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마음과 행동 사이의 간극

우리는 무의식 속에서 차별을 자행한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선량한 마음만으로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2019.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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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너무도 화가 나네요. 이젠 국민들을 인종 차별주의자로 만드네?” “애 둘 키우는 일반 시민입니다! 혐오자 극우파 아닙니다!” 제주도 예멘 난민에 대한 기사에 달린 댓글의 내용이라고 한다. 이 소박하고 선량한 사람들의 분노가 아프게 다가온다. 그들이 차별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혐오자가 아니다, 나는 공정하다, 나는 차별에 반대한다, 라고 굳게 믿고 주장하나 일상적으로 차별을 저지르는 이들의 모습이 나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형으로 쓰고 싶지만, 아직은 그럴 수 없다. ‘아직은’이라는 단서를 조심스럽게 달아두고 이 책을 읽는다. 


차별은 옳지 않다,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는 가치에 어떻게 반대하겠는가. 그것은 우리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명백한 차별주의자다’라고 말하는 이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차별은 여전하다. 만나보지 못한 소수의 악인이 자행하고 있는 것인가? 차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첫 단계에서, 우리는 그 ‘소수의 악인’에 분노한다. 진정한 변화는 두 번째 단계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내가 그동안 자행해온, 그리고 지금도 무심코 저지르고 있는 차별을 깨닫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차별은 생각보다 흔하고 일상적이다. 고정관념을 갖기도, 다른 집단에 적대감을 갖기도 너무 쉽다. 내가 차별하지 않을 가능성은, 사실 거의 없다.” 이 책은 무수히 많은 예를 들어 우리가 일상적으로 크고 작게 저지르고 있는 차별적 언어와 생각을 지적한다.  


프롤로그에서부터 말문이 막힌다. 저자는 ‘결정 장애’라는 말을 재미있게 생각했다고 한다. ‘우물쭈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너무 많이 고민하는 나의 부족함을 꼬집는 간명한 말’이라고 여겨, 수많은 대화에서 이 표현을 무심코 써왔다고. 그러던 어느 날, 혐오 표현에 관한 토론회장에서 만난 이가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결정 장애라는 말을 쓰셨어요?” 많은 장애인과 함께한 토론회에서, ‘장애’를 ‘부족함’과 ‘열등함’의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차별적인 말이었는지, 저자는 놀라고 당황하며 깨닫는다. 차별을 당하는 사람은 있는데 차별을 한다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현실은 이토록 곳곳에 포진해 있다. 나는 ‘결정 장애’라는 표현은 잘 쓰지 않지만, ‘안면 인식 장애’라는 표현은 즐겨 써왔다. 어디 한두 명이겠는가. 어디 한두 케이스겠는가. 


이주민에게 “한국인 다 됐네”라고 할 때, 동료에게 “여자치곤 잘하네”라고 할 때, 흑인에게 “역시 흑형이야”라고 할 때. 우리는 칭찬의 의미로 한 말일수록 그것이 차별적 언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어한다. 좋은 마음, 선량한 마음만으로는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훨씬 더 많은 것을 고려하고 상상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것을 지적할 때 불쾌해하고, 농담을 지적할 때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빈다”고 비아냥거린다.  


우리가 자신이 저지르는 차별에 둔감한 이유는 우리가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처한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공정하게 판단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편향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권리가 ‘특권’일 수 있음을 다시 돌이켜봐야 한다. 또 한편으로는 현실의 복잡함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차별의 피해자가 모든 면에서 피해자일 수는 없다. 어떨 때는 가해자 위치에 서기도 한다. 매번, 매 경우 세심하게 살펴야 하는 이유다.  


이 책의 장점은 풍부한 자료와 실례들이다. 오랫동안 다양한 소수자 현안에 관심을 가지고 현장과 밀착해 연구해온 저자는 언뜻 생각하기에 공정해 보이는 말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그것이 왜 차별의 말인지 쉽고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을 보며 깨닫는다. “성찰의 시간이 없다면 우리는 그저 자연스러워 보이는 사회 질서를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며 차별에 가담하게 될 것이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평등도 저절로 오지 않는다.”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 내가 선량하다고 믿을수록 특히 더 그렇다. 

※ 이 글을 쓴 박사는 북 칼럼니스트이다.  

 

 

 

 

더네이버, 북, 선량한 차별주의자

 

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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