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TECH 잊을 수 없는 페라리와의 하루

페라리와 함께 하루를 보냈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보이는 건 오직 페라리뿐

2018.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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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이벤트는 테스트 드라이브가 아닙니다. 빠르게 달릴 필요도, 몰아붙일 이유도 없지요. 페라리를 타면서 그런 유혹을 뿌리치긴 힘들겠지만.” 인스트럭터인 안드레아가 페라리 중동 드라이브 이벤트 브리핑에서 이탈리아 억양이 잔뜩 밴 영어로 말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동아시아에서 온 기자들과 인플루언서들은 당혹감과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 역시도 그랬다. 안드레아는 눈치를 살피며 재빨리 말을 이었다. “여유를 가지세요. 두바이를 벗어나 라스알카이마(Ras Al-Khaimah)로 가는데 그곳의 멋진 풍광이 우릴 기다릴 겁니다. 그리고 그곳에 ‘보물’을 숨겨뒀습니다. 기대해도 좋습니다.” 이어 안드레아는 그곳까지 함께할 페라리를 소개했다. 488 GTB를 시작으로 812 슈퍼패스트, GTC4루쏘T, GTC4루쏘다. 본격적인 시승에 앞서 시트 포지션과 기본적인 주행 기술들을 설명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안전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브리핑을 마쳤다. 우리가 이곳에 오기 며칠 전, 이미 아랍에미리트에 있는 몇몇 페라리 오너가 파시오네 로사(Passione Rossa, 붉은 열정) 이벤트를 통해 이곳을 다녀갔다. 우리는 그 페라리 오너들의 하루를 그대로 살아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페라리 오너의 삶, 생각만으로도 가슴 떨리지 않는가? 호텔 바깥으로 나오니 뜨겁고 메마른 바람이 나를 반겼다. 전날 저녁 비행기로 도착했을 땐 미처 알지 못했는데 두바이는 상당히 더웠다. 평소 같았으면 짜증이 만개할 텐데 콧노래를 부르며 배정받은 차를 맞이했다. 그 차는 다름 아닌, 페라리에서도 성격이 가장 활발한 488 GTB였기 때문이다. 488 GTB를 타면서 여유롭게 달리라는 인스트럭터가 조금은 야속했다. 
 

 

488 GTB는 40년 전에 선보인 308 GTB로 거슬러 올라간 V8 미디십 스포츠카의 계보를 잇는 페라리의 핵심 모델이다. 488 뒤에 붙은 GTB는 그란 투리스모 베를리네타(Gran Turismo Berlinetta)의 줄임말이다. 이탈리아어로 그란 투리스모(Gran Turismo)는 ‘장거리 여행을 위한 고성능 차’를 뜻한다. 차에 대해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그 이름이 익숙할 거다. 좀 달린다고 하는 고성능 차들이 이름으로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어 베를리네타(Berlinetta)는 영어로 쿠페(Coupe)와 같은 의미다. 2도어에 보통 뒷부분이 비스듬한 차의 형태를 말한다. 결국 장거리 여행을 위한 고성능 쿠페로 풀이할 수 있다. 이번 이벤트에 다른 왜건 형태의 페라리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모델인 줄 알았는데 이름만 놓고 보면 미세한 교집합이 존재한다. 우리의 488 GTB는 노란 차체에 루프엔 검은색을 칠하고 검정 시트에 노란색으로 포인트를 줬다. 빨간색이 아니래도 상관없다. 페라리는 빨간색이어서 섹시한 게 아니라 페라리이기 때문에 섹시한 거니까. 안드레아가 운전석에 앉은 나에게 손짓했다. 출발이었다. 참을 수 없는 웃음이 입꼬리 밖으로 삐져 나왔다. 페라리 488 GTB와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국내의 시승 여건상 아무리 오래 시승한다고 해도 3시간을 넘지 못한다. 촬영 때마다 잠깐 타볼 땐 몰랐는데 승차감이 그리 딱딱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두바이 도심을 헤쳐나가는 데에도 큰 부담이 없었다.  두바이 도심을 빠져나와 이내 고속도로에 올랐다. 선두에서 우리의 길을 안내하던 안드레아는 빠져나갈 인터체인지를 알려주며 적당한 속도로 그곳으로 오라고 무전을 보냈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니 태코미터 바늘이 금세 치솟았다. 패들시프트를 이용해 엔진을 쥐어짰다. 바늘이 두어 번 꺾여 오르길 반복하니 속도는 순식간에 시속 120킬로미터에 다다랐다. 속도는 기대만큼 빠르고 급하게 올라갔다. 엄청난 저항을 뚫고 내달리면서도 바닥에서 들뜨는 기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바닥에 착 달라붙어 달리는 듯했다. 어떤 속도에서도 제어에 부담이 느껴지지 않아 즐거웠다. 아직 한계점에 다가가지 못한 내 비루한 드라이빙 실력일 수도 있다. 그래도 운전하면서 느낀 개운한 맛을 잊을 수 없다. 귀를 찌르는 듯한 소리가 가슴 한쪽을 찢는 기분은 또 어떻고. 그렇게 120킬로미터를 달려 ‘라스알카이마’라고 써 있는 이정표를 발견했다. 보이는 것이라곤 사막밖에 없는 이곳에 안드레아는 어떤 ‘보물’을 숨겨놓은 걸까? 물이 귀한 곳이라 오아시스를 보여줄 생각인가? 추측이 난무하는 사이, 숙소인 리츠칼튼 리조트에 도착했다. 한 시간의 휴식 시간을 갖고 ‘보물’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피로를 느낄 새가 없었다. 쉬는 시간, 안내차로 온 페라리 488 스파이더까지 5대의 페라리가 서 있는 곳으로 갔다. 타고 온 488 GTB 이외의 차들을 보는데 역시 관심은 온통 812 슈퍼패스트에 쏠렸다. 아직 국내에는 들어오지도 않은 차다. 페라리 중동 마케팅 담당인 앙리에게 혹시 812 슈퍼패스트를 운전할 수 있는지 문의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No’였다. 차종별로 배정을 받은 차는 임의로 바꾸지 못할뿐더러 812 슈퍼패스트는 일정 수준의 레이싱 라이선스가 있어야 주행할 수 있다는 자체 규정을 설명했다. 아쉽지만 눈으로 즐겨야겠다. 812 슈퍼패스트의 안팍을 눈과 카메라로 담고 있는 동안 다들 출발 채비를 마쳤다. 안내차가 바뀌었다. 경찰차 두 대가 페라리 무리의 앞뒤를 호위했다. 
 

 

일급비밀? 페라리에서도 SUV를 만든다는 첩보가 입수됐다. 아직 정확한 스펙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르반떼에 올라간 V6 엔진을 가지고 SUV 개발에 착수 중이라고 한다. 누가 말했는지는 비밀이다.

 

경찰차를 따라 40분가량 더 북쪽으로 올라갔다. 사막이 점점 사라지더니 황량한 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드레아에게서 무전이 왔다. “이곳이 바로 내가 말한 ‘보물’이야.” 처음엔 그 보물의 의미를 알아챌 수가 없었다. 그냥 산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산에 다가갈수록 산의 옆구리를 가로지르는 산악도로가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도로 7, 8개가 갈비뼈 형상으로 겹겹이 꼬아져 있었다. 이곳이 안드레아가 말한 보물, 바로 ‘국립 제벨 자이스(Jebel Jais) 산악도로’다. 이미 외국 드라이버에게는 유명한 드라이브 코스란다. 얼핏 보기에도 쉬운 드라이브 코스는 아니다. 업힐 경사가 높고 급하게 굽은 구간도 꽤 많다. 출력이 적당한 차들이라면 모를까, 페라리를 이곳에서 타면 무슨 큰일(?)이 터질 것만 같았다. 무전기에선 ‘릴리스(Release)’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봉인돼 있던 페라리의 힘을 해제할 때였다. 처음부터 무난한 길은 없었다. 조금 쉬운 코스가 나오는가 싶으면 헤어핀이나 급경사가 나타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산비탈에서 떨어져 나온 돌들이 도로 위에 굴러다니는 경우도 있었다. 위험한 건 블라인드 코너에 떨어진 돌이다. 그럴 땐 돌을 피해 갈지 멈출지 결정해야 했지만 답은 정해져 있었다. 피해야 한다. 보통 차였으면 멈췄을 거다. 괜히 급격하게 움직이다 더 큰 사고를 야기할 수도 있으니까. 488 GTB는 급격하게 움직여도 허둥대는 법이 없다. 488 GTB니까, 그게 당연했다. 아스팔트 위의 열기 덕분에 타이어 접지력이 상당했다. 노면을 단단히 움켜쥐고 달렸다.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꽤 길었다. 오르막 구간만 30킬로미터가 넘었다. 중간 지점을 지나자 가파른 업힐들이 우리를 기다렸다. 주행 모드를 스포츠에서 레이스 모드로 바꾸고 패들시프트를 이용했다. 아무래도 자동으로 달리면 가속이 더디다. 정속 주행 중에 시속 60~70킬로미터로 달리는데 기어를 6, 7단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패들시프트를 이용해 엔진회전을 충분히 돌리며 있는 힘을 모두 써 업힐을 공략해나갔다. 스포츠 모드보다 레이스 모드가 오히려 승차감이 부드럽다는 착각이 들 만큼 레이스 모드의 서스펜션 감각은 독특했다. 매끄럽게 도로 위를 스치듯 주행하면서도 노면 정보는 충분히 전달한다. 핸들링은 누구나 예상하듯 명민하고 민첩하게 움직인다.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극한으로 몰아붙일 수 있다. 하지만 몰아붙일수록 극한이 나타나질 않는다. 페라리의 극한은 내가 생각한 극한, 그 이상이었다. 해발 1934미터인 제벨 자이스 정상에 올랐다. 우리 주위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발밑엔 산과 우리가 지나온 도로만 있을 뿐. 도착하자마자 페라리 중동 스태프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함께 온 경찰은 산악도로 약 4킬로미터를 앞뒤로 막았다. 인스트럭터가 직접 운전하는 812 슈퍼패스트와 488 스파이더 택시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이다. 내가 끌어낼 수 없는 두 차의 성능을 온전히 느낄 기회였다. 선배 기자는 반짝이는 눈으로 812 슈퍼패스트를 바라보는 후배를 외면할 수 없었는지 812 슈퍼패스트를 양보했다. 조수석에 앉아 출발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3분 동안 머릿속으로 어떤 주행이 펼쳐질지 그려봤지만 타보지 않은 차로 상상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상상을 쥐어짜고 있을 때쯤 인스트럭터는 “준비됐니?”라고 묻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출발해버렸다. 코너를 하나둘 지날 때마다 다리가 저려왔고 손에는 땀이 흥건했다. 812 슈퍼패스트를 최대한 밀어붙이고 있었다. 가속력은 폭발적이었고 제동력은 강력했다. 인스트럭터는 코너 입구에서 안쪽으로 파고들며 뒷부분을 날리더니, 운전대를 반대로 감아 드리프트로 헤어핀을 탈출해나갔다. 또 다른 코너에서는 고회전을 유지하며 날카롭게 코너를 베어가기도 했다. 두려움은 어느새 희열로 바뀌고 있었다. 다음 코너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하고 있었다. 함께 출발한 488 스파이더가 812 슈퍼패스트를 앞질렀다. 이에 질세라 옆에 앉은 인스트럭터는 488 스파이더의 안쪽을 공략하며 빈 공간을 파고들었다. 연출한 쇼이긴 하지만 두 차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레이싱 경주에서나 느낄 수 있는 긴장감을 조성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차에서 내리는데 다리에 힘이 살짝 풀렸다. 소감을 묻는 인스트럭터의 말에 엷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날 밤 저녁 이벤트에 참가한 모든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다. 아랍 음식을 먹으며 하루를 되돌아보았다. 어떤 이는 ‘일생일대 최고의 드라이브’, 다른 이는 ‘다신 못 올 제벨 자이스’를 외치며 그들의 하루를 자축했다. 하지만 나는 좀 달랐다. 오히려 슬펐다. 이렇게 멋진 차와 장대하게 펼쳐진 산악 드라이브 코스, 그리고 페라리를 가지고 열띤 토론을 하는 지금이 일생에 하루뿐일 것 같아, 이제는 안녕을 고해야 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짙었다. 이 밤의 끝이라도 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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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김선관PHOTO : 페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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