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내가 한복을 입는 이유

한복엔 매혹적인 모순이 숨어 있다. 둥글고 뾰족한 섶, 고상한 도포 뒤에 숨은 분방함은 이 도시의 크리에이터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준다. 건축가, 한국학자, 사진가, 스타일리스트, 칼럼니스트와 함께 21세기의 옛 옷, ‘한복’의 오늘과 미래를 탐색했다.

2016.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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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은 나를 상징하는 일종의 ‘명함’이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흔히 ‘한복 입은 덩치 큰 백인 아저씨’라 부른다. 확실히 나의 큰 몸집이나 피부 색깔보다는 한복이 눈에 띄긴 한다. 그리고 “왜 한복을 입으세요? (그렇다면 당신은 왜 양복을 입는가?), 한복은 누가 사줬나요?(외국인은 혼자 한복을 사지 못한다고 생각하나?), 스님이신가요?(특히 여름에 머리를 밀면 이 질문을 많이 받는다)” 같은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런 호기심 어린 질문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서울의 지하철에서 한복을 입은 덩치 큰 백인을 만날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한복은 한국에 온 지 1년, 그러니까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1997년부터 입기 시작했다. 대부분 내가 신념이 깊거나 한국을 유난히 사랑해서 한복을 입는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말해주고 싶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내가 한복을 입기 시작한 것은 단순히 한복이 좋아서이다. 너무 심플한가? 그렇다면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다. 나는 어디를 가든 그 지역 전통 의상에 많이 끌리는 편이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국에 나가면 디자인과 색, 질감, 재질이 완전히 다른 옷을 입은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19세기만 해도 독일 바이에른 사람들은 레더호젠을,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봄바차를, 남아프리카 사람들은 시어서커 수트를, 러시아 사람들은 사라판을, 일본 사람들은 기모노를 입고 생활했다. 그리고 이처럼 모양과 색상이 다양한 각국의 전통 의상은 세계를 더욱 아름답고 매혹적으로 만들었다. 세계화는 우리에게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다양한 민족과 문화 간 이해의 폭을 넓히고,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의 경제성장을 촉진했다. 지금 내가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세계인들과 소통하고 친구를 맺을 수 있는 것도 세계화 덕분이다. 하지만 세계화가 도움이 되지 않은 분야가 하나 있는데, 바로 의복의 다양성이다. 오늘날에는 전 세계 어디를 가든 대부분 서양식 옷을 입고 있다.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10월 독일 뮌헨에 가면 레더호젠을 입은 독일인을 만나고 일본 교토 거리에서 끈질기게 기다린다면 기모노를 입은 여성을 한두 명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오늘날 세계 패션은 대부분 서구 스타일로 획일화되어 있다. 근대화와 서구화(대부분 지역에서 두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대량생산으로 인해 파타고니아부터 몽골 대초원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수십억 인구가 똑같은 비즈니스 정장에 구두,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게 되었다. 나는 전통 의상이 일상에서 사라지고 명절이나 축제 기간에만 입는 특별한 의상이 된 현실이 언제나 안타까웠다. 우리가 사우디아라비아를 어떻게 생각하든 이들이 전통 의상을 지키고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전통 의상에는 한 지역의 지리, 기후, 역사, 생활 방식, 종교, 미학이 모두 담겨 있다. 전통 의상은 보통 숙련된 장인이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기법으로 소량 생산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탄생한 전통 의상은 예술적 아름다움과 집단의 사고와 지혜가 모인 결정체라 할 수 있다. 티셔츠는 전 세계 어느 공장에서나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지만 좋은 한복을 만들려면 장인의 손길이 필요하다.


다시 내 이야기로 돌아오면, 내가 한복을 처음 접한 것은 1990년대 말 경상북도 작은 시골 마을에 살면서였다. 당시 전통 한복에 현대적 요소를 가미한 개량 한복이 막 유행하던 때였다. 그때 우리 마을에서 한복을 파는 가게는 하나뿐이었고, 그나마 한복을 입은 사람도 나와 마을에서 작은 전통 찻집을 하던 부부가 전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나는 그때까지 입던 서양 옷을 모두 버리고 한복을 선택했다. 지금 결혼한 지 10년이 넘은 아내도 내가 다른 옷을 입은 것을 본 적이 없다. 언젠가 아내가 “당신이 청바지를 입은 모습을 보고 싶다.”라고 말하길래 “내가 죽어서 관에 눕힐 때는 당신 맘대로 입혀라.”라고 말한 적도 있다. 한복은 편하고 실용적이고 보기도 좋다. 우리가 흔히 일상복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한복은 일할 때, 놀 때, 쉴 때는 물론 저녁 식사를 하러 나갈 때도 입을 수 있다. 정장이 필요할 때나 캐주얼을 입어야 할 때 언제든 좋다. 간단히 말해 한복은 언제 어디에서나 잘 어울린다.


사실 한복은 매우 자유로운 의상이다. 많은 이가 아침에 일어나면 옷장 앞에 서서 오늘은 무엇을 입을지 고민한다. 하지만 한복은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무엇을 입을지 어떻게 보일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복은 바쁜 아침 고민거리를 하나 줄어준다. 한복은 가격 부담도 적다.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명품 한복은 상당히 고가지만 그래도 고급 양복 브랜드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다. 게다가 한복은 두어 벌만 있으면 충분하다. 최신 유행을 따라가느라 거금을 쏟아붓지 않아도 된다.


작년부터 한복을 찾는 이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2015년 10월, <보그> 매거진 서울판은 “한복이 다시 유행하면서 도시의 패션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북촌한옥마을에서는 한복을 빌려 입고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셀카봉으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을 쉽게 만난다. 어떤 이들에게 한복은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찍기 위한 색다른 경험에 불과하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 한복은 단순한 의상 선택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김영진, 황이슬 같은 디자이너는 전통적 제약에서 한복을 해방시키고 그 과정에서 재미있고 색다른 요소를 찾아낸다.  “패션은 상상력과 변화하는 요구에 따라 진화한다. 전통이 아니라는 이유로 변화를 무시하면 결코 우리만의 한복을 만들 수 없을 것이다.”김영진 디자이너가 10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말이다. 최근 만난 한 디자이너는 미국의 인기 애니메이션 캐릭터 스폰지밥을 패턴으로 사용해 한복을 제작해 주목받기도 했다. 모두, 매우 반가운 변화다. 그렇다면 이러한 한복 유행이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가? 잠깐 스치고 지나가는 일시적 유행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흐름이 한복의 좀 더 깊은, 이를테면 전통의 아름다움, 로컬 프로덕트의 매력과 같은 의미를 보여주고 남기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일시적인 유행이든 재발견의 기회든, 나는 앞으로도 한복을 자랑스럽게 입고 다닐 것이다. 한복을 몇 벌 더 장만할 수도 있다. 혹시 스폰지밥 무늬가 새겨진 한복을 살지 누가 알겠나?


 

 

about 로버트 쾰러는 외국인에게 서울을 소개하는 도시 문화 잡지 <서울 셀렉션>의 편집장이다. 개인 블로그에 한국의 정치, 사회, 문화 등에 대한 깊이 있는 글을 연재하는데, 열독률이 높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북촌과 이태원에서 매일 한복을 입고 다니는 외국인을 봤다면 로버트 쾰러일 확률이 높다.

 

 

 

장도
여성이 정절을 지키지 못했을 때 자결하기 위해 쓰인 용도로만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남녀 모두가 호신용, 장식용으로 지니고 다녔다. 남자는 저고리 고름이나 허리띠에 고리를 달아 차고, 여자는 치마 속 허리띠에 찼다. 칼자루와 칼집 위에 무늬나 글자를 새겨 모양을 냈다. 음식 속에 독이 들어 있는지 가려내기 위해 은 젓가락이 달린 장도도 있었다.

 

 

CREDIT

EDITOR : 로버트 쾰러PHOTO : Lee Seungbeom(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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