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양과 함께한 3년의 일기에 담긴 삶에 대한 성찰

동물을 살생하고 시체를 먹는 것에 염증을 느껴 채식주의자가 된 남자가 스스로 도축한 양을 먹는 삶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양과 함께한 3년의 일기에는 단순한 좌충우돌 목장 적응기를 넘어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다.

2019.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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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글줄이나 쓸 줄 알고 세상에 대해 젠체하는 도시인의 좌충우돌 목장 적응기인 줄 알았다. 매일매일 해야 할 일과 한 일을 적어놓는 데만 급급한 짧은 일기가 저자의 어리둥절함을 잘 보여준다. 그러다 잘 적응하겠거니, 그러다 보면 또 제 습성 놓지 못해 젠체하겠거니, 그 어리둥절함과 젠체 사이의 간극이 독자에게 재미와 혜안을 주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끝까지 읽고 나자, 굵고 묵직한 생각이 밀려들어온다. 동물을 죽이고 시체를 먹는 육식에 염증을 느껴 채식주의자가 된 남자가 “내가 죽인 양을 먹는” 삶을 영위하기까지 3년의 과정이 우리에게 삶이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사랑한다고 했다가 죽이겠다고 했다가>는 얼핏 보면 막장 연애 끝에 스토커로 전락한 사람 이야기 아닌가 싶지만, 양을 키우는 목축업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극정성으로 돌보던 양을 끝내는 도축해야 하는 일을 하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저자는 초기에는 그저 일을 손에 익히는 것만으로도 바빴다. 처음으로 ‘털을 제대로 깎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저자는 “이 정도가 되기까지 긴 시간 그리고 적잖은 피와 땀이 필요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감격한다. 그러고는 피를 주로 흘린 건 양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첨언한다. 언어를 다루는 전직을 가졌던 이답게, 간결하고 위트 있는 상황 묘사가 인상적이다. 


저자는 양을 키우기 전에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문학을 연구하고 가르쳤다. 아버지가 은퇴하면서 양 목장을 물려받은 저자는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가족과 함께 시골로 내려갔다. 어릴 때부터 지낸 목장이라 적응에 대한 두려움이 적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목장에서 보내는 삶은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언제 어엿한 목축인이 될 수 있을 것인지 한탄하던 저자는 어느 날 자신이 목축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축산학자 또는 낙농품 생산자 또는 목장 경영자로 발전해간다는 얘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줄 모르는 편협하고 괴팍한 아저씨가 되어간다는 얘기다.”


나쁜 소식은 아니다. 저자는 양을 돌보면서, 다른 사람의 칭찬과 평가에 매달리지 않는 ‘충만한 삶’에 눈을 뜬다.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양만 생각하고 양 가까이에 대기해야 하는 삶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헌신이라면 헌신인데 헌신의 대가가 뭐냐고 물으면 잘 모르겠다. 양고기? 양털? 그보다는 헌신하는 삶 그 자체가 대가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어떻게 하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같은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삶을 꽉꽉 채워주는 녀석들이 200미터 앞 방목장에 살고 있다.” 그 충만함의 정체는 차차 밝혀진다. 그는 양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평화와 성찰과 존엄의 오아시스 같다”고 말한다. 탈출한 양을 잡아오거나, 털을 깎거나, 온갖 격렬한 노동의 와중에도 고요함은 깨지지 않는다. 그 이유를 “살아 움직이는 존재, 누가 뭐라든 생의 활력을 잃지 않는 존재와 맞닿아 있는 시간이라서가 아닐까” 짐작한다. 


그 깨달음의 과정은 쉽지도 않았고, 상상한 것과도 달랐다. 목장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그들의 이상-공동체라는 이상, 자급자족이라는 이상, 지속 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이상-은 무참히 깨지고, 저자는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는 “평범한 생활이 그렇게 엄청난 매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에 화를 낸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삶은 무뚝뚝하지만 끈기 있게 삶의 비의를 가르쳐준다. 그는 이제 책을 읽어도, 이전과는 다르게 읽는다. 롤랑 바르트가 한 말 “나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하려면, 다른 말로 바꾸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독창적인 말, 아무도 쓴 적 없는 말로 바꾸어야 한다”를 그는 문학에 국한된 말이 아니라 삶의 진실로 받아들인다.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 자체를 진짜로 하려면 그것을 습관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 그 일을 통해 경험을 얻었거나 인식을 얻었다면 그 일 자체를 진짜로 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건 말이 아니고 삶이지만, 이렇게 삶을 말로 듣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다른 삶이 있음을 상상하게 해주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의미 있다.

※ 이 글을 쓴 박사는 북 칼럼니스트이다.  

 

 

 

더네이버, 북, 사랑한다고 했다가 죽이겠다고 했다가

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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