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은총이 머무는 곳

절망이 희망이 되고, 축복이 영원한 행복이 되는 신성한 기운이 빛처럼 모이는 곳. 건축가들이 자신의 염원을 담아 세계 각국에 지은, 위안과 은총이 머무는 채플 건축물을 소개한다.

2018.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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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일찍 해가 떠오르면 빛은 세로, 가로 직선 오브제를 투과하며 반대편 벽에 십자가 그림자를 만든다. 가장 강한 해가 비치는 정오 때 가장 선명하고 커다란 십자가와 마주할 수 있다. 

 

과거 교회 건물에 사용했던 100년 이상 된 벽돌을 재사용했다. 바닥에 작게 뚫린 구멍 사이로 스며든 빛이 내부를 밝힌다.  

 

움직이는 십자가
Capilla San Bernardo by Nicolás Campodonico 

로마 가톨릭의 성인 베르나르도를 위해 아르헨티나 코르도바(Córdoba) 팜파(Pampa) 평원 지대에 세워진 채플은 흡사 방공호를 연상시킨다. 황량한 초원 위에 조금 난데없이 솟은 건물은 어느 용도의 건물인지 감이 잘 안 잡힌다. ‘카필라 산 베르나르도(Capilla San Bernardo)’ 채플은 그 장소에 있던 교회의 붉은 벽돌을 재활용했다. 차곡차곡 높이 쌓은 벽만 보이는 외부와 달리 내부로 들어가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해가 뜨면 깎인 천장으로 천장에 매달린 가로, 세로 일자 조각상이(십자가가 아니다) 빛과 부딪쳐 반대편 벽에 그림자를 만드는데, 두 개의 직선이 점점 교차하면서 십자가 모양을 형성한다. 그림자는 시간에 따라 움직이며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건축가 니콜라스 캄포도니코(Nicolás Campodonico)는 두 개의 직선이 십자가가 되었다가 동에서 서로 움직이는 모습이 예수가 골고다 언덕에서 나무 기둥을 등에 지고 이동한 성경 스토리를 떠올리게 한다고 설명한다. 빛이 어둠을 만날 때, 커다란 벽돌벽 아래 한쪽 귀퉁이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벅차오른다. 사라지는 십자가처럼 마음의 우울과 걱정도 모두 사라지길 기도한다. 
www.nicolascampodonico.com 주소 La Playosa, C′ordoba, Argentina

 

 

건축가는 보이 스카우 시절 목에 두른 스카프를 연상하며 야외 텐트와 같은 지붕을 덮었다. 지붕을 받치고 있는 것은 12명의 제자를 뜻하는 12개의 나무 기둥이다. 좁은 곳은 입구이고, 넓은 곳은 제단이 놓이는 장소다.

 

가운데 도랑을 파고, 교회에서 샘솟는 물이 십자가로 흐르도록 했다. 저녁 어스름이 질 때 주변은 고요해지고 물이 흐르는 소리만 들리는데, 명상을 하는 기분이 든다. 

 

보이스카우트처럼
Chapel Of Nossa Senhora De Fátima by Plano Humano Arquitectos

어쩌면 채플 건축은 협소한 재료로 충만한 감동을 주는 건축물을 짓는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른다. 최고의 환경과 넉넉한 재료 등 일반 건축물이 누린 환경에서 지은 채플은 왠지 오만해 보인다. 포르투갈의 넓은 평원 지대에 지어진 ‘채플 오브 노사 세뇨라 드 파티마(Chapel Of Nossa Senhora De Fátima)’는 파티마 성모에게 헌사되는 예배당에 합당할 만큼 적절한 규모에 겸손하고 소박한 모양새가 오히려 빛나는 건축물이다. 교회가 없는 곳에 간단하게 천막을 치고 사람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상상되고, 건축가가 내세운 테마대로 캠프 장소 안에 세워진 만큼 보이스카우트 야외 활동의 모든 상황을 그려볼 수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건물 모양은 스카우트 스카프에서 착안했다. 좁은 입구로 들어가면 공간이 점점 넓어지면서 끝쪽 제단 뒤로 시야가 확 열린다. 채플 중심에 직선 도랑을 만들어 채플 밖에 있는 십자가 쪽으로 물이 흐른다. 스카우트 활동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나무로 만든 열두 명의 사도를 의미하는 12개의 나무 기둥, 또 흔히 사용하는 아연을 지붕 보완재로 활동했다는 점도 훌륭한 도전의 결과물이다. 
www.planohumanoarquitectos.com 주소 National Scouts Activities Camp, Idanha-a-Nova, Portugal

 

 

새하얀 지붕을 인 채플은 주님의 날개일 수도, 19세기 네덜란드 건축 양식의 일부일 수도, 신부의 웨딩 베일일 수도 있다. 다양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채플이다.

 

시편 36:7
Bosjes Chapel by Steyn Studio

성경 시편 36장 7절에 이런 구절이 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인생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나이다.” 남아프리카 내 포도와 과실이 자라나는 비옥한 땅 위에 세워진 ‘보스예스 채플(Bosjes Chapel)’은 이 구절을 그대로 떠올리게 한다.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는 스테인 스튜디오(Steyn Studio)의 건축가 쿠체 스테인(Coetzee Steyn)은 장소가 19세기 네덜란드 식민지 농장 지대였던 점에 착안, 네덜란드 건축 양식 문양을 응용해 화이트 컬러의 물결 치는 시멘트 지붕을 만들었다. 물결이 최고점으로 높이 솟는 지점에는 바닥과 지붕을 이어주는 십자가 조각을 배치한 점도 인상적. 제단 뒤 유리창으로 보이는 거대한 산맥과 드넓은 포도원을 시선에 담으면 누군가 “조물주가 완성한 아름다운 자연을 보라!”라고 외치는 것 같다. CIFA 2017 건축상을 탔을 만큼 훌륭한 건축물 때문에 이곳은 결혼식 장소로 자주 활용된다. 지붕이 흡사 신부의 베일을 연상시키는 까닭도 있다.
www.steynstudio.com 주소 Breederiver Valley, R43, Witzenberg Municipality, South Africa

 

 

독특하게 길을 따라 수평으로 건물을 배치했다. 길을 그대로 따라가면 베니스의 바다가 나온다. 테라코타 컬러의 건물은 푸른 숲과도 잘 어울린다. 해가 뜨면 둥근 창으로 해가 정확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설계했는데, 그때부터 아침 예배가 시작된다. 오후 시간에는 둥근 창으로 아름다운 숲이 비친다. 

 

하루가 시작되는 곳
The Morning Chapel by Flores & Prats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듀오 건축 집단 플로레스&프래츠(Flores & Prats)가 완성한 공간답게 얼마 전 공개된 ‘더 모닝 채플(The Morning Chapel)’은 편견 없는 아이디어가 곳곳에 넘친다. 우선 이탈리아 베니스에 떠 있는 작은 섬, 산조르조(San Giorgio) 공원 내에 위치하는 지리적 구조를 살려 건축물을 길과 나란히 배치한 점이 독특하다. 동쪽 방향으로 둥글게 뚫린 구멍 안으로 아침 해가 쏙 들어온다. 그 대신 사람들 앉은 공간은 벽에 막혀 어둡게 해 고요하고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하루의 첫 햇살과 강한 숲 내음에 둘러싸여 시작하는 황홀한 아침 예배. 이곳 이름이 모닝 채플인 이유다. 채플 건축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테라코타 컬러는 이곳을 자연의 일부처럼 보이게 한다. 둥근 모양으로 뚫린 내부는 마치 원시 시대 동굴 같다. 예배당 옆 작은 문으로 나가면 울창한 숲이 이어지고, 채플을 따라 직선으로 난 길을 걸으면 아침 햇살로 반짝거리는 넓은 바다가 나타난다. www.floresprats.com 주소 San Giorgio Maggiore Island, Venice, Italy

 

 

전기 대신 산 아래로 비치는 빛을 최대한 내부에 담기 위해 박공지붕 형태로 디자인했다. 현관 위에는 바이올린 악기에 사용하는 독일 가문비나무로 만든 우드 박스가 놓여 있고 안에 교회종이 들어 있다. 멀리까지 소리가 청아하게 퍼진다. 

 

빛은 천장과 제단 아래 놓인 직선 모양의 블루 컬러 유리를 투과하며 바닥을 푸르스름하게 물들인다. 덕분에 내부 공간은 무척 신비롭다.  

 

양치기의 쉼터
Wirmboden Alpine Chapel by Innauer-Matt Architects

오스트리아 서부 고지대 지역 비름보덴(Wirmboden)에는 목초지를 찾아 이동하는 양치기들이 찾는 작은 교회가 있었다. 그곳은 가축이 안전하게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은총이 가득한 곳이었다. 그러나 2012년, 이곳을 덮친 산사태로 교회가 사라져버렸다. 창문 너머 점처럼 보이는 교회를 보며 마음의 위로를 얻던 아랫마을 사람들은 새로운 교회를 세우기로 뜻을 모았다. 건축 집단 이나우어 마트 아키텍처(Innauer-Matt Architects)는 사람들의 희망과 염원을 꼭 닮은 겸손한 건축물을 만들고자 했다. 제3자의 도움 없이 주민들만의 힘으로 짓자는 것이 건축가의 제안이었다. 모든 재료는 주변에서 구했다. 한 줌의 빛이 공간 전체에 확산될 수 있도록 가장 효율적인 박공지붕 디자인을 쓰기로 했다. 어여쁜 빛은 매달린 십자가 아래로 길게 직선으로 이어진 블루 컬러 렌즈를 통과해 채플 바닥을 은은한 푸른빛으로 물들인다. 닿고 싶지만 닿을 수 없는 어떤 심연의 장소에 서 있는 듯한 분위기. 가문비나무로 만든 현관 위에는 맑은 소리를 내는 종을 숨겨두었다. 6㎡의 소박한 공간이지만 완성하는 데 꼬박 3년이 걸렸다. 
www.innauer-matt.com 주소 6882 Schnepfau, Vorarlberg, sterreich, Austria

 

 

잔디 위에 활짝 펼쳐진 건물 모양은 누구나 이 장소에 들어올 수 있고 주민과 함께 기도를 나눌 수 있다는 의미다. 주민들이 뜻을 모아 함께 디자인했다. 

 

십자가 조각상이 있는 무대가 움푹 꺼져 있어 집중도가 높다. 주민을 위한 예배뿐 아니라 다양한 이벤트도 열린다.  

 

폐허 위에 쌓은 평화
Skorba Village Center by Enota

슬로베니아 도시 류블랴나(Ljubljana)에 터를 두고 활동하는 건축 그룹 에노타(Enota)가 세운 ‘스코르바 빌리지 센터(Skorba Village Center)’는 주민들이 함께 회의를 하고, 이벤트를 하고, 예배를 하는, 공동체의 중심인 장소다. 사실 스코르바(Skorba)는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로 한때 크게 번성했다. 하지만 인근에 산업 도시가 생기면서 베드 타운으로 전락했고, 기형적인 난개발로 점점 생기를 잃고 거의 폐허가 되어버렸다. 뭔가 변화가 필요함을 느낀 것은 주민들이었다. 그들은 건축가를 찾고, 자발적으로 기금을 모으고 직접 건축 공사에 참여했다. 장소는 도시로 나가는 마을 중심 교차로. 종이접기처럼 화이트 컬러의 기하적인 구조를 만들어 잔디 위에 펼쳐 올린 것은 타지인의 이목을 끌고 싶다는 주민들의 의견 때문이다. 십자가 제단이 있는 무대를 중심으로 움푹 꺼진 구조여서 공간에 들어서면 주변 환경이 거슬리지 않는다. 주민 모두의 신념과 평화가 모인 탓에 이름도 그냥 주민 센터다. 
www.enota.si 주소 2288, Skorba, Slovenia

 

 

삼각형꼴의 우드 파사드 내부에는 시멘트 골조 건물이 숨어 있다. 물 위에 부유하는 듯한 구조와 우드 파사드가 동양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채플은 주로 난징 연합 신학교 사제들이 예배를 주최하고, 종종 결혼식도 연다. 

 

교회의 중요한 주제인 ‘빛’을 강조하기 위해 내부는 강한 조명과 자연 채광이 화이트 컬러 벽과 어우러져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하다.   

 

나비 효과 
Nanjing Wanjing Garden Chapel by AZL Architects

중국 도시 난징의 완징 가든(Wanjing Gardens) 내에 있는 ‘난징 완징 가든 채플(Nanjing Wanjing Garden Chapel)’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커다란 나비를 떠올렸다. 삼각형 건물이 중심점을 두고 완벽한 대칭을 이루며 좌우로 펼쳐 있고, 투명한 호수에 떠 있는 덕분에 그 모양이 반사되어 상하로 다시 펼쳐진 것. 호수 건너편에서 보면 완벽한 착시 효과를 준다. 놀라운 점은 또 하나 있다. 이는 파사드로 사용한 우드 패널이 주는 외관일 뿐 실제 내부는 화이트 컬러의 시멘트 건물로 이루어져 전혀 다른 형태라는 것. 내부 또한 완벽한 대칭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AZL 아키텍츠(AZL Architects)는 이를 “로마 판테온과 바실리카 건축물처럼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도록 실내를 부풀린 장방형 건물은 ‘중심’과 ‘깊이’라는 두 요소를 고려해 완벽한 균형을 맞추는 데 해답이 있다”고 해석을 덧붙인다. 흠집 하나 없는 화이트 컬러 벽이 빛을 머금고 전체를 환히 밝히면 그야말로 기적을 생각해보게 된다. 
www.azlarchitects.com 주소 Donghong Line, Lishui Qu, Nanjing Shi, Jiangsu Sheng, China  

 

 

 

 

더네이버, 건축, 채플 건축물

 

CREDIT

EDITOR : 계안나PHOTO : 각 건축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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