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4개의 운동, 그 이상의 이야기

도유진 <움직여!> 감독

2024.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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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여!” 이는 호루라기를 입에 문 체육 선생님의 호통이나 굼뜬 아이를 향한 엄마의 잔소리가 아니다. 즐겁게 움직여본 여성들의 유쾌한 독려다. 도유진 감독의 <움직여!>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사업을 통해 제작된 웹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각각 요가, 폴스포츠, 유도, 풋살에 매진하는 여성을 비춘다. ‘안 해본 운동이 없는’ 마니아부터, 49세에 운동을 시작해 대회에 출전한 늦깎이, 10대 시절 모델 준비를 하다 이제는 유도에 빠져버린 20대, 풋살팀을 결성한 쌍둥이 자매까지 저마다 사연이 다채롭다. 


전작에서는 각각 디지털 노마드, 디지털 성범죄를 다뤘다. 여성의 운동에 관한 시리즈를 만든 계기는 무엇인가?
여성과 아름다움의 관계에 쭉 관심이 있었다. 처음에는 얼굴에 대한 관심이었는데 점차 몸까지 확장되었다. 10여 년간 해외에서 살았는데, 그 시기 서구권에서는 거식증, 프로아나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그런데 한국도 여성 청소년의 섭식장애 문제가 심각해졌다. 거식증을 앓는 10대 여성 청소년 중 절반이 14세 미만이다. 동시에 운동은 내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조각이다. 먹고사는 데 필수적인 시간 외에는 전부 운동에 쏟을 정도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여성과 신체의 관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운동하며 몸을 단련할 때 해방감과 고양감을 크게 느끼면서도 말이다. 운동을 시작한 주변 친구들을 보며 긍정적인 사례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마침 웹 다큐멘터리 제작 기회를 얻었고, 꼭 다루고 싶었던 주제의 첫 단추를 끼웠다.


네 가지 운동은 어떤 기준으로 정했나?
요가와 폴스포츠는 처음부터 인터뷰이를 정해두었다. 요가의 이소영 선생님과 오랜 인연이 있었고, 폴스포츠의 김희수 선생님은 나의 스승이다. 희수 선생님의 깔끔하고 파워풀하면서 완성도 높은 동작을 보며 늘 감동했다. 이번 기회에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한편 에스테틱 스포츠(aesthetic sports)로 분류되는 두 종목과 달리 다수가 함께하는 운동, 그리고 통념상 여성과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종목을 찾았다. 격투기 중에 유도를, 그리고 팀 스포츠에서는 풋살을 선정했다. 


인터뷰이의 연령과 운동 경험, 성향 등이 달라서 흥미로웠다. 어떻게 섭외했나? 유도와 풋살은 건너 건너 소개받았다. 모델 준비를 하다 유도하는 분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웃음). 또 풋살은 세 자매가 한 팀에서 뛰는 것이 흥미로웠고 역동적인 장면이 많았다. 주변에 운동하는 여자가 많은 것이 행운이었다. 한국 여성의 운동을 연구한 각종 논문을 읽어보면 ‘어떻게 운동을 시작했는가?’ 하는 질문에 연구 대상자들의 답변이 대부분 비슷하다. 살 빼려고 시작했다고. 하지만 내 인터뷰이들은 달랐다. ‘흐름이 금방 바뀌겠는데?’ 생각이 드니 신이 났다. 


요가에서 폴스포츠, 유도, 풋살로 향하는 순서도 중요했겠다. 홀로 수련하는 운동에서 대련, 그리고 팀 운동으로 나아간다. 운동 강도 역시 크레셴도로 점차 높아지는 것이 마음에 든다. 


팀 스포츠 가운데 풋살을 고른 이유는 무엇인가?
요즘 많은 여성이 열광하는 운동이지 않나. 아이코닉한 종목을 빼놓을 수 없었다.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의 영향으로 여성들이 실제로 공을 차고 뛰게 되었다. 여성의 삶에 갑자기 축구공이 날아와 가슴에 꽂힌 셈이다. 

 

 

 


운동 전문가인 서민정 트레이너와 과학기술학자 임소연 교수의 코멘트가 삽입되는데. 자신의 몸을 실제로 단련해본 운동 전문가와 신체에서 일어나는 작용을 설명할 연구자를 찾았다. 그러다 임소연 교수의 저서 <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를 읽었는데 한참 고민하던 지점과 맞닿아 있더라. 두 분에게 인터뷰 영상을 미리 보여주고 이런 지점에 대해 사유의 조각을 나눠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출연자들의 밝은 모습은 그 자체로 동기부여가 된다. 오기 전에도 시리즈를 보고 왔는데, 나도 모르게 계속 웃고 있더라. 지금까지 작업을 하며 이런 경험이 많지 않았다. 불법 촬영에 관한 다큐멘터리 작업 때는 자료를 수집하고 촬영하는 과정이 무척 고통스러웠다. 이번에는 힘을 빼고 웃으며 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움직여!>에도 멈칫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 요가복, 폴 웨어 등 기능적인 운동복도 여성이 입는 순간 보는 사람이 권력을 가져가는 일이 수시로 벌어진다. 그러니 운동하는 여성들은 이중고를 겪는다. 


러닝타임이 전체 25분으로 짧다.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는데 끝이 나서 아쉬웠다(웃음). 웹 다큐멘터리가 갈수록 짧아지는 추세다. 그리고 이 주제의 첫 단추라 행복한 지점에서 끝내고 싶었다. 색 보정도 총천연색을 살려 밝게 하고, 음악도 통통 튀는 오리지널 스코어로 음악 감독님이 작곡했다. 귀엽게 일러스트도 넣고. 동기부여가 되면서 보는 사람이 행복하고 공감할 만한 톤으로 만들자고 사전에 합의했다. 


운동에 많은 시간을 쏟는다고 했는데, 평소 어떤 운동을 하나? 폴스포츠를 4년, 발레는 1년 동안 해왔다. 일주일에 한 번 플라잉 요가도 한다. 운동을 꾸준히 하고 싶은 욕구는 예전부터 있었는데, 해외를 돌아다니며 생활하다 보니 한 곳에서 오래 수련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30대에 한국에 들어와 환갑이 넘어서도 검도를 하는 검도 4단 유단자를 만났다. 나도 인생에서 쭉 가져갈 운동을 찾고 싶더라. 한국에서는 엘리트 체육과 생활 체육의 괴리가 크지만, 지금 시작하더라도 수십 년간 꾸준히 하면 내공이 쌓일 것 아닌가. 헤매던 과정을 거쳐 지금의 운동에 정착했다. 


혼자 하는 운동이 잘 맞나 보다. 내 몸의 한계가 궁금하달까. 체육 전공자가 아닌 평범한 일반인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알고 싶다. 끊임없이 실험하는 과정에서 쾌감을 느낀다.


관객이 영상에서 눈여겨보기를 바라는 지점이 있다면? 운동하는 움직임 하나하나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슬로 모션 등 촬영에 공을 들였다. 영상을 본 인터뷰이들이 무척 좋아해서 뿌듯했다. ‘내가 운동할 때 이렇게 멋있는 줄 몰랐다’며 빼놓지 않고 이야기하더라. 자신의 움직이는 몸을 카메라의 시선으로 보고 행복해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그 감정이 관객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란다.


여성의 신체에 관한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자신의 삶에 운동을 끼워 넣은 여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현재의 흐름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 보는 풍경 아닐까. 지금부터 10년, 20년이 흐른 뒤에는 새로운 광경이 펼쳐질 것 같다. 이러한 우리를 보며 자라나는 다음 세대 여자아이들은 또 얼마나 멀리 나아가겠나. 이 흐름에 공헌할 수 있는 형태로 언제든 작품을 만들고 싶다. 그건 여성과 신체의 화해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움직여!’는 누구에게 건네는 말인가? 영상을 보는 모든 여자들에게. 거울 볼 시간에 움직이자는 제안이다. 우리는 그걸 누릴 자격이 있으니까. 

 

location 릴리발레학원(도유진)

 

 

 

 

 

 

 

 

 

 

 

더네이버, 피플, 인터뷰

CREDIT

EDITOR : 박지형PHO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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