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불가능이란 없다

탈것과 함께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여행가들이 있다. 그들의 다른 이름은 모험가다

2017.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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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타페로 남극을 정복하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다.” 1920년 네 번째 남극 정복에 도전한 불굴의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Ernest Henry Shackleton)이 남긴 마지막 말이다. 그로부터 100여 년 뒤, 증손자인 패트릭 버젤(Patrick Bergel)은 증조할아버지의 불굴의 정신을 이어받아 남극 횡단 길에 올랐다. 남극 횡단은 섀클턴이 조난당한 동료 27명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포기했던 꿈이다. 이번 남극 횡단에 패트릭과 함께한 동료는 사람이 아닌 싼타페 2.2 디젤 모델이다. 영하 30℃를 넘나드는 남극을 안전하게 횡단하기 위해 현대차는 차량 개조 전문 업체와 극지 차량 전문가들을 수소문했다. 양산차의 남극 주행은 전례조차 없었기 때문에 전문가들에게도 ‘모험’이었다. 현대차는 자사의 기술력을 시험할 좋은 기회이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길고 긴 회의를 거쳐 개조할 부분이 결정됐다. 엔진, 트랜스미션 등 기본적인 사양은 그대로 살리고 타이어 교체(38인치), 지상고 상향, 서스펜션과 기어비 조정, 히팅 시스템(시동이 걸리지 않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 전용 연료 탱크 등 극지 주행에 필수적인 최소 부분만 개조하기로 했다. 그렇게 2년을 준비했다. 그리고 패트릭은 싼타페와 함께 끝없이 펼쳐진 설원을 30일 동안 남극 유니언 캠프에서 맥머도 기지까지 왕복 5800킬로미터를 달렸다. 횡단에 참여한 모든 사람과 싼타페는 무사했다. 그들은 극한의 설원에서 먹고 자고 달리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패트릭은 현대차의 기술력에 감탄하며 돌아가서 한 대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을지도(현대차는 남극 횡단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한 싼타페 3대-촬영차 포함-를 남극의 장보고 기지에 기증했다). 

 

 

 

캐딜락으로 불곰국을 가로지르다
10년 동안 자전거로, 자동차로 여행을 다니며 20대를 길에서 보낸 류광현 작가. 그가 캐딜락 에스컬레이드로 러시아를 횡단하게 된 계기는 친한 형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이었다. 형은 뜬금없이 그에게 자신의 에스컬레이드를 타고 러시아를 횡단하자는 제안을 했다. 더 큰 세상을 여행하고 싶은 꿈을 간직하고 있던 류 작가는 바로 “예”라고 답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세 사람(형의 8살짜리 아들도 같이 여행을 떠났다)은 배에 에스컬레이드를 싣고 23시간 떨어진 러시아로 출발했다. 막상 출발하니 걱정이 밀려왔다. ‘여행 중 경찰에게 40번 넘게 단속됐다’ ‘경찰이 뒷돈을 요구한다’ ‘인종차별 조심해야 된다’ 등 다른 여행가들의 말이 떠올랐다. 러시아에 도착해 끝없이 펼쳐진 자작나무 숲길과 초원을 달리며 걱정은 눈 녹듯 사라지며 기우였다는 걸 깨달았다. 러시아도 마피아가 아닌 우리와 같은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세 사람의 최종 목적지는 상트페테르부르크였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1만 킬로미터를 넘게 달렸다. 웃을 일만 가득했던 건 아니다. 바이칼 호수 근처를 달리던 중 주먹 두 개만 한 돌덩이가 차로 날아와 큰 사고를 당할 뻔한 순간도 있었다. 그는 “만약 다른 차였으면 여행을 계속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했다. 1억원이 넘는 차를 도둑맞을까 걱정돼 잠을 이루지 못한 밤도 셀 수 없이 많다. 가장 잊지 못할 경험은 러시아인의 운전 매너(?)다. 경찰의 과속 단속을 반대편 차선의 운전자가 상향등을 켜 알려준다는 것. 덕분에 한 번도 단속에 걸리지 않았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벌금으로 낸 돈이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그렇게 러시아 대륙을 한 달하고 15일 동안 달렸다. 러시아는 화물차가 많아 노면 상태가 좋지 않은 도로가 대부분이고, 300~500킬로미터는 달려야 도시를 만날 수 있는 거대한 대륙이다. 편안하고 아늑한 자동차 여행은 아니었지만 황홀함의 연속이었다. 러시아 횡단 후 그는 새로운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지구를 가로로 1만 킬로미터 이상 자동차로 여행했기에, 알래스카부터 시작해서 캐나다, 미국, 멕시코, 코스타리카, 파나마까지 세로로 1만 킬로미터 자동차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것. 길고 긴 여행에 어떤 차가 그와 함께하게 될지 기대된다. 

 

 

버스에 김치를 싣고 달리다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세계 여행을 사랑하는 가족, 친구, 연인도 아닌 김치와 함께한 남자가 있다. 바로 류시형 셰프다. 사람들은 그를 ‘대책 없는 낙천주의자’라 부른다. 그에게 세상은 온통 즐길 거리로 가득 찬 놀이터다. 전역 후 무작정 26유로만 들고 220일 동안 유럽을 들쑤시고 다닌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낙천적이고 대책이 없는지 알 수 있다. 말이 여행가지 부랑자가 따로 없었다. 온갖 고생을 다 하고 돌아와서 그는 또다시 떠날 계획을 세운다. 이번에는 김치 버스였다. 요리를 전공한 그에게 김치와 버스는 세계인에게 한국의 음식 문화를 알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여행, 술, 사진, 사랑, 청춘을 모두 즐길 수 있는 완벽한 수단이었다. 돈을 벌거나 무언가를 얻기 위한 게 아니었다. 김치를 통해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 음식 문화를 교류하고 싶었다. 계획은 거창했다. 하지만 적당한 가격의 중고 버스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캠핑카로 구조 변경된 98년식 카운티를 겨우 손에 넣었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오스트리아에서 눈밭에 빠진 버스를 꺼내기 위해 온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았고, 보일러에 부동액이 흘러 들어가 수리하느라 말 그대로 ‘개고생’을 했다. 그중 최고의 아찔한 사건은 칠레에서 벌어졌다. 도로를 달리던 중 엔진이 주저앉아버렸다.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그는 등골이 서늘해진다. 버스를 수리할 만한 정비소가 많지 않아 부품을 한국에서 공수해 직접 수리하는 일도 많았다. 불가능한 순간들을 그는 특유의 대책 없는 낙천주의로 웃으며 극복했다. 그렇게 김치를 싣고 블라디보스토크를 시작으로 600일 동안 34개국, 6만 킬로미터를 달렸다. 그런 식으로 첫 번째 김치 버스는 여행을 마쳤다. 이제 그는 두 번째 김치 버스, 국가 홍보 프로젝트, 김치 버스 레스토랑, 김치 DIY 키트 등 김치 버스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일을 기획하며 새로운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농기구로 못 가는 곳은 없다
지구상에서 가장 특이한 탈것으로 여행하는 여행가를 뽑는다면 강기태는 단연 1등이다. 그는 농기구인 트랙터를 타고 국내는 물론 터키(1만 킬로미터 횡단), 중국(8304킬로미터 종단) 그리고 미얀마 전역을 일주한 트랙터 여행가다. 현재는 여행 모임 커뮤니티 ‘여행대학’의 총장을 맡고 있다. 그는 트랙터 여행을 위해 3년 6개월간 국내 트랙터 회사의 문을 두드렸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도전이었지만 마침내 그는 2400만원 상당의 트랙터 1대와 기름값 300만원을 지원받았다. 이후 국내를 시작으로 3만 킬로미터 넘는 거리를 트랙터로 여행했다. 트랙터 여행의 매력은 ‘고난의 연속’과 ‘느림의 미학’이다. 그는 “최대속도가 시속 30킬로미터밖에 되지 않아 길 위에서 많은 사람과 눈인사로 그들의 온정, 온기, 교감, 여유를 흡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단점이라 생각했던 ‘느림’이 막상 겪어보니 장점이었던 것. 하지만 트랙터 여행이 즐겁기만 한 건 아니었다. 트랙터는 여행하기엔 굉장히 불편한 기계다. 속도보다 주행 시 진동, 흔들림 등 모든 충격을 고스란히 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일이 더 힘들었다. 겨울에는 자주 미끄러져 접촉 사고를 달고 살았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이런 불편과 고통을 감수하며 여행을 하고 있다. 이제는 이슈를 만들어 돈 벌려고 일부러 특이한 여행을 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비아냥 섞인 시선과 비난도 이겨낼 경험과 자신감이 생겼다. 그 힘 덕분인지 다음 계획은 더욱더 기상천외하다. 하동에서 쌀농사를 짓고 있는 아버지와 함께 남미 트랙터 일주를 하겠다는 것. 팀을 꾸려 트랙터로 세계 일주하는 계획도 진행 중이라고 하니, 관심 있는 사람들은 여행대학 홈페이지에 들러보시길. 

 

 

 

 

모터트렌드, 자동차, 여행

 

CREDIT

EDITOR : 구본진PHO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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