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이상한 나라의 Mr.

그의 이름은 Mr. 태어난 곳은 일본의 쿠파 지역이라고 했다. 한데 기이한 건 정보의 바다를 아무리 뒤져도 그가 태어났다는 쿠파는 검색조차 되지 않으니. 세계적인 팝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의 제자로 일본 네오팝을 잇는 그. 이름부터도 이상한 ‘미스터’가 서울에 왔다.

2017.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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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Mr./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of Galerie Perrotin

 

애니메이터? 만화 작가?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이라면 누구라도 이런 결론에 다다를지 모른다. 괜한 오해도 아닌 것이, 그의 작품에는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봤을 법한 커다란 눈망울의 소녀들이 등장한다. 일본을 대표하는 네오팝 아티스트 미스터(Mr.).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네오팝’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네오팝은 1960~70년대에 전성기를 누려 현대미술의 한 장을 장식한 팝아트의 현대적 버전이라 할 수 있다. 팝아트의 새로운 부활을 이끈 네오팝 아티스트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서구 위주의 팝아트 구도에 일본 작가들의 합류가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나라 요시토모, 무라카미 다카시를 주축으로 한 일본의 네오팝은 자국을 너머 전 세계 미술 시장을 뜨겁게 노크했다. 이들의 뒤를 잇는 2세대 네오팝 작가, 그가 바로 미스터이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제자라는 사실만으로, 그에 대한 궁금증은 이미 포화 상태다.

그가 개인전 설치를 위해 서울에 당도한 날은 우연찮게도 12월 9일. 한반도 역사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바로 그날이었다. 설치 작업으로 어지러운 전시장 틈으로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소녀들이 먼저 고개를 내밀었고, ‘Mr.’ 모자를 눌러쓴 진짜 미스터가 우리를 맞았다. “무라카미 다카시가 지어준 이름이에요. 또 제가 요미우리 자이언츠 야구팀의 아이콘이라 할 나가시마 시게오 선수를 좋아하는데, 그의 별명이 미스터 자이언트이기도 하죠. 사람들이 저와 그가 닮았다고 하더군요.” 야구선수와 예술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건만, 도대체 무엇이 닮았다는 것일까. “나가시마 시게오는 이상한 면이 있긴 해도 오히려 사람들은 그런 특이한 말과 행동에서 매력을 느끼죠. 무라카미 다카시 역시 그 점이 저와 비슷하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이름에 얽힌 사연이야 그렇다 치고, 그가 태어난 쿠파는 대체 왜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에서조차 종적을 찾을 수 없는 것일까. “쿠파는 상상으로 만들어진 장소예요. 당연히 인터넷상에서 찾을 수 없었을 거예요.” 이름도 모자라, 태어난 곳까지 가상의 지역을 만들었다니. 사람들의 말마따나 제법 ‘이상한’ 구석이 많은, 미스터다. “어린 시절은 그저 평범했어요. 윤택하진 않았고요. 초등학생 때부터 그림을 그렸죠. 그때도 애니메이션 보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미술 대학을 거쳐 무라카미 다카시의 스튜디오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10년을 어시스턴트로 지냈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대표작 중 하나인 ‘카이카이 키키’가 탄생한 현장에 그 역시 함께있었다.   

 

 

1 설치 작업에 한창인 미스터. 2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소녀상 조각이 막 전시장에 당도했다.  © 2016 Mr./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of Galerie Perrotin MR. ‘Tropical Jucie @ School’, 2016, Acrylic on Linen Mounted on Wood Panel, 70×49.1cm © 2016 Mr./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Galerie Perrotin

 

 

현대 사회를 향한 거대한 코스프레   
“이번 전시에 선보일 작품은 모두 신작으로, 150~160cm 크기의 입체 소녀상을 비롯해 사진과 페인팅 작업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애니메이션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현장의 상황과는 달리 전시 제목은 너무도 서정적이다. <도쿄, 해 질 무렵, 내가 아는 도시: 허전한 내 마음과 같은>. 제목처럼 해 질 무렵을 촬영한 그의 대형 사진 작품이 전시장에 온기를 더한다. “5년 전부터 사진 작업도 병행하고 있는데, 이 사진은 도쿄의 저물녘 모습을 촬영한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도쿄는 아니고, 사히타마에서 찍은 거예요. 여름과 가을 사이였던 것 같아요. 시간은 오후 4시에서 5시쯤?” 그의 사진 속 풍경은 현대 도시의 그 어딘가처럼 느껴진다. 화려함의 상징인 도시. 그러나 그의 사진 속에는 뜻 모를 쓸쓸함과 공허가 흐른다. 한낮의 맹렬함이 지나간 자리, 해 질 무렵의 도시에는 알 수 없는 애잔함이 가득하다. 허전한 작가의 마음처럼, 허전한 현대인의 마음처럼.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일러스트를 보면 소녀가 많이 등장해요. 60~70년대에는 로봇이 많이 등장했죠. 건담 같은. 자연스럽게 소년이 작품 속에 많이 등장했어요. 한데 90년대 이후 ‘세일러문’ 같은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끌면서 소녀들이 주를 이루는 애니메이션이 뒤를 이었죠.” 그의 화면 속에 등장하는 소녀들 역시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작업실 가득 피규어가 있을 만큼 그는 뼛속부터 오타쿠다.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에 집착하는 오타쿠 문화. 이는 일본 대중문화를 대변하는 가장 중요한 단서다. 일본의 네오팝 작가들은 하위문화로 취급받는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을 ‘현대미술’이라는 숭고한 영역 속에 교묘히 안착시켰다. 물론 여전히 키치적이라는 비아냥도 따라붙는다. “후쿠시마 지진, 쓰나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영향이 전혀 없었다고도 할 수도 없어요. 복합적이죠.” 그의 화면 속에는 주지하듯, 순수함과 천진함을 대변하는 커다란 눈망울에 교복 차림의 소녀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 너머로는 소녀들의 천진함과는 대조적인 불안과 혼돈의 흔적이 난무한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글자와 무기력함과 암울함이 드리운 세계. 어느 순간 어린 소녀는 사라지고 상실과 불안 속에 지친 어른의 세계가 눈에 들어온다. 해맑은 소녀들 사이에서 우리가 마냥 웃을 수 없는 이유다. “개인적으로 2년 전쯤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그 이후, 작품에 드러나는 분위기 자체도 달라진 것 같아요. 이전에는 밝은 느낌, 명확한 그림을 그렸다면 지금은 낙서 같고, 때론 공격적인 모습을 볼 수 있죠.” 대체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평범하게 결혼도 하고 가정을 이루고픈 희망도 있었는데, 그게 쉽지 않았죠. 나이도 어느덧 40대고요.” 상실과 불안의 긴 터널을 지나 다시 새로운 화폭 앞에 선 미스터. 작가이기에 앞서, 한 인간이기에 피할 수 없는 불안과 상실을 고백하는 그 앞에 알 수 없는 안도감이 생긴 건 그즈음이었다.    

“이번 전시 오프닝에서도 코스프레를 할 생각이에요.” 우리나라로 치면, TV 프로그램 속 개그맨이나 할 법한 애니메이션 속 소녀를, 40대 후반의 그가 코스프레하겠다니. 하지만 그에겐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는 장소 불문하고 코스프레를 즐긴다. “밤에 혼자 마음이 아팠을 때 많이 했어요. 어떤 때는 술도 좀 마시고요.” 그는 코스프레 이야기에 신이 난 듯 목소리를 높였고, 휴대전화 속에 담긴 코스프레 사진을 내밀었다. 그 안에는 지하철에서 기묘한 코스프레를 한 미스터, 뉴욕 어딘가에 가라오케를 만들고 그곳에서 노래하는 미스터가 있었다. “노래도 잘 부르는 편이죠(웃음). 코스프레 후 화장을 지울 때면 스트레스가 해소돼요. 코스프레는 스트레스 발산의 한 형식이죠. 물론 20~30년 후에도 코스프레를 할 생각이에요. 달라질 게 있다면, 아마 집에서, 밤에, 실내 파티에서 하지, 밖에서는 안 할 것 같아요(웃음).” 그의 코스프레가 끝나지 않는 한, 그의 그림 속 소녀들은 여전히 생명력 넘치는 모습으로 화폭을 노닐 것이다.

‘미스터’라는 이름을 가진 조금은 이상한 작가. 내내 웃지 않던 그는 카메라 앞에서 비로소 웃었고 마치 퍼포먼스를 하듯, 래커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심지어 어린아이처럼 V자를 그려 보이며 웃는 그에게서 얼핏 미소년을 본 것 같기도 하다. 하위문화라 취급받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무서운 마법. 이름 없는 마법사 Mr.가 그려놓은, 가장 친근한 치유의 세계가 2월 18일까지 갤러리 페로탕 서울에 펼쳐진다. 스승인 무라카미 다카시와 함께 노르웨이 오슬로에 갈 것 같다는 단서를 남긴 채, 그는 조용히 떠났다. 

 

 

1 MR. ‘Kay’, 2016, Acrylic on Canvas Mounted on Wood Panel, 68.5×104×5.2cm 2 커다란 눈망울의 밝고 활기찬 소녀들을 그리는 작가라 믿기지 않을 만큼, 그는 진지하고 말을 아꼈다. 3 MR. ‘Meg’, 2016, Acrylic on Canvas Mounted on Wood Panel, 90×126×5.2cm 4 그의 손을 거친 전시장은 낯선 판타지의 세계로 탈바꿈했다. All Images © 2016 Mr./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of Galerie Perrotin

 

CREDIT

EDITOR : 설미현PHOTO : 박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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