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시간을 거슬러

먼지 쌓인 폐허를 일부러 찾아가는 건축가들이 있다. 그들은 버려진 건물에 스며든 시간의 그림자를 읽고 오늘의 시간대에 어울리는 숨을 완벽하게 불어넣는다.

2019.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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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오염을 없애고, 다시 화재가 발생해도 안전할 수 있도록 재료와 디자인을 고심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화재 사고로 성의 일부를 잃었다. 

 

로비를 개조한 남쪽 건물 외관. 

 

화재로 불탄 동쪽 건물 내부는 화재 오염을 덮고 벽돌벽을 살리는 식으로 복원되었다.

 

고성의 질감과 컬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서쪽 건물.

 

화재가 남기고 간 것
Voltigeurs de Québec Armoury by Consortium A49 / DFS / STGM

2008년 3월 4일 밤, 프랑스-캐나다 보병 연대가 주둔한 성에 화재가 발생했다. 군부대가 출동해 동쪽 일부만 소각된 채 마무리됐다. 하지만 그들이 다시 이 성을 찾기까지 무려 10년이 걸렸다. 국가 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기에 나라의 허락 없이는 복원도 재생도, 심지어 화재 현장도 수리할 수 없었고, 1885년 외젠 에티엔 타스가 디자인한 성에 현대적인 표정을 입히려는 건축가들의 제안을 수락하는 데 법원, 정부, 군부대 등 관련 기관의 승락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2011년에야 건축가들은 현장을 찾을 수 있었다. 복원, 재생, 신축의 카테고리를 넘나드는 작업. 그들은 화재로 소실된 동쪽은 물론 역사책에 남아 있던 서쪽 날개 부분을 재건하고 남쪽 건물의 1층 로비와 내부를 현대적으로 단장했다. 옛 성의 거대한 석재, 늠름한 구리 지붕을 인 서쪽 신식 건물은 성의 위용을 가리지 않을 정도로 편안하게 들어서 있다. 성을 되살리는 일은 일반인에게 성의 문턱을 낮추고자 함이었다. 그들은 접근 불가능했던 지붕까지 올라가 건축물을 살펴볼 수 있도록 다리도 만들었다. 화재는 곧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Add. 805 Wilfrid-Laurier Ave, Quebec City, QC G1R 2L3, Canada
Web. www.manegemilitaire.ca

 

 

 

 

1841년에 지어진 경찰서, 치안 사무실 건물, 경찰 숙소, 교도소 건물은 엄격한 법의 통치 아래 오랜 시간 운영되다 2006년 교도소 폐쇄로 문을 닫았다. 식민지 시대의 기억을 고스란히 품은 건축물이다. 

 

보호벽을 입힌 JC 컨템퍼러리 갤러리. 

 

건축가는 과거와 현재의 공간을 시멘트 다리로 연결해 자연스레 옛 교도소와 경찰서를 재현한 공간을 지나가도록 했다.

 

아름다운 탈옥
Tai Kwun by Herzog & de Meuron

건축 듀오 헤르초크 & 드 뫼롱만큼 과거 건축물을 되살리는 프로젝트에 탁월한 건축가가 있을까. 그들의 역작에는 화력발전소를 미술관으로 바꾼 런던 테이트모던, 스페인 마드리드의 카익사포룸이 있다. 2018년 5월, 문을 연 홍콩의 타이권 또한 영국 식민지 통치 아래 1841년에 지은 경찰서, 치안 사무실, 교도소를 예술 문화 공간으로 바꾸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시내 중심에 있지만 견고하게 닫힌 구조였던 모든 건물을 활짝 개방하는 일. 이들이 과거의 기억을 불러내는 방식은 독특하다. 먼지 쌓인 역사적 스토리보다 건축적, 기술적 요소를 꺼내 꽤나 이질적인 방법을 조합했다. 원래 건물 위에 옷을 입히듯 알루미늄 소재로 만든 보호벽을 쓰운 컨템퍼러리 갤러리가 좋은 예. 첫인상은 기묘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것이 과거 건물의 벽돌의 형태, 재료, 질감에서 출발한 것이며 아열대 기후를 위한 최적의 보호벽임을 알게 된다. 게다가 어두운 밤 주변의 불빛에 반사된 외관은 무척 아름다워 시선을 끈다. 이미 이곳은 인스타그램의 포토존이 되었다. 
Add. 10 Hollywood Rd, Central, Hongkong 
Web. www.taikwun.hk, www.herzogdemeuron.com

 

 

 

 

 2015년 대형 화재로 훼손된 극장 건물. 

 

천장 작업을 마친 극장 복도. 

 

10년이 넘도록 지지부진했던 재생 작업은 화재 사건 이후 가속도가 붙었고, 2019년 9월 개장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복구 후 극장 복도 풍경. 

 

흔적만 있던 입구를 완벽하게 되살렸다. 극장 입구. 

 

과거의 드로잉에서 영감을 받아 천장을 꾸민 극장 홀 내부.

 

예술과 건축의 공조
Battersea Arts Centre by Architects Haworth Tompkins

음침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영국 런던 남서쪽 배터시에 자리한, 1893년 E. W. 마운트퍼드(E. W. Mountford)가 만든 시청과 극장은 1974년 배터시 아트센터(Battersea Arts Centre)로 이름을 바꾼 후에도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무너져 내리는 중이었다. 벽이 남아 있던 건물은 비바람에 그대로 노출되어 위험했고, 심지어 2015년 화재 사고까지 일어났다. 건축팀 하워스 톰킨은 2006년부터 이곳을 살리고자 애썼다.  20세기 초 참정권 운동과 노동 운동이 일어났고, 이후 뛰어난 예술가들이 창작 활동을 펼친 유서 깊은 장소였기 때문이다. 배터시 아트센터의 디렉터 데이비드 저브(David Jubb)가 처음 이 건물을 보여주었을 때 건축가는 새롭게 짓기보다 건물의 역사적 의미를 살려 동네 주민과 아티스트들에 아이디어를 구해 재생해보자고 했다. 그을음투성이던 실내 천장은 철골로 덮고 건물에 남아 있던 디자인을 응용한 패턴 조립 타일로 감쌌다. 대신 일부 벽 건물의 역사적 과거를 드러냈다. 아티스트 제이크 틸슨(Jake Tilson)은 건물에 담긴 사건을 주제로 유리 작품을 만들어 바(Bar)를 만들었다.
Add. Lavender Hill, London SW11 5TN, United Kingdom
Web. www.bac.org.uk, www.haworthtompkins.com

 

 

 

 

기차역은 오랜 시간 비워져 있었다. 처음 건축가들이 역을 찾았을 때의 사진. 

 

기차가 가득했던 1939년 역 내부 사진. 

 

입구의 나무 계단은 때론 공연이 열리는 무대로 스크린을 앞에 둔 영화관으로 변신한다. 

 

기차 선로와 플랫폼을 그대로 두었다. 공공 도서관은 2019년 1월 오픈했다.

 

도서관이 된 기차역
LocHal Library By CIVIC architects

기차 선로 옆에 선 건물 모양새가 여전히 기차역을 연상시키지만 간판은 도서관이다. 높이 15m, 가로 90m, 세로 60m의 거대한 공간에는 기차 대신 책이 가득하다. 기차역을 도서관으로 탈바꿈시킨 기적은 건축팀 시빅(CIVIC architects)뿐 아니라 조경, 인테리어 팀이 이룬 쾌거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나무로 만든 계단형 대형 무대. 이는 관객석이 되기도 하고, 공용 책상이 되기도 한다. 또 자연스럽게 전체 공간을 1층, 2층으로 구분한다. 이곳은 기차역에 대한 옛 기억을 복원하거나 회생시키려 하기보다 역설적인 공간이 되고자 한 티가 역력하다. 소음 대신 정적을, 철골 대신 나무를, 먼지 대신 공기 정화 식물로 채운 점 말이다. 공간을 구분할 때도 6개의 대형 직물 스크린이 등장한다. 가로 50m, 높이 15m의 가장 큰 스크린을 치면 완벽한 독립 무대가 만들어지고, 프로젝터를 켜면 도서관은 영화관이 된다. 대형 직물 스크린은 열려 있으면서도 닫힌 느낌을 준다. 여유가 머무는 종착역이다. 
Add. Burgemeester Brokxlaan 1000, 5041 SG Tilburg, Netherlands    
Web. www.lochal.nl, www.civicarchitects.eu

 

 

 

 

 18세기 스페인 건축 스타일을 보존하고 있던 지역의 옛 전당포로 쓰인 대형 가옥. 과거와 현재 사진. 

 

미니멀 스타일로 변화한 분수 정원. 바닥에 대리석을 깔았다. 

 

전체적으로 화이트 컬러로 벽과 천장을 칠했지만 부분적으로 과거의 흔적을 남겼다. 사소한 차이가 재생 건축의 미학을 완성한다. 

 

21세기 미니멀리즘을 더한 집
Granada Monte de Piedad by DTR studio architects

스페인 그라나다의 옛 전당포 건물은 18세기 스페인 건축 스타일을 보존하고 있었다. 수년간 주인 없이 방치된 집은 옛 모습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볼품이 없었지만, 건축팀은 이 장소에 들어서자마자 스칸디나비안 가구를 들여와도 어울릴 만큼 미니멀한 인테리어에 최적화되어 있다고 판단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장소는 아치형 회랑이 있는 중정. 덤불과 잡초가 2층까지 자라났지만, 남아 있는 조각 분수는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오래된 건축물을 재생할 때는 무엇보다 과거의 그림자가 스며 있는 건축 재료와 구조를 조심스럽게 살펴야 한다. 최초로 건물을 지은 건축가의 의도를 상상해도 좋지만, 중요한 것은 과거를 그대로 옮기는 ‘복원’이 아니라 현재의 시간을 삽입하는 ‘재생’의 과정. 현대인의 화법에 맞는 디자인, 그에 따른 재료, 사는 이의 습관을 고려해 다시 조각하는 것이 재생 건축이다. 과거와 현재가 한 몸처럼 어울리는 분위기를 내기 위해 전체적으로 화이트 컬러로 벽과 천장을 칠하고, 문양으로 멋을 낸 계단과 바닥은 대리석으로 단정하게 통일했다. 분수가 있는 중정 바닥에도 대리석을 깔았다. 과거의 둔탁한 외관을 벗겨내는 것은 이런 작은 차이에서 비롯된다. 
Add. Carrera del Darro, 51, 18010 Granada, Spain
Web.www. dtr-studio.es

 

 

 

 

원래 건물 뒤로 연결 통로를 두고 수직으로 솟은 신식 건물을 만들었다. 

 

종교가 다른 커뮤니티 사이의 분쟁이 끝이지 않던 시장. 

 

히잡을 쓴 여인과 그렇지 않은 이들이 함께 모이는 연결 통로. 

 

평화로운 느낌을 주는 입구.

 

평화의 시장
Melilla Central Market by Ángel Verdasco Arquitectos

스페인 마드리드에 터를 잡고 있는 건축가 앙헬 베르다스코에게 도시 멜리야(Melilla)의 시장을 교육 시설로 바꾸는 프로젝트는 거대한 도전이자 부담이었다. 도시 멜리야는 아프리카 북쪽 끝, 모로코 위에 위치한 스페인 자치 도시로 천주교, 무슬림, 유대인의 세 커뮤니티가 끊임없이 분쟁과 소란을 일으키는 곳이기 때문이다. 시장 또한 90년간 운영하다 2003년 충돌의 핵심지가 되어 폐쇄했다. 이런 위험한 장소를 어떻게 아이들이 오가는 교육 시설로 바꿀 수 있을까? 그의 결정은 수평으로 쭉 뻗은 옛 시장 건물 위로 높은 층을 만들고, 건물 뒤 또 하나의 수직 구조 건물을 세운 후 과거와 현재의 건물을 연결 통로로 잇는 것이었다. 신식 건물에 오르면 사방의 창을 통해 충돌하는 세 지역이 모두 내려다보이는데, 격자무늬 파사드 때문에 풍경은 달리 보인다. 하나의 창 안으로 천주교 지역과 무슬림 지역이 함께 보이는 식.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를 바꾸고 싶은 것이다. 건축가는 오랜 시간 침묵하던 입구에 힘을 쏟았다. 순백의 벽과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이 순간 현실 밖 다른 차원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준다.
Add. Calle García Cabrelles, 16, 52002 Melilla, Spain 
Web. www.lacentral.com, www.angelverdasc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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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계안나PHO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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