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미생물을 직접 배양 그릇에 담아 보여주기도 하고, 최첨단 시스템을 통해 내 몸속에 어떤 미생물이 존재하는지 화면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이곳은 미생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교정하고, 미생물과의 유익한 공생을 추구하기 위해 지어졌다. 그동안 우리는 미생물을 대체로 세균 덩어리 취급을 하며, 질병의 원인이거나 동식물의 사체를 분해하는 곰팡이 정도로 여겼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잊고 있던 미생물이라는 존재는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우리에게 해가 될 수도, 유익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니 미생물에 대한 올바른 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2013년부터 대변은행을 운영하고 있다. 말 그대로, 대변 기증자의 배설물을 통해 다양한 질병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출범한 곳이다. 이곳은 한 해 5000여 명이 기증자로 찾아온다. 하지만 누구나 기증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에이즈나 간염, 바이러스성 설사 증상이나 알레르기, 천식 등의 각종 질병을 비롯해 우울증이나 불안증 등의 정신 질환까지 두루 체크하는 200여 항목의 까다로운 질문지에 답변하고, 혈액 검사와 대변 검사를 거쳐 선정된 자만이 대변을 기증할 수 있다. 대변은행이 위치한 보스턴의 명문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하기보다 어려운 수준의 3%대 합격률만 봐도 얼마나 까다로운지 알 수 있다. 대변은행이 성황을 이룬 까닭은 바로 기술의 발달 때문이다. 대변을 통해 몸속 유전 정보를 분석해 장내 미생물의 종류를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는 시퀀싱 기술이 개발되면서 미생물 연구에 속도가 붙고 있는 것. 이렇게 선별된 유익균을 직접 장에 이식하면 골머리를 앓던 과민성 대장증후군과 같은 소화 기관의 질병을 비롯해 도저히 치료할 방법이 없을 것만 같았던 자폐증과 같은 뇌 질환에도 놀라운 차도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미생물이 인체의 다양한 생명 현상, 또는 질병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등장하면서 의학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그야말로 미생물 붐이 불어닥친 것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체세포 수의 약 10배나 되는 박테리아, 바이러스, 원시세균 등 미생물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그들의 생태계, 즉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에 대한 거듭된 연구를 통해 밝혀진 미생물의 역할, 그 놀라운 효과는 이제 의학계를 넘어 피부과학에서까지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왼쪽부터) LANCOME 98% 순도를 지닌 페룰릭 애시드를 비롯한 강력한 항산화 성분이 산화로부터 피부를 보호해주는 제니피끄 더블 드롭 앰플 20ml 12만원대. DR.JART+ 피부 본연의 수분 체질을 개선해주는 바이탈 하이드라 솔루션 바이옴 에센스 150ml+4ml (에센스 블루 샷) 4만9000원. THE BEAUTIFUL factr. 피부 유산균 캡슐이 함유된 코어 앰플 40ml 3만5000원.

LANCOME 피부 유익균의 생태계를 개선해 피부를 건강하게 가꿔주는 뉴 어드밴스드 제니피끄. 50ml 15만5000원대.

미생물 효과
사실, 인식하지 못했을 뿐, 미생물이 지금처럼 큰 화두로 떠오르기 전부터 피부과학 분야는 미생물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해왔다. 이미 한 차례 전성시대를 구가했으며, 지금까지도 글로벌 인기를 얻고 있는 발효 화장품이 그중 하나다. 미생물의 효소를 이용해 유기물을 분해하는 과정을 발효라고 하는데, 미생물 배양액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부터 미생물 배양액의 특정 성분만을 분리, 정제하여 사용하는 방식, 혹은 천연 원료를 미생물로 발효해 원래 지닌 효능을 극대화하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발효 과정이 존재한다. 발효 과정에서 효소 이외의 유효 성분까지 함께 추출하면서 기존 효능을 극대화하고, 유효 성분의 입자가 미세하게 바뀌어 흡수율을 높이고 효능을 피부 속까지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발효 화장품의 장점이다. 또 비타민, 유기산, 아미노산 등 피부 건강에 효과적인 성분 자체의 효능을 높인 것도 장점이다. 효모에서 얻은 자연발효 대사액인 피테라를 주성분으로 활용한 SK-Ⅱ의 피테라 에센스를 비롯해 찻잎과 미생물의 발효 작용을 통해 얻어낸 비타민과 유기산을 풍부하게 담은 프레쉬의 블랙티 콤부차 페이셜 트리트먼트 에센스, 제주 도순다원에서 엄선한 녹차를 100일 동안 자연 발효해 얻어낸 아모레퍼시픽의 빈티지 싱글 익스트렉트 에센스, 바닷속 해초를 빛과 소리 에너지로 자연 발효시켜 담아낸 라 메르의 크렘 드 라 메르까지 이미 출시되고 있는 제품도 이렇게나 다양하다. 발효 화장품으로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이제 미생물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로 이어지고 있다. 발효를 넘어 미생물이 이루는 생태계로 시선을 넓히고 있는 것. 미생물이 먹고 배출하는 그들만의 생태계, 그것을 마이크로바이옴이라 한다.

(왼쪽부터)  FRESH 미생물의 작용으로 발효되어 만들어진 콤부차 에센스가 피부 보호 효과를 선사하는 블랙티 콤부차 페이셜 트리트먼트 에센스 150ml 9만7000원대. AMOREPACIFIC 돌송이차밭의 녹차 잎만을 자연 발효해 오롯이 담아낸 빈티지 싱글 익스트렉트 에센스 120ml 17만원대. SU:M37°  발효 에너지로 피부 나이를 되돌려주는 시크릿 아이크림 25ml 9만5000원대.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2가지는 바로 프로바이오틱스와 프리바이오틱스다. 장 건강을 높여주는 유산균을 떠올리게 만드는 프로바이오틱스는 사실 유산균을 한 종류로 포함하고 있는 우리 몸에 유익한 미생물, 즉 유익균을 의미한다. 프로바이오틱스는 장 건강은 물론이고 피부를 비롯한 우리 몸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에 관여한다. 프로바이오틱스가 우리 몸에 많이 서식하는 것이 중요한데, 프로바이오틱스의 먹이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프리바이오틱스다. 곡식의 풍성한 수확을 기대한다면 우선 대지를 기름지게 가꿔야 하는 것처럼, 프리바이오틱스가 많을수록 프로바이오틱스의 개수도 늘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프리바이오틱스와 프로바이오틱스가 풍성하게 균형을 이룬 미생물의 생태계가 바로 마이크로바이옴인 셈이다. 성인 기준으로 피부 마이크로바이옴은 최대 2cm2 당 200만 개, 1000가지 종류의 박테리아가 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마치 지문이나 유전자와 같아서, 사람에 따라 개수와 종류가 다르며, 나이가 같아도 피부 상태가 천차만별인 것은 각각의 피부 마이크로바이옴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우리 몸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유익균과 우리 몸에 해를 끼치는 유해균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익균이 80%를 차지하는 아기들에 비해 나이가 들면서 유익균이 10%까지 줄어드는 성인의 경우를 살펴보면 유익균의 개수가 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지문이나 유전자와는 달리 생활습관을 바꾸거나 유익균을 생성하는 데 효과적인 제품을 복용하면 생성되기 때문이다.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연구는 국내외에서 무척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스위스의 글로벌 향수, 원료 제조업체인 지보단은 프랑스 남서부의 툴루즈에 응용미생물유전체학연구소를 두고 지속적으로 투자를 늘려가면서 피부 내 미생물에 기반한 미백 성분, 브라이트닐과 피부 재생 촉진 물질인 리바이빌 등의 유효 성분을 개발했으며, 다가올 2020년에는 피부과학 분야에서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의 선구자로서 발돋움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모레퍼시픽에서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에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 올 상반기에는 도시화된 환경이 피부 미생물 생태계를 교란시켜 노화를 일으킨다는 주제로 한 연구 결과를 학술지에 게재했으며, 이와 같은 연구는 일리윤이나 이니스프리 등의 제품 출시로도 이어지고 있다. 또 아모레퍼시픽은 앞서 언급한 지보단과 피부 미생물 공동연구 협약을 체결해 한국과 프랑스 여성의 피부 미생물 생태계에 관한 연구를 이어간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글로벌 뷰티 브랜드 랑콤은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마치고 이미 피부 위 미생물 생태계에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제품을 선보인 바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랑콤의 뉴 어드밴스드 제니피끄. 이 제품은 7가지 프리바이오틱스와 프로바이오틱스 성분을 담고 있어 피부에 사는 유익균이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양질의 먹이를 제공한다. 아이잗바바, 지고트 등의 패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바바패션그룹에서 새롭게 론칭한 브랜드, 더뷰티풀 팩터는 브랜드 콘셉트를 스킨 프로바이오틱 더마 코즈메틱으로 지정하며 특허받은 프랑스 프로바이오틱스 성분과 피부 유사 구조를 지닌 세라마이드와 콜라겐을 배합한 피부 유산균 리포솜을 개발해 전 제품에 활용하고 있다. 이처럼 발효 화장품을 시작으로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연구와 발견이 이어지며 저명한 과학자들을 비롯해 내로라하는 뷰티 브랜드까지 모두 미생물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실상, 미생물에 대한 연구는 이제 막 시작 단계에 접어들었을 뿐이다. 미생물이 또 어떤 잠재력을 가지고 있을지, 우리 피부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지 지금은 지켜봐야 할 순간이 아닐까? 작은 몸집에 거대한 세계를 숨기고 있는 미생물계, 그들이 앞으로 어떤 능력을 발휘할지 궁금하다. 

(왼쪽부터) LA MER 해양 발효성분과 비타민 C가 피부를 더욱 환하고 투명하게 만들어주는 브릴리언스 화이트 에센스 30ml 42만5000원대. SK-Ⅱ 피테라™와 오일의 항금비율로 강력한 보습력을 부여하는 미라클 오일 50ml 16만9000원대. NATURA BISSE by LA PERVA 피부 보호막에 존재하는 수십억 개의 미생물을 이용해 외부 자극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 다이아몬드 코쿤 얼티메이트 쉴드 미스트 75ml 19만9000원.

Model SKY Hair 최은영 makeup 서아름

더네이버, 피부 과학, 미생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