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원을 수료할 무렵에 어머니는 오래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 퇴임을 하셨다. 2007년 무렵이니 변두리 동네들이 한창 현대 힐스테이트의 손을 빌려 마지막으로 도약해보려고 혈안이 된 시절이었다. 내가 살던 동네에도 재개발을 한다는 소식이 돌았는데, 결국 내 부모의 집은 거기에 끼지 못했다. 언덕 중턱에 있는 연립주택이었는데, 바로 아래 번지까지만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철거 공사가 한창 이뤄지는 동안, 일 처리 잘하는 유능한 직장인이던 어머니는 동네 주민을 모아 소음 문제로 시공업체를 고소하는 등, 재개발에 끼지 못한 사람들이 으레 벌이는 일에 앞장섰다. 그렇게 어영부영 철거가 끝났을 때, 막 해가 지고 아직 사물의 모습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의 빛이 남아 있는 초저녁에 우연히 옥상에 올라간 적이 있다. 그때 눈앞에 보이던 폐허의 모습을 나는 여전히 기억한다.

이후 곧장 미국으로 떠난 나는 3년 정도 시간을 보내고 서울로 돌아왔다. 다시 돌아온 집은 재개발에 끼지 못한 그 집이 아니었다. 퇴직금을 그러모아 은평뉴타운의 그렇고 그런 평수의 아파트 한 채를 얻은 부모 덕분이었다. 그때 나는 평생 처음으로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그것도 새로 지은 아파트에 말이다. 당시의 은평뉴타운은 지금처럼 등산객 ‘개저씨’들이 막걸리 냄새를 풍기며 돌아다니는 동네가 아니었다. 2011년 초 첫 분양이라 한산한 동네였을 뿐이다. 다만, 상가마다 부동산과 휴대폰 대리점, 교회가 즐비한 것은 특이한 모습이었다. 곧 부동산은 그 수가 줄었고 그 자리에는 치킨집이나 치킨과 피자를 같이 파는 식당, 치킨과 피자와 탕수육을 같이 파는 식당이 들어온 것 같다. 다운 계약서니 뭐니 하는 일련의 매캐한 관습을 어영부영 통과하고, 다소 불친절한 포장이사업체의 일용직 아저씨와 신경전을 벌이는 일은 꽤 피곤했지만, 주인을 맞이하려고 마지막 단장을 마친 아파트를 구경하는 것은 인류학적으로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새 아파트에는 세상이 발전하고 있나 싶을 정도로 부실해 보이는 플라스틱 내장재가 누런 본드 자국을 남긴 채 여기저기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나무나 돌이 쓰여야 할 것 같은 자리는 모조리 나무처럼 보이는 플라스틱과 돌처럼 보이는 플라스틱으로 대체되어 있었다. 단 하나의 전기 콘센트도 정확한 각도로 붙어 있지 않았고, 에어컨이나 TV 등의 대형 가전제품을 놓는 자리는 이미 다 정해져 있었다. 하긴, 대부분의 한국인은 삶에 관해 일일이 직접 결정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러한 것을 편하게 여길 수 있겠다 싶었다. 그 정도의 못생김은 관대하게 이해하는 게 한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올바른 자세였을 것이다.

여하튼, 은평뉴타운은 비교적 최신식 외관을 자랑하는 신도시였다. 북한산국립공원을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기가 좋은 친환경 신도시임을 강조했고, 2000년대의 파주 개발이 그랬듯이 다소 허무맹랑하게 통일 시대를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신도시와 마찬가지로 은평뉴타운도 결국 몇 개의 대기업 건설사가 서로 구획을 나눠 아파트를 지은 대형 주거지일 뿐이었다. 삼성 래미안과 롯데 캐슬과 동부 센트레빌과 대우 푸르지오와 두산 위브와 동부 포스코와 현대 힐스테이트와 현대 아이파크와 금호 어울림 같은 아파트가 죽 나열되어 있는 모습. 거기에 친환경 신도시임을 강조하기 위해 나무를 몇 그루 더 심어놓은 정도였다.

사실 나는 오랫동안 그 동네에 살아서 잘 알고 있었다. 아파트가 잔뜩 들어선 그 동네는 원래 그냥 산이었거나, 산기슭을 이용해서 구멍 3개짜리 벽돌로 대충 집 짓고 살던 빈민가였거나, 그린벨트였다. 원래는 기자가 많이 살았다고 해서 기자촌으로 불렸다. 영화음악을 공부하던 친구가 재즈 이론가 이판근 선생을 사사하기 위해 들르던 집이 기자촌에 있었다. 그 밖에도 백기완 선생을 비롯해서 동네 전체에, 말하자면 ‘조금 고지식하게, 정직하게 살고자 하는 지식인’이 많이 사는 것 같은 분위기가 들었다. 그 점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정체된 기분이 은평구의 정서였다. 보통의 어머니라면 질색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실은 내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친구들이 목동으로, 상계동으로, 곧이어 일산으로 이사 갈 때도 우리 집은 불광동 언저리에 있었고, 시세 차익의 급류에 올라타지 않은 평범한 중산층에게 서울은 다소 매정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뉴타운이 생기자 박석고개를 넘으면 느껴지던 경기도의 냄새 같은 것은 마치 소독차가 지나간 듯 사라졌다. 앙드레김이 나왔다는 신도초등학교도 새로 지어서 깨끗해졌다. 은평이네, 금평이네 하면서 개그맨 김병만을 모델로 분양을 독려하는 광고도 얼핏 보았던 것 같다. 시세 차익과 은평구. 그 말은 전혀 와 닿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은평구 주민들이 언제나 느끼던 열패감을 정확히 겨냥한 문구였다. ‘우리도 아파트 옮겨 다니며 몇억씩 남겨보자’는 염원이 담겨 있었다. 실제로 독박골 들어가는 입구의 국립보건원 터에 제2의 코엑스몰을 짓자는 현수막이 동네에 나붙기도 했다. 지금 코엑스몰의 상황이 어쨌건, 일단 은평구는 강남구가 아닌 다른 모든 서울의 행정구역처럼, 강남구가 처절하리만치 부러웠던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 염원은 이루어졌을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결과는 다들 알고 있다. 집값이 쑥쑥 오르던 아름다운 추억 속 아파트가 사라진 시대에, 아파트 말고는 그 어떤 거시적 주거 정책도 고려해본 일 없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아파트가 무너지니 자연스럽게 경기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직선으로 내도 될 길을 일부러 꼬불꼬불하게 만드는 것 정도가 새로운 시대의 친환경 주거 정책에 불과한 나라라서 그렇다. 손잡이를 잡지 못한 마을버스 승객처럼 넘어질 수밖에 없는 자명한 미래. 내 부모가 사는 집의 뒷동은 50평이 넘는 넓은 집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꽤 오랫동안 한 채도 분양되지 않았다. 그렇게 현재의 아파트는 곧 미래의 유령의 집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월세 내기도 바쁜 일상 속에서 예정된 폐허를 미리 짐작할 수 있는 여유를 찾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About 함영준은 일민미술관의 책임 큐레이터이자 전방위 예술 공간 커먼센터의 디렉터다. 두 곳에서 미술과 사회, 세계의 관계를 탐색하는 전시와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세운상가 그 이상: 대규모 계획 너머>
by 김성우, 이영범, 제프 헤멀, 케이스 크리스티안서 외
타워팰리스가 탄생하기 약 30년 전, 서울에는 ‘세운상가’라는 최초의 호화 주상복합건물이 있었다. 한국 건축사에서 세운상가는 근대사와 긴밀히 연결된 존재다. <세운상가 그 이상: 대규모 계획 너머>는 그 관계를 탐구한 책이다. 단순히 역사와 현재만 나열하지 않고 상가를 둘러싼 대규모 개발 계획에 대해 국내외 도시계획, 개발 관련 전문가들이 모여 다각도로 살핀다. 건축가 승효상은 “거대 담론과 거대 건설에서 잃어버린 도시의 디테일과 이야기를 찾는 이들에게 길이 되어줄 책”이라 평했다. 공간서가
By Chun Heeran, Feature Editor

By Hahm Youngju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