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한강의 기록

조선 시대 최고의 화가 겸재 정선은 한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화폭에 담아 <경교명승첩>을 펴냈다. 약 300년이 흐른 후, 한국의 사진가들도 겸재와 비슷한 방식으로 한강의 찬란한 순간을 렌즈에 담는다. 다양한 시공간 속에서 바라본 한강의 어제와 오늘.

2016.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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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 ‘송파진’, 견본채색, 31.5×20.3cm, 1741 

 

박정민, ‘뚝섬 둔치’, 2008 

 

“270년 세월에 산천은 의구하지 않건만, 저 멀리 남한산성 성벽만이 아직 솔바람을 맞고 있다. 겸재 정선이 활동하던 당시 한강의 본류였던 송파나루는 매립되어 너구리 노니는 마법의 섬으로 차원 이동했다. 이제 아무도 한강이라 여기지 않는 곳, 겸재는 길을 잃고 산성 줄기만 더듬으리라. 서울이 더 이상 ‘한양’이 아니듯, 오늘의 한강은 수면 위로 지금의 서울을 오롯이 비추어낸다. 장활한 강폭과 휘황한 야경으로 놀라움과 소비를 이끌어내는데, 여의도와 뚝섬, 그리고 나의 사진 속 뚝섬 둔치가 특히 그렇다. 혹 낭만과 여유를 찾고자 한다면 하차 지점을 떠올려볼 것. 스마트폰으로 주문한 치맥을 뜯을 수 있는 인조 하천의 심장부다.” 

박정민 

 

 

한영수, ‘서울, 한강’, 1956-1963 

 

박정민, ‘이촌 둔치’, 2006 

 

“아버지가 촬영하던 1950~60년대 한강은 참 분주한 시대였다. 무너진 한강 다리를 복원하고, 여름이면 수영하고 겨울이면 낚시와 스케이트를 타던 시절이다. 심지어 한강 물을 채빙하여 식수로 사용하기도 했고, 계절마다 다른 옷을 입는 한강에는 서울 사람들의 삶이 녹아 있었다. 지금은 단조로워진 한강의 모습이 한영수의 사진을 통해 옛 시절에 대한 연민을 불러온다. 사진가 박정민의 작품과 나란히 놓고 보면 1950~60년대 한강과 2000년대 한강의 모습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그 시대의 한강이 열린 형태라면, 지금의 한강은 닫히고 비밀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한선정(사진가 한영수의 딸) 

 

 

 

왼쪽 김한용, ‘한강대교 일대’, 1966  오른쪽 권주훈, ‘한강하류 결빙 국회 야경’, 2013

 

“2014년 신년을 앞두고 국회의사당을 중심으로 한 야경을 촬영했다. 사진 앞부분에 놓인 서울의 남쪽부터 뒤쪽인 북쪽으로 이어지는 88도로의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앞에 두고 오랫동안 렌즈를 열어뒀다. 붉게 이어진 구불구불한 길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새해의 다짐이기도 했다. 47년간의 사진 인생에서 사진가 김한용과도 동시대를 살아왔는데, 좌우의 사진이 비슷한 앵글처럼 보이지만 그 시대에는 높은 건물도, 근사한 장비도 없었다. 지금까지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 속 인도교를 보니 한강에서 수영하며 노닐던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다.” 

권주훈 

 

 

사진 제공 눈빛출판사 

 전민조, ‘잠실시영아파트’, 1977 아래 조충식, ‘한강단막극’, 2013 

 

“내 기억 속 한강은 고기 잡고 헤엄치며 썰매를 타던 친근한 곳이었다. 국군의 날에는 공군의 곡예비행을 구경하는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대통령 선거 때는 한강 백사장이 거대한 유세장이 되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경제 개발 논리에 밀려 훼손되고, 머나먼 존재로 느껴지게 되었다. 인간의 개발 의지에 굴복당한 한강은 자연스럽지 못한 자연으로 남아 인간의 욕망을 기꺼이 받아주는 큰 강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다. 한강맨션을 필두로 한강 조망권의 고급 아파트 아래 조성된 한강공원에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강남과 강북으로 분류된 서울 시민의 삶이 TV 단막극 스틸 컷처럼, 때로는 부조리극의 한 장면처럼 펼쳐지고 있다.” 

조충식

 

 

구본창, ‘시선1980 시리즈, 여의도’, 1980s 

 

구본창, ‘시선1980 시리즈, 여의도’, 1980s 

“1985년, 독일 유학에서 돌아와 처음 살게 된 곳이 여의도였다. 틈만 나면 카메라를 들고 다니다 보니 여의도와 한강 사진을 많이 촬영하게 되었다. 이 사진은 1980년대 어느 초봄에 아마도 서울로 나들이를 온 가족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을 보고 셔터를 누르게 된 것이다. 유원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1980년대,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도 서울 시민의 숨통을 틔우는 곳이 있다는 것은 참 다행이다. 오른쪽에 놓인 박성진의 사진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렌즈를 바라보는 인물의 표정이 자연스럽다. 풋풋한 젊은 세대의 표정을 편안하게 포착한 사진가의 시선이 돋보인다. 한강은 단란한 가족들이나 운동하는 사람의 휴식처뿐 아니라 갈 곳 없는 젊은이들의 은신처가 되고 있다.”구본창 

 

 

 

박성진, ‘한강’, 2006 

 

“사진 속의 아이들은 멋지고 매력적이다. 이 사진은 10대 청소년들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내 개인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리얼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아름답고 슬프고 힘든 시간의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강은 이 도시에서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휴식처 같은 곳이다. 사진가 구본창의 한강 풍경은 1980년대 사진인데도 그보다 더 예전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그림의 배경에 놓인 한강 주변의 도심 풍경 때문인 듯하다. 뒷배경에 비친 서울의 도심 풍경만 제외하고는 지금의 한강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강 나들이 나온 가족의 기념 촬영 모습이 매우 한가하고 소박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서울의 하늘이….” 

박성진 

 

 

안성석, ‘랑랑 프로젝트’, 2014 

 

 

겸재 정선, ‘양화환도’, 견본채색, 23×29.2cm, 1741

 

“텅 비어 있는 한강 가운데에서 단절과 분리를 경험했다. 언젠가부터 한강은 바라보는 풍경이 됐고, 콘크리트 한강 변은 익숙하기만 하다. 동시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한강 변의 사람들을 보며, 차로 빼곡히 막혀 있는 양쪽의 대로를 바라보며 물 위에서 일시적인 자유를 느꼈다. 나의 한강 프로젝트는 그러한 경험의 산물이다. 겸재 정선의 한강과 한양 일대의 그림을 모아놓은 <경교명승첩>은 한강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데 동기부여가 된 작품이다. 

‘양화환도’에는 한강에서 이제 볼 수 없는 모래사장이 있고, 이 모래들은 서울의 아파트가 되었다.” 

안성석

CREDIT

EDITOR : 전희란PHOTO : 동방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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