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아티스트 노일훈과의 인터뷰

분명 테이블이다. 의자다. 한데 그는 애초에 가구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게 아니란다. 국내에서의 첫 개인전을 앞둔 노일훈. ‘첫’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그는 이미 해외 전시를 통해 먼저 이름을 알렸다. 혹자는 가구 디자이너라고 하지만, 건축을 전공한, 조금은 낯선 노일훈의 시작.

2017.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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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디자인의 경계에서 작업하는 아티스트 노일훈, 그의 국내 첫 개인전이 플랫폼-엘에서 열린다.  

 

1 철을 엮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다름 아닌 탄소 섬유의 ‘실’이다. 그는 직접 손으로 실을 꼬아 작품을 완성한다.
2 Piano, 2016_GRP, Carbon Fiber, LED, 40cm(W) ×40cm(L)×91cm(H)    

 

도대체 왜? 그의 이력을 보고 의구심부터 들었다. 틀에 박힌 편견쟁이라는 시선이 등 뒤에 꽂혀도, 의구심은 멈추지 않았다. 국내에서 첫 개인전을 준비 중인 아티스트 노일훈. 그는 세계 명문 건축 학교인 AA스쿨을 졸업했다. 자하 하디드, 렘 콜하스, 리처드 로저스, 노먼 포스터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모교가 바로 이곳 AA스쿨이 아닌가.   
“주재원인 아버지를 따라 중·고등학교를 영국에서 나왔어요. 건축가가 꿈이었고요.” 노일훈은 건축 명문인 AA스쿨을 졸업하고 영국왕립건축사 자격증을 취득, 세계적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의 건축 설계 사무소에 들어갔다. 부인할 수 없이, 건축가로서의 탄탄대로가 보장된 완벽한 코스다. 한데 그는 지금 건설 현장이 아닌 미술, 디자인 현장에서 홀로 사투를 벌이는 중이다. 
“도대체 왜?”  
“건축가라는 직업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인데, 건축은 클라이언트, 건축 법규 등 많은 사안과 타협해야 해요. 저는 그 순수성을 잃어가는 게 싫었던 거죠.” 어쩔 수 없이 타협이 필요한 건축보다 디자인에 더 끌리는 자신을 발견했노라고 그는 말한다. 순수성을 가장한, 고집스러운 예술가적 기질이 더 강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건축과 함께 산업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지체 없이 자신의 이름을 딴 디자인 스튜디오를 열었다. 광섬유 가닥을 늘어뜨린 샹들리에, 탄소섬유를 얼기설기 얽어 만든 의자, 테이블 등 가구와 예술의 묘한 경계에 선 그의 작품은 해외 페어를 통해 수천만원에 팔릴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귀국한 지 어느덧 5년. 7월 12일부터 9월 10일까지 플랫폼-엘에서 열릴 첫 개인전 <물질의 건축술>은 무르익은 그만의 실험 결과물을 선보이는 자리다. 

 

1 중력에 의한 곡선. 이번 전시에서 그는 중력을 반대로 거스르듯 곡선을 뒤바꿔놓았다.
2 Fabric Table R Table, 2007_GRP, 70cm(W)×125cm(L)×47cm(H)
3 Chandelier, 2016, Fiber Optic Cable, Aluminums, LED, 50cm(W)×160cm(L)×160cm(H) 

 

첨단 소재와 ‘손’의 만남?       
“작업실은 군포 공단에 있는데, 완벽하게 공장 같죠.” 설계는 물론 볼트와 너트까지, 모든 걸 직접 제작해서 작품을 만드는 작업 특성상 그곳은 최적의 장소였다. “영국을 포함해 유럽은 이제 제조를 안 해요. 그런 반면 한국은 여전히 활발하죠. 런던만 해도 중국에 제조를 주문해야 하는데 그 기간만 3주가 걸려요. 한데 한국은 2시간 안에 안 오면 화를 낼 정도니(웃음).” 제조업에 가깝다할, 그의 작업 특성상 분명 한국은 런던보다 매력적인 곳이었다. 그가 한국행을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작품에 사용된 모든 재료는 직접 만들어요. 하물며 재료 자체도 가공해서 사용하는데, 탄소섬유도 그중 하나죠. 탄소섬유는 보통 천의 형태인데, 저는 그것을 실로 가공해 손으로 직접 꼬아 작업을 해요.” 탄소섬유를 실처럼 꼬아 가구를 만든다고? 분명 물음표 몇 개가 기웃기웃 고개를 쳐들 것이다. 탄소섬유는 보통 포뮬러원 카, 비행기, 인공위성 등에 쓰이는데, 유연하지만 열처리를 하면 매우 강해지는 특성이 있다. 철보다 강하지만 알루미늄보다 가볍다(실제 그의 의자는 한 손으로도 가볍게 들린다). 그는 이러한 탄소섬유를 실의 형태로 고안했다. “탄소섬유라는 재료를 연구하는 데만 5년은 걸린 것 같아요.” 사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탄소섬유 자체가 아니라 ‘실’이다. “전통 지승 공예를 보면 종이를 꼬아서 실을 만들죠. 저 역시 탄소섬유라는 새로운 재료를 통해 실의 얽히고설킨 구조를 구현해요.” 그는 지승 공예, 짚풀 공예 등 전통 장인들의 작업 방식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전통의 계승과는 거리가 멀다. 그가 주목하는 지점은 바로 ‘손’이다. 천을 잡아당겨 가위로 구멍을 내고 바느질하고, 일일이 실을 꼬아 테이블을 만들고…. 일련의 모든 작업은 온전히 그의 손을 거친다. 그것은 흡사 장인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왜 이토록 ‘손’에 집착하는 것일까.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는 게 목표였어요. 사람들은 4차 산업에 대한 두려움이 있죠. 손과 기계가 경쟁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일 정도로, 기계는 사람보다 앞서버렸어요. 그런데 선을 꼬는 것은 기계가 하지 못해요.” 실을 꼬고, 엉키게 하는 미묘한 작업. 1도의 각에 따라 달라지는 그 미묘함의 차이를 기계는 감히 따를 수 없다. 정확한 정답만을 제시하는 인공지능(AI), 천편일률적인 기계가 해내지 못하는 그 무엇. “다 비슷해 보이지만 분명 그중에 아름다운 게 있어요.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죠.” 기계가 넘지 못할 위대한 노동(시간)의 기록. 그 위대한 손과 함께 그의 작품은 가구 밖으로 온전히 탈출해버린다. 그렇다면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라미 시리즈는 나뭇가지, 번개, 강물이 갈라지는, 거미줄이 엉켜 있는 듯한 모습에서 모티프를 찾았죠.” 사실 자연에 대한 탐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수학자, 과학자 등 이미 오래전부터 많은 이들이 자연을 탐구해왔다. “같은 악보지만 지휘자에 따라 음악이 달라지는 것처럼 저만의 규칙으로 자연을 탐구했죠. 물론 이 과정에서 숱한 실험을 거쳤고요.” 거미줄, 나뭇가지, 잎사귀, 신경세포, 뼈의 구조…. 그의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분명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이 유추된다. 
“해양 생물, 식물 등 자연물을 조직하는 구조를 연구하고 이를 건축적인 방법으로 제작하는 방식이죠.” 최첨단 재료와 기술을 이용해 만든 노일훈의 작품이 결코 차갑지 않게 다가오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중력에 의한 곡선, 나뭇가지의 꼬임, 가는 선을 따라 흐르는 미묘한 에너지. “자연의 곡선은 친근하고 편안하지만 인위적인 곡선은 그렇지 않죠.” 탄소섬유, 광섬유 등 놀라운 신소재와 건축, 중력, 장력과 같은 물리학의 기본 원리가 교묘히 섞인 노일훈의 작품 속에는 분명 따뜻한 그 무엇이 흐른다. “팽팽한 혹은 꺾인, 실의 흐름을 따라 흐르는 자연의 힘. 대담한 자연의 그것을 작품에 담아내려고 노력했어요.” 의자 너머에 숨은 자연의 본질, 어마어마한 자연의 힘을 관객 역시 함께 바라볼 수 있기를 그는 희망한다. 무궁무진한 자연의 존재 속으로 한발 더 다가서는 일. 노일훈은 그 정답 없는 길을 향해 수행하듯 실을 꼬고 또 꼬는 중이다. 탄소섬유, 광섬유, LED, 알루미늄 등의 소재로 제작된 신작 40여 점. 그의 첫 개인전인 <물질의 건축술>은 그의 느린 수행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건축가인가, 디자이너인가! 애초에 가구를 염두에 두고 작업하지 않았듯, 그에게 영역이란 처음부터 의미 없는 일이었을 터. 건축과 디자인, 기술이 녹아든 노일훈만의 특별한 건축술. 그것은 분명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묘한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만의 낯선 숲을 보았다. 건축하지 않는 건축가, 노일훈. 그는 이 공허한 세상을 향해 그만의 세상을 짓는다. 자연을 그리움 삼아.        

 

 

혹시 그의 작품이 철제 의자, 테이블처럼 보이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완벽히 속았다.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직접 손으로 실을 꼬아 작업하는 노일훈. 그곳에는 나뭇가지로 만든 숲이 있고, 거미줄을 타고 흐르는 자연의 기묘한 힘이 느껴진다. 그가 가구 디자이너가 아닌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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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설미현PHOTO : 박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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