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충도 전복과 세조대, 명주 저고리, 명주 바지, 태사혜는 모두 Kim Young Seok 제품

내숭. 겉으로는 순해 보이나 속으로는 엉큼함. 좋든 싫든 감추는 것이 미덕인 동양인 특유의 정서를 묘사할 때 쓰는 형용사. 동양화가 김현정은 이 특이한 정서를 작업의 주제로 삼는다. 작가는 ‘내숭’을 ‘치부를 감추고 좋은 모습만 보이고자 하는 욕구로 인해 나타나는 불일치’로 정의한다. 메타포는 속살이 비치는 반투명 한복. 그 한복을 엉덩이까지 끌어 올리고 자전거를 타거나 고상한 전통 의복을 입고 불온한 자세로 드러누워 쪽거울 앞에서 화장하는 소녀가 작가의 페르소나다.

이 발칙한 한복 입은 소녀는 화단보다 대중에게 먼저 주목받았다. 그 소녀에 자기를 투영한 젊은 아가씨들, 복숭앗빛 살결에 매혹된 총각들의 관음욕을 건드려 그들의 SNS를 타고 널리 전파됐다. 김현정 이후 국립중앙박물관, 간송미술관에서나 감상할 작품으로 여겨지던 동양화의 개념은 일상에서 소비되는 예술로 재정립된다.

김현정의 작업이 ‘동양화’로 분류되는 것은 단순히 전통 복식을 입은 인물을 그렸기 때문이 아니다. 작가는 동양화의 전통적 재료와 기법을 지키는 일에 변주 없이 성실하다. 은밀한 저고리와 치맛자락, 투명한 살결은 고려 불화의 기법, 즉 종이, 비단에 아교포수를 하고 뒷면에 먼저 채색을 한 후 앞면에 배어나오게 하는 배채색 기법의 결과물. 김현정의 팝아트- 동양화가 깊이 있고 우아한 빛과 색을 품은 이유다.

김현정의 개인전 <내숭 놀이공원>은 혹자에겐 현실, 혹자에겐 판타지인 놀이터다. 작가의 페르소나 ‘한복 입은 소녀’는 캔버스 안에서 바이크를 타고 스피드를 즐기거나 회전목마를 타기도 하고, 쇼핑 카트 한가득 군것질거리를 담는다. ‘갤러리가 일상의 고민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공간이 될 것’이라는 부연 설명이 없어도 눈과 기분이 즐거워지는 전시다. 3월 16일부터 4월 11일까지, 인사동 이즈갤러리.
O 10:00~19:00
A 52-1, Insadong-gil, Jongno-gu, Seoul
T 02-736-6669
W www.gallery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