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너와 나의 연결 고리

기업과 개인, 리더와 구성원이 연대하던 시대는 지났다. 개인과 개인이 연대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내는 ‘Connection 2.0’의 시대.

2019.04.24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

 

따로, 또 같이 써 내려간 책
칼럼니스트 이명석 X 칼럼니스트 박사

별일이 없을 땐 늘 만나 일상을 함께한 지 어언 20여 년이다. 가족보다 더 가까워 보이는 이들은 칼럼니스트 이명석과 칼럼니스트 박사다. 이명석은 이성적이고 분석적이다. 박사는 감성적이고 직관적이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고양이를 좋아하고, 여행을 즐기며 글을 쓴다. 다르면서도 비슷한 성향의 이명석과 박사는 상대방을 밀어주고 당겨가며, 넘치는 부분은 나눠주고 빈 부분은 채워가며 함께 책을 쓰고,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서로를 완성한다.

 

책 <도시수집가>의 연장선상으로 진행한 전시에서 선보인 보드 게임판.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를 모티프로 제작했다.

 

어떻게 처음 만나게 되었는가? 25여 년 전쯤 이명석이 잡지 창간을 준비했다. 당시 대학교 교지 편집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학생이었던 박사가 응답자로 참여한 것이 첫 조우다. 이후 여러 필자가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각자 참여하며 필자 모임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이후 1년 정도 같이 웹진 <스폰지>를 만들며 업무적인 부분에서도 신뢰를 쌓았다. 회사를 정리한 후에도 함께 일한 시간을 발판 삼아 작업을 같이하게 됐다. 


함께 작업하는 방식이 독립적이면서도 공동체적이라고 들었다. 어떤 식으로 함께 작업하나? 서로의 작업 과정에 대해 일절 터치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책을 공동 집필하면 큰 주제와 각자 쓸 분량만 정하고 알아서 글을 쓰고 나중에 한 권의 책으로 엮는다. 서로의 능력을 신뢰하기에 가능하다. 덕분에 같은 주제를 서로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글을 한 권의 책에 실을 수 있다. 

 

최초로 함께 펴낸 책인 <고양이라서 다행이야>를 비롯해 가장 최근작인 <은하철도 999, 너의 별에 데려다줄게> 등 함께 저술한 책 중 일부. 

 


지난 1월 출간된 두 사람의 신작 <은하철도 999, 너의 별에 데려다줄게> 역시 마찬가지인가? 그렇다. <은하철도 999, 너의 별에 데려다줄게>는 두 사람의 유년기에 방영되었던 만화 <은하철도 999>를 중심으로 어린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에세이다. 주제별 총 4부로 구성돼 있으며 한 부 안에는 이명석, 박사 순으로 글이 나뉘어 있다. 우리 책을 읽는 독자의 반은 책을 읽는 순간 누구의 글인지 분간이 간다는 하고, 반은 한 사람이 쓴 것 같다고 평한다. 우리의 작업물이 각자의 개성이 살아 있으면서 또 함께 엮었을 때 이질감 없이 조화된다는 의미라 생각한다. 

 


성향이 다른 둘이 만나 함께 작업하며 갈등은 없는지 궁금하다. 20여 년이나 함께 작업했는데 갈등이 없을 리 없다. 처음엔 많이 싸웠다. 그러나 오랜 시간 일상을 공유하며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주기에 계속 함께할 수 있었다. 사실 포기했다는 말이 더 맞다(웃음). 

 

 이명석과 박사. 특별한 일이 있지 않으면 늘 함께 시간을 보낸다. 

 

대학생들 사이 우스갯소리로 ‘조별 과제에서 배울 수 있는 건 오직 사회주의가 실패한 이유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구성원들 사이에서 불만이 새어 나오지 않는 공동 작업을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함께 작업하며 불만은 없었는지. 우리는 각자가 더 잘하는 방식으로 서로를 채워준다. 단적인 예로 이명석은 여행을 다닐 때 정확한 스케줄과 동선에 따라 같은 시간 내에 최대한 효율적으로 여행하길 좋아한다. 박사는 여행지의 분위기를 즐기고 사색에 젖기를 좋아하는 타입이다. <나에게, 여행을>을 집필하기 위해 함께 여행을 갔을 때 이명석이 대부분의 일정과 동선을 짰다. 불만이 생길 법한 상황이지만 박사는 여행지의 모습을 충실하게 기록으로 남겼다.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고, 스크랩을 하고, 글을 쓰며 한 권의 노트를 빼곡하게 채워 완성했다. 서울에 온 뒤 집필할 때 필요한 자료집이자 추억의 트리거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록물을 만든 셈이다.  

 


함께일 때만 가능한 부분에 대해 말해달라. 어떤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 서로의 장점과 약점, 그리고 성향을 정확히 아는 누군가에게 상의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박사가 5년째 진행하는 ‘책 듣는 밤’이라는 낭독회가 있다. 시작은 ‘누군가에 책을 읽어주고 싶다’라는 단순한 욕망이었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하던 차에 이명석이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그뿐 아니라 낭독회의 이름도 지어주고 포스터도 만들어줬다. 반대로 이명석이 진행하는 마작 모임이 있다. 사람들을 모아 마작을 가르쳐주고 함께 즐기기도 하는 모임이다. 박사 역시 마작을 어느 정도 즐기기에 이 모임의 조교로 참여하며 이명석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둘 다 모임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데 새로운 모임을 시작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덜하다. 일단 둘의 취향만 맞으면 모임을 위한 최소 단위가 충족되는 거니까. 혼자였으면 시작 자체가 부담스러웠을 일도 한결 편안하게 벌일 수 있다.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음악
뮤지션 이이언 X 뮤지션 이능룡

차가운 그늘이 드리워진 곡을 선보이는 ‘못’의 이이언과 서정적인 멜로디로 감성을 자극하는 ‘언니네 이발관’의 이능룡이 그룹 ‘나이트오프’를 결성했다. 서로 다른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이던 이들이 잘 결합할 수 있을까란 의구심이 무색하게 누구 하나가 튀지도, 묻히지도 않는 음악이 탄생했다. 이이언과 이능룡이란 두 뮤지션이 만든 음악이 아닌 나이트오프라는 하나의 뮤지션이 만든 곡이라 칭할 수밖에 없는 음악들로 앨범을 채웠다. 모든 곡을 공동 작곡, 편곡을 한다는 이야기에 이유를 물었다. 답은 명료했다. “처음부터 그룹의 목적은 하나였어요. 함께해야만 만들 수 있는 음악을 선보이자.”

 

오랜 세월 함께한 흔적이 묻어 있는 이능룡의 기타.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룹 활동을 약속했다고. 맞다. 2012년 겨울 지인의 소개로 처음 술자리를 갖게 됐고, 그날 그룹 활동을 하자고 약속했다. 물론 그전부터 서로의 존재를 알고 상대의 작업물에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처음 얘기를 꺼낸 후 만날 때마다 그룹 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몇 년이 지나 각자 몸담고 있던 그룹 활동이 긴 휴식기를 갖게 되었고 지금이 타이밍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이트오프의 음악 중 ‘예쁘게 시들어가고 싶어 너와’란 곡에는 ‘해로운 희망을 다 끊고서 예쁘게 시들어가고 싶어’란 가사가 등장한다. 생각지 못한 단어가 만나 신선한 가사가 된 것처럼 두 사람의 결합 또한 비슷한 느낌이다. ‘못’과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만 들어본 이들이라면 우리 둘의 음악적 성향이 전혀 다를 거라 오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룹 활동에 가려져 있던 부분이 있다. 처음 공동 작업을 시작할 때 개인적으로 진행한 작업을 함께 들어보았다. 이능룡의 작업물 중에 생각보다 어두운 것들이 있더라. 물론 작업물의 성향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호오(好惡)에 있어 기준점이 비슷하다. 그래서 자신의 스타일이 아닌 음악을 들을지라도 ‘이 음악이 좋다 혹은 별로다’라고 생각하는 포인트는 유사하다. 만약 한 사람은 이 음악이 정말 좋다고 느끼는데 다른 한 사람은 전혀 납득하지 못한다면 힘들었을 거다. 

 

처음 본 순간 그룹 결성을 결정했을 만큼 서로에게 확신을 느낀 두 사람. 


‘둘이 함께해야 완성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모든 곡은 공동으로 작곡 및 편곡을 한다고. 곡을 만드는 과정이 궁금하다. 처음 곡을 만들 때 각자 러프하게 진행한 작업물을 보여준다. 서로의 작업물을 보고 좋다고 느끼는 것을 선택하고 그중에서 하나를 골라 구체화한다. 모티프가 정해지면 한 사람이 조금 더 발전시켜 상대방에게 보여주고, 발전된 멜로디를 가지고 상대방은 다시 발전시키는 식으로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곡을 완성해간다. 각자가 만든 덩어리를 붙이는 게 아닌 하나의 구심점을 가지고 살점을 겹겹이 붙여가는 셈이다.

 

나이트오프의 첫 EP 앨범 <마지막 밤>.  


함께 진행한 작업물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은 무엇인가? 나이트오프로서 처음 대중에 선보인 곡 중 하나인 ‘오늘의 날씨는 실패다’이다. 작업할 때 부분부분은 무리 없이 완성했지만 어떻게 하나의 곡으로 완성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이언이 마치 바늘과 실로 천 조각을 꿰매듯 하나의 곡으로 만들어냈다. 


그룹 ‘나이트오프’에는 리더가 없다. 동등한 입장에서 함께 일한다는 것, 오히려 어렵지 않은가? 리더의 존재에는 장단점이 있다. 일단 리더가 있으면 그룹을 이끌며 그룹 활동에 추진력을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잘못된 판단을 했을 때 견제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맹점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나이트오프는 서로의 의견을 눈치 보지 않고 말하고 조율해나갈 수 있다.

 

함께 진행한 작업 과정을 기록한 작업 노트. 


최근 들어 ‘나이트오프’처럼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연대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각자의 개성이 중요하며 스스로의 개성을 포기하지 않는 시대다. 예전과 같은 수직적인 관계의 협업은 지금의 시대와 맞지 않는다. 동등한 위치의 개인과 개인이 연대해 작업물을 만들어가는 사례가 점점 더 늘어날 거라 생각한다.

 

 

 

서로의 생활에 스며드는 그림과 커피
일러스트레이터 이마리아 X 바리스타 이민선

익선동의 카페 식물에서 매니저로 일하던 이민선과 비주얼 작업을 담당하던 일러스트레이터 이마리아가 한 지붕 아래 들어섰다. 이민선이 지은, 바리스타를 한국적으로 표현한 단어인 커피사와 일러스트레이터 이마리아의 이름을 따 지은 ‘커피사 마리아’라는 공간 안에서 이들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를 변화시킨다. 커피를 잘 몰랐던 이마리아는 이제 아침마다 이민선이 내려주는 향긋한 커피를 즐기고, 간단한 스케치를 끄적이던 이민선은 구아슈, 아크릴 등을 이용해 자신만의 작품을 그려내고 있다.

 

이민선이 커피를 내릴 때 사용하는 도구들. 커피사 마리아의 커피메뉴는 모두 드립으로 내린다.

 

함께 커피사 마리아를 차리기 전엔 그렇게 친밀한 사이가 아니었다고. 카페 ‘식물’이란 연결 고리와 일러스트 클래스를 통해 서로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큰 친분이 있었던 건 아니다. 커피사 마리아를 함께 차리게 된 동기는 단순하다. 둘 다 같은 시기에 각자 카페와 작업실로 사용할 새로운 공간이 필요했고 식물의 루이스 박 대표가 함께 공간을 꾸려가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서로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큰 고민 없이 결정했고 한 달 만에 지금의 커피사 마리아를 오픈했다.


동기는 단순했지만 현재의 커피사 마리아는 을지로의 인기 공간으로 자리 잡으며 순탄하게 항해 중이다. 비결을 말해달라. 커피사 마리아는 이민선이 정성스럽게 드립으로 내려주는 커피를 맛볼 수 있는 카페이자 이마리아가 그림을 그리고 클래스를 운영하는 작업실 역할을 겸한다. 한 공간 안에서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손님들이 공간을 매력적으로 느끼는 포인트 아닐까. 커피를 마시러 와서 이마리아의 일러스트를 감상하고 타이밍이 맞으면 클래스도 들어볼 수 있다. 반대로 일러스트 클래스를 들으러 와서 이민선이 내려주는 맛있는 커피를 맛볼 수도 있고. 

 

 커피사 마리아의 전경. 이마리아의 작업 공간과 이민선의 작업 공간. 거리가 가까워 평상시에 자주 대화를 나누며 일상을 보낸다.

 

이마리아는 중앙의 테이블에서 작업을 하고, 이민선은 커피 바에서 커피를 내리며 끊임없이 대화한다고. 한 공간 안에서 긴 시간을 함께 보내며 서로에게 주고받는 영향에 대해 말해달라. 서로의 작업에 영감이 된달까. 예를 들면 커피사 마리아의 메뉴 중 하나인 마리아는 이마리아가 예전에 여행지에서 맛본 라벤더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힌트를 얻어 만든 라벤더 밀크티다. 이마리아 역시 평소 이민선과 나누는 대화 안에서 작품의 모티프를 얻기도 한다. 일뿐만 아니라 생활의 영역에서도 영향을 받는다. 커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이마리아가 매일 아침 이민선이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며 커피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간단한 스케치 정도를 취미로 삼던 이민선은 이마리아가 작업하는 모습을 보고 대화를 나누며 자연스레 다양한 미술 재료를 접하게 되었고, 보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려보고 있다. 

 

 이마리아의 작업 테이블에서 발견한 작업의 흔적. 이 공간에서 개인 작업, 외주 작업 및 일러스트 수업을 진행한다.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이라도 함께 공간을 꾸려나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시작했는데 부딪치는 부분은 없나? 이민선과 이마리아 모두 공간, 자연, 식물, 음식에 관심이 많고 색채 취향이 비슷해 커피사 마리아를 꾸려가는 데 큰 트러블은 없다. 물론 자잘한 의견 충돌은 있다. 그럴 땐 누군가 말한다. “맥주 한잔하러 갈래?” 이야기를 나누자는 우리만의 암호다. 맥주 한잔 마시며 이야기를 통해 해결한다.

 

이마리아의 작업물. 커피사 마리아 곳곳에서는 이마리아의 작업물을 감상할 수 있다. 


10년 뒤 두 사람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언젠가 한번 비슷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다. 그때 나온 이야기가 만화책 <주말엔 숲으로> 속 등장인물처럼 지내지 않을까 말했다. 귀농에 로망이 있는 이민선은 시골에 정착하고 마리아는 도시에 계속 머무르며 종종 도시의 문물(?)을 보내줘 이민선과 도시를 연결해주는. 서로 원하는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되 나름의 방식으로 교류를 이어가지 않을까. 

Cooperation 망원동내커피 창비점(카페창비), 뮤직앤크리에이터랩 

 

 

 

 

더네이버, 피플, 인터뷰

 

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양성모

아이매거진코리아닷컴, 더네이버, 동방유행
©imagazinekorea.com,
©theneighbor.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