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화이트큐브의 이슈메이커들

가을이 오면, 미술계는 뜨겁게 달아오른다. 비엔날레를 비롯한 굵직한 예술 행사들이 대거 열리기 때문이다. 올가을 전시장을 꽉 채워줄 날 선 감각의 이슈메이커, 그들은 누구인가.

2018.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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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무서운 아이들, 기획자 권주연, 큐레이터 안현숙, 작가 손동현 
1990년대 말, 홍대 앞은 대한민국 전위예술의 메카였다. 인디밴드와 클럽이 출현했고, 뒤이어 실험 미술과 이를 전시하는 대안 미술 공간이 곳곳에 자리 잡았다. 그 많은 대안 미술 공간 가운데 ‘쌈지스페이스’의 위상은 대단했다. 올해는 쌈지스페이스가 개관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이자, 폐관 10년이 되는 해다. 돈의문 박물관마을에서는 9월 26일까지 쌈지스페이스를 기억하는 전시 <쌈지스페이스 1998-2008-2018 : 여전히 무서운 아이들>(이하 여전히 무서운 아이들)이 열린다. 이 참신하고 흥미로운 전시의 기획자와 대표 작가를 직접 만났다.   

 

한국의 1990년대 말은 대안 공간의 양적 증가가 두드러진 시기다. 그중에서도 쌈지스페이스를 특별히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안현숙: 1998년 한국은, IMF 파고 속에 해외에서 공부 중인 많은 예술가 지망생이 국내로 복귀했다. 이들을 중심으로 10여 개의 대안 미술 공간이 생겨났다. 그중 기업이 후원하는 대안 공간은 쌈지스페이스가 유일했다. 사기업이 문화예술을 후원하고 지원하는 좋은 선례를 남긴 셈이다. 그 지원 속에 양혜규, 이불, 장영혜, 최정화, 정은영 등 한국 현대미술을 이끈 비엔날레급 작가들을 배출했고,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나, 국제 교류, 신진 작가 발굴 등 현재 미술계가 운용하는 시스템의 원형을 만들기도 했다. 한국 미술계에 남긴 영향으로 보아 한 번쯤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무서운 아이들>을 기획한 계기는 무엇인가?
권주연: 농담 삼아 한 말이 여기까지 왔다. 나(권주연)와 안현숙은 쌈지스페이스의 9기, 10기 큐레이터였고, 함께한 류정화, 송가현 큐레이터와는 경기 창작 센터 레지던시 프로그램에서 만났다. 함께 경기도립미술관에서 일한 인연으로 지금도 종종 만나는데, 작년 가을 만난 자리에서 ‘좀 아쉬운데?’ 하고 ‘실수’로 이야기한 게 계기가 된 셈이다. 솔직히 정말 전시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다. 

전시 중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고 들었다.
안현숙: 앞서 말했듯, 쌈지스페이스는 미술계에 많은 선례를 남겼다. 당시 쌈지스페이스의 기획 프로그램도 그중 하나다. 신진 작가 발굴 프로그램이었던 전시 <이머징(Emerging)>과 중진 작가와 신진 작가들이 짝을 이룬 전시 <타이틀 매치> 등은 현재 많은 갤러리에서 계승해 운영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픽 앤 픽>전을 다시 해보기로 했다. ‘픽 앤 픽’은 선배 작가가 기획자가 되어 후배 작가를 ‘픽’하는 형식인데, (옆에 있는) 손동현 작가의 도움을 받아 재해석했다. 그 외에 토크 프로그램과 워크숍도 진행한다.


권세진과 이은새 작가를 ‘픽’했던데, 선정 이유가 궁금하다.
손동현: 권세진과 이은새는 오래 눈여겨본 작가들이다. 권세진은 먹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점에서 나와 공통점이 있고, 이은새는 소재를 대하는 태도가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만나게 되면, 이야기라도 나눠보고 싶었는데, <여전히 무서운 아이들>이 계기가 되어 함께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  

손동현 작가는 쌈지스페이스의 8기 참여 작가로 스튜디오에 상주하기도 했다. 특별한 기억이 있을 것 같다.
손동현: 쌈지스페이스엔 항상 사람이 북적북적했다. 작가나 전시를 보러 오는 사람들뿐 아니라, 해외 큐레이터, 비평가까지. 그 사람들이랑 자주 어울렸다. 1년간 쌈지스페이스에 상주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을 알게 됐는데, 당시 기획자나 평론가를 꿈꾸던 사람들이 지금은 다 ‘대단한’ 사람들이 되었다. 작가로서 엄청난 커리어를 쌓았다기보다는 눈이 열린 시기라 할 수 있다.


아쉽지만 <더 네이버> 10월호가 발행되었을 땐, 전시가 끝났을 무렵이다. 이 전시의 가장 큰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안현숙: 현재 굉장히 유명하고, 훌륭한 작가들의 초기작을 볼 수 있었다는 것? 엄청 ‘험블’하다(웃음). 그리고 현재 젊은 작가들이 방황하는 면이라든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여러 가지 갈등에 귀 기울이고,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방향을 찾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크다.    


쌈지스페이스의 이름을 건 전시를 또 볼 수 있을까?
권주연: 우리가 자료를 모으고, 누가 구술할 수 있을지 리스트업을 하고, 밑작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일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 언젠가 갤러리나 미술관에서 재조명해주길 바란다. 다행인 건, 현재 미술계에서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을 연구하는 작업이 조금씩 진행되고 있다. 쌈지스페이스를 전면에 내세우진 않겠지만, 다시 언급되고, 다시 회자될 거다.

 

1 <여전히 무서운 아이들>에서는 양혜규, 장영혜, 최정화 등 쌈지스페이스 출신 현대미술 작가들의 초기작이 전시됐다. 2 이불의 1994년 작 ‘여성, 그 다름의 힘’. 3 쌈지스페이스 1기 작가였던 정서영의 1999년 작 ‘카펫’. 

 

 

 

에르메스가 주목한 작가, 오민 

아틀리에 에르메스에서는 오는 11월 4일까지 제17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수상자의 전시가 열린다. 오민 작가의 개인전 <연습곡(Etude)>이다. 전시장에는 대형 스크린 2개와 작은 화면 5개, 그리고 몇 개의 사각형 의자가 놓여 있다. 대형 스크린 하나에는 숲속에 서 있는 여자가, 다른 하나에는 방 안에 있는 여자가 보인다. 화면에서 “나무를 보라”는 글씨가 나오면, 지시문을 이행하는 여자가 보이는 식이다. 오민 작가는 이를 <연습연 ABCD>라고 부른다. 

 

대학에선 피아노를 전공했다. 그러다 갑자기 미술 작가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
피아노 연주는 현재와 단절된 작업이다. 입시나 대학에서는 대개 18세기나 19세기에 쓰인 고전 음악을 가르친다. 또한 피아노 연주는 무척 외로운 작업이기도 하다. 하루 4~5시간씩 골방에서 홀로 연습하며, 외로움과 싸워야 한다. 당시 나는 그것들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래픽 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꿨다. 그래픽 디자인을 하면, 지금 세상이 원하는 것을 이해하고,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뛰어들어 보니, 오랜 시간 연주하며 혼자 고민하는 것에 몸이 익숙해져 있더라. 그래서 영상을 다루는 현대미술 작가가 된 것 같다. 비디오 작업은 나만의 생각에 집중할 수도 있고, 사람을 만나고 뭔가를 함께 작업하고, 세상과 교류할 수 있으까. 


그럼에도 당신의 작품은 대부분 음악을 다룬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쳤으니 음악은 내게 모국어 같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음악을 다루게 된 것 같다. 서양 고전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어떤 음들이, 어떤 시간의 구조 안에, 어떤 논리로 배열되어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영상 역시 시간을 ‘재료’로 하지 않나. 영상 작업을 하며 나는 늘 시간을 다루는 것을 고민해왔는데, 이때 음악의 구조는 유용한 힌트가 되곤 했다. 


이번 작품 역시 음악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어떻게 시작한 작업인가?
지난해 서울대에서 12명의 작곡가와 12명의 피아니스트가 12개의 피아노 연습곡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문득 현대 작곡가들은 연습곡을 통해 연주자에게 어떤 기술을 요구하고, 그것을 습득하는 연주자들은 어떤 노력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 궁금증이 발단이 됐다. 


<연습곡>을 소개한다면?
<연습연 ABCD>는 ‘기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작품이다. 연습곡은 특정 기술을 연습할 수 있도록 만든 짧은 악곡이다. 연주자는 연습곡을 통해, 특정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 손가락을 어느 정도 움직이고, 팔을 어느 정도 벌려야 하는지 등을 인식하게 된다. 이는 ‘표현을 위해서 내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연결될 수 있다. 나는 비단 ‘기술’이 신체에서만 나온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기술은 ‘사유’한 대로 수행하는 것이며, 기술과 사유가 자연스럽게 하나가 될 때 ‘표현’이 되고, 그것이 오랜 시간 몸에 배면 ‘태도’가 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기술이란, 표현, 사유, 태도와 구분할 수 없는 것이다. 무대에서의 모든 움직임은 결국 연주자의 ‘인식’에서 나오는 것이고, 이 인식은 ‘연습’을 통해 향상될 수 있는 ‘기술’이다. 이 작품을 만드는 동안 인식의 기술을 연습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연구했다. 다시 말해 인식의 기술을 연습하고 고민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연습’이란 어떤 목표를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닌가. 영상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을까?
보통의 연주자들은 완벽한 연주를 꿈꾼다. 그러나 완벽함의 경지에는 언제나 도달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연주는 다음 연주의 연습이 된다. 반면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다. 피아노 연습곡(에튀드)은 본래 하농이나 체르니처럼 연습을 목표로 만들어진 곡이었지만, 쇼팽 이후 무대에 오르는 콘서트피스로 발전했다. 그렇게 본다면 연습곡 자체가 목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곧 이전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작품을 발표한다고 들었다.
11월 24일과 25일에 아트선재센터에서 발표할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즉흥이라는 것이, 사실은 정교하게 계획된 상태에서 오는 아이러니를 ‘재료’로 하는 공연이다. 음악 퍼포먼스와 미술 퍼포먼스가 포함되었고, 40분 정도 진행될 예정이다.   


아티스트로서 달성하고 싶은 최종 꿈은 무엇인가?
현대 예술은 많은 작가들이 질문을 던졌기에 발전할 수 있었다. 가령 폴 세잔이 ‘우리는 이 각도에서 보고 있지만, 다른 각도를 그리면 왜 안 될까?’라는 질문을 던졌고, 존 케이지는 ‘침묵도 음악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동안의 관습을 깨는 이런 질문들이 현대 예술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작업들이 언젠가 중요한 질문을 형성하기를 바란다.

 

1 아틀리에 에르메스에서 전시 중인 <연습곡>. 대형 스크린에는 ‘연습연 A’와 ‘연습연 C’를, 5개의 모니터에는 ‘연습연 B’를 담았으며, ‘연습연 D’는 라이브 퍼포먼스로 진행된다. 2 영문 지시문과 이를 이행하는 여자의 모습을 담은 ‘연습연 B’. 

 

 

 

올해의 작가상, 정은영 
1950년대 전성기를 구가한 여성국극 배우들의 삶을 조명해온 비디오 작가 정은영이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의 수상자로 최종 선발됐다. 이로써 정은영은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2013)과 베니스비엔날레 참여 작가(2019) 및 올해의 작가상(2018)까지, 이른바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국내 최초의 작가가 됐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오는 11월 25일까지 <올해의 작가상 2018> 전시를 진행한다. 페미니즘 미술을 하던 그녀가 갑자기 여성국극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정은영에게 직접 물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주최하는 ‘올해의 작가상’의 최종 수상 작가가 됐다.
나는 80세가 넘은 여성국극 단체의 할머니들과 함께 작업한다. 최종 수상자로 발표되고, 제일 먼저 전화를 드렸는데, 굉장히 좋아해주시더라. 개인적으로도 명예로운 일이지만, 선생님들께 빚을 갚는 느낌이 들어 더 좋았다.


여성국극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여성국극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여성국극에 관심이 큰 대학 선배를 따라 과거 배우들의 ‘보존회’ 모임을 따라나선 게 계기가 됐다. 처음엔 ‘노인들의 사교 모임이니 지루하겠지’ 생각하며 따라갔는데, 묘한 끌림이 있더라. 사실 여성국극이 인기를 끈 중심에는 남장 배우가 있었다. 여자 배우가 남장을 하고 남성을 연기한다. 그러니까 성별이라는 게 무대 위에서 공연되는 것이고, 극 안에서는 성별 규범이 완전히 와해된다. 국내에 이런 장르가 존재했고, 심지어 그것이 1950년대 큰 인기를 끌었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여성국극이라는 장르가 낯선 독자도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여자 배우만 출연하는 창극이다. 전통적인 판소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48년 초연됐고, 1950년대 최전성기를 구가했다. 여성국극이 1948년 이후에 생겨난 이유는, 해방 이후에 기생 학교가 폐쇄됐기 때문인데, 노래를 부를 줄 아는 기생을 중심으로 여성 국악 동호회가 만들어지고, 그게 발전된 형태가 여성국극이었다. 한국전쟁 직후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장르로 자리 잡는 듯했으나 박정희 정부의 등장과 함께 조악한 음악극으로 치부되며 소멸의 길로 접어들었다. 전통극으로도, 현대극으로도 자리 잡지 못한 채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거다.     


당신이 여성국극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여성국극이 품은 ‘젠더’를 문제화하는 거다. 그러니까 과거 여배우들이 ‘완벽한 남성’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느꼈을 성별에 대한 의문이나 의구심을 지금의 사회 문제로 끌고 오는 작업이다. 분명한 건, 단순히 여성국극을 홍보하려는 목적은 아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신작, <유예극장>과 <보류된 아카이브>는 어떤 작품인가?
우선 복도에는 1950~60년대 신문에 실린 공연 광고와 원로 배우들의 사진, 친필 서명 액자 등을 배치했다. 의미 있는 자료지만 역사적으로 공식화하기엔 취약한 부분이 많은 것들이다. 같은 자료를 놓고도 선생님마다 얘기가 다르고, 같은 선생님의 말씀도 맥락이 막 바뀌곤 한다. 다시 말해 역사로 수렴되지 못한 역사다. 이런 뜻에서 ‘이것을 역사로 규정짓는 것을 보류하겠다’는 뜻으로 <보류된 아카이브>라는 제목을 붙였다. <유예극장>에서는 젊은 예술인의 목소리를 담았는데, 남자를 연기하는 여성국극 배우와 남성의 옷을 입고 노래하는 드랙퀸 가수, 정통 국악을 전공하고 현대적인 가곡을 연구하는 국악인 등을 통해 성별과 전통의 담론이 어떻게 동시대성을 갖게 되는지를 표현하고자 했다.


여성국극 프로젝트를 진행한 지 10년이 됐다. 혹시 다른 프로젝트 계획은 없는가?
사실 이렇게까지 오래 할 생각은 없었다. ‘이만하면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가끔 한다. 확실한 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여태까지의 프로젝트와는 많이 다른 작품을 선보일 것 같다. 지금까지는 여성국극이 완전히 전면에 걸려 있는 상태라면, 레이어 중의 하나가 되는 식이다. 여성국극에서 배운 것을 다른 것에 녹여내는 작업이랄까. 여러 가지를 고민 중인데, 퀴어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나, 드랙퀸 모임 등 젠더에 불순응하는 사람들에 대한 다양한 이슈를 거론해볼까 생각 중이다. 아직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한국에서 활동하는 소위 여성 미술가들의 모습을 필름에 담고 싶다. 남성 작가와 여성 작가의 애티튜드 차이부터, 성별을 관통했을 때 오는 방법론 등에 질문을 던지는 작업이다. 언제 실현될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여성 작가들에 대한 스터디를 조금씩 하고 있다.  

 

1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보류된 아카이브’에서는 여성국극 배우와 팬의 가상 결혼식 사진과 1950~60년대 신문에 게재된 공연 광고, 당시 배우들의 친필 사인 등을 전시한다. 2 국내 마지막 남은 여성국극 배우인 남은진을 통해, 성별이라는 분별에 문제를 제기하는 작가 정은영의 ‘유예극장’과 ‘죄송합니다, 공연이 지연될 예정입니다’. 

 

 

 

 

 

더네이버, 전시, 화이트큐브의 이슈메이커들

CREDIT

EDITOR : 이승률PHOTO : 양성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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