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한강의 기적’ 속에 담긴 프레임

‘기적’이란 말은 어떤가? 폐허에서 성장을 했으니 자연스럽게 붙는 표현일까?

2016.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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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 보인다. 프레임은 미국의 인지 언어 심리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등을 통해 제시한 개념으로, 특정한 언어에 연결되어 있는 특정한 ‘사고의 틀’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어떤 말을 들었을 때 머릿속에 자동적으로 연상되는 일련의 생각 꾸러미라고 할 수 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여러분이 한강의 기적이란 말을 들었을 때 머릿속에 ‘끊어진 한강철교’가 자동으로 떠오른다면, 끊어진 한강철교가 한강의 기적이란 말에 연결되어 있는 프레임 중 하나가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끊어진 한강철교는 어떠한 의미일까? 단순히 눈에 보이는 흑백사진 속 이미지에 불과한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가 그것을 볼 때 떠올리는 것은 ‘전쟁의 참혹함’이며, 그렇듯 참혹한 일이 어째서 발생했는지, 누구의 책임인지에 대한 의구심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우리 모두가 잘 알다시피 ‘북한 공산당’에게 있다. 즉 끊어진 한강 철교란 말 속엔 ‘반공 사상’이 숨겨져 있는 셈이다. 

 

‘기적’이란 말은 어떤가? 폐허에서 성장을 했으니 자연스럽게 붙는 표현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기적이란 표현이 갖는 또 다른 프레임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혀 가망이 없는 암 환자가 살아난다면 그걸 기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이는 암 환자의 목숨만 살릴 수 있다면 암 치료 과정에서 나타나는 모든 부작용은 감내할 만한 것이라고 여기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한국식 고속 성장을 기적이라고 부르는 순간, 고속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은 모두 ‘부차적’인 것이 된다. 성장에 대한 ‘무조건적 긍정’이 기적이란 말에 내포되어 있는 셈이다. 정리하면, 한강의 기적이란 말 속엔 크게 ‘반공 사상’과 ‘산업화’라는 두 가지 핵심 가치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다름 아닌 우리나라 보수 정치 세력의 핵심 가치이기도 하다. 실제로 오랫동안 보수 정당과 정치 세력은 한강의 기적이란 말을 자주 사용해왔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최근 이 말을 언론에서 접하기는 쉽지 않다. 그 이유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을 하기에 우리가 처한 현실, 특히 경제적 현실이 너무 참혹하기 때문이다. 

대신 ‘헬조선’이란 말이 등장했다. 지옥을 의미하는 ‘헬(hell)’에 대한민국을 조롱하는 ‘조선’.

이란 단어를 연결해 만들어낸 표현으로, ‘전혀 자랑스럽지 않은 우리나라’라는 의미를 상징한다. 실제로 양극화와 빈부 격차, 저성장 등으로 대변되는 현실은 헬조선이란 말이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님을 보여준다. 하지만 한강의 기적이란 가치를 내재화하고 있는 보수 정치 세력은 헬조선이란 새로운 표현 그리고 그 표현이 내포하고 있는 프레임들에 대해 매우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게 사실이다. 심지어는 그렇게 현실이 힘들고 어렵다면 맞서 싸워야 하지 않겠느냐며, 헬조선이라며 나라 탓만 하는 건 나약하고 비겁한 태도라고 비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보수 정치 세력의 태도는 프레임 이론에 따르면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프레임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무의식 속에서 작동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프레임을 일부러 떠올려보지 않으면, 자기가 지금 어떤 프레임으로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다. 현재 보수 정치 세력의 태도로 볼 때, 한강의 기적이 내포하고 있는 프레임을 스스로 떠올려 자각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그렇다면 한강의 기적은, 그것이 상징하는 보수적 가치의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과거에 머무르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about 김진혁은 새로운 시선으로 주목받았던 EBS <지식채널e>를 기획하고 연출한 PD다. 지금은 인터넷 방송 <뉴스타파>의 프리랜스 PD,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CREDIT

EDITOR : 김진혁PHOTO : 일러스트 이승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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