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홍구, 황학동 1, 2004
사진작가 강홍구는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 일어나는 풍경의 변화를 기록한다.
무거운 주제가 그의 위트, 작업 방식과 만나 한 편의 풍자극이 된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에 대한 나의 정의는 아래와 같다.

“서울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아파트 재개발 지역에서 운 좋게 비켜간 지역에 젠틀맨인 척하고 들어와서 동네 분위기를 망쳐놓는 일이다.”

개인적으로 어떤 현상을 비꼬는 일을 싫어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비비 꼬인 단어들을 이해하는 척 써보려니 툭하고 튀어나와버렸다. 대부분의 서울 사람들에게 도시는 부동산이다. 지금껏 도시 재개발은 곧 아파트 재개발을 의미했다. 도시 개발은 부동산의 가격 상승을 부른다. 부동산 소유자에게 재개발은 곧 재산 축적을 의미한다. 서울에서 도시 개발이 좋은 것으로 여겨진 이유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 서울에서는 처음 있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거리의 추억을 재생산하는 일의 가치가 새로 짓는 가치를 추월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감각적으로 아파트를 피해 도주한 선구자들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즉 “아! 도시는 아파트로 재개발되지 않아도 돈이 되는구나”를 땅주인들이 깨닫기 시작했다. 이 시점부터 행정가들은 도시계획 업무에 ‘도시 재개발’과 더불어 그 잘난 ‘도시 재생’이라는 공식 하나를 더 추가했다.

이로서 ‘도시 재개발=아파트’, ‘도시 재생 = 이름만 예술 문화 마을’이라는 획일화된 공식이 일반화됐다. 사람들은 두 단어에 각자의 이념을 부여하고 자신들의 생각과 주장이 옳다고 싸운다. 이 대립 사이에서 땅주인들은 오로지 부동산 공식에 대입해서 답안을 비교 분석하고 결정한다. 현재의 서울에서 나타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요약하면 이와 같다.

통계로 볼 때 서울의 인구는 매년 5만 명씩 줄어들고 있다. 2016년이 되면 서울은 드디어 1000만 명 미만의 도시가 된다. 꽤 충격적인 소식이다. 서울 전셋값 상승으로 인한 경기권 이주 현상이 주 이유다. 이제 젠트리피케이션은 단지 홍대, 서촌, 성수동 등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지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일반 거주지에서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서울에 나타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진단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인구 감소 통계가 발표된 후에도 ‘과밀화된 도시 문제’에 대한 좌담회가 열린다. 많아도 문제, 줄어들어도 문제면 그건 그냥, 말장난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난 기본적으로 비꼬거나 투덜거리는 일을 싫어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 싶다.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해본다. 도시는 근본적으로 브랜드도 아니고, 기업도 아니며, 부동산도 아니다. 도시는 인간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자 인간 문명의 근원이다. 도시가 가진 근본적인 속성은 인간을 집약시킨 공간, 즉 공동체다. 인간은 고독 앞에서 무력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무리 지어 서로 의지한다. 소통을 위해 언어를 만들고, 공동 생활을 위해 규범을 만들었다. 도시는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만든 것이지 부동산을 위해, 일부 소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단어놀이를 좋아하는 나는 오래전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인간이라는 단어는 ‘人’(사람 인)만 써도 뜻이 통하는데 왜 굳이 뒤에 ‘間’(사이 간) 자를 붙였을까? 공간과 시간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공간도 ‘空’(빌 공) 만 써도 비어 있다는 의미가 전달되는데 ‘間’을 붙였고, 시간도 ‘時’(때 시)만 써도 의미가 통하는데 ‘間’을 붙였다. 의미가 통하는데도 ‘間’을 붙인 이유는 뭘까? 인간, 공간, 시간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라도 있는 걸까? 우리는 타인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관계를 통해 존재를 알린다. 태어난 고향, 부모, 학교 등을 밝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간 역시 관계 속에서 존재감을 획득한다. 공간과 공간의 경계, 즉 ‘사이’에 해당하는 벽이나 지붕이 ‘공간’이라는 공간을 발생시킨다. 간(間)이 있기 때문에 공(空)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시간 역시 때와 때 사이에 존재하는 전과 후의 관계를 통해 의미가 명확해진다.

나는 이 세 단어의 공통분모가 ‘도시’라고 생각한다. 도시는 시간과 공간 관계의 집합이며, 인간이 관계를 맺으면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장소다. 당신이 ‘젠틀맨’이 되는 일에 관심이 있다면 도시의 인간이 공간, 시간과 오랜 시간 긴밀하게 맺어온 촘촘한 관계를 망쳐놓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