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불평등이 몸에 새겨지는 방식

‘지식의 전쟁터’. 사회역학 연구자 김승섭은 왜 우리 몸을 그렇게 칭했을까. 왜 어떤 지식은 생산되고, 어떤 지식은 생산되지 않는가? 신작 <우리 몸이 세계라면>이 답할 차례다.

2019.02.27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

 

‘사람이 하는 일’. 이 말에는 두터운 불신이 깔려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이잖아”라는 말은 우리가 그 안에서 실수, 욕망, 의도, 무지 등등을 발견할 것이라는 경고다. 그 말은 불완전하고, 편향되어 있고, 어처구니없더라도 네가 이해하라, 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모자란 존재인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그 반대편에 놓이는 것이 보통 과학, 의학이다. 객관적이고 냉철한 ‘사실’만이 존재하는 세계. 불완전한 사람이 영향을 끼칠 여지가 없는 세계 말이다. 사람이 어떤 마음을 품든 만유인력은 존재하며,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든 암세포는 제 나름의 법칙에 따라 증식하지 않는가. 그에 대처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같은 ‘사실’뿐이다. 작용 원리에 대한 지식만이 ‘세계’를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또한 사람이 하는 일임을, 이 책은 조목조목 지적한다. 저자의 한결같은 사명감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작업이다. 저자인 김승섭은 연세대학교에서 학사를, 서울대학교에서 석사를,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며 착실하게 지식인의 길을 걸어왔다. 그는 박사과정 학생일 때, 학위를 받고 나면 어떤 주제를 연구할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사회적 약자의 건강을 연구하는 사람의 수는 적고, 필요한 연구는 너무나 많다. 이곳에서 배운 방법론으로 한국 사회의 절박하고 중요한 문제를 연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이후 행보는 말 그대로 왜 ‘한국에서 사회적 약자의 건강을 연구하는 사람의 수는 적고, 필요한 연구는 너무나 많은가’ 검증하는 과정에 다름 없다. 그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연구지원을 받는 데 여러 차례 실패하고, 크라우드펀딩으로 간신히 연구비를 마련해가며 단단한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그의 성과는 현재의 제도 안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고유한 문제를 한국어로 고민하고 쓰는 연구자들이 오늘날 대학에서는 가장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특히 한국에서 사회적 약자에 관해 연구하는 경우 더욱 도드라집니다”라는 그의 말은 담담하지만 척박한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런데 왜? 과학과 의학의 발달은 인간의 삶이 더 나아지는 데 기여해왔고, 인간의 지식이 늘어난다는 건 그게 누구든 혜택 받을 여지가 확장된다는 것 아닌가? 이러한 질문이 얼마나 나태한 것인지는 페이지를 넘길수록 분명해진다. 의학 연구에 편견과 자본의 힘이 얼마나 강력하게 개입하는지, 저자는 1120편의 논문과 300여 편의 문헌을 통해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어째서 백해무익한 담배가 의학계의 지지 속에 승승장구하는지, 어째서 여성의 건강에 대한 연구는 남성의 몸에 대한 연구에 비해 지지부진한지, 어째서 특정 질병의 신약은 눈부시게 발전하는데 다른 질병을 치료하는 약은 도외시되는지. 의학 안에 도사린 날것의 욕망을 들여다보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인 제약회사가 약을 개발했을 때 거둬들일 수 있는 이윤은, 어떤 약을 개발할지와 그 약을 만드는 데 필요한 지식을 생산할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지식은 생산되고, 어떤 지식은 생산되지 않습니다. 오늘날 지식은 명백히 선별적으로 생산되고 선별적으로 유통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은 중요하다. 저자는 일제 강점기에 이뤄진 인종주의 과학을 다루면서, 어떤 현상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질문 또한 질문해야 한다. 누가, 왜, 그 시기에, 그 질문을 던졌는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한 연구는 어디에 발표되었는가, 그렇게 만들어진 지식은 어떻게 활용되었는가. 누구의 이익을 위해 이용되었는가. 수많은 질문이 은폐된 욕망을 투명하게 드러낸다. 그 모든 일은 지금 현재 일어나는 일이다. 저자는 대규모 재난 현장을 보여주며 그러한 재난 앞에서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묻는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자녀의 대뇌 회백질 크기가 달라진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가난이 어떻게 사람의 존재에 개입하는지 묻는다. 사회의 제도와 차별이 우리 몸 안의 세포까지 변화를 일으킨다는 최신 연구는, 우리의 삶은 물론 죽음 또한 불평등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의 연구는 철저한 질문을 통해 우리가 가야 할 길을 가리킨다. “계속해보겠습니다”라는 그의 마지막 문장이 든든하고 눈물 나는 이유다.

※ 이 글을 쓴 박사는 북 칼럼니스트이다.  

Cooperation 동아시아

 

 

 

더네이버, 북, 우리 몸이 세계라면

CREDIT

EDITOR : 설미현PHOTO : 김도윤

아이매거진코리아닷컴, 더네이버, 동방유행
©imagazinekorea.com,
©theneighbor.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