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여성이여 일어나라

남성 배우 일색인 형사의 버디물에 여성 배우들이 주연을 꿰찼다. 변화의 바람은 충무로에도 불고 있다.

2019.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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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캅스>는 보기 드물게 제목이 직관적인 영화다. <투캅스>를 바로 떠올리게 하는 제목에서 두 경찰 혹은 형사 버디물임을 알 수 있고, 앞에 붙은 ‘걸(girl)’을 통해 그들이 여성임을 암시한다. 두 여성 경찰의 수사극. 캐릭터도 눈에 보인다. 관록 있고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선배가 존재할 테고, 혈기 넘치는 신입이 있을 게 틀림없다. 뻔할까? 아니다. 적어도 두 주인공이 여자라는 점에서 <걸캅스>는 뻔한 수사 장르의 버디 무비가 가진 한계를 넘어설 가능성이 보인다.


미영의 역할부터 찬찬히 살펴보자. 1990년대 여자 형사기동대 출신으로 한때 전설의 형사였던 미영(라미란)이다. ‘한때’란 결국 이 모든 전설과 영화는 과거의 것이고,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다. 현재는 퇴출 0순위인 주무관이다. 남자 캐릭터였다면 이런 몰락에 여러 가지 ‘있어 보이는’ 이유가 따라왔을 것이다. 어떤 사건으로 인해 윗선의 미움을 샀다든가, 오해를 받았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미영은 그 과정에 기혼 여성으로서 경력 단절 문제가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이 선배의 버디가 될 후배, 상대적으로 젊은 캐릭터는 어떤가? 미영의 시누이인 지혜는 강력반 형사로 꼴통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여성에게는 잘 부여되지 않는, 단순하게 열정적으로,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질주하는 캐릭터인 것이다. 정의감 있는 열혈 캐릭터를 상상할 때 자연스럽게 남자 얼굴이 떠올랐다면, 바로 이 캐릭터가 여성이어야 하는 이유가 된다. 그 하나의 변화가 영화의 많은 것을 새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다루는 사건은 어떨까? 미영과 지혜 앞에서 갑자기 차도에 뛰어든 여성은 바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의 피해자다. 지난해 웹하드를 중심으로 일어난 불법 영상 유출과 유포 범죄부터 최근 몇몇 남성 연예인이 저지른 불법 영상 촬영과 공유 범죄까지, 불법 촬영과 이를 인터넷에 유포하는 디지털 성범죄는 한국 여성에게 가장 가까운 공포로 떠올랐다. <걸캅스>는 다른 범죄가 아닌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사건을 중심으로 다룸으로써 두 주인공이 왜 이 사건을 비공식적으로라도 해결하고 싶어 하는지 설명하는 데 들일 시간을 줄인다. 여성이라면 이런 범죄가 피해자 개인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파괴하는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주는지 즉각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부분의 정부 부처와 경찰 내부에서 별것 아닌 사건으로 치부하면서 미뤄두기 때문에 두 여성 경찰이 비공식적으로 수사할 수밖에 없다는 배경은, 성범죄에 대한 사회의 시선을 보여준다. 수사극으로서 사회 비판도 놓치지 않겠다는 <걸캅스>의 패기가 드러나는 설정이다.

 


과거 전설의 형사, 오늘의 퇴출 0순위 주무관 박미영 역은 라미란이, 혈기 넘치는 강력반 형사 조지혜는 이성경이 맡았다. 캐릭터의 조화와 호흡이 버디 무비의 핵심이라면 캐스팅은 베테랑과 신예, 대조적인 외모와 성격 모두에서 합격점이다. 신예 정다원 감독은 처음부터 미영 캐릭터에 라미란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음을 밝히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걸캅스>가 라미란의 첫 주연작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많은 작품에서 다양한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친절한 금자씨>로 장편 영화에 데뷔한 지 14년 만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번째 작품을 갖게 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걸캅스> 홍보 기간 중, 라미란의 차기작이 단독 주연의 <정직한 후보>가 될 것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원래 남성 캐릭터였는데, 여성이 맡으면 새로워질 수 있다는 판단에 바뀌었다는 후문이다. 스크린에서 더 많고 다양한 캐릭터의 여성을 만나게 되기를 바라는 여성 관객의 꾸준한 목소리와 시대에 따른 변화가, 라미란이라는 배우가 밟아가는 궤적에도 드러나고 있다. 생각만큼 뻔하지 않은 길이다. 

※ 이 글을 쓴 윤이나는 영화 칼럼니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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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윤이나PHOTO : 흥미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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