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의 선이 하늘을 그림처럼 담는다. 손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뷰 포인트

한옥은 유물이 아니다. 지금도 서울엔 사람 사는 한옥이 있다. 여전히 마당에 장독을 부리고, 연탄을 때고, 야외 화장실에서 용변을 본다. 이런 집은 보통 ‘도시형 한옥’ 또는 ‘개량 한옥’으로 부른다. 전통 한옥 양식에 벽돌과 유리, 함석, 시멘트 같은 건축재를 더한 도시형 한옥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에 시작됐다. 서울 인구의 급증으로 조선인 집 장수가 대량으로 지어 판매한 보급형 민가가 시초다. 돈암동과 보문동, 제기동, 신촌, 종로를 포함한 강북 일대에서 1940년대부터 1970년대에 지어진 이런 한옥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살림집으로 사용되는 이 생활 한옥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8년 전엔 2만7000여 채에 달하던 한옥은 지난해 1만1000채 안팎으로 줄었다. 관리의 어려움과 수리 부담 때문이다. 개발과 새것이 환영받는 도시에서 서울의 역사를 지켜본 개량 한옥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도시 재생’이 서울의 키워드가 되면서 해체되고 사라졌던 한옥들이 다양한 삶을 품기 시작했다. 혜화동 뒷골목에 숨은 독일주택은 밥집과 찻집 일색인 ‘한옥 가게’ 세계에서 ‘술집’이라는 새 지평을 연 곳. ‘독일주택獨逸酎宅’은 ‘홀로 앉아 술을 마시네’라는 의미를 담아 지은 이름이다.

독일주택의 바. 혼자 와도 좋은 이유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작은 화단이 있는 마당과 본채가 시선에 든다. 문간과 대청이 마주 보는 개량 한옥의 전형적인 ‘ㄷ’자 구조다. 독일주택이 되기 직전까지 할머니 혼자 살던 가정집이었다. 장판 대신 타일을 새로 깐 것 말고, 독일주택엔 변한 게 별로 없다. 앉은뱅이 탁자 대신 의자와 테이블을 들였는데, 이유는 단순하다. 손님들이 가게에서 술 마시고 방바닥에서 잠들까 봐. 가구와 조명은 한옥의 기둥과 서까래에 어울리도록 주인 하덕현 씨가 직접 짜고 만들었다. 살리면서 고치는 데 총 넉 달이 걸렸다. 본채와 분리된 문간방과 사랑방은 은밀한 별실로 기능한다. 살롱 같은 공간이다. 안방은 술집의 바, 마루와 작은 방은 홀로 꾸몄다.

독일주택이 술맛 나는 집인 이유는 단순히 특이한 공간미 때문만은 아니다. 혼자 술 마시러 온 손님들에게 낯설고 아름다운 술을 소개한다. 버젤피터와 보드카, 진저 에일과 라임을 넣은 시그너처 칵테일 ‘베를린 뮬(Berlin Mule)’을 비롯해 벨기에와 독일, 일본 등에서 공수한 실험적인 맥주가 독주객의 벗이 되어준다. 단골이 꼽는 매력은 ‘마당’이다. 집 안 어디에서든 하늘이 잘 보인다. 몇 그루의 나무와 꽃은 계절의 민낯을 드러낸다. 해가 가장 높이 뜨는 때에 문 여는 것도 매력적이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한옥, 누군가의 하숙방 혹은 신혼집이던 옛날 집에 숨어들어 낮술에 취해보고 싶다면.

1 옛날 마루와 옛날 가구들 2 시그니처 칵테일, 베를린 뮬

엿보고 싶어지는 안쪽 풍경

A 16-4, Daemyeong 1-gil, Jongno-gu, Seoul T 02-742-1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