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목욕하지 않는 목욕탕

‘대중’ 목욕탕에서 대중을 위한 열린 예술 공간으로 명맥을 이어가는 목욕탕의 미래.

2018.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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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스페이스임과 동시에 실제로 목욕도 할 수 있는 일본 나오시마의 예술 목욕탕 ‘I Love 湯’의 내외부. 

 

얼마 전, 삼청동의 랜드마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코리아 목욕탕’이 문을 닫았다. 그 자리엔 리모델링 공사를 거쳐 ‘시절사진’이라는 이름의 갤러리가 들어설 예정이다. 외관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뜨겁게 차오르던 목욕물과 뿌연 수증기가 거둬진 내부만 좀 달라질 뿐이다. 세 명의 사진가가 사진을 찍고, 그들의 사진이 내걸리는 예술 공간으로 변모할 이곳, 시절사진. 이 공간을 찾는 사람들은 현재를 넘어 과거의 향수를 더듬는 기묘한 시간 여행을 할 것이다. “오랜 세월 삼청동의 추억을 품은 공간이었던 목욕탕이 사라지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는 시절사진의 강형신 대표에게서 그 나름의 사명감이랄까 책임감 같은 게 전해졌다. 몇 달 전, 20년 동안 차갑게 식어 있던 도쿄의 한 목욕탕에 ‘부이(Buoy, 부표)’라는 이름의 아트 스페이스가 들어섰다. “부이(Buoy)라는 단어에는 바다 위의 점이라는 내비게이터의 의미도 담겨 있지만, 무언가를 끌어 올린다는 의미도 있어요. 신진 예술가를 미지에서 건져 올려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예술의 부표가 되고 싶다는 의미를 담았죠.” 부이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가코 기시모토(Kako Kishimoto)는 서로 다른 장르의 교차를 통해 젊은 아티스트를 지원하고자 20년 동안 빈 공간으로 있던 오래된 목욕탕에 뛰어들었다. “목욕탕은 씻음과 동시에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에요. PC나 스마트폰을 물속으로 가지고 들어갈 순 없잖아요? 뜨거운 목욕탕에서 사람은 벌거벗은 채 타인과 함께 몸을 담그고 물을 ‘공유’해요. 물을 공유한다는 점이 아주 흥미로워요. 사람들이 모이고, 벌거벗고, 공유하고, 씻고, 휴식을 취하는 목욕탕이라는 공간이 이 시대에 예술 공간으로 변모하는 현상은 전혀 놀랍지 않아요. 예술은 본래 그런 거니까요.” 사실, 목욕탕에 예술이 꽃피는 일은 새롭지 않다. 일찌감치 목욕탕을 갤러리로 바꾼 도쿄의 ‘스카이 더 배스하우스(Scai the Bath House)’는 일본 미술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200년 넘게 영업해온 공중목욕탕이 폐업의 위기를 맞자, 이곳을 눈여겨본 갤러리스트는 목욕탕 자체를 예술 공간으로 바꿀 야무진 계획을 세운다. 당시 오모테산도의 한 미술관 디렉터였던 마사미 시라이시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도쿄 구도심의 한 낡은 목욕탕에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을 걸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데이비드 린치나 이세이 미야케의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던 실력 있는 갤러리스트의 이 무모해 보이는 시도는 마침내 성공적인 역사를 썼다. 예술가의 섬으로 불리는 나오시마에는 작가 오오타케 신로우의 손에서 재탄생한 예술 목욕탕 ‘I Love 湯(일본어로 목욕탕인 ‘Yu’는 You와 동음이의어다)’이 등장해 목욕탕의 역사를 또 한 번 고쳐 썼다. 상업을 예술로 포장하고 싶은 브랜드의 영악한 시도에도 목욕탕은 좋은 소재다. 갓 폐업한 삼청동 중앙탕의 구조를 그대로 살린 실험적인 안경 브랜드 젠틀몬스터의 쇼룸을 시작으로 줄줄이 생겨난 목욕탕 출신(?) 꽃가게나 카페는 안경, 커피, 꽃을 전시하는 예술 공간처럼 비친다. 얼마 전 춘천에는 목욕탕 구조를 그대로 살린 고깃집까지 등장했다. 마치 목욕탕집 사람들이 영업을 마치고 단체로 회식하는 듯한 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하나의 퍼포먼스처럼 보이기도 한다. 
 

 

 

목욕탕을 갤러리로 바꾼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는 도쿄의 갤러리 ‘스카이 더 배스하우스’. 이우환, 구사마 야요이 등 세계적인 작가의 전시를 진행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목욕탕에 열광하는가? 왜 굳이 낡고 초라한, 케케묵은 공간에서 예술을 갈구하는가? 아현동의 오래된 목욕탕을 예술 공간으로 바꾼 ‘축제행성’의 디렉터 서상혁은 대중목욕탕의 ‘친근함’에 주목했다. “목욕탕은 과거에 남녀노소 누구나 갈 수 있는 일상의 공간이었어요. 때를 미는 행위, 즉 자신을 관찰할 수 있고 일상의 옷을 벗고 맨몸으로 다닐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오는 편안함과 추억이 깃들어 있지요. 그 친숙함이나 친근함이야말로 동시대 목욕탕이 소통을 위한 다양한 형태로 활용되는 중요한 이유일 거예요. 어떤 공간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최초에 그 세계로 가는 대문을 열어야 하는데, 그것이 별로 낯설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전시, 공연, 퍼포먼스 등 다양한 예술이 꽃피는 행화탕에는 예술을 찾아오는 이들뿐 아니라 행화탕의 향수를 간직한 동네 어르신도 꽤 있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기웃거리다 불쑥 들어와 “목욕탕 영업은 언제 다시 시작하냐”고 묻는가 하면, 40~60대의 중년이 행화커피나 행화맥주에 잠시 앉아 목을 축이기도 한다. 남탕과 여탕에 난 작은 틈 사이로 여탕 세신사의 노래가 울려 퍼지면 남탕의 어르신은 박수를 치곤 했다는 이야기, 어린 시절 엄마 손을 잡고 여탕에 간 아들이 덩치가 커져 마침내 남탕으로 입성한 이야기 등 소싯적의 에피소드를 들으며 행화탕을 찾은 젊은 세대는 그 시절의 목욕탕을 어렴풋이 짐작한다. ‘예술로 목욕하다’라는 슬로건을 지닌 행화탕에서 일어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향수로, 누군가에게는 새로움의 공간인 채로. 육체의 목욕에서 정신의 목욕으로. 

 

 

1 한동안 버려져 있던 아현동의 행화탕은 축제행성에 의해 한시적으로 문화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시, 공연, 퍼포먼스 등 다양한 예술 활동이 펼쳐진다. 2 얼마 전 도쿄에 문을 연 예술 공간 부이의 전시 모습. 

 

최근 서양에서도 목욕과 문화 예술을 연결시키는 흐름이 여러 방면에서 시도되고 있다. 큐레이터 제인 위더(Jane Withers)는 2016년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에서 오래된 목욕 전통을 통해 오늘날 커뮤니티의 의미를 찾자는 취지의 전시를 선보였다. 20세기에 번성한 세계의 목욕탕-고대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이슬람식 하맘, 유러피언 스파, 일본식 온천부터 러시안 반야 혹은 핀란드식 사우나까지-을 여행한 그는 인류의 역사에서 목욕이 단순히 씻는 행위 이상임을 발견했다. 목욕탕에서 몸을 씻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유희’였고, 이는 곧 커뮤니티 라이프로 직결된다는 것이다. 그는 소통이 부재한 이 사회에 현대인들이 그 시절의 목욕 문화로부터 지혜를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디자이너 알바 알토 역시 일찌감치 사우나가 예술과 문화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시대는 가늠할 수 없이 빠르게 변하고, 집 안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목욕을 해결하게 된 이 시대. 우리가 목욕탕과 함께 잃어버린 것은 과연 추억뿐일까? 위생적이고 편리하다는 편의에 취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차갑게 식어버린 탕에서 여전히 아티스트와 건축가, 사학자들이 켜켜이 쌓인 인류의 소통, 문화의 코드를 읽고 있다는 점이다. 기능을 다한 목욕탕은 그렇게 세대와 세대를 잇는 예술의 매개로, 새로운 소통의 장으로 동시대를 다시 살아갈 것이다.   

 

 

3, 5 목욕탕을 갤러리로 바꾼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는 도쿄의 갤러리 ‘스카이 더 배스하우스’. 이우환, 구사마 야요이 등 세계적인 작가의 전시를 진행한다. 4 한동안 버려져 있던 아현동의 행화탕은 축제행성에 의해 한시적으로 문화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시, 공연, 퍼포먼스 등 다양한 예술 활동이 펼쳐진다. 6 아트 스페이스임과 동시에 실제로 목욕도 할 수 있는 일본 나오시마의 예술 목욕탕 ‘I Love 湯’의 내외부. 

 

 

 

 

 

더네이버, 전시, 목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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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전희란PHOTO : 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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