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그들은 잠들지 않는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예술 검열, 정상과 비정상, 퇴행…. 온갖 정치 사회적 이슈 속에 대한민국은 지금 불안의 터널을 걷고 있다. 이 와중에 요즘 연극계는 그 어느 때보다 명징하고 날선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17.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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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시대의 정신적 희망이다.’ 1970~80년대 선전 문구처럼 들리지만 대학로에 가면 여전히 만날 수 있는 슬로건이다. 온갖 정치 사회적 이슈로 불안의 터널을 걷고 있는 요즘, 연극계는 연극 본연의 가치를 상기시키듯 날선 목소리를 뿜어내고 있다. 지난해 열린 페스티벌 ‘권리장전 2016 검열각하’는 연극계에 의미 있는 화두 하나를 던졌다. ‘권리장전’은 한국 예술계에 일어난 정치 검열 사태에 맞서 예술가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장장 5개월에 걸쳐 진행됐다. 21개 극단이 제작한 연극 22편이 무대에 올랐고, 110회 공연 중 40회 분이 매진되는 등 흥행에도 성공했다. 특히 김재엽 연출의 <검열언어의 정치학: 두 개의 국민>, 이양구의 <씨씨아이쥐케이>, 이연주의 <이반검열>은 큰 인기를 끌었다. 세월호, 예술 검열 등 우리 사회의 민감한 화두를 거침없이 풀어낸 작품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예술계 검열 사태에 대한 연극계의 저항. 그 원래의 목적 달성은 물론이고 ‘권리장전’이 이룬 또 하나의 성취는 ‘연대’의 힘이 아닐까 싶다. 열악한 재정, 소극장의 제한된 공간 속에서 어떻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보다 멀리 들려줄 것인가. 젊은 연출가와 힘없는 소극장의 연대. 그것은 촛불의 힘처럼 뜨겁게 타올랐고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무엇보다 사회를 향한 날선 시선, 그것이야말로 연극 본연의 임무가 아니던가. 민간 극단의 자발적 연대와 현장 예술가들의 자생적인 작품 생산이 두드러진 2016년. 공공극장들 역시 이러한 변화에 주목했다. 남산예술센터의 2017년 프로그램은 그 변화를 보여준다. 검열, 예술계 성폭력, 사회적 소수자, 박정희 등 남산예술센터의 2017년 프로그램은 한국 사회와 문화 예술계를 둘러싼 첨예한 사회적 화두를 그대로 보여준다. ‘권리장전’을 통해 선보인 이연주 구성, 연출의 <이반검열>을 비롯해 현대 사회의 강요된 질서와 집단주의의 모순에 돌직구를 날린 김수정 작, 연출의 <파란나라>, 예술계의 성폭력 문제를 키워드로 한 구자혜 작, 연출의 <가해자 탐구_부록: 사과문 작성 가이드> 등 사회를 향한 진중하고 날카로운 시선이 담겨 있다. 이러한 변화에 앞장선 것은 30~40대 젊은 연출가들이다. 그들은 로맨틱 코미디와 마니아 성향의 공연으로 양분된 연극계에 개성 넘치는 소재와 연출로 기분 좋은 딴죽을 걸었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다룬 <비포 애프터>의 이경성, <삼풍백화점>, <이반검열>의 이연주, <파란나라>의 김수정, <마카다미아, 검열, 사과 그리고 맨스플레인>의 구자혜, <소설가 구보씨의 1일>, <과학하는 마음-숲의 심연>의 성기웅 등 젊은 연출가들의 약진은 연극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기존의 서사 구조에서 벗어난 창의적 연출로 현대 연극의 새로운 길을 제시한 작품도 돋보인다. 다수의 관객이 아닌 단 한 명의 관객을 위해 일대일 공연으로 열리는 <천사(가제)>(구성·연출 서현석), 배우가 단 한 명도 출연하지 않는 ‘오브제 시어터’ 공연 <십년만 부탁합니다>(구성·연출 이주요, 김현진) 등 기존 연극에 길들여진 관객들에게 이들의 무대는 분명 낯설 터. 당혹스럽겠지만 <천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남산예술센터의 건물이다. 텅 빈 극장에서 펼쳐지는 것이라곤 간헐적인 조명의 변화와 무대막이 홀연히 열리거나 닫히는 일뿐. 드라마 없는 이 극장 안에서 관객은 건축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게 된다. 이때 느끼는 감각, 그 자체가 드라마가 되는 것이다. 이 낯선 작품은 8월 30일부터 9월 3일까지 남산예술센터에서 만날 수 있다. 연극계의 이런 변화가 비단 젊은 연출가들의 약진 때문일까? 연극계의 거장 박근형, 스타 연출가 고선웅 등의 열정은 2017년 연극계에 또 다른 에너지를 전파 중이다. 얼마 전 막을 내린 고선웅 연출의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올해 연극계의 상큼한 발걸음을 재촉하듯 뜨거운 열기 속에 서울 공연을 마치고 지방 순회에 들어갔다. 티켓 파워를 뽐내는 스타 연출가들의 든든한 지원과 참신한 기획과 연출로 무장한 젊은 연출가들의 에너지 넘치는 행보. 지금 연극계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수많은 연극 중 이 5편은 꼭 볼 것을 권한다.

 

이연주 & <이반검열>
이반(異般 또는 二般)은 흔히 성소수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지만 연출가 이연주는 그 범위를 확장시켰다. 불온한 대상으로 낙인 찍혀 검열과 차별의 대상이 되는 모든 존재. 이연주의 <이반검열>은 이들 ‘이반’에 관한 이야기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인권 이야기에 세월호 생존 학생과 희생자 형제자매의 이야기를 함께 다룬 <이반검열>이 <2017 이반검열>로 다시 돌아온다. 불과 1년 사이, 시대는 급변했고 <2017 이반검열>은 검열의 주제를 일상에서의 민주주의로 확장시켰다. 2017년 현재 오히려 쇠퇴하고 있는 민주주의를 바라보며 차별과 혐오가 국가 폭력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심층적으로 접근한다. 4월 6일부터 16일까지 남산예술센터에서 또 다른 <이반검열>이 펼쳐진다.

 

 

고선웅 &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믿고 보는 연출가 고선웅. 배우가 아닌 연출가의 이름만 보고 선택해도 될 만큼, 그의 이름 석 자는 독보적이다. 얼마 전 서울 공연을 마친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2015년 초연돼 관객과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동양의 햄릿’이라는 찬사를 받는 중국 4대 비극 중 하나인 <조씨고아>를 각색한 작품으로, 조씨 가문의 마지막 핏줄 ‘조씨고아’를 지켜내고 복수를 도모하는 필부 ‘정영’과 그 과정에서 희생한 의인들을 둘러싼 이야기다. 고선웅은 고전적 신의와 권선징악을 앞세운 원작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복수 끝의 공허에 주목함으로써 14세기 고전에 동시대적 시사점을 더했다. 2017년 고선웅표 비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3월 24~25일 대전문화예술의전당에서 만날 수 있다.

 

 

김태형 & <베헤모스>
지난해 대학로에서 가장 바빴던 연출가를 꼽으라면 김태형이 떠오를 것이다.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 뮤지컬 <팬레터> 등 연극과 뮤지컬을 넘나들며 활동 중인 그의 올해 첫 선택은 연극 <베헤모스>다. <베헤모스>는 2014년 방영된 KBS 드라마 <괴물>을 원작으로 하는데, 재벌가의 아들이자 명문대 재학생인 태석이 벌인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이를 덮으려는 자와 파헤치려는 자의 파워 게임을 따라간다. 돈과 권력 앞에서는 어느 누구 하나 다르지 않은 추악한 인간들. 김태형은 그들에게 묻는다. 과연 누가 괴물인지, 우리는 그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4월 2일까지 충무아트홀. 한편 그의 또 다른 신작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도 4월 무대에 오른다.

 

 

이경성 & 신작
연극계가 주목하는 차세대 연출가 중 하나인 이경성. 그의 작품 중 가장 주목을 끈 것은 두산아트센터 창작자육성 프로그램을 통해 2015년 선보인 <비포 애프터>. 그는 돌이킬 수 없는 거대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과 그 후의 달라진 변화를 파헤친다. 그 사건은 바로 세월호 참사. <비포 애프터>는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개인에서 출발해 사회문제로 확대한 극적 구성이 돋보이며, 특히 랩, 걸그룹 댄스, 뉴스, 실시간 영상 등 다양한 형식의 무대 연출로 주목받았다. 이경성의 신작이 기대되는 이유다. 아직 제목은 미정이지만 ‘걷기’라는 신체 행위를 통해 공간과 개인의 경험을 연결하는 작업이 될 것이라고. 11월 7일부터 26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그의 신작을 만날 수 있다.  

 

 

박근형 &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지난해 전례 없는 흥행 기록을 세우며 ‘2016 페스티벌/도쿄’에도 공식 초청된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박근형 각본, 연출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2015년 한국, 1945년 오키나와, 2004년 이라크 팔루자, 2010년 백령도 등 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결국 ‘모든 인간은 불쌍하다’라는 거대한 주제를 담아냈다. 5월, 이 역사적인 공연이 다시 무대에 오른다. 2016년 대한민국 경남으로 시간은 흘렀지만 역사적 사건의 모티프는 그대로다. 국가와 전쟁이라는 거대한 담론 아래 그는 묻는다. ‘국가란 무엇인가!’ 5월 13일부터 6월 4일까지 남산예술센터로 향하자. 이 질문이 가장 절실해지는 요즘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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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설미현PHOTO : 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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