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비로소 보이는 최재림

노래 잘하는, 성량 깡패. 뮤지컬 배우에게 더할 나위 없는 칭찬이지만, 그를 이 작은 테두리 안에 가두는 건 옳지 않다. 얼마 전 무대에서 만난 그는 정확히 달라졌다. 그 대가인 듯 한국뮤지컬어워즈 남우주연상도 뒤따랐다. 여유와 즐김의 맛을 알아버린 배우 최재림을 비로소 만나다.

2019.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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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타이 셔츠와 턱시도 재킷, 와이드 팬츠는 모두 카루소, 슈즈는 오디너리 피플.

 

188cm의 훤칠한 키, 성악을 전공한 성량 깡패. 뮤지컬 마니아가 아닌 이상 최재림에 대해 아는 단서라야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아직도 많은 대중은 그를 TV 예능 <남자의 자격> 합창단 편에서 음악감독 박칼린의 보조 선생님으로 출연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로부터 어느덧 10여 년. 최재림에게 2019년은 더욱 특별한 한 해다. 뮤지컬 <마틸다>를 통해 ‘제3회 한국뮤지컬어워즈’ 남우주연상이라는 기분 좋은 시작을 열었고, 짜 맞추기라도 한 듯 데뷔 10년을 맞았다.   


2월 11일. 6개월여에 걸친 <마틸다>의 마지막 공연을 마친 다음 날이었다. 그는 백팩을 멘 채 약속 시간보다 일찍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무대 위를 압도한 괴팍한 교장 선생님은 어느새 사라지고 화장기 없는 말간 일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회식요? 가볍게 하고 왔죠(웃음).” <마틸다>의 마지막 공연이 끝났고, 반년의 시간을 함께한 배우, 스태프와 회식을 치른 터다. 흐트러졌을 법한 마지막 공연의 다음 날이지만 살짝 피곤해 보이는 얼굴만이 마지막 공연의 후기를 말해주는 듯했다.   


정확히 5개월. 최재림은 세상에 없는 못되고, 괴팍하고, 더구나 못생긴 트런치불 교장 선생님으로 살았다. 세계적인 작가 로알드 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마틸다>는 어린 소녀 ‘마틸다’가 어른들을 향해 던지는 유쾌한 블랙 코미디. 당연히 주인공은 ‘마틸다’다. 한데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흔히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남우주연상은 주인공 역할에게 돌아갈 확률이 크다. 그 점에서 더욱 호기심이 생긴다. 대체 트런치불 교장으로 어떤 무대를 펼쳤기에?

 

 

 

남우주연상에 빛나다  
“<마틸다>는 공연 자체가 재미있어요. 단순하고 뻔한 내용 같지만, 쉽고, 공감이 가고, 현실과 동화적인 비현실이 공존하죠. 아역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게 어렵지 않았느냐고요? 전혀요. 연습을 포함한 7개월 반의 시간 동안 옆집 아이들과 장난치듯 즐겁게 한 것 같아요. 일부러 제가 더 애처럼 굴었죠(웃음).” 가장 어른스러운 마틸다와 오히려 어른스럽지 못한 어른이 등장하는 뮤지컬 <마틸다>. 최재림이 맡은 트런치불은 말대답을 하거나 명령에 따르지 않는 아이들을 가혹하게 괴롭히는, 한마디로 못되고 괴팍한 교장 선생님이다. 거대한 풍채에 못생긴 외모까지 더해져,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캐릭터다. 사실 원작의 트런치불 교장은 ‘미스 트런치불’, 즉 여성 역할이다. 한데 한국 공연에서는 남성 배우로 바뀌었다. 여성 연기를 남성 배우가 연기한다는 독특한 설정과 더불어 고난도의 노래를 소화해야 하는 역할의 특성상 가장 공들여 캐스팅한 역할 또한 미스 트런치불이었으니. 이 독보적인 캐릭터를 최재림은 그야말로 완벽하게, 아니 너무도 편안하게 소화해낸다. 튀려면 충분히 더 튈 수 있는 캐릭터지만 적절한 밸런스와 위트로 무대 위를 즐겁게 유영한다. 이 때문일까. 이 못된 교장 선생님은 어느 순간 친근하고 귀엽기까지 하다. 쪽 찢어지는 하이톤의 목소리로 아이들을 ‘버러지!’라 외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말이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유쾌한 풍자와 위트를 던지는 <마틸다>. 그 틈에서 트런치불 교장은 단연 압도적이다. 아역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이 공연에서 남우주연상이 탄생한 것은 얼핏 이례적이지만, 마땅한 결과다. 마지막 공연까지 무대를 꽉 채웠던 <마틸다>의 열기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이 점에 모두 동의할 것이다. 

 

 

로고 플레이 패턴의 셔츠는 펜디, 안에 입은 화이트 톱은 코스, 팬츠는 CK 캘빈클라인 진, 플로피 햇은 큐 밀리네리, 슈즈는 오디너리 피플.

 

최재림을 ‘듣다’
“원래 이 공연은 1년여 전부터 기획했는데 우연치 않게 남우주연상 수상과 데뷔 10주년이라는 시기가 딱 맞아떨어졌어요.” <마틸다>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그는 또 다른 무대를 준비 중이다. 최재림의 첫 단독 콘서트 <The VOICE: 최재림을 듣다>가 3월 9일과 10일 이틀간 백암아트홀에서 열린다. 물론 데뷔 10주년을 기념해 기획된 콘서트는 아니라고 그는 덧붙인다(정확히 첫 단독 콘서트는 아니다. 일본 도쿄에서 이미 콘서트를 두 차례 연 적이 있다). 


“70~75%는 뮤지컬 넘버로 채워질 예정이에요. 사실 뮤지컬 넘버는 작품 안에서 가장 빛날 수밖에 없어요. 한 곡 한 곡 떼놓으면 전달이 잘 안 되거든요.” 극의 흐름과 함께 감정이 달아오를 때, 뮤지컬 넘버가 더욱 아름답게 들리는 것은 그 순간을 관객 모두가 함께 경험하기 때문이다. 오직 노래로만 어떻게 무대를 빛나게 할 것인가, 제한된 악기와 사운드로 음악의 성격을 어떻게 색다르게 연출할 것이냐. 음악감독이자 연출가인 박칼린이 연출을, 김성수 음악감독이 편곡을 맡으며 최재림의 고민을 함께 절충 중이다. “<에드거 앨런 포우>, <노트르담 드 파리>, <킹키부츠>, <에어포트 베이비>, <지킬앤하이드> 등의 뮤지컬 넘버를 비롯해 제 음악적 뿌리이기도 한 성악적 필을 보여줄 수 있는 오페라 <투란도트>의 ‘네순 도르마(Nessun Dorma)’를 록 버전으로 편곡한 곡 등 다양한 곡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최재림과 함께한 뮤지컬 넘버, 재즈, 팝페라, 여기에 그가 멤버로 참여한 3중창 팝페라 그룹 ‘마티니’의 첫 무대도 함께 곁들일 예정이다. 이 특별한 공연에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티켓 오픈과 함께 이미 800여 석이 매진됐다는 소식. 어쩌면 촉을 잔뜩 세우고 빈 좌석을 공략하려는 민첩한 자세가 최재림의 10년 내공을 들을 기회를 열어줄지도 모른다.  

 

 

진 재킷은 뮌, 함께 입은 티셔츠와 팬츠는 CK 캘빈클라인 진, 슈즈는 닥터마틴, 실버 링과 브레이슬릿은 트렌카디즘.

 

10년, 함께 성장해온 시간들   
“성악 전공자로서 뮤지컬, 무용에 대한 배경 지식이 전무했어요. 당연히 연기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죠. 무대에서 음악이 없는 순간이 찾아오면 너무 두려웠어요. 발가벗고 광화문을 걸으라는 지령을 받은 것처럼요.” 성악을 전공한 그에게 연기는 큰 두려움이었다. 데뷔 3년째, 그는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2년간 잠시 무대를 비웠다. 2015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로 다시 돌아온 지 정확히 3년. 최재림은 남우주연상이라는 빛나는 영광을 거머쥐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어마어마하게 연기가 늘었다기보다는 무대 위에서 몇 가지 두려움이 조금은 없어졌어요. 연습 시 디렉션을 받을 때 알아듣는 깊이가 달라지기도 했고요. 정답이 맞든 아니든 배우가 무대 위에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아요.” 이제 그는 더 이상 노래 잘하는 최재림이 아니다. 사실 이번 무대에서는 오히려 연기가 더 빛난다. 그리고 나는 그 틈에서 최재림의 ‘여유’와 ‘자신감’을 보았다. 무대 위의 최재림은 어느 때보다 즐겁고 편안해 보였다. 그가 떨쳐낸 것은 작은 두려움이지만, 그 안에서 그는 고농축의 여유를 터득해버린 듯하다. 사실 그는 오늘 인터뷰 촬영에서도 ‘최재림이 이토록 얼굴을 잘 쓰는 배우였던가?’ 싶을 만큼 많은 표정 연기를 보여줬다. 여느 배우의 인터뷰였다면 아마도 가장 멋지고 시크한 표정만 담았을 것이다. 하지만 ‘빙구’ 같은 모습을 더 좋아한다는 최재림의 바람(?)처럼 변화무쌍한 표정의 그를 담아내고 싶었음을 밝힌다. 어쩌면 그것은 최재림의 또 다른 자신감일지도 모른다.     

 

 

안에 입은 톱과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스트링 팬츠는 펜디.

 

유쾌한 재림 씨 
사실 그를 만나기 전, 방송에 얼핏 소개된 표정과 스타일을 토대로 완벽주의의 냉철한(?) 이미지를 떠올렸다. “저는 예민함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아요. 사람들이 츤데레라고는 해요. 혹독하게 친절하게(웃음).” 실제 가까운 스태프의 말을 들어보아도 그는 냉정한 완벽주의자라기보다는 배려의 아이콘에 가깝단다. 그렇다고 티 나게 배려하는 스타일은 못 된다. 그래서 ‘츤데레’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저는 항상 타협합니다(웃음).” 상황에 막혀 원하는 연출이 되지 않을 경우, 고집을 피우는 대신 타협을 선택한다는 최재림. 그와 같은 공간 안에 30분만 있어도 그가 얼마나 털털하고, 의외의 장난기를 겸비하고 있는지를 금세 눈치채게 된다. 하지만 배우로서의 심지를 이야기할 때는 이내 장난기를 지우고 다시 겸손하고 진지한 표정의 그가 나타난다. 

 
“배우로서 다른 매체의 연기, 콘서트 등 다른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그 순간이 오기 전에 얼마나 준비되어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단, 원래의 뿌리를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죠. 제 재능의 큰 틀은 ‘음악’이고, 나를 향한 사람들의 인정이 무엇으로부터 오는지 잊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죠.” 뿌리, 근원을 이야기하는 그의 화답 앞에 문득 궁금해졌다. 대체 노래를 잘한다는 건 뭘까? “박자와 음정과 각 음에 알맞은 좋은 소리를 내고, 전체 노래의 오라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얼마만큼 즐길 것인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저요? 저는 잘하고 있죠(웃음).” 그는 농담처럼 웃으며 말했지만, 우리 모두는 그가 얼마나 노래를 잘하는지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2009년 뮤지컬 <렌트>로 데뷔,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유다, <킹키부츠>의 여장 남자 ‘롤라’, <노트르담 드 파리>의 음유시인 그랭구와르, <에어포트 베이비> 속 입양아까지. 최재림은 늘 평범한 역할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말마따나 지난 10년은 함께 성장해온 시간이었다. 이제 마음껏 그가 원하는 배역을 할 수 있는 위치이지 않느냐고? “아휴, 지금도 오디션에 떨어지는데요?(웃음) 다만 떨어진 후의 생각은 달라졌죠. 자만 섞인 대답을 하자면, 요즘에는 ‘나랑 이미지가 안 맞았구나’ 해요(웃음).” <미스 사이공>, <노트르담 드 파리> 등 그 역시 수많은 오디션에 떨어졌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남우주연상 수상은 잠깐의 기쁨일 뿐 그는 여전히 모든 배우들과 함께 오디션에 참여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일 뿐이다.

무대 위의 분장을 지우고 지난 10년의 시간을 이야기하듯 홀로 무대에서 오직 노래로만 관객을 맞게 될 최재림. 그는 걱정이라고 말했지만, 자신 있다는 말로 들렸다. 진지함의 무게를 내려놓고 ‘여유’와 ‘즐김’의 맛을 제대로 알아버린 배우 최재림에게 무엇이 더 필요할까. 

Hair 아인 Makeup 나라 Stylist 김수정

 

 

 

더네이버, 인터뷰, 최재림

CREDIT

EDITOR : 설미현PHOTO : 김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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