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글쎄, 언제부터였을까

강남에서 홍대까지 걷는다, 하루 3만 보, 가끔은 10만 보….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이 살아 있음을 실감한다. 그에게는 걷기다. <걷는 사람, 하정우>의 훈풍이 심상치 않다.

2019.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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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뻐근한 매력에 대해서는 나도 꽤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걸어서 탈출한 적이 몇 번 있기 때문이다. 두 다리를 앞으로 내밀며 걷는 단순한 행동이 리듬을 만들고, 그 규칙적인 리듬이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가만가만 가지런히 빗어내린다.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장점이다. 수많은 걷기 예찬자들은 그 효능을 전파하기 위해 지인들을 방에서 끌어내고, 운동화를 신기고, 간증기를 책으로 낸다. 거기에 배우 하정우가 합류했다.


그는 “웬만하면 걸어다니는 배우 하정우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허튼 말이 아니다. 그는 정말 웬만하면 걸어 다닌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러닝머신에서 걷고 작업실이나 영화사까지 걸어서 출퇴근하며, 사람들과는 걸어 다니며 얘기하고 TV를 볼 때는 제자리뛰기를 한다. 개 산책을 시킬 때도 사람보다 개가 먼저 지쳐서 안고 돌아오기 일쑤다. 원 없이 걸으려고 하와이에 수시로 여행을 가고, 평소에 하는 걷기를 이벤트로도 만든다.


찰지게 먹는 ‘먹방’으로 유명한 그는 촬영 시에도 준비된 음식을 아주 맛있게 먹어치우곤 한다. 다른 배우들은 먹는 시늉을 하다 뱉는 경우가 많다는데, 그는 개 사료 먹는 장면을 찍을 때도 먹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스스로 요리하고 끼니를 거르지 않는다. 많이 걷다 보면 배가 고플 수밖에 없다. 그는 덜 먹고 덜 걷는 것보다 많이 걷고 많이 먹는 것을 선택한다. 직업의 특성상 급하게 다이어트해야 할 때도 그는 오직 묵묵히 걷는다. 평소보다 더 많이 걸을 뿐이다.


영화 <터널>을 촬영할 때, 그는 단 5일 만에 체중을 급하게 감량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되었다. 터널 속에 갇혀 먹지도 못하고 3주를 버틴 주인공의 상황을 몸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는 제주도로 건너가 새벽에 일어나 밤늦게까지 걷는 방식으로, 4박 5일 동안 4kg을 뺐다. 제주도의 산바람과 바닷바람을 맞으며 걸은 덕에 수척한 몰골이 된 건 덤. 인상적이었던 건, 제주도를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타러 김포공항으로 향하는 그 길도 걸어서 갔다는 것이다. 아침 7시에 집에서 출발하여 김포공항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 3시 30분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숙소에 짐을 풀고 다시 4시간을 걷는다. 그날 하루는 그렇게 걷기 할당량을 채운다. 철저하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걷기에 관한 한 그는 자신이 한 말을 꼭 지키는 사람이다. 2011년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 시상자로 올라선 그는, 혹시 시상자인 본인이 상을 받으면 어떡할 거냐는 질문에 얼떨결에 “제가 상을 받게 된다면, 그 트로피를 들고 국토대장정에 오르겠습니다!”라는 공약을 건다. 그리고 그는 상을 받는다. 그의 말마따나 “말 한마디로 ‘천릿길’을 걷게 된 셈”이다.


그는 이 공약 실천 행사를 이벤트로 바꾼다. 좋아하는 동료 배우와 친구들을 모으고 다큐멘터리를 찍는다. 서울서 해남까지 577km. 영화감독이기도 한 그에게 <577프로젝트>라는 다큐를 찍은 경험도 특별했을 테지만, 그는 이 지난한 걷기 과정에서 큰 교훈을 얻는다. 그것은 “천릿길 대장정 끝에는 놀랍게도,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 그 후 그는 길의 끝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길 위에서 순간순간 겪는 즐거움과 추억에 집중한다.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한다. “내 몸의 땀 냄새,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꿉꿉한 체취, 왁자한 소리들, 먼지와 피로, 상처와 통증… 오히려 조금은 피곤하고 지루하고 아픈 것들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 별것 아닌 순간과 기억들이 결국 우리를 만든다.”


하정우는 언제부터 그렇게 걸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돌아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오직 걷기밖에 없는 것만 같았던 시절도 있었다. 연기를 보여줄 사람도, 내가 오를 무대 한 뼘도 없었지만, 그래도 내 안에 갇혀 세상을 원망하고 기회를 탓하긴 싫었다. 걷기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았던 과거의 어느 막막한 날에도, 이따금 잠까지 줄여가며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지금도 꾸준히 나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이 점이 마음에 든다.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떻든, 내 손에 쥔 것이 무엇이든 걷기는 내가 살아 있는 한 계속할 수 있다는 것.”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이 살아 있음을 실감한다. 하정우에게는 걷기다. 그가 걷기 예찬을 어찌나 찰지게 늘어놓는지, 나도 새해부터는 다시 길 위에 나서고 싶어진다. 웬만하면 걷고 싶어진다.
※ 이 글을 쓴 박사는 북 칼럼니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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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설미현PHOTO :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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