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정글을 품은 도피처, 바이스로이 발리

발리는 채움이 아닌 비움을 위한 여행지다. 우붓의 계곡에 자리한 바이스로이 발리는 무엇을 꺼내도 받아줄 숲을 품고 있다.

2026.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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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과 왕가의 계곡을 내려다보는 바이스로이 발리.

 

약 25년 전, 모터사이클로 발리를 여행하던 커플이 우붓의 열대우림 앞에 멈춰 선다. 호주에서 온 오스트리아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 마거릿 베인브리지(Margaret Bainbridge)와 오토 시로와트카(Otto Syrowatka) 부부다. ‘왕가의 계곡’과 울창한 정글 전망에 반한 이들은 대지를 매입해 호텔을 짓기로 한다. 그렇게 2005년 문을 연 리조트가 우붓의 초록 숲에 가려진 바이스로이 발리(Viceroy Bali)다. 
발리 덴파사르 국제공항에 도착해 차를 타고 바이스로이 발리로 향했다. 늦은 밤 처음 마주한 바이스로이는 암흑 속에서 고요히 빛났다. 이는 전체 객실이 40개에 불과한 프라이빗한 환경과 부지 너머의 숲 덕택이다. 아침이 밝아오자 수영장을 향해 난 창이 초록으로 가득 찼다. 한국과 달리 잎이 큰 아열대 나무들이 생경한 푸르름을 망막에 아로새긴다. 
자연 그대로를 간직한 숲의 전경도, 시골 마을 같은 한적함도 바이스로이가 여전히 가족 경영을 고수하기에 유지할 수 있다. 건축은 물론 벽의 페인트 색과 객실 디퓨저 향까지 여전히 설립자 마거릿의 손길이 닿는다. 발리 전통 가옥과 서양식 건축의 장점을 결합한 건물 역시 그들이 디자인에 참여한 결과물이다. 초가지붕과 목조 기둥, 벽 곳곳을 장식한 석조 조각이 이국적 정취를 자아낸다면, 단단한 대리석 바닥은 우아한 기품과 실용성을 책임진다. 천장 높은 곳에서 돌아가는 나무 팬과 단숨에 뛰어들 수 있는 프라이빗 풀, 그리고 적막한 숲으로 시선을 옮기며 깨달았다. 우리가 도피처에서 찾는 것은 이런 풍경임을. 

 

 

1 우붓의 리조트 중 유일하게 헬기 착륙장을 갖추었다. 2 전체 빌라 객실에 프라이빗 풀이 있다.

 

발리니즈를 따라, 정화의 시간

발리 문화의 중심지 우붓에 온 만큼 아침 7시, 야외 요가로 하루를 시작했다. 수련 앞뒤로 호흡과 명상에 충분히 시간을 들이는 방식이 미더웠다.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며 동작을 따라 하다 보면 상쾌할 만큼 땀이 흐른다. 
하루는 시간을 내 ‘물의 사원’이라 불리는 띠르따 엠풀(Tirta Empul)을 방문했다. 신성한 물이 샘솟는 성지로, 지하수에 몸을 씻어내는 정화 의식을 치를 수 있다. 긴 사롱으로 다리를 감싼 뒤 먼저 기도를 했고, 이윽고 허리 깊이의 연못에 입수했다. 이날의 가이드 마르기의 설명에 따라 13개의 분수 가운데 10개에서 물을 맞고, 2개를 건너뛴 뒤 마지막 분수로 향하는 순서였다. 세 차례씩 물을 마시는 행위를 반복하다 보니 생각은 명료해지고 시야가 또렷해졌다. 세세한 규칙을 따르고 젖은 옷을 갈아입기 번거로울 수 있지만, 영혼을 정화하는 과정이 간단할 리 없다. 무언가 간절히 염원하는 사람들 곁에서 그들의 진정이 전이되는 것을 느꼈다. 
이처럼 영험한 경험은 발리 사람들의 세계관에서 비롯된다. 발리 거리 곳곳에서는 작은 꽃바구니를 볼 수 있는데, 이는 발리의 힌두교도가 매일 신에게 바치는 공물, ‘차낭 사리’다. 차낭 사리를 만들고 내놓는 행위는 이곳에서 생활의 일부다. 흥미로운 점은, 선한 신뿐 아니라 악한 신에게도 ‘차루’라는 이름의 공물을 바친다는 사실이다. 바이스로이에서 차낭 사리 만들기를 체험할 때 직원은 꽃을 두는 방향을 알려주며 말했다. “신은 인간의 불행을 바라지 않아요.” 우리를 보듬는 존재에 대한 믿음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발리다. 

 

 

1 테라스 빌라 객실 내부. 전통 초가지붕과 목조 프레임이 이국적 분위기를 완성한다. 2 아페리티프의 시그너처 메뉴인 사슴 웰링턴. 셰프가 직접 커팅해주는 게리동 서비스를 제공한다. 3 금주법 시대 스피크이지 바에서 영감을 얻은 핀스트라이프 바 내부.

 

 

먹고 마시는 즐거움

바이스로이에 왔다면 우붓의 명소로 꼽히는 파인 다이닝 아페리티프(Apéritif)를 지나칠 수 없다. 벨기에 출신의 닉 밴더비켄 셰프가 2018년 오픈 때부터 이끌고 있는 레스토랑으로, 프렌치 요리 테크닉과 인도네시아, 일본, 남아메리카 등 다양한 지역의 요리를 접목한다. 예약 시간에 맞춰 건물에 입장하면 먼저 왼쪽의 핀스트라이프 바(Pinstripe Bar)로 안내한다. 1920년대 미국 금주법 시대 스피크이지 바에서 착안한 인테리어가 고풍스럽다. 너른 소파에 기대어 식전주와 아뮈즈 부슈를 즐긴 뒤 아페리티프에 들어섰다. 마찬가지로 1920년대 미국 저택의 연회장을 연상시키는 홀이 펼쳐졌다. 디너 코스의 테마는 달의 변화. 신월이 차올랐다가 기우는 흐름을 표현했다. 차낭 사리에서 착안한 한 입 거리 훈연 고등어 크림 퍼프로 시작해, 인도네시아의 전통 케이크 라피스를 본뜬 스타터와 아스파라거스를 원물과 겔, 파우더 형태로 조합해 서로 다른 식감을 선사하는 콜드 디시가 이어졌다. 이후 발리 향신료로 맛을 낸 장어 요리와 메인 디시, 그리고 클렌저, 페이스트리, 세 가지 미냐르디즈가 차례로 등장하며 마무리됐다. 화려하고 로맨틱한 인테리어와 국경을 넘나드는 대담한 요리의 만남이 호기롭다.
색다른 체험을 원한다면 핀스트라이프 바의 칵테일 마스터 클래스를 추천한다. 수업은 리조트 정원에서 허브를 수확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타이바질, 레몬바질, 레몬그라스 등 허브와 보드카, 오이 시럽으로 프랑스 리큐어 크렘 드 바이올렛을 변형한 ‘크렘 드 버터플라이’를 제조하는 것이 첫 단계다. 이어 수제 리큐어로 에비에이션 칵테일 만들기에 도전했다. 셰이커와 지거 사용법부터 재료를 넣는 순서와 셰이킹 방법까지 체계적으로 알려준다. 전문가에게 바텐딩 팁도 배우고 로컬 스피릿도 경험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온화한 기후와 여유로운 분위기, 풍요로운 문화 등 발리와 사랑에 빠질 이유는 무궁무진하다. 그중 바이스로이를 다시 찾는다면 그건 구성원들의 환대 때문일 것이다. 10년 이상 근속한 지역 주민이 많아서일까. 대가족의 집에 초대받은 듯 친근한 환영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바이스로이 발리는 낯선 숙소를 되돌아가고픈 집으로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 

 

취재 협조 바이스로이 발리(www.viceroybal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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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박지형PHO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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