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우리는 식물을 그립니다

잿빛 도심 속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위안이 될 식물의 싱그러움을 기록하는 이들을 만났다.

2019.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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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과 주변 환경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손정민. 화병은 모두 이딸라 제품.

 

일러스트레이터 ______ 손정민

“텍스타일을 디자인하는 제 친구 환이는 브라질을 좋아해요. 화려한 무늬가 텍스타일을 연상시키는 브라질 태생의 식물 피콕 플랜트를 보면 그 친구가 생각나요.” 일러스트레이터 손정민은 대상의 분위기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그녀의 식물 일러스트 역시 마찬가지다. 단순히 대상의 형태를 재현하는 것이 아닌, 그녀의 눈으로 바라본 식물의 이미지를 자신만의 아름다운 선과 색으로 그려낸다.

 

그녀의 드로잉북에는 그녀만의 스타일로 그린 식물들이 살아 숨 쉰다.

 

다양한 피사체를 일러스트를 그리지만 특히 식물 관련 일러스트 작업이 눈에 띈다. 식물 일러스트는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그렸나? 
뉴욕에서 패션 디자이너와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일하던 시절 업무로 받은 스트레스를 동네의 작은 공원에서 해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동네 할머니들이 가꾸는, 관광객이 별로 찾지 않는 작은 공원이었다. 주말이면 그곳에 가서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태닝하며 보냈다. 그렇게 시작한 일러스트 작업물을 보고 조금씩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일러스트레이터의 길로 들어서 본격적으로 그리게 되었다.


식물은 언제부터 좋아했나?
어린 시절 꽃을 가지고 소꿉놀이를 즐겨 했다. 부모님도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식물을 좋아해 가족끼리 자주 꽃구경을 나섰다. 그런 경험이 쌓여 자연스레 식물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피사체인 식물과 사람을 결합한 작품.

 

직접 그리고 쓴 에세이집 <식물 그리고 사람>은 제목처럼 특정 식물과 인물의 공통점에 대해 말하는 책이다. 두 대상 사이에서 공통점을 찾는 방식과 주변의 반응이 궁금하다.
모두 다르다. 함께한 기억 속에 특정 식물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고 식물과 사람의 특성이 비슷한 경우도 있다. 혹은 특정 식물을 무척 좋아해서 그 식물을 볼 때마다 대상 인물이 떠오르는 경우도 있고. 주변에서는 신기하다고들 한다. 좋아해주기도 하고. 용이 감독님은 작약을 닮았는데 그 이야기를 하니 꽃 중의 왕은 작약이라며 무척 좋아하더라. 


닮고 싶은 식물이 있을까?
양귀비과의 식물 중 하나인 마틸리자 포피. 원래 양비귀과의 식물은 한 곳에 자리를 잘 잡지 못한다. 그러나 한번 뿌리를 내리면 놀라운 생명력을 보여준다. 마틸리자 포피를 바라보면 느껴지는 생동감, 누군가가 나를 보았을 때 그런 에너지를 느낄 수 있음 좋겠다. 

친구를 닮은 브라질 태생의 식물 피콕 플랜트.

 

작업 방식이 궁금하다.
영감은 다양한 곳에서 얻는다. 여행에서 찍은 사진이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혹은 길에서 그리고 싶은 이미지를 포착하거나. 재료 역시 연필, 수채물감, 오일 파스텔, 아크릴 등 다양하게 사용한다. 계획적으로 작업을 할 때보다 즉흥적으로 할 때 작업이 잘된다. 


최근 반려식물을 기르는 사람이 늘고 있다. 반려식물을 기르는 입장에서 느끼는 매력에 대해 말해달라.
예전에 친언니가 “식물을 많이 키우는 사람 중엔 평소 불안감을 느끼는 경우가 꽤 된대”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일리가 있다. 식물의 초록빛이 자아내는 싱그러움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그래서 불안감에 시달리는 이들 중에 식물을 곁에 두는 경우가 많은 게 아닐까. 움직이고 소리를 내는 다른 생명체와 달리 묵묵히 내 옆을 지켜준다는 점 또한 큰 위안을 준다. 

 

수채 물감, 아크릴 물감, 오일 파스텔 등 다양한 재료로 작업을 완성한다.

 

움직이지 않는 식물은 동물과 달리 곁에 있어도 그 존재감을 느끼기 어려울 것 같다. 식물의 생명력을 오롯이 느낄 때는 언제인가?
오래전 찍어둔 식물 사진을 볼 때 많이 느낀다. 매일 조금씩 자라기 때문에 식물이 성장해도 그 변화를 알아채기 어렵다. 그러나 옛 사진을 보고 눈앞의 식물을 보는 순간 ‘벌써 이렇게 많이 자랐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식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해달라.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을 맞이해 봄꽃을 일러스트로 담아내는 워크숍을 진행할 예정이다. 

 

 

 

주변인들과 반려식물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내는 만화가 안난초. 화병은 모두 이딸라 제품. 

 

만화가 _____ 안난초

난초는 다른 식물들과 달리 흙이나 나무껍질 등에 서식하는 특정 균사의 도움을 받아야만 발아할 수 있다. 만화가 안난초는 난초의 특성이 자신과 닮았다고 말한다. 마치 난초가 주변의 도움으로 싹을 틔우듯, 웹툰 <식물생활>을 위해 반려식물을 키우는 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에피소드를 그리는 과정에서 그녀 역시 성장했다. 그저 식물을 보고 그리기를 좋아했던 그녀는 이제 식물에게 지켜야 할 윤리를 생각하고 인간과 식물의 올바른 공생법에 대해 고민한다. 

 

저스툰에서 연재한 웹툰 <식물생활>은 최근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많은 이들이 사랑한 웹툰 <식물생활>이 최근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식물생활>이 삶에 미친 영향에 대해 말해달라.
스스로를 당당하게 ‘만화가’라고 소개할 수 있는 기점이 되었다. 더불어 <식물생활>을 그리기 위해 인터뷰한 사람들이 내게 보여준 모습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식물은 알아서 자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식물을 키운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자신 외의 또 다른 생명체를 가꾸며 공생하는 인터뷰이들을 보며 그들처럼 주변을 돌볼 줄 아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되기 위해 지금도 노력 중이다. 


<식물생활>을 그리기 위해 수집한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첫 챕터에 등장한 ‘지영의 식물생활: 아빠의 봄맞이’ 이야기다. 매해 2월이면 히아신스 구근을 사 오신 아버지의 마음을 나이가 들고서 헤아리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어쩐지 그 에피소드가 계속 마음에 남아 매년 봄이 찾아오면 나도 히아신스 구근을 산다. 


웹툰을 그리기 위해 식물을 키우는 많은 사람을 인터뷰했다. 인터뷰이들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는가? 
처음엔 식물을 키우는 가까운 지인을 인터뷰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첫 챕터의 주인공인 ‘지영’은 내게 그림을 가르쳐준 선생님이다. 지인들의 이야기를 모두 에피소드로 구성하고 난 후엔 지인들의 주변인을 소개를 받기도 하고, 직접 찾아나서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인터뷰이들을 찾아 인터뷰를 진행했다. 

 

만화가 안난초의 노트와 작업 재료들.
 

식물을 키우는 이들을 만나면서 식물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졌다고.
인터뷰이 모두에게 영향을 받았지만 특히 7번째 챕터의 주인공 소요님과 관상용 접목 선인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식물을 키우고 감상하는 것이 그저 좋았다. 그러나 요즘엔 ‘관상용’ 식물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마음 한켠에 있다. 식물 역시 생명이기에, 사람의 눈에 보기 좋게 만들기 위해 인위적으로 육종 및 개량, 절화하는 행위가 지닌 윤리적인 문제를 무시할 수 없다.


최근 특히 빠져 있는 식물이 있을까? 
예전에 <아파트숲>이라는 사진집을 사서 본 적이 있다. 재건축에 들어간 둔촌주공아파트에 남겨진 나무들의 사진을 엮은 책이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깃든 나무들의 모습이 가슴속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 이후로 요즘 유행하는 독특한 모양새의 식물보다는 어린 시절 식물 키우는 집에 하나쯤 꼭 있었을 법한 행운목, 제라늄 등 클래식한 관엽 식물에 마음이 간다. 


아직 들려주지 않았지만 독자들에게 선보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안 그래도 혼자 사는 30대 여성이 식물을 기르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비혼 문화의 대두 등 요즘 독신 여성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 않나. 혼자 사는 여성이 반려식물과 함께 살아가며 얻는 위안이나 상호작용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웹툰으로 연재되는 이야기는 아니고 아마 가을쯤 단행본으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반려식물을 키우는 사람이 늘고 있다. 현대인이 반려식물에 열광하는 이유가 뭘까? 
회색빛 도시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자연의 초록빛을 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 아닐까. 반려식물을 키우는 입장에서 식물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아름답기도 하고. 반려식물을 키우는 건 바쁜 일상을 살아가며 지친 현대인이 힐링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인 것 같다. 

 

 

 

무심코 지나가는 우리 주변의 식물들에 물감을 발라 패브릭에 찍어내는 방식으로 식물의 모습을 기록하는 페인터 김지아. 화병은 모두 이딸라 제품. 

 

페인터 _____ 김지아

같은 나무에서 피어났을지라도 각 잎사귀는 고유한 형태와 특성을 지녔다. 물감을 잎사귀와 풀에 바르고 패브릭에 정성 들여 찍어내는 페인터 김지아. 그녀는 주변에서 만난 한 장의 나뭇잎, 한 포기의 풀이 지닌 유일한 아름다움을 기록한다. 그리고 남은 잎사귀와 풀은 액자에 넣어 전시함으로써 생명을 다한 식물들에게 영원성을 불어넣어준다. 

 

 작업에 사용된 식물들은 다시 액자에 넣어 또 다른 작품으로 만든다.

 

작업 방식이 흥미롭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말해달라.
약 2년 전 우연히 본 사진으로 작업이 시작됐다. 나뭇잎 무늬가 찍혀 있는 쿠션이었는데 보는 순간 ‘이거다!’ 싶었다. 집 주변에서 나뭇잎을 주어와 물감을 발라 찍어봤는데 애벌레가 갉아 먹어 생긴 구멍, 서로 다르게 뻗어진 잎맥의 형태 등 각 나뭇잎만의 특성이 고스란히 얹어진 패브릭의 무늬가 무척 아름다웠다. 


식물을 ‘찍어내는’ 방식이 갖는 매력이 궁금하다.
마치 사진처럼 ‘순간’이 기록된다는 점. 그래서 사진도 ‘찍는다’라는 표현을 쓰는 게 아닐까. 한번 찍어내면 수정할 수 없기 때문에 굉장히 집중해서 작업한다. 찍을 때마다 다른 결과물을 얻어내는 것 또한 큰 매력이다. 


작업에 필요한 식물은 주로 어디에서 얻는가? 
공원, 뒷산 등 주변을 산책하며 줍는다. 혹은 여행 가서, 그 곳에서만 볼 수 있는 식물을 만나면 책 사이에 꽂아 잘 보관해 가져오거나 바로 작업을 한다.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식물로 주로 작업하는데,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풀일지라도 그 식물만의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처럼 식물 역시 이 세상에 똑같은 것은 없다. 

 

페인터 김지아는 강아지풀, 들풀 등 다채로운 식물을 캔버스에 찍어낼 뿐만 아니라 코스터, 테이블 매트, 옷 등 다양한 생활용품에도 새긴다. 

 

오롯이 물감만으로 식물을 기록하는 만큼 컬러 조합이 중요할 것 같다. 
식물 자체가 지닌 고유의 색과 그 식물이 피고 지는 계절이 지닌 색을 조화시키려 노력한다. 색과 색이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하모니를 찾아가는 일이 굉장히 흥미롭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색은 아무래도 초록 계열이다. 색 조합 외에 물감의 농도에 따라 식물의 무늬가 달라지기 때문에 물과 물감의 비율 조절도 중요하다. 


고유한 아름다움을 담기 위해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각 식물이 지닌 본연의 형태를 살려 작업한다. 예를 들어 가느다란 풀은 햇빛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거나 바람에 날리면서도 꿋꿋하게 자라나는 모습이 참 예쁘다. 인위적으로 모양을 내지 않고 풀 한 가닥이 지닌 선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다. 

 

붓, 패브릭 물감, 패브릭, 그리고 식물만 있다면 어디서든 작업할 수 있다. 

 

식물의 원물을 가지고 작업하기 때문에 계절의 영향을 받을 것 같다. 
아무래도 계절별 각기 다른 아름다움에 민감하다. 봄에는 꽃다지, 냉이꽃, 꽃마리 같은 들꽃의 풋풋함이 좋다. 수많은 나무의 잎들이 무성하게 자라는 여름은 작업하기 신나는 계절이다. 가을에는 계절의 색에 따라 마음이 차분해진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잎의 색과 열매를 관찰하며 집중해서 작업한다. 숲에 신갈나무 잎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겨울엔 자연의 리듬에 맞춰 작업을 잠시 쉰다. 

product 이딸라

 

 

 

더네이버, 인터뷰, 식물을 그리는 사람들

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양성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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